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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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일기장을 다시 가져다가 그때까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했다.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다른 기록처럼 애매하고 그림자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암시나 은유 뒤에 숨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쓴 일기를 지금까지 기억한다(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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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면한 이 부분은 회고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책 도입부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실려 있다. 과거란 흘러간 시간이라는 점에서 울프가 말한 대로 과거가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뒷 문장, 그 보다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생기면서 완성(명확)된다는 표현에 무게를 두게 싶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과거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어떤 것은 현재까지 놓지 못해 지속되는 과거도 있고,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상적인 일도 과거이다. 그리고 잊고 싶은 과거, 잊지 말아야 할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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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한 부분은 그녀가 회고록 장르로 논픽션을 썼는데 아직 계속되고 있는 그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책의 성격을 규명하기가 어려웠던 부분이다. 그녀가 책에서 언급한대로 삶을 이루는 모든 결정들,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생겼다(p.75). 두 번의 교통사고, 친오빠의 변기 폭력 사건, 주차장 사건, 반려견을 죽이고 협박하던 장면, 아내를 물건처럼 던지는 일, 절단기 사건 등 이 모든 일들은 읽는 동안 내가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참기 힘들었다(내가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거리두기를 못한 것이 잘못된 읽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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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이란 배움으로 극복된 것인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이면의 이야기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인가. 자신의 친오빠인 숀이 처음 폭력을 행했던 날. 단지 그 사건을 축소하고 다른 이유로 자신의 영혼을 달래는 경험의 이야기는 그날로 끝난 것이 아니다. 10년 동안 그와 같은 수많은 밤들의 기억을 규정한 순간 자신을 부러뜨릴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경험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책에서 끊임없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외적 상황에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내적 상황을 통제하는 그 상황은 그녀가 말한대로 배움이후 그것의 부당함과 불편함을 인식하고 말로 할 수 있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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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어린 소녀가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아왔고 결국 이후에도 그녀의 삶에서 친절을 제외한 어떤 형태의 잔인함도 견뎌낼 수 있는 삶을 살았다는(p.376) 고백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케리 박사와의 만남 이후에도 그녀는 그 기억을 아무리 깊이 묻어도, 그 기억들에 대해 아무리 굳게 눈을 감아도, 나 자신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목욕탕의 그 소녀, 주차장의 그 소녀 모습이라는 것(p.380)은 뚜렷이 남은 진상이다. 나는 그것이 현실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녀가 무학으로 대학을 가고 캠브리지를 가고 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 책에서도 그 이야기는 아주 부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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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을 타라가 교육을 받은 후에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개인적 극복이야기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전히 그녀의 언니와 오빠의 부인 에밀리의 삶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타라의 말대로 교육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면 그녀들의 삶은 교육을 받지 못해 그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가정폭력과 종교적 원리주의 가족의 전통은 구조적인 문제이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감동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엄마를 비롯한 그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과거는 현재만큼 추했다고(p.455)하였는데, 나는 그 말에서 결국 끝나지 않은 과거, 계속되는 이야기라는 것에서 이 책은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현실을 직시한 후 이 책을 낸 시기와 이 책이 발표 된 후 가족 내 관계와 역학이 이전과 같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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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나는 오빠가 없다. 소설이나 책을 볼 때 거리두기를 하는 일이 공감에 장애가 될까봐 늘 경계했었는데 이번 책은 나 스스로 거리두기에 실패 해서 이렇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권할 수도 안 권할 수도 없는 답답함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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