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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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만인의 프로였던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면서 크로아티아 편이 나온 적 있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와 플라차 거리 등 세상에 저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아마도 2000년대 후반이었던 거 같은데 게스트 하우스 주인아주머니와 인터뷰를 하는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나라가 6번이나 바뀐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건가? 하고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다. 여전히 건물마다 빗발처럼 내려 앉았던 총탄의 흔적은 2012년 동유럽 여행 당시에도
 
최근 폴란드 작가 올카 토카르추크,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의 소설과 수전 팔루디의 논픽션 등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동유럽 역사에 대해 내가 생각보다 더 무지한 것을 알았다. 관련된 정보를 접하다가 발칸이 유럽의 화약고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책은 보스니아 출신의 작가가 유고연방이 해체 과정에서 자신의 나라를 떠나 난민으로서 독일로 오게 된 한 남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의 서술자인 작가(사샤)는 경영학을 전공한 전공한 아버지와 그리고 마르크스 정치학을 전공한 교수인 어머니가 있고, 조부, 외조부와도 함께 살아가는 보스니아에서 평범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발칸 지역이 오랜기간 동서양의 발판으로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오고 간 곳으로 사샤의 집안 역시 그 기원을 올라가면 태어난 나라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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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발칸 지역 여행을 갔던 그 곳의 풍경은 사실 너무 고요한 풍경이었고, 한 나라의 이름과 수도가 뭐가 먼저인지도 모를 정도로 사실 그 조그만 땅덩이 안에서 겹겹이 붙은 채 있는 곳은 무척 신기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해안선을 따라 내려갔는데 중간에 보스니아 국경을 지나야 해서 여권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땐 말그래도 서유럽의 어느 국경처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발칸지역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조용하고 청정했던 지역이 서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언했던 것이 불과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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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 책은 매우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중산층이었던 가족이 민족주의 광풍으로 인해 보스니아를 탈출해 독일로 오는 과정은 오늘날의 내전을 겪고 잇는 난민의 모습과 같지는 않지만 가진 것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이민가방 세개로 난민들이 모여 거주하는 곳에서 삶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미 자신의 삶을 뒤로한 채 사샤를 학교에 보내고 모든 것을 사샤를 위해 살아오셨음을 안다. 그들이 머물고 싶었지만 총부리를 겨누었던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음을 그리고 독일에서도 정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던 이야기들 속에서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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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것은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보다는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나았기 때문에 드러내고 힘겨움을 호소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래서인지 작가의 자전소설이라고 하지만 보스니아라는 나라가 속해 있던 발칸의 역사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독일사람들은 사샤가 어디서 왔냐고 하면 그저 유고 연방일 뿐 보스니아인지, 세르비아인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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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이나 피드에서도 이 소설을 소개할 때 나오는 카드메시지에선 이런 글이 자주 보인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러받은 상황에서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고.. 나처럼 한 곳에서, 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 조차 매 순간 저말을 상기하고 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렬히 공부하고 자신을 이루어왔던 사샤의 어머니는 그녀가 만들어온 역사가 어느날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게 어쩌면 최선일지도 모른다. 실제 책에서도 작가와 달리 그녀에게 출신은, 고향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움찔 하는 몸짓같은 것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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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가 못다한 이야기를 자꾸 상상하게 만든다. 뭐든지 빨리 배워 하겠다고 하면서 일자리를 찾던 아버지, 세탁소에서 오랜기간 증기를 마시며 일한 어머니, 떠나지 못해 그곳에 남아 전쟁도 비껴갔던 작은 마을을 생각하는 할머니, 그리고 독일에 와서 다시만난 그의 친구들,가족들의 이야기는 아주 조용하지만 그 울림은 크다. 아마도 그것이 작가 자신은 독일에서 계속적으로 남았고, 남들과는 또다른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외면할 수 없었던 기억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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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형식도 부분적으로는 기존의 형식과 달리 파괴적이고, 각 장의 경우 독립적으로 존재해도 손색이 없고 여운이 오래 남는 장들이 여러장이 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하겠지만 나의 경우 하이마트 박사부터 서로 경청하기, 손님들까지의 몰입도가 가장 높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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