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심리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어느 한쪽이라고 답하기에는 이럴 때도 저럴 때도 많아서 꽤 곤란했습니다. 그만큼 사회화가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의 나는 좀 더 단순했던 것 같은 데 말입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라는 게 모든 사람의 꿈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분명 여럿이서 일을 하는 걸 즐기는, 혹은 여럿을 통솔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테고. 혼자 할 수 있는 일, 이라는 말은 생각처럼 하나의 대상만을 지칭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가 그 말을 하면서 머릿 속으로 그리는 상상도가 어떤 것인지는 좀더 들어봐야겠지요.

 

 저의 경우엔,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 필요 없이 온전히 내가 작업하고 결과에도 내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사회성 부족이라는 말을 들어도 하는 수 없네요. 그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업무라는 건 협업을 기본으로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최대한 제가 좋아하는 형태로 바꾸어서 하고는 있습니다. 물론 한계라는 건 있죠. 그래도 원칙은 이거다라고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어디까지나 원칙을 적용하고 어디서부터 예외를 허용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꼭 일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 이를테면 손톱을 깎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체로 삼사일에 한번, 모든 손톱을 한번에 같은 길이로 자릅니다. 어쩌다 한 손톱만 길게 자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손톱만 따로 자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꺼번에 자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원칙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그저 조금 긴 손톱을 그때그때 자르는 방식을 강요한다면 상당히 난감해질 것 같습니다. 저에게 맞는 방식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그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주기 때문에 저의 원칙을 깨고 그저 하루에 하나의 손톱만을 자르며 살게 될지도 모르고, 나중에는 그게 원칙이 될지도 모르죠.

 

 요컨대 원칙과 예외라는 건 그런 식으로 환경에 의해 위치가 바뀌는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제가 혼자 일하고 싶다라는 건 그런 원칙과 예외를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닌 제 자신의 판단으로 정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하는 거죠. 복잡하게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물론 사회라는 곳에 100% 나의 판단이라는 게 존재할리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 가까운 정도로 제 지분을 갖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이 5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역으로 상사나 회사의 이익에 의해 자신의 원칙을 비틀어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50%가 넘는 건 정말 다반사고, 100%가 되는 일도 있죠. 물론 이 경우에도 그렇게까지 싫다면 회사를 관둬버리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 100%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상당히 현실감각이 떨어지거나 회사를 다녀보지 않았거나 아무튼 물정을 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해야하는 법이죠.

 

 얘기하다보니 좀 우울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자신의 원칙이란 건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입장과는 '타협'하는 관계가 되어야지 '순종'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회사 입장에서야 순종하는 쪽이 마음에 들고 어쩌면 승진도 잘 시켜줄 지 모르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그런 인간은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진 같은 것과 자신의 원칙을 교환하는 인생은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고요. 물론 세상에는 그걸 자랑스러워 하는 인간도 분명 존재하지만.

 

 어떤 인생이 좋은 인생인가라는 질문에 객관적인 답은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이 그런 데 사용되기 위한 말도 아니구요. 그렇다면 주관적인 답은 있느냐, 이 역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저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인생은 좋은 인생인가. 괜찮은 인생인가. 나는 나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이 훌륭하다, 그렇지 않았다라고 떠드는 건 결국 자기의 인생에 대해 말하기 위한, 조금 심하게 말해 도구 같은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나의 인생은 훌륭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

 

 저는 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떠올릴 때면 잘못 들어선 골목길 같은 것을 종종 떠올리곤 합니다. 일단 잘못 들어섰다는 건 알겠고 돌아나가야 하는데, 돌아나간다고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죠. 지치기도 했고요. 골목길에서 잠시 쉬고 싶기도 하고, 길 찾기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파도 같은 것을 보면서.

 

 골목길에서 파도가 보일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고보니 얼마전의 서핑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듯합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드 위에 앉아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낮의 태양이 따뜻하게 보드 위를 뎊혀주고 있지만, 아직도 수온이 낮아 물 속에 담겨 있는 발은 차죠. 그런 대비가 왠지 모를 상쾌함을 줍니다. 괜찮은 파도가 왔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또 한 번 파도를 탈 수 있을거야 라고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감과 여유로 충만한 시간이 떠오릅니다. 분명 세상에는 그런 감각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존재할 거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아직 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현실화하기에는 넘어야할 허들이 많지만, 어쨌든 그 파도는 저에게까지 올 거라는 희망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는 오래 기다리면 흐름을 탈 수 있으니까요. 그때까지 파도에 둥둥떠서 파도를 기다리면 됩니다.

 

---

 그러고 보니 규칙과 변칙이라는 제목은 글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도 같은데, 뭐 제목의 느낌 자체가 좋아서 그냥 두려고 합니다. 예전엔 적절한 제목을 찾아 며칠밤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제목이든 글이든 어쩌면 인생이든 그런 식으로 애쓴다고 답이 나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