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를 다루는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변증법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야 하는 과학적 사실의 발견에 있어서는 별 쓸모가 없는 방법론, 이라는 게 러셀 경의 결론인데 선뜻 이해가 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천동설의 모순을 변증법적으로 탐구하여 지동설의 가능성을 도출해낸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새로운 사실의 발견 자체가 과학적 관찰에 의존한다손 쳐도 관찰의 필요성을 상기하기 위해서는 기존 체계의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험의 성과인 과학적 발견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으로서 합리성을 따져묻는 토론이 뒤따르는 게 당연해보인다.

철학, 요즘말로 치면 인문학과 과학의 관계는 흥부와 제비가 물어다 준 박처럼 분명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지만 박 속에 든 보물이 흥부가 피땀 흘려 쟁취한 소유물이라기보다 ‘이벤트성 경품‘에 가깝듯 전적으로 응원하기에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과학적 성과가 철학의 영역에 어떤 종류의 유익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흥부가 보물을 다시 얻어보겠다고 다리 부러진 제비만 찾아다니는 게 이 이야기의 후속편이 아니듯 첨단과학으로 철학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지적대로 철학은 오히려 언어 게임에 가까우며 언어 게임을 둘러싼 근본적인 구조적 한계 탓에, 다시 말해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을 직접 볼 수 없는 탓에 외부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데 그 심판 역할을 과학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