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 시사회에서관객과 기자들은 요제프 괴벨스의 전직 비서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를 경계했다. 이런 식의 경계심이 작동한 이유는오늘날에도 시민들 사이에서 무지와 수동성, 무관심이 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가운데 사회 일각에서 극단적인 정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자각에서였다.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자각에서였다. 잡지 『VICE의 파울 가르불스키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늘타인들을 조심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러는 나는 내 속의 보통 사람입니다. 그 보통 사람 속에는 군대 전체의 배반과폭력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관성적 부조리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다들 얼마씩 품고 있는 폼젤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당시에 우리가 탄압받던 그 불쌍한 유대인들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고 말이에요. 물론 선의로 그런 말을 하는것이겠지만, 그 사람들도 막상 그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와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치가 권력을 잡은 뒤로는 온 나라가 거대한 수용소 같았어요. 자유라고는 없이 모 두가 감시 속에서 살았죠.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로는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었어요. 다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어요. 유대인 탄압도 그중 하나였지만, 그 밖에 다른 일도많았어요. 거기다 전쟁에 나간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늘 달고 살았죠. 사죄할 일들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치 권력 기구 내부의 마지막 산증인으로 추정되는 브룬힐데 폼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날 왜 우익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적 체제, 심지어 독재 정권까지 다시 돌아오고 있는지, 그런 흐름이 왜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다양한 특색을 갖고 전개되고 있는지 또 거기엔 어떠한 원인들이 작용하고 있는지 깨달을 기회를 제공한다.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브룬힐데 폼젤이 밝힌 정말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기억과 통속적으로들리는 동기들을 통해 그녀에게 접근하게 되면 현재와의 비교가 절로 떠오른다.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 사회의 주민 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감정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어느 한 지점에 이르렀다. 부당함의 감정이 주민들 일부를극단적인 생각으로 몰아가고 있고, 급기야 그들을 좀 더 간 단하고 나쁜 해결책으로 내몰기 위해서는 적당한 적을 찾 아내 악의 이미지만 덧씌우면 된다.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 기는 우리가 열린 사회의 존속을 위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자성할 계기를 제공한다.

정치학자 알브레히트 폰 루케는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짚어 냈다. 트럼프의 피아(彼我) 이데올로기, 국제 무대로부터의 전향과 국내문제로의 집중은 유럽 극우들의 환호까지도 설명해 주는중차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트럼프는 더 이상 다원성과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가 아닌, 오직 단일 민족적으로만 이해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창끝이 될 수 있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자기 멋대로 상상하면서 선거의 본래적인 의미를 재단했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법치와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였다.44 루케가 염려하는 것은 결국국민의 뜻이라는 미명하에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그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치가 부르짖었던 다음의해결책과도 일맥상통한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

브룬힐데 폼젤이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그녀가 우리를 다음과 같은 것에 주목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우리의 불안, 힘겹게 피로 얻어 낸 자유에 대한 자만과 경시, 세계화의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연대 해체와 야만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무시가 그것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관심 영역에 따라, 그리고 진실과 무관하게 극단적인 인간들이 열망하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그 결과 알고리즘을 통해주어진 내용들은 선입견을 강화하고, 기존의 세계상을 공고히 한다. 그사이 소셜 미디어들은 어두운 쪽으로 사용될잠재력을 한껏 키우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의 선구자들이인터넷 망을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으로, 투명성과 민주주의, 자유 운동의 수단으로 환호했던 그 열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인터넷 망은 증오를 배출하고 확산하는 장으로 타락해 버렸다. 사회 각 영역에 존재하는 불만들은 과거보다.
더 쉽게 하나로 뭉쳐져 확산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많은 것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해도, 그러니까현대적인 생활방식, 인터넷망, 좋은 교육이 지배한다고 해도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그 옛날 브룬힐데 폼젤이 그랬던것처럼 비정치적이고 체념적이고, 또 그녀가 자기 패거리〉라고 지칭했던 무리처럼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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