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서른 다섯이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나이를 밝히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저라는 인간에 대해 뭔가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을 하건 하지 않건 나이는 그 사람에 대해 여러가지 정보를 부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서른다섯이라면 1981년 생이니, 민주화를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니겠죠. 마흔 다섯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난 우리 세대들과는 달랐어. 라는 감각도 그 세대의 감각은 아닐까요. 나는 전형적인 386세대는 아니야 라는 감각은 아예 386세대와의 대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지 않는 저 같은 세대에게는 확실히 세대적인 특징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나이라는 범주가 개별적인 사람들의 특성을 모조리 비슷한 어떤 형태로 바꾸어 놓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세대라는 것은 그런 개인들의 개성의 발달을 촉진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자신이 386세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깊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비 386세대로써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남들보다 깊이 고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하기도 합니다. 저희 세대 사람들이 386세대와 구별되는 어떤 특성을 지닌 세대다라고 할 수는 있지만, 개개인의 레벨로 내려오면 그 양상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굳이 나이를 가지고 한 사람의 개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서른 다섯의 저와 마흔 다섯의 저는 또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는 사회인으로 십년차, 자취생활만 십오년. 몇 번의 긴 연애 경험. 예비군을 졸업하고 민방위로 편입. 노화의 조짐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한 나이 등등. 확실히 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물다섯의 저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나이 같은 것에 둔감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남자의 나이에 대해 더 관대한 듯한 분위기는 분명 존재하지만, 개인으로서 느끼는 나이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과거만큼 운동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던가, 다친 부위의 회복속도가 늦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요즘은 결혼을 늦게하는 분위기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왠지 결혼을 해야하는 시기라는 압박감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앞으로 결혼을 할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아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골치 아프니 나중에 생각하지 뭐.' 하고 한쪽 옆으로 제껴둘 수가 없습니다.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단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몇 년 뒤가 되면, 결단을 내리건 말건 결론이 나버리는 상황이 찾아 옵니다. 여성들이라면 그런 압박감이 더 클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거기에는 분명 생물학적인 데드라인이 존재하니까요.

 

 남자는 그런 게 없으니까 된 거아냐? 라고 하겠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고 대학을 보내는 일을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죠. 그때까지 내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건강이 받쳐줄까 하는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른 다섯은 남자에게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나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의 결정이 다른 많은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보류하건 그렇지 않건.

 

  저는 그래서 요즘 그 어느때보다 한가롭고 또 진지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꽤 많은 시간 생각합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것들은 그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도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하는 문제에 닿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여자라고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그런 구석이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지, 라고 섬세한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다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는 여자고 인생은 인생이야 라고. 별개의 것으로 취급합니다. 카테고리가 다르달까요.

 

 하지만 서른 다섯이 되고 나니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따라 어떤 여자와 하루를 보낼까도 결정이 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떤 여자와 하루를 보내는가에 따라 어떤 인생을 사는가도 결정이 되지요. 뭐야, 그런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여성분이 계시다면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남자란 그런 생물입니다. 단순한 걸 깨닫는 데에도 상당히 시간이 걸리거든요.

 

 생각해보면 여자들은 꽤 일찍부터 남자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상대를 좀더 신중하게 고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이런 것 저런 것 고민 없이 그냥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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