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선택의 기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선택의 기회는 존재합니다.

지난 대선 때 우리는 선택의 기회를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선택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아니 후회를 넘어 분노라고 하는 표현이 적당할까.


팀셸(timshel) : Thous mayest(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형 아론의 죽음 소식을 듣고 쓰러진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는 칼. 아버지는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는다. “팀셸.”


팀셸은 성경에 나오는 말로써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혹은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는 약속으로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일종의 명령이다. 반면에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선택의 길이 열려 있는 말이다. 너의 노력에 따라 그럴 수도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선택의 순간이 있다는 것은 행동의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시국이 어수선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의 순간이 남아 있다.



* 밑줄긋기가 안되어 밑에 따로 인용을 적었습니다.
그러나 ‘팀셸’이라는 히브리어는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길이 열려있다는 말이니까요. 요컨대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곧 ‘너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의미이지요. (p65)


세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 모든 소설과 시는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끊임없는 대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악은 끊임없이 또 다른 악을 낳지만, 선 다시 말해 미덕은 불멸하는 것이다. 악은 항상 새롭고 싱싱한 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미덕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숭고하고 존엄한 얼굴을 하고 있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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