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점 오픈 준비를 하는 한편, 간간이 다른 글도 쓰고 있는 마스텁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리뷰를 하나 남길까 합니다. 제목에서 눈치를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책이 그 대상이네요.
이 책을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5년 전입니다. 저는 이제 막 스무살이 되었고 뭔지 알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에 부풀어 있었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쉽사리 그런 기분이 되곤 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라고 점심 라면을 먹으며 생각하기도 했더랬죠.
지금은 잘 상상이 안 갈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나는 하루키(이하 춘수 씨라고 하겠습니다. 이유는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확인이 가능하십니다)보다 류(이하 용 씨)가 좋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만큼, 이 책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투 무라카미라는 용어도 있었더랬죠.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춘수 씨 편을 들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용 씨의 인기가 이렇게 추락하고 나니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용 씨를 응원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사실 스무살 이후로 이 책을 다시 읽어본 기억이 없기에 이 리뷰는 십 오년전의 흐릿한 감상에 기초하여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을 읽고 아, 나도 그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어하고 결심하시거나 그런 책은 절대로 읽지 못하게 아이들을 단속해야겠군하고 결심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제가 이 책을 수업 시간에 주로 읽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주로 수업 시간에 소설을 읽었습니다. 수업이 재미가 없었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읽는 소설이 아주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쉬는 시간이나 집에서 읽을 때보다 훨씬 재밌게 느껴진달까. 못생긴 사람 옆에 서 있는 잘 생긴 사람이 더 근사해 보이는 이유랑 비슷한 이유인지도 모릅니다만 그랬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수업 시간에 소설을 읽으려고 했습니다. 남들 앞에 대놓고 추천할 만한 독서 습관은 아니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학생 분이 계시다면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는 이건 내 인생의 책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어딜 가든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누가 누구와 뭘했고 하는 일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주 문란한 성행위, 그러니까 두명이 아니라 서너명이 등장한다든지 그런 과정을 자세하게 써놓았다든지 하는 부분도 있었고, LSD였나 헤로인이었나 하는 마약을 하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건전하다고는 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가슴에 쿡하고 찌르듯이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건 단지 야한 장면 같은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 씨는 그뒤로도 지치지 않고 꾸준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춘수 씨 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데뷔 당시 아쿠타카와상까지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그 기세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용 씨가 질이 떨어지는 소설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아주 훌륭한 소설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늘 새로운 소재와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건 소설가로서는 아주 힘든 일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려먹기를 하지 않으려면 매번 허물을 벗는 과정을 뚫고 나가야 할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격렬함이랄까 도전 정신 같은 것이 독자를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용씨는 추구하는 바가 분명하고 비교적 그것을 분명한 형태로 소설 안에서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사람 싫어라고 외면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이 독자 가운데 많은 듯 합니다. 사람들은 강하게 주장하는 소설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편이고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세상에 온통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는 소설가만 존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루한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청나게 매운 음식이 땡기듯이 용 씨의 소설도 가끔 못견디게 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기분이 들 때 용 씨의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슬플 것 같습니다.
오랜 만에 인터넷에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검색했더니 판본이 꽤 여러 개가 나와서 놀랐습니다. 뭐가 달라졌나 봤더니 번역자가 양억관 씨였습니다. 김난주 씨와 함께 부부번역가로 유명하고 또 최근의 다자키 쓰쿠루를 번역하셨는데 이전부터 일본 소설의 전문 번역가로 이름을 날리셨죠. 용 씨가 드디어 대접을 좀 받나 싶어 좀더 찾아보니 무라카미류 셀렉션이라고 해서 용 씨의 책 중 몇 권을 뽑아다가 선집을 만들면서 새롭게 번역을 맡긴 모양입니다.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작가의 책을 새롭게 번역해서 내준다는 사실. 그것에도 감동했습니다. 최신이 꼭 최선은 아닌 것 같은데, 요즘 사회 분위기는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폰 6가 나오면 5를 사용하는 사람은 구식이 되어 버립니다. 4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린고비가 되고, 3나 그 이전 버전을 사용하는 사람은 기인이 됩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런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트렌드를 쫓아야 한다는 의미인듯 합니다. 왜 쫓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야 스마트하다고 합니다. 트렌드를 쫓는 일이 왜 '똑똑한' 일이 되는지 저는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나중에도 좋은 책들을 잊지 않고 이렇게 다시 내주는 출판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심야서점에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스마트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 오년 전의 그 책이 다시 나왔다는 소식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습니다. 거리를 마구 뛰어다니고 싶은 그런 기분 좋음이 아닌 조용히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은 기분 좋음입니다. 오늘은 그런 기분 좋은 날입니다.
여러분께도 그런 기분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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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를 추가하면서 보니 제가 읽은 것은 99년 판같은데, 여때까지 저는 그 책을 류시화 씨가 번역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표지도 파란색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전적으로 믿을 것은 못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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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1999년 6월
5,500원 → 4,950원(10%할인) / 마일리지 2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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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2년 3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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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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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장정일 해설 / 이상북스 / 2014년 8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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