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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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머리에서 발끝까지에서 관심을 가장 두지 않았던 부분이 머리와 발바닥이었다. 종종 체하면 위가 아니라 머리가 아파서 정말 힘이 들긴 해도 그 두통은 그 두통과는 별개인 혈액순환의 문제로 인한 편두통 즘으로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면 통증과 관련된 부분은 신경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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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관련 서적 3권을 연속으로 보고나서 내가 한 일은 인터넷 백과사전을 펼쳐 인체구조 학습도감을 펼친 일이었다. 한 번에 쏙 들어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뇌의 구조에 대하여 매우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평면으로 보았지만 좌우상하 3D로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찾아보면 어딘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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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는 책을 가장 먼저 펼쳤던 것 책이 얇기도 해서이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뇌졸중의 경우 빠른 시간 내 발견되고 조치가 이루어지면 완치까지도 가능하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가장 많이 보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 우리동네 20대 아이가 뇌졸중이 온 경우를 직접 본적이 있다. 동네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뇌졸중은 노인성 질환으로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갈수록 연령대가 낮아진다 해도 그닥 무리가 없었지만 갓 대학을 들어간 전도유망한 동생친구가 그래서 매우 놀랐는데 두 번째 더 놀랐던 건 거의 회복이 완치에 가까웠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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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작은 책이고 사실 초반의 경우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부분은 매우 답답하기도 하였다(그래서 내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문학엔 매우 취약한가). 작가가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조현병을 진단받은 오빠의 삶에서 기인했는데 37세라는 젊은 나이 어느 날 아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뇌에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하고 치료하고 회복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전체의 3/4을 구성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비교적 쉽게 그리고 뇌의 구조와 기능적인 부분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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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마치 테트 창이 이라는 단편에서 자신의 뇌를 해부하는 해부학자처럼 자신의 의식의 유동적 상태를 그대로 재현한다. 아니 이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그녀의 뇌에서 출현이 일어난 부분은 좌뇌의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의 부위에서 이다. 무언가 평면의 세계에서 3차원의 세계로 흘러 들어간 느낌, 나와 외부의 경계가 흐트러지고, 특정 감각은 매우 발달되어 실재보다 더 크게 울리고 보이는 이 모든 경험의 순간을 기억하고 쓴 문장들은 정말 소설적 상황 같았지만 그 상황에서 의식을 잃지 않았다는 것. 의사들이 정신차려보세요. 환자분! 제 말 들립니까?‘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라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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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초반까진 난 뇌의 기능과 구조에 대해 알고 싶은데 이 이야긴 책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싶었고 그러기까지 읽은 부분에서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이 책이 뇌졸중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들이 환자의 빠른 회복을 위해 알아야 할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환자의 의식이 있음에도 그녀가 의식이 없는 듯 행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매우 상심이 컸음을 그녀가 직접 책에서 언급하고 잇다. 이후 그녀의 경우 미국에서 뇌과학 분야 최고의 권위자들로부터 치료를 받았기에 자신의 언어적 능력이 손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으로부터 의식하는 바가 다르게 표현, 혹은 표현되지 않을 지라도 충분히 환자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뇌의 연결망의 모든 요소가 제 기능을 잃고 상호작용을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한 인지적 측면, 좌뇌의 기능이 손실된 부분을 상세히 적었다. 특히 좌뇌의 손상으로 인해 우뇌가 좌뇌의 통제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우뇌의 활동이 활발해진 상태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매우 자세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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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인 저자조차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우리와 세상의 관계가 신경 회로의 산물이라는 것을 믿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은 어떠한가. 나의 경우에도 그와 같은 이유로 행동심리쪽 관심이 그나마 가장 높기는 하였는데 갑자기 뇌과학 책을 읽고 나니 사고, 생각, 인식, 의식, 마음, 심리, 지각, 감각 등을 명확히 개념정의가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개념 속에 개념이 들어가 있는 순환고리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오로지 내 심장이 뛰고 있다하더라도 모든 것이 멈추어 질 수 있다는 것, 의식이 발현이 되는 모든 것, 받아들여진 감각이 흡수만 될 뿐 그것이 뇌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던 모든 것이 멈춘 순간을 상상해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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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은 저자가 말한대로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만들 사람은 없다는 것(p.119)을 여느 간접경험보다 더 크게 와닿았다는 것이다. 차마 이런 것을 알기 위해서 저자처럼 직접적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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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른손잡이인 좌뇌 우세형 인간이지만 그녀가 언급한대로 생각과 느낌, 이성과 본능, 소자아와 대자아, 감각과 직관, 판단과 지각 등에 있어서는 내가 그다지 좌뇌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이런 건 약간 혈액형에 따른 성격풀이 같은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동안 이런 우뇌적 습성이 좀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그러나 다시 학부때로 돌아가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쉽사리 바뀌지 않을-을 조금은 싫었던 마음을 덜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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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유용성은 때문에 내가 원래 알고 싶었던 3부의 우리는 뇌에 관해 알아야 합니다라는 부분의 뇌 구조기능적 측면이었지만, 읽고나니 의식과 뇌에 대해 관심이 더 커졌다. 우리의 세포와 신경회로가 만들어낸 경험들,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 지금 경험하는 이모든 것은 그 자리에 멈추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내가 뇌에 대하여 사실 심리학 중심의 관심에서 좀 더 확장이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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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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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만인의 프로였던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면서 크로아티아 편이 나온 적 있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와 플라차 거리 등 세상에 저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아마도 2000년대 후반이었던 거 같은데 게스트 하우스 주인아주머니와 인터뷰를 하는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나라가 6번이나 바뀐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건가? 하고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다. 여전히 건물마다 빗발처럼 내려 앉았던 총탄의 흔적은 2012년 동유럽 여행 당시에도
 
최근 폴란드 작가 올카 토카르추크,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의 소설과 수전 팔루디의 논픽션 등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동유럽 역사에 대해 내가 생각보다 더 무지한 것을 알았다. 관련된 정보를 접하다가 발칸이 유럽의 화약고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책은 보스니아 출신의 작가가 유고연방이 해체 과정에서 자신의 나라를 떠나 난민으로서 독일로 오게 된 한 남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의 서술자인 작가(사샤)는 경영학을 전공한 전공한 아버지와 그리고 마르크스 정치학을 전공한 교수인 어머니가 있고, 조부, 외조부와도 함께 살아가는 보스니아에서 평범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발칸 지역이 오랜기간 동서양의 발판으로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오고 간 곳으로 사샤의 집안 역시 그 기원을 올라가면 태어난 나라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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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발칸 지역 여행을 갔던 그 곳의 풍경은 사실 너무 고요한 풍경이었고, 한 나라의 이름과 수도가 뭐가 먼저인지도 모를 정도로 사실 그 조그만 땅덩이 안에서 겹겹이 붙은 채 있는 곳은 무척 신기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해안선을 따라 내려갔는데 중간에 보스니아 국경을 지나야 해서 여권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땐 말그래도 서유럽의 어느 국경처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발칸지역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조용하고 청정했던 지역이 서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언했던 것이 불과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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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 책은 매우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중산층이었던 가족이 민족주의 광풍으로 인해 보스니아를 탈출해 독일로 오는 과정은 오늘날의 내전을 겪고 잇는 난민의 모습과 같지는 않지만 가진 것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이민가방 세개로 난민들이 모여 거주하는 곳에서 삶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미 자신의 삶을 뒤로한 채 사샤를 학교에 보내고 모든 것을 사샤를 위해 살아오셨음을 안다. 그들이 머물고 싶었지만 총부리를 겨누었던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음을 그리고 독일에서도 정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던 이야기들 속에서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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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것은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보다는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나았기 때문에 드러내고 힘겨움을 호소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래서인지 작가의 자전소설이라고 하지만 보스니아라는 나라가 속해 있던 발칸의 역사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독일사람들은 사샤가 어디서 왔냐고 하면 그저 유고 연방일 뿐 보스니아인지, 세르비아인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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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이나 피드에서도 이 소설을 소개할 때 나오는 카드메시지에선 이런 글이 자주 보인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러받은 상황에서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고.. 나처럼 한 곳에서, 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 조차 매 순간 저말을 상기하고 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렬히 공부하고 자신을 이루어왔던 사샤의 어머니는 그녀가 만들어온 역사가 어느날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게 어쩌면 최선일지도 모른다. 실제 책에서도 작가와 달리 그녀에게 출신은, 고향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움찔 하는 몸짓같은 것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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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가 못다한 이야기를 자꾸 상상하게 만든다. 뭐든지 빨리 배워 하겠다고 하면서 일자리를 찾던 아버지, 세탁소에서 오랜기간 증기를 마시며 일한 어머니, 떠나지 못해 그곳에 남아 전쟁도 비껴갔던 작은 마을을 생각하는 할머니, 그리고 독일에 와서 다시만난 그의 친구들,가족들의 이야기는 아주 조용하지만 그 울림은 크다. 아마도 그것이 작가 자신은 독일에서 계속적으로 남았고, 남들과는 또다른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외면할 수 없었던 기억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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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형식도 부분적으로는 기존의 형식과 달리 파괴적이고, 각 장의 경우 독립적으로 존재해도 손색이 없고 여운이 오래 남는 장들이 여러장이 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하겠지만 나의 경우 하이마트 박사부터 서로 경청하기, 손님들까지의 몰입도가 가장 높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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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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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일기장을 다시 가져다가 그때까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했다.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다른 기록처럼 애매하고 그림자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암시나 은유 뒤에 숨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쓴 일기를 지금까지 기억한다(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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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면한 이 부분은 회고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책 도입부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실려 있다. 과거란 흘러간 시간이라는 점에서 울프가 말한 대로 과거가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뒷 문장, 그 보다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생기면서 완성(명확)된다는 표현에 무게를 두게 싶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과거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어떤 것은 현재까지 놓지 못해 지속되는 과거도 있고,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상적인 일도 과거이다. 그리고 잊고 싶은 과거, 잊지 말아야 할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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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한 부분은 그녀가 회고록 장르로 논픽션을 썼는데 아직 계속되고 있는 그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책의 성격을 규명하기가 어려웠던 부분이다. 그녀가 책에서 언급한대로 삶을 이루는 모든 결정들,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생겼다(p.75). 두 번의 교통사고, 친오빠의 변기 폭력 사건, 주차장 사건, 반려견을 죽이고 협박하던 장면, 아내를 물건처럼 던지는 일, 절단기 사건 등 이 모든 일들은 읽는 동안 내가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참기 힘들었다(내가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거리두기를 못한 것이 잘못된 읽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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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이란 배움으로 극복된 것인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이면의 이야기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인가. 자신의 친오빠인 숀이 처음 폭력을 행했던 날. 단지 그 사건을 축소하고 다른 이유로 자신의 영혼을 달래는 경험의 이야기는 그날로 끝난 것이 아니다. 10년 동안 그와 같은 수많은 밤들의 기억을 규정한 순간 자신을 부러뜨릴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경험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책에서 끊임없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외적 상황에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내적 상황을 통제하는 그 상황은 그녀가 말한대로 배움이후 그것의 부당함과 불편함을 인식하고 말로 할 수 있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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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어린 소녀가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아왔고 결국 이후에도 그녀의 삶에서 친절을 제외한 어떤 형태의 잔인함도 견뎌낼 수 있는 삶을 살았다는(p.376) 고백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케리 박사와의 만남 이후에도 그녀는 그 기억을 아무리 깊이 묻어도, 그 기억들에 대해 아무리 굳게 눈을 감아도, 나 자신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목욕탕의 그 소녀, 주차장의 그 소녀 모습이라는 것(p.380)은 뚜렷이 남은 진상이다. 나는 그것이 현실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녀가 무학으로 대학을 가고 캠브리지를 가고 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 책에서도 그 이야기는 아주 부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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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을 타라가 교육을 받은 후에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개인적 극복이야기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전히 그녀의 언니와 오빠의 부인 에밀리의 삶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타라의 말대로 교육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면 그녀들의 삶은 교육을 받지 못해 그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가정폭력과 종교적 원리주의 가족의 전통은 구조적인 문제이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감동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엄마를 비롯한 그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과거는 현재만큼 추했다고(p.455)하였는데, 나는 그 말에서 결국 끝나지 않은 과거, 계속되는 이야기라는 것에서 이 책은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현실을 직시한 후 이 책을 낸 시기와 이 책이 발표 된 후 가족 내 관계와 역학이 이전과 같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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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나는 오빠가 없다. 소설이나 책을 볼 때 거리두기를 하는 일이 공감에 장애가 될까봐 늘 경계했었는데 이번 책은 나 스스로 거리두기에 실패 해서 이렇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권할 수도 안 권할 수도 없는 답답함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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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 시녀 이야기 세트 - 전2권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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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 끝나버린 고통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은 건 그림자뿐인데, 그것도 마음속이 아니라 육체에 새겨진 그림자, 고통은 표식을 남기지만 정작 너무 깊어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는 법(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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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애트우드#시녀이야기#증언들#황금가지#김선형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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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애트우드를 많이 늦게 만나 리커버판으로 갖고 있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녀의 스타일에 빠져버렸다(책을 미리 사두어서 너무 행복한 것). 겨우 두 권을 읽고 그렇게 말하면 과도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난 언제나 이렇다. 사람들이 애트우드 만만세를 할 때 잘 몰랐는데..아 이런 글을 쓰는 작가님이셨구나. 사람들이 그래서 그녀의 두꺼운 책 한권이 아니라 시리즈도 중간에 쉬지 않고 잘 읽어내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만난 작품은 바로 「시녀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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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라는 단어, 복고풍의 표지에서 17,18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줄 알았다가 그게 아님을 알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읽는 동안 내내 그 흥미를 유지했다. 스토리 자체도 탄탄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주는 애트우드의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하다.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시작부터 이러하다. “우리는 미래를 갈망했다. 우리는 어쩌다 터득하게 되었을까? 영영 채울 수 없는 허기를 갈구하는 이런 재능을, 도대체 어디서 배워버린 걸까? 갈망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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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책 이길래 시작부터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가 싶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이야기의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은 하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소설적 미학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러한 친절은 34년 만에 나온 후속작 ‘증언들’에서 충분히 작가와 독자가 함께 전개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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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에도 하나씩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지만 다 읽고 나서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상호감시, 사방감시, 여성과 임신, 마이너스 출산,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동성애, 여성에 대한 성범죄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달라진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겐 달라진 세상, 누군가에겐 예전 그대로의 세상, 자유와 선택에 관한 깊은 고민, 당연시 되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날씰과 씨실이 되어 완성된 그림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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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연 디스토피아 소설일까? 디스토피아와 관련된 소설이긴 해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그러한 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범죄에 대해 대놓고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애트우드는 34년 전에 쓴 이 소설에서 다음의 글을 썼다. “그녀에게 있어 성공적인 삶이란 ‘그런 일들’을 잘 피하고 ‘그런 일들’을 배제한 인생이었다. 좋은 여자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p.97).” 재닌이 레드센터에 들어온 후 스스로 비판해야 했던 그 장면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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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들이 전개 되는 동안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는 문장이 나오는데 바로 다음과 같다.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 자아는 지금부터 내가 구성해야만 하는 물건이다. 연설을 짜 맞추어 구성하듯이 지금부터 내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무엇이다(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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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이야기는 대략 5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남은 400여 페이지가 진행되는 동안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고통과 모멸, 참을 수 없는 순간을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결코 머물고 싶지 않은 이 순간을 사는 삶(p.248)을. 애트우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속 화자로 등장하는 오브프레드가 얼마나 각성상태에서 살고 있는지의 모습을 통해 읽는 독자마저 그렇게 만든다. 결말마저도 사실 나는 맘에 들었다. 시녀이야기와 동시에 읽다보니 ‘증언들’ 역시 너무 재밌었다. 용기 있고 현명한 소녀들과 인내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여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시녀이야기’가 있었기에 ‘증언들’이 있다. 내게 증언들은 전작에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만나 그 흥미가 더 크진 않았지만 여전히 멋진 문장들이 많았다. 애트우드 여사님 만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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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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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하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하고 그다음은 잇지 못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 정도밖에 나가지 못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역시 볼 때는 즐겁고, 읽다보면 아 이게 여기서 나온 말이구나 싶지만 좀체 삶에서 이를 실천하는 지향점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다. 옛날 선비들이야 매일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사람이 있었을 터인데 지금 우리가 논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끝을 맺는 일은 아마도 내가 사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신기한 게 다시 돌아가서 읽어도 새로우니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논어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한대로 지적 담론의 소산(p.69)으로서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궁핍한 시대를 살면서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고투했던 당대의 지식인 중 한사람(p.72)의 말과 삶이 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거쳐 지금 여기에 이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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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 대해 나 자신보다 타인에게 추천하기에는 충분히 좋았던 교수님의 책이 다시 나왔을 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는데 실은 나는 전작보다 이 책이 매우 좋았다. 유머코드가 이전작보다 훨씬 많았는데 그 유머들 때문에 본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한 주제에 대한 분량도 적지 않은 편이라 오히려 이런 글쓰기 방식이 내게는 좀 더 진중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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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몇 년간 연재된 글이라 하니 아마도 이 글들 또한 그 당시 여러 사회분위기나 주요 문제를 고려한 주제가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떤 챕터에는 한가지의 주제 예를 들면, 인(仁), 위(威), 욕(欲), 정(正), 예(禮), 권(權), 습(習)등으로 하여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몇 천 년 전에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을 포개어 준다. 이를테면 정확하게 미워하기(p.90)에 대한 부분, 정확하기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p.95)을 필요로 한다는 부분이나, 누구보다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아라는 말 대신 70세에 마음이 욕망하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p.104)는 말을 전하면서 그말의 속 깊은 뜻은 오늘의 자신은 조금이나마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었으므로, 그 결과 멋대로 해도 되는 경지에 마침내 도달했다(p.105)글로서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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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가르쳐 지는 것이 삶의 태도로서 갖춰야할 제반 가르침과 같은 위치, 학습되어야 할 유교로서 갖는 위치가 매우 크지만 이처럼 삶의 태도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임을 이 책을 보다보면 느끼게 된다. 다음에 이어지는 책에서 나온 구절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임기응변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경지를 완수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p.124)’, ‘우리는 외적인 행동규범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행동 규범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p.137)’,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p.145)’, ‘정교한 질문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훈련된 행위이며, 대상을 메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p.153)’, ‘욕심과 예의가 전쟁을 할 때, 예의가 욕심을 이기게끔 하면, 자신은 예로 돌아갈 수 있다(p.155)’, ‘안으로 반성하며 거리끼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p.168)’와 같은 부분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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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저자는 논어 에세이라고 했지만 사실 개인의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그런 에세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정말로 ‘논어’가 중심에 있고 그리고 그 범위는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러준다. 알려진 바와 같이 향후 교수님이 구상하고 있는 논어프로젝트의 일부이고, 이 에세이는 논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라고 한다. 앞으로 전개될 그 프로젝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코밍쑨을 전달하기에는 좋았던 책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저자의 의도와 달리 나는 본문에 너무 빠져서 읽고 말았다. 텍스트를 읽어내는 일에 대한 연습보다.. 뭐랄까.. 난 항상 강의를 열심히 하는 교수님이 좋았다 할까? 16주간 강의계획서를 받았을 때 발표가 절반을 차지하는 그런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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