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논어하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하고 그다음은 잇지 못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 정도밖에 나가지 못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역시 볼 때는 즐겁고, 읽다보면 아 이게 여기서 나온 말이구나 싶지만 좀체 삶에서 이를 실천하는 지향점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다. 옛날 선비들이야 매일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사람이 있었을 터인데 지금 우리가 논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끝을 맺는 일은 아마도 내가 사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신기한 게 다시 돌아가서 읽어도 새로우니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논어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한대로 지적 담론의 소산(p.69)으로서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궁핍한 시대를 살면서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고투했던 당대의 지식인 중 한사람(p.72)의 말과 삶이 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거쳐 지금 여기에 이른 것.
.
전작에 대해 나 자신보다 타인에게 추천하기에는 충분히 좋았던 교수님의 책이 다시 나왔을 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는데 실은 나는 전작보다 이 책이 매우 좋았다. 유머코드가 이전작보다 훨씬 많았는데 그 유머들 때문에 본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한 주제에 대한 분량도 적지 않은 편이라 오히려 이런 글쓰기 방식이 내게는 좀 더 진중하게 다가왔다.
.
한겨레신문에 몇 년간 연재된 글이라 하니 아마도 이 글들 또한 그 당시 여러 사회분위기나 주요 문제를 고려한 주제가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떤 챕터에는 한가지의 주제 예를 들면, 인(仁), 위(威), 욕(欲), 정(正), 예(禮), 권(權), 습(習)등으로 하여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몇 천 년 전에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을 포개어 준다. 이를테면 정확하게 미워하기(p.90)에 대한 부분, 정확하기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p.95)을 필요로 한다는 부분이나, 누구보다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아라는 말 대신 70세에 마음이 욕망하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p.104)는 말을 전하면서 그말의 속 깊은 뜻은 오늘의 자신은 조금이나마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었으므로, 그 결과 멋대로 해도 되는 경지에 마침내 도달했다(p.105)글로서 마무리를 짓는다.
.
논어에서 가르쳐 지는 것이 삶의 태도로서 갖춰야할 제반 가르침과 같은 위치, 학습되어야 할 유교로서 갖는 위치가 매우 크지만 이처럼 삶의 태도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임을 이 책을 보다보면 느끼게 된다. 다음에 이어지는 책에서 나온 구절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임기응변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경지를 완수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p.124)’, ‘우리는 외적인 행동규범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행동 규범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p.137)’,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p.145)’, ‘정교한 질문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훈련된 행위이며, 대상을 메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p.153)’, ‘욕심과 예의가 전쟁을 할 때, 예의가 욕심을 이기게끔 하면, 자신은 예로 돌아갈 수 있다(p.155)’, ‘안으로 반성하며 거리끼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p.168)’와 같은 부분이 그렇다.
.
이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저자는 논어 에세이라고 했지만 사실 개인의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그런 에세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정말로 ‘논어’가 중심에 있고 그리고 그 범위는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러준다. 알려진 바와 같이 향후 교수님이 구상하고 있는 논어프로젝트의 일부이고, 이 에세이는 논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라고 한다. 앞으로 전개될 그 프로젝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코밍쑨을 전달하기에는 좋았던 책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저자의 의도와 달리 나는 본문에 너무 빠져서 읽고 말았다. 텍스트를 읽어내는 일에 대한 연습보다.. 뭐랄까.. 난 항상 강의를 열심히 하는 교수님이 좋았다 할까? 16주간 강의계획서를 받았을 때 발표가 절반을 차지하는 그런 것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