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기루 ㅣ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딸아이가 올 해 열살이 되었다. 작년과는 또 다르게 부쩍 자란 느낌이고 엄마를 챙기는 것도 눈물겨울 만큼 끔찍하다. 반면 사사건건 부딪치는 경우도 만만찮게 생기곤 한다. 옷을 고르는 기준이라던가, 등교시간 머리 묶는 방법, 외출할 때 신을 신발 등... 하는 걸로 봐선 이젠 아이에게 맡겨도 되건만 아직은 엄마의 안목이 낫다 싶은건지, 다 컸다 싶으면서도 미덥지가 못한건지 자꾸만 간섭을 하게된다. 딸아이 답게 예쁜 치마를 입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램과는 달리 털털한 성격으로 바지만 고집하는 통에 요즘은 치마 전쟁으로 모녀지간의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자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특히나 아들녀석이 중학생이 되면서 더 절실히 느껴가고 있다. 딸과 엄마의 관계는 더 특별하다고들 하는데 과연 어떤 느낌일까? 친구같으면서도 앙숙같은 복잡미묘한 관계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 우리 딸과 나는 가까운 미래에 어떤 모녀지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물론 친구같은 모녀지간을 꿈꾼다^^
이금이 작가의 신작 '신기루'는 아들에게 모든 걸 올인하며 엄마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아들을 순종적이고 착한아들이라 생각하는 엄마(숙희)와, 좋아하는 연예인이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15세 딸(다인)이 엄마 동창들과 함께 떠난 몽골 여행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부는 다인이의 시점에서, 2부는 숙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15세 사춘기 소녀의 시각으로 바라 본 엄마를 비롯한 아줌마들의 모습,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를 닮은 몽골 현지인 가이드를 향한 콩닥거리는 설레임 등 신선하긴 했으나 그다지 책장이 속도감 있게 넘어가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다인이의 생각을 통해 어른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소득이다.
아무래도 공감되는 이야기는 2부 숙희 이야기였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린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이지만, 45살 이제 중년이 되어 자신의 병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여행길에 오른 숙희다. 이 나이때 쯤 학창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과 여행길에 오른다면 딱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모습들은 시종일관 유쾌하면서 부러웠지만 그 장소가 왜 하필 몽골이었을까? 그리고 왜 굳이 힘든 고비사막이었을까? 어린 다인이처럼 의아스러웠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고,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모래밭에서 만난 신기루는 놀라움과 설레임, 희망을 선사하다가 금새 눈물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그 여정이 부질없지 않았음을... 힘들게 지나온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을 경험한 작가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극한의 상황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와의 만남 같은...
여행을 통해 언뜻 언뜻 튀어나오는 풋풋했던 여고생 시절 엄마의 감성과 그 모습을 통해 다인이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 여행이 필요한 것이구나!' 새삼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인이의 열린 마음을 통해 이젠 엄마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다리가 놓아졌을거라 믿는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말을 어디선 들었던가...보았던가 하여간 그 때 느낌은... 맞아! 나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하루종일 내 귀에 들리는 말 중 가장 많은 단어 중 하나가 '엄마'가 되어버렸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긴 시간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면서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익숙해졌던 것 같다. 잊고 있었다. 나에게도 불리울 이름이 있다는 걸, 그리운 학창시절이 있다는 걸...
사랑하는 만큼 더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간섭이 되고 집착이 되어버린다. 숙희가 여행을 통해 힘들게 깨들은 것을 책을 통해 조금 더 쉽게 알게된만큼 어쩜 나와 똑같이 닮아갈지 모를 딸아이에게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선물하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