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맡은 일에서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되고 이기적인 일인가요? 그게 설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더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걸 알고서야누가 그러겠어요? 그 정도까지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는 근시안적이었고 무관심했어요.
- 브룬힐데 폼젤, 2013년 뮌헨

1933년 전에는 누구도 유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순전히 나중에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우리는국가 사회주의를 통해서야 유대인들이 우리와 다른 인간이라고 의식하게 됐어요. 그게 모두 나중에 유대인 말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죠.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전혀없었어요. 아니 그 반대였어요. 아버지는 손님 중에서 특히유대인들을 좋아했어요. 돈이 많을 뿐 아니라 항상 값을 후하게 치렀거든요.

우리는 유대인 아이들과 놀기도 했어요.
그중에는 힐데라는 마음씨 고운 여자아이도 있었어요. 또 바로 옆집에 내 또래의 유대인 아이가 있어서 종종 함께 어 울렸어요. 비누 가겟집 딸 로자 레만 오펜하이머는 지금도또렷이 기억나요. 우리는 그 애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한 번도 없어요. 그건 다 커서도 마찬가지였죠. 국가 사회주의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도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어요. 다만 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를 향해 반갑게 손만 흔들어 주었을 뿐이에요. 왜 안 그러겠어요?
1933년 이전에 유대인 문제를 생각한 사람들은 소수였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돈이 생겼어요. 나중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사기를 당했다고 배웠어요.
한마디로 우리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우리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몰랐어요.

1932년 말 무렵 오전에는 유대인 골트베르크 씨 사무실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나치당원 줄라 블라이 밑에서 일했어요. 가끔 이런 이중생활이 경솔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 어요. 유대인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나치를 위해 일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거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일은 해야 하잖아요. 당시에 실업자가 널려 있었어요. 내 친구들 중에도 일을 하는 애는 거의 없었어요. 그런상황에서 나는 4년 전부터 골트베르크 사무실에서 일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이 모든 건 1933년 전의 일이에요. 그뒤로는 갑자기 모든 게 달라졌어요.

오스트리아 병합은 아주 크게 보도됐어요. 이제 전 독일 민족이 힘껏 일어서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방송국 사 람들은 아주 멋지게 보도했죠. 그런 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덮어놓고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당시사람들은 나처럼 모두 어리석었어요.

강제 수용소가 만들어졌을 때, 그러니까 처음으로 강제수용소〉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그랬어요. 정부에 반대하거나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만 그리로 간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린 그런 인간들을 바로 감옥에 가두지 않고 강제 수용소에 보내 재교육하는 걸로 믿었어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물론 그 뒤에도 유대인이 하던 한 커다란 상점은 그대로 있었어요. 유대인 골트베르크 박사도 여전히 남았고, 아버 지의 고객들, 예를 들어 이웃집의 레비 씨도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여전히 아버지 가게에 들락거 렸어요. 하지만 그러던 것도 서서히..... 하나둘 사라지기시작했어요. 왜, 어떻게, 및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져야 했 는지 우리는 몰랐어요. 그러다 1938년 11월 그 끔찍한 사건 이 일어났어요. 수정(水晶)의 밤" 사건 말이에요..

쾌히 빵을 내놓으셨어요. 에바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알고 있었던 거죠. 순수한 인간적인 동정 같은 거였어요.
이런 일로 우리한테 정치적으로 위험이 닥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사실 별 걱정 없이 즐겁 게 사는 편이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죠. 모든 사 람이 잘 벌었어요. 떵떵거리며 살지는 못했지만, 자잘한 것들은 별 어려움 없이 구입할 형편이 됐고 우리끼리 만족하며 살았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늘 생각하지는 않 았어요. 생각해 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매일 하고 살겠어요? 요즘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는 불쌍한 시리아 난민들도 우리가 불쌍하게 여기지만 매일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살 수는 없죠.다만 텔레비젼 앞에 앉으면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느냐는 거죠.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에요. 백년후에도, 아니 이 지구사 존속하는 한 가능할 거에요. 이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존재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