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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ㅣ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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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웅 열전이자 유럽 역사의 초창기를 이끈 위대한 정치가와 장군들의 삶을 기술한 것이다. 지도자들의 처세와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한 번에 배울 수 있는 교양 백과사전으로 꼽힌다. 나폴레옹, 처칠과 같은 정치가나 군인, 몽테뉴와 루소 등 여러 지성인들의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비롯한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동양의 삼국지와 곧잘 비견되는 책이며, 서양의 정치 문화부터 예술 창작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가르침을 안겨주며 유럽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고전이다. 베토벤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괴로울 때 이 책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디자인
기존에 출판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는 다른 느낌의 디자인이 내 관심을 더 끌었다. 와, 알고보니 내가 엄청 좋아하는 <워크룸 프레스>에서 디자인 작업을 했다고 한다. 역시! 먼저 디자인을 얘기해 보자면 눈에 확 들어오는 선명한 컬러감이 인상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영웅들의 옆모습이 심플하게 자리 잡고 있다. 책 소개만 봤을 때는 표면의 질감을 알 수 없었는데 책을 받아 실물을 보니 질감이 느껴졌다. 질감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느낌이 영웅들의 옆모습과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본문 폰트는 예스러운 느낌이 나기도 하고 캐주얼한 느낌도 나서 너무 무겁지 않다.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면서 고전의 느낌이 잘 어우러진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기존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고전적인 느낌을 현대적으로 바꿔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디자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전권 소장하고 싶어진다.
첫 부분에 번역자의 말이 나온다. 아주 오랜 고전인 만큼 세계적으로 다양한 번역본이 있기 때문에 어떤 번역본을 참고했는지에 대한 설명들이 나온다. 출간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역자의 말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다. 1권에는 열 명의 영웅들이 나온다. 테세우스, 로물루스로 시작해 리쿠르고스, 누마, 솔론, 푸블리콜라,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대(大)카토까지. 그리고 두 명씩 끊어서 비교한 글이 사이사이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도 아직 안 읽어본 나는 처음에 익숙지 않은 이름과 지명에 혼돈스러웠다. 그나마 몇 개 안되는 아는 이름도 입시 미술을 하면서 석고상들로 봤기 때문이었다. 글자가 눈으로 들어와 뒤통수로 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금세 익숙해져서 리쿠르고스부터는 아주 재밌게 읽었다. 리쿠르고스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런지 그때부터 집중이 잘 되고 페이지도 잘 넘어갔다. 1권을 다 읽은 지금도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리쿠르고스다. 그리고 누마, 아리스티데스가 순서대로 인상적이었는데, 아리스티데스는 리쿠르고스를 아주 존경하고 따르고자 했다니 역시 리쿠르고스가 인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이지만) 열 명의 인물들을 다 요약하긴 그렇고 내가 제일 좋았던 리쿠르고스와 아리스티데스에 대해서만 간략히 적어본다. 아, 덧붙이자면 가장 별로였던 인물은 테미스토클레스였다. 해상 전쟁에서 활약했다고는 하나 천성이 욕심 많고 모함하는 것 밖에 모르는 지질한 사람이었다. 이것 역시 아리스티데스 설명과 함께 이야기하겠다. 아, 그리고 테미스토클레스 못지않게 이상한 사람은 마지막의 (大)카토 였다. 뭔가 청렴하고 고결한듯 하지만 알고 보면 옹졸하고 인색하고, 공치사는 어찌나 잘하는지 자기 자랑 하기 바쁘고, 지나친 권력욕과 정욕으로 이름을 깎아먹는데 말하는것만 보면 굉장한 성인처럼 군다는 게 너무 이상한 사람 같았다. 테미스토클레스하고는 카테고리가 다른 이상한 사람.
리쿠르고스[기원전 9세기]
리쿠르고스의 꿈은 자기 조국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행복은 덕성이 넘치고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 사이가 화목한 데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p.218)
리쿠르고스는 스스로 왕의 자리를 내어놓고 섭정으로서 왕권을 행사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좋은 법과 체계를 가지고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원로원 체제를 확립해 안정과 중용을 꾀하고 토지 재분배로 가난과 재산의 불평등을 제거하며 시샘, 범죄, 사치를 몰아냈다. 꽤 과격하긴 하지만 공동식당을 만들어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식사했고 사치, 식탐 등 과욕을 없애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했다. 온화하고 공의로운 성격으로 평화를 사랑하였으며 올림픽 기간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게 했다. 여성을 젊은 남자에 못지않게 단련시킴으로써 나약함과 섬세함에서 벗어나게 했다. (스파르타 영화 속 강인했던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 외국인들을 거의 몰아내다시피했는데, 이는 그들이 스파르타인의 덕성을 배워가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스파르타인들에게 악행을 가르칠까 걱정해서였다. 읽다 보면 너무 좋은 지도자인 듯한데 또 가만 생각해 보니 사회주의가 이롭게 작용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싶었고 아마 사회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이상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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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언은 스파르타가 아닌 죽은 곳에서 화장되어 재로 뿌려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정치 제도를 고치지 않고 지키기로 약속했으니, 시체라도 돌아가면 법을 바꾸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였다. (p.220)
⭐ 리쿠르고스는 어느 날 신탁을 받기 위해 떠나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왕들과 원로원 의원들, 민중에게 자신이 제정한 법들을 꼭 지키겠노라 약속받았다. 자신이 행한 일들이 훌륭했으며 체제를 계속 지켜나가는 한 스파르타는 높은 영예를 누리며 지속되리라는 신탁을 받은 리쿠르고스는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민중이 법을 지키겠다 했으므로 돌아가지 않고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고 스스로 음식을 끊고 죽었다. 그로부터 500년간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의 법을 지켰다. 이렇게 오래도록 지켜진 이유는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 리쿠르고스가 수련과 교육을 통해 소년들의 성품 속에 법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마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역시나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고 훌륭했으며, 민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누마의 제도는 튼튼한 교육이 뒷받침되지 못하여 오래갈 수 없었다. 리쿠르고스는 민중에게 존경받음과 동시에 이웃나라에서도 명망이 높았다. 너무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정치인들을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다.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법과 제도가 과연 있을까 생각했는데, 기록에 남는 걸 읽는 게 다라 확실히 알 순 없어도 리쿠르고스는 꽤나 근접했던 모양이다. 물론 노예에게 가혹했던 점이나 헬로트족에게 행한 가혹행위를 나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완벽한 지도자가 세상에 있으랴.
아리스티데스[기원전 530 ~ 468]
리쿠르고스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아리스티데스도 인상적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아리스티데스는 리쿠르고스를 존경하고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역시..) 어려서부터 심지가 굳고, 의협심이 있으며 천박한 행동이나 속임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옳지 못한 일에 엮일까 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혼자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테미스토클레스와는 어릴 때부터 자주 부딪혔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소년을 동시에 사랑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극과 극인 천성으로 인한 것이었던 듯하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의롭게 처신하려 노력했으며 명예에 들뜨지 않고 역경에도 차분했으며 돈이나 명예 같은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이의 훌륭한 의견을 적극 수용할 수 있었다. 내가 테미스토클레스가 제일 별로였던 이유는, 충동적인 천성이나 여흥을 좋아하고 헤펐던 점, 나랏돈을 횡령해 부를 축적한 점도 있지만 사사건건 아리스티데스의 의견에 반대하고 빈정거렸으며 모함하여 추방당하도록 하는 등 한결같이 지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리스티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안건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내가 성실하고 영예롭게 업무를 수행할 때는 나를 비난하고 고발하더니, 이제 도적들에게 공금을 나누어 주니 나를 선량한 시민으로 보는군요. 나로서는 지난날 여러분에게 고발당했을 때보다 지금의 삶이 더 부끄럽습니다. (p.496) - 국고 감독관에 선출된 아리스티데스가 동료들과 테미스토클레스의 횡령을 알아내자 테미스토클레스가 모함하였다. 그 후 아리스티데스가 엄격한 지난날을 후회하는 시늉을 하며 엄격하게 감독하지 않았더니 부패한 관리들은 기뻐했다. 그제서야 아리스티데스를 추어올리면서 민중을 설득하고 다시 감독관이 되도록 투표하려 하자 아테네 시민을 꾸짖으며 한 말.
늘 자신을 모함하는 테미스토클레스였지만 아리스티데스는 그렇지 않았다. 전쟁에서는 대의를 위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여러 전쟁에서 현명한 판단과 설득으로 아테네의 승리를 이끌었다. 병사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고 정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했다. 아테네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지만 자신은 원래 갖고 있던 재산만으로 검소하게 생활했다. 그렇게 청빈한 생활을 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아리스티데스를 추방한 사람도 테미스토클레스였지만 테미스토클레스가 같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기의 행복을 도모하지도 않았다. 그가 잘 나갈 때 그를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청빈하게 살았던 그는 장례비조차 남기지 않아 시민이 국고로 무덤을 세워주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그의 자식들까지 돌보아주었다고 한다.
아리스티데스가 칭송을 받자 테미스토클레스가 빈정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장군의 가장 훌륭한 덕목은 적군의 계획을 꿰뚫어보는 것이지요.
이에 아리스티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테미스토클레스 장군, 그 말이 맞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영예로운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장군이라면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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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는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를 모아 서술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어째서 그런지 설명해 주고 연대나, 동시대 인물을 고려하여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를 알려준다. 처음에는 그래서 혼돈스럽기도 했지만 읽다 보면 역시 익숙해진다. 어려운 마음 가득 긴장하며 시작한 책이지만 재밌게 읽었다.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 각 인물마다 정치적, 개인적 신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펼친 정책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지도자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어땠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졌지만 읽다 보니 그들도 인간이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시민들을 위한 훌륭한 법을 제정하고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고 청렴한 생활을 하는 등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거나, 유약한 모습을 보이고 자만에 빠져 교만해지고 폭력을 행사하고 상대를 모함하거나 국고를 자신의 재산으로 축적하는 등 어리석고 불완전한 모습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정치, 정부와 시민들의 관계는 현대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 일이어서 전혀 새롭지 않았는데, 그래서 또 재밌는 거다. 아주 오래된 고전이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지도자들의 훌륭한 어록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게 된다. 나처럼 도전할 엄두를 못 냈던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리쿠르고스의 꿈은 자기 조국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행복은 덕성이 넘치고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 사이가 화목한 데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 P218
그는 온 나라가 지혜를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줌으로써 그리스 정치 제도를 수립한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명성을 얻었다. - P219
그의 유언은 스파르타가 아닌 죽은 곳에서 화장되어 재로 뿌려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정치 제도를 고치지 않고 지키기로 약속했으니, 시체라도 돌아가면 법을 바꾸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였다. - P220
음식을 끊고 죽으면서 정치인은 죽는 일도 국가에 도움이 되어야 하므로 자기의 죽음도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 덕스러운 행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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