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흔히 권력과 정치, 독재를 풍자한 소설로 이야기된다. 오랜 시간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일하고, 사람과 고객을 바라보는 일을 하면서 요즘 나는 좋은 조직이란 무엇인지, 좋은 리더십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를 자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동물농장》은 단순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조직이 어떻게 변하고, 그 안에서 사람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동물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에게서 농장을 되찾는다. 모두가 평등하고,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시작은 분명 좋은 의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세웠던 원칙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농장의 ‘7계명’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과정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이유와 설명이 덧붙여지면서 원칙이 변해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동물들은 처음의 약속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회사와 조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많은 회사들이 고객 중심, 사람 중심, 소통, 존중 같은 좋은 가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성과와 숫자가 중요해지다 보면, 처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조금씩 뒤로 밀릴 때도 있다. 고객을 위한 제도가 어느 순간 KPI를 위한 제도가 되고, 좋은 경험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보고를 위한 절차로 변하기도 한다. 요즘 고객경험, 즉 CX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지, 고객에게 오래 기억되는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처음에는 세심한 응대나 서비스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조직의 분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직원이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고객에게 진심 어린 존중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이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기 어려운 조직에서 고객의 작은 목소리를 세심하게 듣는 문화를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좋은 고객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직원경험과 건강한 조직문화가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동물농장》에서 스퀼러라는 인물이 인상 깊다. 뛰어난 말솜씨로 나폴레옹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내고, 결국 동물들이 자신들의 기억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이 모습은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해준다. 서비스에서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고객 한 사람의 상황을 살피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비스의 모습이다. 말과 이야기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있고, 누군가를 움직이거나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하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았던 인물은 복서였다. 복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며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나 역시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비슷하게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맡은 일은 잘해내고 싶었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성실함은 정말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복서에게 부족했던 것은 능력이나 성실함이 아니라 어쩌면 질문하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처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지를 한 번쯤 돌아보는 힘 말이다. 요즘 나도 내 일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런 질문을 자주 하고 있다. 지금 맡은 일을 잘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사람과 조직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연결하는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특히 CX를 고민할수록 결국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마다 원하는 고객경험도 다르고, 그 경험을 만들어낼 사람의 모습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찾고, 교육하고, 현장에 연결하고, 이후에도 피드백과 교육을 통해 성장하도록 돕는 일 역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성과만은 아니다. 사람을 숫자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처음 세운 원칙이 왜 존재했는지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조직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더 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조직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동물농장》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일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도 다가온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았던 질문도 “누가 권력을 가지는가”보다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저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돌아보고, 처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사람보다 숫자와 시스템이 앞서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직접 사람을 성장시키고 조직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성과만 좋은 조직보다는 사람들이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것은 권력에 대한 경계만은 아니었다. 좋은 조직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좋은 원칙도 계속 지켜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큼이나 생각하고 질문하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나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나는 동물농장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앞으로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일과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이 앞으로 내가 일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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