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당시 예상치 못한 피난처를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혹은 자기 자신의 소원과 필연이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고그
전 그저 음악 듣기를 좋아할 뿐입니다. 당신이 연주하시는 그런 구속이 없는 음악, 듣고 있자면 사람이 천국과지옥을 잡아 흔든다고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음악 말입니다. 저는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는데 아마 음악은 그렇게 도덕적이지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온갖 것들은 다 도덕적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저는언제나 도덕적인 것에 억눌려 괴로움을 받아 왔어요. 잘 표현할 순 없지만, 당신도 신인 동시에 악마인 하나의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전 그러한 신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는 널따란 모자를 조금 젖히고 이마로 내려온 검은 머리칼을 끌어올렸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식탁 너머로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나직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당신이 지금 말하는 그 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유감스럽지만 저는 그 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단지 이름을 알 뿐이에요.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조심을 둘러보았다.
"그때 저는 옛 시절의 친구가 생각났는데, 전 그가 무척 많은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세계로 나오려고 하는 새한 마리를 그렸습니다. 그것을 그에게 보냈지요. 제법 시간이지나서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 무렵에 뜻밖에도 종이쪽지한 장이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어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와 함께 그 음산하고 넓 은 방의 난로 앞에 엎드려 있었을 때 이미 피스토리우스는 첫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불을 들여다보게 한 일이 참 좋았는데, 그 일을 통해 그는 내가 항상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한 번도 훈련한 적 없는 나의 내면의 성향들을 강렬하게 해 주고 확인하게 해 주었다. 점차 나의 성향들이 부분적으로 분명해졌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한계를 너무 좁게 책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소. 우리는 우리가 개성 있다고 일컫고 다른 것과 판이하다고 인정하는 것만을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누구나가 다 이 세계의 온갖 축적물로 구성되어 있소. 우리들의 육체가 어류나 더 이전의 생물체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진화 계보를 지닌 것처럼 우리들의 영혼 속에도 이제까지 인간의 영혼 속에 살아왔던 온갖 것들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오. 이제까지 존재해 왔던 모든 신과 악마는, 그것들이 설령 그리스인들에게 있었건, 중국인들에게 있었건, 혹은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있었건 간에 모두 어떤 가능성으로서, 소망으로서, 방편으로서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며 또 다른 곳에도 존재하고 있소. 만일 조금도 교육받지 못한 한 명의 평범한 아이만을 남기고 전 인류가 멸망해 버린다 해도 이 아이는 사물의 전 과정을 다시 발견해 낼 것이오. 여러 신과 악마와 낙원과 계율과 금제와 구약 신약 등 이 모근 것을 그 아이는 다시 창조해 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단순히 자신의 내부에 세계를 지니고만 있는지 혹은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에 따라 대단히 큰 차이를 가지오! 미친 사람일지라도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사상을 창조해 낼 수도있을 것이고, 헤른후트파의 학교에 다니는 경건한 어린 학생이 그노시스파나 조로아스터파에 나타난 깊은 신화적인 연관을 독창적으로 생각해 낼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오. 그렇지만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의식하지는 않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에서는 그는 한 그루의 나무나 돌, 기껏해야 짐승과 별다. 를 바가 없소. 그러나 이 인식의 최초의 불꽃이 한 번 번쩍 빛날때, 그때 바로 인간이 되는 거요. 당신도 역시 저기 거리 위를 걷고 있는 모든 구 발 달린 족속들을 단지 똑바로 서서 걸으며, 자식을 열 달 동안 뱃속에 넣고 다닌다는 것만으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요. 그들 중의 얼마나 많은 주류가 개미나 벌과 같은 존재에 불과한지 당신도 잘 알 것 아니오. 물론 그들 각자에게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이미 부여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예감하고 부분덕일망정 의식하는 공안에만 그 가능성은 비로소 자기 것이라 할 수 있소."
"당신은 언젠가 내게 ‘도덕적이지 않아서 음악을 좋아한다.‘ 고 말한 적이 있소.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도덕가가 되어서는 안 되오!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진 마시오. 가령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오. 당신은 번번이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리시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를, 그들의 마음에 드는지를 맨 먼저 묻지마시오! 그런 물음이 사람을 망치는 거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안전하게 인도로 걸으면서 화석이 되고 마는 거요.
봐요,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요. 그는 신인 동시에 악마지요. 그는 자신의 내부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 시에 지니고 있소. 아브락사스는 당신의 생각이나 꿈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진 않을 것이오. 그것을 결코 잊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리면 그는 당신을 버릴 것이오. 당신을 버리고는 자기의 사상을 요리하기 위한 새로운 그릇을 찾아가고 말 것이오."
다. 이 모두 부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뿐이었다. 각자를 위한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 가지뿐이다. 그가 설령 시인이나 미치광이나 예언자나 심지어 범죄자로 일생을 마친다 해도 좋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결국 그리 중대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부일 뿐이며, 도피하려는 노력이고, 대중의 이상 속에 숨으려는 재도피이자순응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섭고 경하게 그 새로운 생각이 내 앞에 솟아올랐다.
그는 유럽의 정신과 현시대의 특징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어디를 가도 단합과 집단행동만이 지배하고 있을 뿐 자유와 사랑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 단체와 합창단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공동체는 강제적으로 형성되 었으며, 불안과 도피와 절망감에 나온 공동체이며, 내부는 썩고낡아 곧 붕괴되고 말 거라고 했다.
나는 내 고향의 관리들, 늙고 신분 높은 신사들을 상기했다. 그들은 마치 행복한 낙원의 추억처럼 음주로 허송한 그들의 대학 시절에 대한 추억에집착했고, 마치 시인이나 낭만주의자들이 그들의 유년 시절에바치는 것과 비슷하게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들의 대학 시절의 ‘자유‘를 예배하곤 했다. 어디서나 똑같았다! 어디서나 그들은행여 자기 자신의 책임을 상기시키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가도록 요구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자신의 과거 시절 어느 곳에서 ‘자유‘를 찾고 ‘행복‘을 찾았다. 사람들은 이삼 년간 폭음/ 을 하고 환성이나 지르다가 기어들어 와서는 관청의 성실한 관리가 되었다. 그렇다. 이건 부패했다. 우리들의 나라는 부패한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 대학생들의 멍청함보다도 훨씬 더멍청하고 나쁜 수백 가지의 다른 멍청함이 있었다.
"어린 싱클레어, 들어 봐!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돼.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말이야. 그땐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쉽게말이나 기차를 타고 갈 수 없을 거야. 그럴 때 너는 자기 자신의내부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너의 내부에 있음을 알로 가야. 알겠어? 그리고 조금만 더!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네가 언젠가 나쁜 처지에 있을 때는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어에게 전해주라고 했어 눈을 감아 싱클레어!"
붕대를 감는 것은 몹시 아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때로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곳, 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같은 내 자신의 모 습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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