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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ㅣ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여름 지음 / &(앤드) / 2021년 8월
평점 :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 권여름(넥서스앤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봉희'는 '구유리'가 원장인 단식원(구유리 건강 힐링센터)의 코치이며 이야기의 전체 배경도 이 단식원이다. 어느 날 봉희의 관리하에서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굳건히 다이어트에 임하던 '운남'이 단식원에서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운남은 단식원과 연계한 한 유튜버의 채널에서 다이어트에 관한 컨텐츠 촬영으로 화제를 몰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져버렸으니 이것은 프로그램에도, 단식원에도 또 봉희의 관리 책임 능력 면에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저 다이어터와 코치라는 것 말고는 전혀 아는 게 없는 사이, 봉희가 운남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식원의 사람들은 거의 취후의 수단으로 단식원에 들어온다. 단식원을 나가는 순간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이유로 단식원이란 곳은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다. 평생을 거절당하며 업신여김을 받았던 봉희 역시 운남처럼 이 단식원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코치가 됐다. 봉희에게 이 단식원은 처음으로 인정을 받은 곳이자,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봉희에게 단식원 바깥의 삶은 살찐 몸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아니라 또다시 실패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단식원이라는 극한의 곳에 찾아올 정도로 절실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상업적으로 취하는 원장의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그저 화젯거리로 소비하려고 하는 유튜버라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사라졌던 운남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충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봉희는 어떻게 행동할까를 읽어보길 바란다.
내 생각에 다이어트는 안 할 순 있어도 마지막이란 건 없다는 생각이다. 감량 후의 유지기도 다이어트다. 어떤 강도로 지속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평생 관리하며 조절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궁금했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욕구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스스로가 잘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현상에 대해서 '본능'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곧잘 얘기한다. 그 당연한 게 나는 늘 그게 궁금하다. 내 몸이면서도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그것, 무한한 만족감을 주기도 하고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끼게도 하는 그것 말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해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작가의 말처럼 몸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서 그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또는 읽는 사람 각자의 경험을 비롯한 다양한 감상들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몸은 복수의 화신이다. 잘 당하지만 당한 만큼 보복한다. 어설프게 덤비면 원래 몸무게에 5kg 정도의 살덩이를 더 얹어 강한 펀치를 날린다. 그걸 몇 번이나 겪었기에 다이어트를 시도하지 못하는 상황일지 모른다. 무기력과 자책, 자신의 몸에 대한 무례한 반응이 준 상처가 한데 섞여 더 깊은 우울을 만들었을 것이다. - P42
그녀를 바라보는 기사의 표정이 봉희 머릿속에 그려졌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시에 저 예의 없는 한마디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모르는 사람이 던지는 무례한 시선과 폭력적인 말들. 그것에 노출되었던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P42
푹 익은 아욱을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짠 듯도 해서 하얀 밥알을 젓가락으로 한 꼬집씩 몇 번 집어먹었다. 밥알을 씹자 단물이 나오면서 입속은 난리가 났다. - P59
어쩌면 송동만의 말처럼 자신은 끝에 가서 결국 실패하고 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부지런을 떨고 앞서가다 결국 마지막엔 실패하는 삶, 그게 자기 삶의 패턴이 될까 봐 봉희는 늘 두려웠다. - P72
몸이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어림없었다. 봉희에게 살찐 몸은 마치 낮은 신분과도 같았다. 유능하고, 가진 게 많아도 뚱뚱한 몸을 걸치고 있는 이상 늘 위축되고 구속될 터였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봉희는 그걸 알았다. - P75
말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요요를 겪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충격은 분노로 바뀌고 그 화살은 결국 오롯이 자신에게 돌아간다. - P118
영리하고 재빠른 사람은 역시 불편했다. 쉽게 속을 내비치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귀신처럼 잘 감추는 사람들. 다른 사람이 방심한 사이 불리한 것들을 제거하고, 유리한 길을 신속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눈치도 빠르고 자신보다 한발 더 멀리 볼 줄 아는 사람과 보폭을 맞추는 일이 봉희는 늘 피로했다. - P141
소속감과 자부심을 선물해 준 단식원이었다. 세상에서 맛본 거절, 업신여김으로 받은 상처가 여기서 치유되는 중이라고 봉희는 생각했다. 저만치 밀어낸 구유리 품으로 제 발로 성큼성큼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마음이 봉희는 두려웠다. - P152
존중받는 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도 존중받으며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P198
절실하면 다 돼요, 뭐든지 절실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먹고 안 먹고를, 내가 못하면 누가 조절해요. 우리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야. 의지가 있는 사람이 그걸 죽어도 못하겠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 P200
막연한 신뢰는 이렇게도 허약했다. - P213
죽고 싶었지만 바로 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죽으면서까지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삶의 끝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할 거란 게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에요. - P254
사실 뒷심이 없었던 것도 늘 바깥의 목소리로만 움직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 정작 내 목소리를 들어준 적은 없었던 거예요. - P276
죽기 위해 들어간 단식원에서 다시 절망했던 운남. 절망했다는 건, 무언가 꿈꿨다는 것일까.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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