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물론 주인공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을 그렇게나 일편단심으로 사랑했는데,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세상을 떠난 연인 이상으로 소중한 사람이 생길까. 연인을 잃어본 적없이 순조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심이 치솟지않을까. 괴로워하며 지내는 모습밖에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나와, 소중한 연인을 만날 수 없게 된 주인공. 과연 누가 불행할까. 내가 눈물이 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불행이 진짜 불행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든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친구를 저버리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했다. 다른 남자들이 다가와도 죽음을 앞둔 그를 선택했다. 그럴 만큼의가치가 있는 사람과 만났던 것이다. 그 남자도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세상으로 떠날 수 있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마지막인사를 전하지 못한 채 죽는 사람도 있다. 소중한 사람과 만나기도 전에 죽는 사람도 있다. 최소한 나의 마지막 또한 비참할 것이다. 내 죽음을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에 비하면 그의 마지막은 행복한 거다. 나는 그들이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불행을 자못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처럼 꾸며내려는 그들에게 화가 나기까지 했다. 소중한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던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누가 더불행한지를 따지다니 우습다. 하지만 그것을 불행이라고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들보다 불행하지 않다면, 나는 수명을 포기했다는 변명조차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치노세의 고민은 그들과 통하는 면이 있다. 그 고민을 해결하지 않는 한, 자살을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 빨갛게 물든저녁노을을 올려다보면서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굴러가는 공을 주우려고 도로로 뛰어든 어린아이가 달려오는 차에 치일 뻔한 순간에 그 아이를 구하고 죽는다거나, 화재 현장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를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아이만 구한다거나,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할법한 죽음에 약간 동경을 품고 있었다. 자기희생이라고 하면 뭔가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가치가생길 거라고 여겼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으려 하지 않던 나 같은 인간도 손쉽게 가치를 높이는 방법. 그것이 자기희생이라고 믿었다. 타인을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을 멋있게 장식하고 죽고 싶었을 뿐이다. 이치노세의 자살을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인 위선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어차피 죽을 거라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죽은 후 장기를 제공하는 장기기증 희망등록도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당신은 끝이 보이는 편이 살아갈 의욕이 더 솟구친다고생각하는 것 같군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똑같아요. 남은 3년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 하고 시간을 되돌려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서 일시적으로 삶에 적극적이 되거든요.
그렇게 적극적으로 바뀌는 동안 자신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본질?" "네, 시간을 되돌리면 실패를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으니까요. 소심하고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않게 되니까 그 기세로 무슨 일이든 잘해나갑니다. 자신감이 붙으니 주위 사람들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대해주고요. 그러면 깨닫는 겁니다. ‘조금만 달라져도 살아갈 수 있었겠구나‘ 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