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약속한 파멸 : 아킬레우스 vs 헥토르
700페이지를 읽기는 벅차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용이 재미있는 것도 있겠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읽기가 수월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리스 원전 번역은 역시 천병희) 영화 <트로이>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파리스, 헬레네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황금사과가 세 여신에게 떨어지면서 벌어진 전쟁. 일리아스는 그 전쟁이 펼쳐지는 과정이다.
문체에서 서사시적 문체의 특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상투적인 표현들, 예를 들어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필멸의 인간들` 등. 그러나 문체보다 오히려 신과 인간에 주목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일리아스의 묘미가 아닐까.
트로이아인과 아카이오이족의 싸움이 아니라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대결은 처음부터 성사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를 보면서 영웅의 면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신들이 선택한 영웅 아킬레우스와 신의 사랑을 받은 헥토르. 물론 아킬레우스에게 헥토르는 필멸의 인간일 뿐. 아무리 헥토르가 신의 사랑을 받아도 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킬레우스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영웅이었을지언정, 그의 인격까지 영웅이라고 볼 수 없다. 자신의 재물을 빼앗아간 아가멤논에게 화가 나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이를 여신인 어머니에게 징징대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고 전차에 끌고 다니는 장면은 그를 편애했던 신까지도 경악하게 할 정도였으니.
아킬레우스를 미루어 보건대, 우리는 어떤 사람의 업적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추측이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짜증 한번을 내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선한 영역, 악한 영역은 한 사람에게 공존하고 어느 부분을 많이 가지느냐, 어떻게 이것을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사이코패스는 제외하고. 다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런 업적을 남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