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자세에 대하여


‘관크’라는 것은 ‘관객 크리티컬’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뮤지컬이나 연극 등의 공연장에서 다른 관객의 방해를 받는 것을 말한다.



오늘은 관크가 없기를.
내가 어떻게 해서 보게 된 작품인데 누가 나를 방해하겠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티켓팅에 성공해서 비싼 돈을 들여 공연장을 찾아간 당신. 두근거리며 객석에 앉아 있다. 무대에는 여러 소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상상한다. 어떤 줄거리로 배우가 어떤 연기를 펼치게 될까. 현실을 잊고 환상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주기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점점 주변이 어두워진다. 무대 조명이 밝아지고 배우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배우들은 아무 대사도 하지 않고 있다.
일단 기다려본다.
그런데도 배우들이 꼼짝을 하지 않고 관객들만 응시하고 있다.
관객들이 웅성되기 시작한다.
여러 소음들이 들리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배우들은 여전히 관객들만 보고 있다.



갑자기 배우들이 관객들을 향해 욕설을 하기 시작한다.



관객모독의 줄거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관객모독이 실제로 상영되기도 했다는데 요즘의 ‘관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다른 관객이 아니라 배우에 의해서 나의 감상이 방해가 되는 기분이 아닐까 하는.


영화와 연극을 비교해보면 영화는 스크린이라는 장치를 통해 대중들에게 배우의 연기가 간접적으로 전해지지만, 연극은 실제 면대면의 관계에서 대중과 배우가 소통한다.
대중예술과 (일종의) 고급예술의 차이로도 볼 수 있지만



연극이 정말 배우와 관객의 소통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여기서 소통이라는 것이 쌍방향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소통이 되는 것이라면 연극의 내용과 순간의 대사, 연기력 등이 매번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배우의 작품 해석에 대한 순간적인 즉흥 연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의 표정, 반응을 보고 실시간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과연 ‘소통’하는 공연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 ‘소통’을 얼마나 받아줄 수 있을까.
영화배우들이 연극이나 뮤지컬로 관객들은 만나러 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관객모독에서 관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닌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주체가 된다.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싼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작년이었나 리처드3세 연극 공연을 보려고 예술의 전당을 갔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자코메티 조각 전시회를 우연히 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극보다 당시 조각 전시회가 더 기억이 남는다.
실존에 대한 울림이 조각 작품을 통해 강하게 다가왔다.



예술에 대한 접근성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전시회, 연극, 뮤지컬, 콘서트, 영화, 음악회 등.


고급예술의 반대가 저급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불량식품을 먹는 내가 불량인생을 산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생각이며
실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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