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있음과 쓸모없음
장자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되새기면서 읽어야 하는 한편의 시. 이 책으로만 봐서 그런지 풀이가 다소 아쉬웠고, 다른 번역본을 찾아봐야겠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장자와 나비라던가. 중간에 알고 있는 내용들이 나와서 반가웠다. 조삼모사, 우물 안 개구리 등. 그러나 역시 한권의 책으로 장자를 보니,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어떤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 있었다.
제2편 제물론(齊物論)
사물은 모두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자기를 상대방이 보면 ‘저것’이 되는 줄을 모르고, 자기가 자기에 대한 것만 알 뿐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 때문에 생긴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것’과 ‘저것’이 서로를 생겨나게 한다는 ‘방생(方生)’이라는 것이지.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고, 안 됨이 있기에 됨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일방적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허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이다.
한 나무를 보고 장자는 혜자와 대화를 나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라고 이야기하는 혜자에게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라고 말하는 장자. 세상의 모든 것의 어찌 이것과 저것뿐이겠냐고.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으로 세상을 나눌 수는 없다는 장자.
공자에게 쓸모있음은 나를 써달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수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왜 써주지 않겠느냐, 라는 입장이다. 반면에 장자는 어찌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나눌 수 있겠느냐, 전체적인 입장에서 하나로 크게 봐야 한다는 입장.
우리는 모든 사물을 분석하고 끝없이 나누고 싶어한다. 비단 사물뿐이랴, 사람에서도 마찬가지. ‘유용성’, 혹은 ‘실용성’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지고 골라지는 것들. 이제 대학은 종합학문이 아니라 취업이 잘 되는 과목만 남는 기술학교가 되어 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반짝하고 뜨면서 통합이니, 융합이니 하는 것이 유행하였지만. 그럼에도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다.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