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4
서경식 지음, 송현숙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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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동안 내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의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봤다. 일단 의문문의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끊임없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것도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 국민, 가족, 죽음 같은 기본 개념 정의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에 대한 일반적 통념들이 정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데 그렇다고 답을 바로 시원하게 내주는 것도 아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처럼, 허를 찌르는 연이은 질문을 통해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하여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처음엔 이 사람 정말 깐깐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올 정도로, 국민이니 시민이니 하는 단어의 정의부터 조목 조목 따지면서 일본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재일 조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속에 내재된 혈통주의, 국가주의, 국민주의를 비판하더니, 우리에겐 일종의 성역인 '가족'의 억압적 측면, 본능처럼 각인된 삶은 선, 죽음은 악이라는 개념에 차갑고 섬뜩한 메스를 들이대는데, 인간을 식용으로 사육되는 돼지에 빗대고, 자살 시도를 했던 두 형이 왜 죽었으면 안 됐을까 하는 상식을 넘는 질문까지 던지는 저자를 보며, 처음엔 '에이 이렇게까지 야박하게 생각할 거 없잖아' 싶다가도 저자의 조목조목한 논리를 읽고 있노라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군, 맞아 이런 측면도 있었군'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저자의 사유 방식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던 기본 가치관들을 모조리 뒤엎는 도발적(?) 생각들을 읽는 내내 적잖이 혼란스러웠고, 저자의 이런 날카로운 문제인식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의에 대한 강한 신념 앞에, 나의 무딘 사유와 타협의 기회주의 본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면서, 뭔가 껄끄럽고 불편하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재일 조선인, 경계인, 소수자, 차별받고 억압당한 자,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 지식인의 어둡고 까칠한 남다른 세상 들여다 보기 방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철저히 의심하고 끝없이 회의하며 자신만의 도덕과 이데올로기를 찾아 정신적으로 독립해가는 저자의 자기 투쟁 방식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뜨겁고 치열한 책이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데 못 하는 것하고, 어차피 못 할 일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하고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책 접기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하고 노동자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똑같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산업 노동자가 되는 것하고 국민화되는 과정은 다르면서도 같은, 그런 모순되면서도 서로 결부된 과정으로 진행됐다는 것입니다....왜냐면 국민주의는 문화나 언어나 생활양식으로 아주 깊이 내면화되는 것이니까요."  

"국가는 피해의 경험을 얼마든지 국민주의의 서사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항상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고 죽어 가는 그런 과정 자체를 국가가 지배하고 있다,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우리 것인 줄 오해하고 있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거지요. 우리 같이 죽읍시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결단, 우리 자신의 독립적인 정신으로 볼 수 없는 한 우리는 국가나 권력의 노예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거지요."  

"당연하다 싶은 것도 다시 한번 의심하고 또 의심해 봐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는 어떤 사람에게 애정이나 책임감, 연대감, 이 사람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고 이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느낄 때, 진짜 이것이 자기 것인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어떤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누구를 모방한 것인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우리가 독립되어 가는 겁니다." 

"...지배층의 서사에 대항에 억압받는 자의 서사를 대치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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