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모든 것이 편했고 마음에 들었죠. 쫙 빼입은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 그리요, 안 그 시절 껍데기로만 살았어요.어리석게도요.

우리 일의 대부분은 당연히 전선 상황이나 제국 안의 사건들을 완화하고 미화하는 일이었어요. 객관적인 사실을상부 지시에 따라 우리 쪽으로 좀 더 긍정적으로 고쳤다는말이죠. 그게 국민 계몽의 원칙이었어요. 국민은 계몽되어야 했으니까요. 사실 그전 정부들도 항상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해왔지만, 어쨌든 그게 나치의 원칙이었어요.

그만큼 나는 미련했어요. 하지만 고민할 것도 많고 이겨 내야 할 것도 많은 어려운 시절에 자신이 모든 것을 잘못했을 거라는 갈등에 빠지게 되면 스스로에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인간이죠.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 1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 어요. 평생 그랬죠. 당시도 물론이었고요. 그 일이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상관없었어요. 방송국에 근무하건 선전부에서 일하건 그건 중요하디 않았어요. 어디에 있건 마찬가지였어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당시 난 항상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휴, 아직도 목숨이붙어 있구나. 집이 완전히 망가져도, 아, 아직 살아 있구나,
창문이 부서지고 문이 닫히지 않아도, 아직 살아 있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런 생각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그게 위안이었죠.

당시에는… 그 당시에는…… 우린 모두 나치 선전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고, 완전히 말려들어갔어요. 그 건 당연히 어리석은 짓이었죠. 하지만 다른 정보나 접촉이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어요. 당시에 외국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어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죠.
나치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소수 있었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누구한테 도움이 됐나요? 그 사람들만 목숨을 잃지 않았나요? 오히려 국가에 다른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훨씬더 많았어요. 그래서 추천을 받아 하루라도 더 일찍 당에가입하려고 했어요. 처음에 확신과 강력한 의지를 갖고 당에 들어간 사람은 주로 나치 친위대 대원들뿐이었어요. 나중엔 나치 돌격대 사람들도 그랬지만요. 어쨌든 처음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돌격대는 평범한 국민들을 위한 조직이었어요. 반면 친위대는 어느 정도 혜택을 받은 게사실이었죠.

그런데 나는 러시아인들이 나만 꼭 집어서 잡아간 것이전적으로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느꼈어요. 왜냐하면나는 괴벨스 밑에서 타자를 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기때문이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뭐라도 한 게 있다면 책임을 져야겠죠. 하지만 난 아무것도한 게 없어요. 그냥 러시아 군인들이 선전부 지하 벙커로들이닥쳤을 때 불행하게도 집에 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버리고 거기에 가서 붙잡힌 것뿐이에요.

나치의 잔학한 행동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은 주로 그러 시설이나 감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어 요.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랬다가는 처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게 두려웠던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전부 당원은 아니었어요. 그중 상당수는 그냥 평범하고 소박하고, 어쩌면 약간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문제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이었죠.
나는 동조자가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더 많은 것을 알고있어야 했겠죠. 나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 그 미련한 당에별 생각 없이 경솔하게 끌려 들어간 것뿐이에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책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 로 답을 일찍 찾았어요. 그래요,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 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 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나도 물론이고요.

대중은 여전히 대중이라고 생각해요. 숙고하고 비판하는 일에는 좀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말 이죠. 사람들은 배만 부르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정치판에누군가 나타나 자신들의 걱정을 일부라도 해결해 주면 만 족해해요. 그러지 못하면요? 그다음은 아무도 모르죠!!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들에 아주 적극적인 관심을보이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린 그러지 못했어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죠.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성숙해요. 그건 백번 인정해요. 나는 우리도 그런 교육을 받고 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우리 때는 무조건 복종해야 했어요. 복하지 않으면 아주 호되게 야단을 맞거나 따끔한 벌을 받씨죠.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순조롭게 잘 흘러갔고, 그잡혔어요. 그게 바람직한 일인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요.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텔레비던에 나와, 그것도 학생들이 나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세상에나, 어떻게 저리 나이 어린 사람들이 뚜렷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자기들 앞의 삶과 관련해서 저렇게 적극적으로 토론할 능력이 있을까!
그에 비하면 예전의 우리는 바보였어요. 세상 모든 일에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는 건, 그래요, 일단 서민들한테는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먹고살기 바빠서요. 반면에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문제들에 둔감했어 요. 그런 문제들로 딱히 피해를 받은 것도 없고 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죠. 물론 지금은 달라요. 오랜 세월을 살아 놓 고 보니 요즘은 그런 일에 관심이 무척 많아졌어요.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히고 싶은 건, 인생이라는 곳에 처음 나온이들에게는 하나의 방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하지만그게 항상 하나의 영향으로만 정해져서는 안 돼요. 오에는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우리와 대화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버지가 어떤 당에 투표를 했는지도 우리는 알아선 안 되었어요. 옛날에는선거가 참 많았는데, 그때마다 우린 부모님이 어디다 투표했는지 알고 싶어 했어요. 그러면 항상 너희하곤 상관없는일이다!〉 하는 대답이 돌아왔죠.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내 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도 없어요. 그건 세상으로부터 나치 라고 지목된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어요. 민족이라는 게 뭐죠? 모두가 함께 속한 바다와 같은 게 아닌가요? 이리저리 출렁이는 바다 말 이에요.

어쩌면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범죄자들과 일을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당시에는 알 수없어요. 내가 선전부에서 일할 당시 나한테 가장 높은 사람은 괴벨스였어요. 히틀러 바로 다음이었죠. 그런 사람의 지시가 부서를 거쳐 나한테 내려왔어요. 그럼 따를 수밖에 없죠. 러시아 군인이나 프랑스, 영국 군인들한테 총을 쏘라고 명령받은 우리 병사들처럼요. 명령에 따라 총을 쏜 사람들을 두고 살인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병사들은 그저 의무를 다한 것뿐이에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부당한짓을 한 경우에만 그럴 거예요. 하지만 난 누구한테도 그런짓을 한 기억이 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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