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헤치고 미래를 희망하게 하는 그것은, 고향.


일리아스 다음에는 오뒷세이아를 읽을 것. 전쟁의 묘사인 일리아스보다 오뒷세이아는 내용면에서도 훨씬 재미있다. (여기서 제목을 이야기하고 지나가야겠다. 많은 사람들은 오디세이아라고 알고 있고 나도 역시 그랬지만, 천병희 번역의 제목은 다르다.)



일리아스 이후의 펼쳐지는 일들이 오뒷세이아에는 나온다. 오히려 가끔씩 오뒷세우스만이 아니라 일리아스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를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저승으로 간 오뒷세우스가 아가멤논, 아킬레우스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아가멤논의 죽음은 그리스 비극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오뒷세우스는 노여워하는 자, 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신의 노여움을 받아 전쟁 후 고향에 쉽게 닿지 못한다. 이십 년이나 방황하는 와중에도 오뒷세우스는 고향에 꼭 가야한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퀴클롭스, 키르케, 세이렌을 만나며 전우들을 잃고 심지어 저승에까지 가야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오뒷세우스를 위한 신의 뜻이기도 했으나 결국 이를 실행했다는 점에서 그는 필멸의 인간이지만 대단한 인물이다.



이윽고 고향에 도착한 오뒷세우스는 바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복수를 어떻게 실행할지 고민하며 차근차근 준비한다. 그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함께. 오뒷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 페넬로페의 심정을 떠보기도 하고, 구혼자들에게 활을 쏘아보겠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뭐랄까, 시원한 막장 드라마의 복수만큼 짜릿하다. 물론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집을 시체의 산더미로 만드는 장면은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십 년간을 떠돌아다녔던 울분,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고향, 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뛰어난 지략을 소개한 단순 영웅담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고향이 어떤 의미인지, 수많은 고난을 헤치고 미래를 희망하게 만드는 그것. 현대인에게 사전적인 고향은 `도시`이겠지만, 우리가 꿈꾸는 고향은 오뒷세우스와 다르지 않다.




p.s 두꺼워서 들고다니면서 읽지 못한다는 단점..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단 며칠만에 읽으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욕심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만족감이 든다. 연달아 읽어서 좋았다. 천병희 번역을 고르기 잘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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