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아직까지 실체가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속성이 절대성, 보편성, 불변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진리가 실제로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네 가지 태도가 있음을 보았다. 절대주의, 상대주의, 불가지론, 실용주의가 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진리가 역사에서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살펴보았다. 각 시대마다 진리라고 믿어지는 영역이 존재했다. 원시의 자연신,
고대의 신화, 중세의 유일신, 근대의 이성이 그것이다. 근대 이성은 합리 성, 객관성, 효율성을 기반으로 인간에게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해주었 으나 세계대전이라는 외적인 요인과 학문 내부의 붕괴라는 내적인 요인 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음이 그러났다. 이러한 근대 이성의 붕괴와 함께 진리에 저항하는 포스트모던이 탄생했다. 포스트모던은 중세와 근대의 이분법을 비판하고, 이분법에 의해 억압 되어ㅛ던 다원적 가치를 복원하는 실천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해라."

소피스트란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지혜로운 사람 혹은 지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뜻이다.

프라톤의 철학은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인간에게 완전하고 무한한 진리의 세계가 있음을 알림으로써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했다는 의의가있다. 하지만 완전한 세계를 상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현실 세계의 가 치를 저하하고 일상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스승의 생각에 불만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는 스승이었던 플라톤의 이데아의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플라톤에 비해볼 때 그는 현실의 물질을 중요시했으며, 물질 세계의 변화와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질료와형상의 설명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말 말하고자 한 바는 궁극의 ‘신‘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질료가 형상으로 나아가는 ‘운동‘ 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 자연과학과 경험주의 철학의 기원이 되며, 플라톤과 함께 서구 철학의 양대산맥으로 위치한다.

실제로 지금의 그리스도교 사상은 플라톤의 절대주의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신플라톤주의의 ‘일자‘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해당하고,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는 그리스도교의 ‘천국‘에 해당한다. 플라톤 사상에서 완전한 이데아 세계와 불완전한 현상 세계를 구분하는 이분법은 그리스도교에서 완벽한 천상 세계와 타락한 지상 세계를 구분하는 이분법과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 현대 철학의 문을 연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에 다름 아님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플라톤 사상의 세계 이해 방식은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끝없는 의심 속으로 데카르트는 침전해 들어갔다. 깊이와 끝을 알 수어느 의심의 바다 속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닿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그 끝에 데카르트의 발이 극적으로 닿았다. 어떠한 극다적인 가정으로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한 것이-
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다. 사실이 문장은 후에 데카르트에 의해 수정되어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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