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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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초연결의 시대, 각종 커뮤니티의 단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전염병의 범람으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이 반은 변하고도 남았을 지금, 격리와 단절의 기억은 전생처럼 희미하다. 다만 지워지지 못할 상처가 남았을 뿐이다. 연대는 희미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감염원 이상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었다. 안전을 위해.

고립과 격리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주어진 메세지 탓일지 모른다. 멀어질 것, 엮이지 말 것. '보장된' 격리와 무균의 경계 내에 머무를 것. '언택트'를 주창하며 벽과 가리개 너머로 타인을 관람하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관음하기에 이르렀다.

p.131 "제가 거기서 목격하고자 한 건 재난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혹은 얼마나 용감하게 재난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해나갔는지가 아니었어요. 그저 재난, 그 자체를 보고 싶었어요." (...) 재난의 생생한 표정이 궁금했으나 기준이 목격한 건 재난을 통과한 사람들의 얼굴에 남은 재난의 그림자뿐이었다.

p.159 소름은 집 밖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었다. 소름은 소년의 몸 안에 있었다. 자신이 곧 전쟁이고 소름이었다. 자신과 닿은 사람은 누구든지 소름을 경험하게 된다. 소년은 몸 안의 소름이 자신을 덮칠까 두려운 듯, 자기 안의 소름으로부터 도망치듯 재빨리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또다시 중얼거렸다. 소름이 끼쳤으면. 제발 소름이 좀 끼쳤으면..


둘. 무탈히 흘러가는, 매일이 별 일 없이 그렇게 이어지기만을 바라는 우식의 소원은 욕심일까, 최소한의 평화일까. 영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내일도, 모레도. 그것의 이름은 고립일까, 안락일까, 그도 아니면, 저주일까. 마르고 닳도록 외웠던 충성은 숨만 쉬고 입만 닥치면 그만인 것이다.

역사적 사명 따위 주어지지 않는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사람구실에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다. 소박한 일상 또한 아득바득 매달려야 겨우 굴러갈 따름이다. 이럴 줄 알고 태어난 사람이 있긴 할까, 싶을만치. 등장인물 모두는 각자의 벽장에 갇혀있다. 그 벽장은 은유와 실질 모두의 지위를 꿰차고 최소한의 벙커, 어쩌면 두려움의 성채로 기능한다. 끊임없이 속삭인다. 접촉하지 말 것, 엮이지 말 것.

p.12 "저주라니. 내가 진짜 저주를 내리면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아니?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돼. 영영. (...) 그런 게 진짜 저주란다."

p.15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된 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따위 몸과 마음을 바쳐봐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에 도움 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기는 개뿔. 해나 안 끼치고 살면 다행이지.


셋. 다시 하나. 로 돌아가서, 언택트 비접촉 타령을 하는 사이 인간의 본능적 사회성, 고립을 두려워하는 연약함은 지상명령이 된 객체화의 물결을 타고 관음사회로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말끔하게 소독된 관계는 조금의 침해도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타인은 언제나 위협이었으므로.

무서우이, 문을 걸어닫고 눈만 내놓은 채 보고 또 본다. 말하고 또 말한다. 불가침을 믿어 의심치 않는 동시에 서슴없이 찌르고 물어뜯는다. 고립된 모두가 거리낌없이 잔인하고 또 선량한 개인들이었다.

p.81 다짜고짜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마태공의 다수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누구도 타인보다 자신의 죄의식이 약하다고 느끼며 껄끄러워지는 마음을 오래 이어가고 싶지는 않아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확실한 죄, 그가 그토록 오래 반복해서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는 특정한 죄의 실체를 알아내고자 했다.

p.124 그럼에도 우식은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되기를 원했다. 우식은 혼자 있을 때면 (...)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계정을 비공개로 운영했으나 가끔 자신이 아닌 척 계정을 새로 열고 편집된 일상을 올렸다가 돌연 없애기도 했다. 숨고 싶은 동시에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주기를 바랐다.


넷.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이왕 넘어질 수밖에 없는일이면 있는 힘껏 나자빠지라고 하고 싶다. 인간도 짐승이라 상처입고 두려우면 꼬리 말고 숨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탈로 칼비노는 말했다. 살아있는 자들의 지옥은 우리가 함께함으로서 만들어내는, 매일 살아가는 지옥이라고.

존재 이래 잔혹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1인용 지옥은, 끊임없이 염탐하고 연결지어지는 허상의 격리는 그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언젠가는 나와야 할 벽장 밖 상처투성이 세계에서만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미래의 재앙을 현실에 못박지 않는, 상처와 오염을 전제하는 교류에서만. 방 탈출 필승 공략법: 일단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p.90 마태공에게는 아마도 딸에 대한, 또 그 딸에게 피해 입은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악을 낳았거나 길렀다는, 혹은 제 안의 악을 딸에게 물려주었다는 뿌리 깊은 죄의식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벽장이 되어 그를 가두고 있었을 것이다. (...) 트럭은 그저 그의 또 다른 벽장이 된 건 아닌가. 탈출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가 더 큰 벽장 속으로, 더 큰 소름 속으로 들어가버린 건 아닌가.

p.213 방 탈출 필승 공략법: 일단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 어쩌면 우리는 자가격리할 방이 필요한 저 밖의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방을 만들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그 방을 탈출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풀이 방법을 공유하는 일을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워크숍 같은 것을.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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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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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도 들리는 즉시 거의 반사에 가까운 정서가 폭발하는 탓에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국가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우리의 일상 전반에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들-국가는 어떤 이념의 집합체 내지는 단일한 군집으로 상상되는 탓에 '국적-인'과 행동주체로서의 국가를 분리해 다루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일 미국과 중국은, 좋든 싫든 한국 근현대사의 전반에서 거대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p.170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탈중국이란 말에 지나치게 몰입하기보다는, 앞선 논의에서도 반복적으로 했던 이야기지만 결국 대체 불가능한 우리만의 기술력을 하루빨리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술적 리더십이 갖추어져야 연달아 경제적, 군사 안보적, 국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를 묻느나면, 다분히 열등과 멸시, 선망과 추종 사이 어딘가를 혼란하게 오가는 중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신흥강대국 반열에 올랐음을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대외경제에 크게 의존하며 이른바 '강대국'의 결정에 경제적 사활이 크게 오간다. 자립과 경쟁력을 주창하면서도 국제적 위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분명 영향력은 증가하였으나, 어느 것 하나도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한다. 상대적인 성장폭에 비해 내실을 다질 기회가 부족했던 탓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리상으로도, 국제 역동 상으로도 실질적 고립의 경계에 놓인 한국의 지위는 매우 미묘한 면이 있다. 전략적 동맹 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기정학의 시대에서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연구, 산업 전분야에서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p.94 그런데 중국의 민간 기업이 정말 말 그대로 '프라이빗'한지, 또 자율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여전히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양질 전환의 기류가 최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p.120 결국 우리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의 미국 기술 의존도가 얼마나 낮은지,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기술적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에 따라 다자간 기술 통제 프레임이 형성되지 않을까요. 통제 정책에 우리가 어떤 정책적 접근을 할 것인지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의 수준에 따라 시장 원리를 통해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일반 독자는 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복잡한 역동과 다면적 지식을 요하는 국제관계의 아젠다에 관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의 이해와 실정 간의 거리가 좁혀지기 어렵다. 특히나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는 정서적 장벽이 두터운 경우, 그 말은 곧 아는 것만 알고 믿는 것만 믿는 평범한 대중은 정치인과 기업의 눈속임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기 딱 좋은 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트럼프정부의 재집권은 그간의 이른바 '상식선'에 의존하는 국제 평화가 한순간에 완전한 혼란과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원한 우방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도 존재하지 않음을 한국 사회는 연이은 위기 속에 절실히 깨닫고 있지 않은가. 넓은 영토도, 미어터지는 인구도 이 다면적 갈등에서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 하물며 극동의 소국은 말할 것도 없지 않나.

p.190 미중 관계의 변화가 우리 경제와 산업 기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에만 집중하는 기존 접근법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적 혼돈의 근본 원인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다자주의 국제 경제 질서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고, 그에 중국이 똑같이 맞대응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전후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유지해 왔던 틀인 다자주의 무역과 국제 경제 질서가 붕괴되었어요.


미래는 현재에서 시작한다. 적자생존도, 강자독식도 해답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한국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절멸과 생존, 퇴락과 신질서의 구축의 오리무중 사이에서 더이상 타자의 시선과 비교우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이고 실제적인 유연함을 갖추기를, 생존을 넘어 상생과 끝없는 변화를 상상하고 추구하기를 바랄 뿐이다.

p.156 미래 연구를 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어요. '미래'라는 것을 먼저 기획해 놓고 거기에 모든 걸 맞추면 '진짜 미래'가 잘 안 보여요. 현재 가려져 있거나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그로부터 미래를 발견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꾸 미래를 먼저 기획해 놓고 그걸 따라가기 때문에 실패해 왔던 것 같아요. 인간의 욕망과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미래를 발견하려는 노력, 이것이 훗날 한국의 저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p.205 앞으로는 제대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겁니다. 세상을 어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느냐, 또 누가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 매우 유연해야 합니다. 또한 '좋은 세상'은 계획만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상상과 꿈으로부터 나오죠. 이 꿈이 바로 문제 제기의 영역입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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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 김응교 장편실화소설
김응교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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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강원도로 돌아온 사람. 가족을 두고, 고향을 두고 떠밀리듯 올라가 제 발로 돌아온 고향에서 그의 이름은 빨갱이, 용공분자, 간첩이다. 38선 너머 이북의 삶을 살다 분단 이전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세상은 북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간다던 고향에 돌아온 남의 사람이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고향은 어디인가. 그는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 같은 나라 같은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째서 남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는가.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사라져가는 전쟁 이후, 모두가 분단된 현실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돌아갈 수도 향할 수도 없는 반쪽짜리 소원.

p.34 오늘도 그는 동해를 가로막는 철조망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사실 여기,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이 그가 태어난 고향 땅인데 마치 고향 잃은 사람처럼, 넋 나간 사람처럼 한없이 북녘 하늘만 쳐다본다. 얘기를 나누고 보면 그는 북쪽에 있을 때 남쪽을 그렇게 보았을 성싶다. 그의 고향은 어디인가.

p.369 사실 평화롭고 행복한 기분에 휩싸여 있을 때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죄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나 때문에 표현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 정희의 눈빛, 그 눈빛에는 정희가 겪는 고통이 찐득하게 가라앉아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는 더 만나 보려야 볼 수도 없는 필기, 샛별이도.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그가 걸어온, 잡히면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길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도 국가의 부름 앞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의 기억 곳곳에는 살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폭력이 가득하다. 사람이 사람을, 이름이 사람을, 이념이 민족을.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온몸을 바쳤다고 말할 사람. 굴곡진 인생의 회환이란 게 바로 이런 걸까. 한반도 현대사의 산증인이라는 수사에 모자람이 없는 생생한 기억에 빠져들다 보면 자연히 인간적인 연민에 더불어 어떤 의문이 떠오른다.

p.186 당시 인민군들은 미군에 대해서는 그 증오심이 극심해서 양키라면 결사적으로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국군과 맞설 때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적이 나를 죽이는 전장에서도 증오심보다는 미묘한 민족 감정이 앞서 있었다.

p.342 영문과 한글로 적힌 군사 분계선이었다. 팻말을 보자마자 갑자기 가슴 속이 흠칫했다. 분명히 여기도 나의 조국인데 하는 생각 속에, 남의 땅이라는 낯선 감정이 급습하면서 단박에 긴장되었다. 불안한 감정을 억제하려고 옷깃에다 턱을 반쯤 묻고 계속 전진, 전진했다.


숭고에 가까운 의지와는 달리 부패는 만연하고 폭력은 언제나 정의보다 가깝다. 충성에 보답을 받았는가. 신념으로 살아온 일생의 말로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정할 수 없이 순진한 면모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신이 평생을 바친 조국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한국 사회는 보수의 자리를 꿰차앉는 극우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공산당, 빨갱이, 무력진압을 만능 주문처럼 외워댔다. 콕 집어 누구만의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이 휩쓸리는 이들과 마치 그 말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서 자신들의 권좌를 공고히 다지는 이들의 사회.

p.451 나는 4기 제15차 전원회의의 결정과 김정일이 등장하는 일련의 조짐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사실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나 말고도 다른 이들 또한 불만인 듯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p.662 창백할 만큼 핼쓱한 얼굴로 그는 되레 나를 위로했다. 그는 북한에 가족이 살고 있기에, 언젠간 돌아가리라 믿고, 전향을 거부했다고 한다. (...) 그의 발음이 꼬부라졌다. 내가 그의 손을 맞잡았을 때 얼음장처럼 싸늘한 손 마디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를 잡는 듯했다. 그의 얼굴은 오랜 고통으로 인해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통일은 물론, 어떤 수준에서의 상생도, 공존도 불가하다. 파편화되고 끝없이 아귀다툼하는 개인들의 지리멸렬한 사회. 그것을 바라는 자가 과연 누구일지, 우리는 그 근원적인 물음의 기회를 잊어버리지 않았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 김진계 옹의 삶을 좇는 길에서 묻는다. 누구의 소원일지 모를 통일, 멸공의 횃불 아래 스러진 이들을. 이 땅이 누구의 조국이었느냐고, 우리의 조국은 과연 무엇이겠느냐고. 끝없는 갈등의 추동 속에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향하고 있나. 민주 사회로의 길은 어디로 어떻게 얼크러지고 있으냐고.

p.112 1950년 필기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전쟁이 일어났고, 나는 전쟁에 휘말려 가족들과 생이별해야 했다. 이런 처지이면서도 나는 이 전쟁이 누구에 의해서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 나에게 북침설과 남침설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전쟁으로 인해 민족이 비극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p.733 아직도 공공연히 남북한은 힘의 우위 확보와 힘의 역사 지배를 강조한다. 과연 힘에 따라 남북한이 지배될까? (...) 힘의 무력함과 민중의 위대함을 먼저 아는 쪽이 결국은 남북한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김진계와 같은 분들의 긴 고난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위대함은 '힘'이 아닌 '민중' 때문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도서제공: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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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 학교를 지탱하는 노동의 흔적
희정 지음, 김희지 사진 / 북트리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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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특정 직업과 그 종사자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가, 일종의 계급이었다가, 최근에 와서는 보편적인 존칭이 된 그 이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우기 마련이며 그로 인해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이라는 의미를 담은 그 이름, 선생님. 배움의 의미 확장만큼이나 그 터전인 학교의 경계 또한 이전에 비할 수 없이 확장되었다.

좁은 의미로서의 학교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학교는 단순히 교실의 집합이 아니다. 학생과 교사 뿐만 아니라 학교를 이루는 구성원들, 일하는 사람들이 머물고 유지하며 활동하는 모든 공간에 사람이, 일하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모여 학교라는 집합을 이룬다. 동시에, 누군가는 '진짜 선생님'이 아니다. 계약직과 외부협력직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학교 안의 외부인이 된다.

p.6 배움의 공간이라는 학교는 골조를 올리고 기둥을 세우고 창틀을 끼운 실제의 건축물이다. (...) '배우다'라는 말은 '일하다'라는 말을 필요로 한다. 학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p.93 정규 교사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기간제, 방과후, 특기적성, 파견강사 등 다양한 이름을 달고 '바깥 사람'으로 학교를 오간다. 이들을 아우르는 명칭은 '교육활동참여자'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그저 '참여자'라 분류되는 사람들. 그러나 명칭이 무엇이건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다.


각자의 무균실이 충돌하는 요즘, 우리가 만드는 사회는 상처와 경계로 가득한 곳일지 모른다.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모든 위험 요인을 소독하고, 박멸하기를 원하는 사회. 그곳에서 상처와 실패에서 일어설 기회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상처입히고 좌절하는 순간 그대로 추락해버린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공교육의 실패와 무능 따위를. 학교는 일종의 시간 때우기, 입시의 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마저도 실질적인 경쟁력은 사교육에 몰아넣은 채. 우리 사회가 실패한 것은 공교육과 그 제도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실패한 것이 아닐, 배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

p.141 실제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공권력 투입과 CCTV와 같은 통제 시설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학교의 안전을 지키려는 경향은 짙어지고 있다. 반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 노년의 보안관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학교의 안전을 새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됐다. 운동장에 혼자 있는 아이를 유심히 지켜본 이가 건네는 안부야말로 학교를 지키는 일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p.291 그럼에도 계속 실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라는 길에 나 혼자 있지 않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안전은 돌부리를 모두 치워 놓은 평평 한 길이 아니라, 어떤 길이건 함께 가 줄 사람들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갈 순 없지만, 그 상처에 연고를 발라 줄 사람은 있어야 한다. 학교에 그런 이들이 더 많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의 전형적인 집합에서 약간씩 밀려나있는 사람들이다. 입시에 요구되는 교과를 맡지 않기 때문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기 떄문에, 잠깐 쓰이고 금세 갈아치워지는 사람들이다. 선생님이지만 교사는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방법,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그 간단하고 엄정한 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학교는 여전히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교육 기관'이라는 학교의 근원은 줄글로 놓이는 지식에 그치지 않는다.

p.124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정규'의 차이를 배우고, 이것이 단순한 고용 형태를 넘어 사회적지위와 신분의 문제임을 직감한다. 이 감각은, 교단에서 하는 어떤 말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 그럼에도 학교라는 일터에서 배움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전해준 배움이 학교라는 공간을 채운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p.160 우리는 어떤 일을 쉽다고 생각할까? 중요하지 않은 일? 필수적이지 않은 일? 아니다. 바로 우리가 잘 모르는 일이다. 다른 이가 어떤 노동을 하는지 모를 때 그 일이 쉬워 보인다. (...) 멀티플레이어가 되길 요구받는데, 세상은 그 일이 쉽다고만 단정 짓는다. 그러나 다들 내심 알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쉬워 보이는 일이 있을 뿐이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일을 하고 내일을 고민하는 사람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학교 안팎의 학생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갈 사회는 그런 곳이다. 그렇게 자라난 학생들이 좋은 사회인이 되어 나아간 사회가 좋은 곳이 되려면 '태생부터' 좋은 것만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충돌하고 실패하며 고민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좋은 사람을 자꾸자꾸 마주하게 하는 것, 학교는 그런 곳이 되어야한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방해와 다름을 말끔하게 소독한 0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학교로 나아간 모든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살아갈 모든 날에 여전히 좋은 배움이 필요하다. 잘 살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p.290 서로 다른 존재와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학교가 먼저 제초를 하는 건 아닌지. 이런 염려조차 학교가 특정 열매의 수확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풀이 어울려 자라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믿음 때문에 우리는 뿌리 뽑힐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학교에 간다.

p.292 그러니 학교에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인사를 듣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너는 뽑아 버리면 그만인 잡초가 아니라고, "단 한 사람이 필요한" 또 다른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도서제공: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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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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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말을 그의 삶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것이겠으나, 이는 곧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말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자신으로서의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아가, 그의 이름이 마치 끊겨버린 길처럼, 도려내진 자리처럼 그저 흔적,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면.

포기 앞에는 단 하나의 선택만이 남는다. 나로 미루어 당신의 얼굴을 비추어보기. 지워지고 침묵된 흔적에서, 부재의 자리에서 존재의 기억을 더듬어나가기. 목소리를 불러내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의 이야기를, 이름을 부르는 일. 나에게서 당신을, 당신에게서 나를 그려보이는 일.

p.32 외할머니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조상이 된 영혼에게도, 원귀가 된 영혼에게도 삶의 과정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몇 개의 언어만으로 압축될 수 없는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 안에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p.56 그녀들은 늘 자신들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반응 앞에서 문득 궁금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 결론은, 결국 내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설정된 특별함의 기준을 묻고 그 기준을 뒤흔드는 이야기에 언제나 더 관심이 갔다.


다큐멘터리 감독,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딸, 한국 여자. '남동생이 하나 있다' 한 마디면 아, 하고 누군가는 말 없이도 다 이해할 그런, 딸자식으로 자란 사람. 누이처럼은 되지 말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누이로 살아온 사람. 양주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사람.

'평범하라'는 압박 속에 자라온 저자의 고백은 지극히 익숙한 동시에 평범하다. '양 씨 집안 여자들은 불행하다'는데, 불행을 안고 태어나 불행하게 살았을 그 여자들의 이름은, 얼굴은, 삶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무엇이 그들을 불행의 자리에 주저앉혔나.

p.31 나는 그 말을 '정상성'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했다. '정상적으로 살아야 해, 정상적으로.'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사는 삶은 뭐고, 정상적이지 않은 삶은 또 뭘까. (...) "평범해야 해, 평범" 이라는 말은 각종 통과의례를 별 탈 없이 거치고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80년 5월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진,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살았을 어떤 이들을 떠올렸다.

p.156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오래동안 침묵으로 가려져온 또다른 양 씨 여자, 고모의 삶을 죽음에서부터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가족의 역사를 되짚는 일과도 같다. 관습의 이름으로 내쳐지는 것들, 사랑하지만 다 똑같이 사랑하지는 않는. 그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독자는, 관객은, 필연히 묻게 된다. 그 많던 '평범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드세고, 조용하고, 욕심 많은 꿈을 꾸던 '여자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여성들은. 그 많던 여자애들은. 누이, 딸, 아내가 아니었던, 계집애도 딸년도 아닌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 사람들은, 그 이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그들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는가. 분명 있었는데, 그 때 그렇게 살아있었는데, 꼭, 없는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p.163 애도될 수 있는 죽음과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이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죽음과 삶이 그만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 삶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도 결코 똑같은 모양은 아니다.

p.184 지금까지의 가족의 시간 속에서 지워져야만 했던 이름, 흔적 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 이름, 지영이었다. 그 이름을 지우는 데에는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지만, 사라진 이름이 다시 새겨지고 드러나는 데에는 몇 배 이상의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자살했다는 이유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 이했다는 이유로, 질문조차 박탈당했던 이름의 귀환이었다.


양주연의 기록은 기어코 양양의 말에 도달한다. 현실에 후련한 결말 따위는 없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은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불편하게 맴돌 것이다. 떠나진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끊겨버린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영과 주연의 기억에 이어진 우리들은 함께 상상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밀려 나거나 잊히지 않는, 여성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거나 수치스러운 것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누군가의 삶도, 죽음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쉽게 가려지거나 비밀이 되지 않는" 미래를. 나의 삶에서 당신과 우리의 기억이 손을 맞잡는, 그런 미래를.

p.10 두려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꽤 강력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거기에 다가가 뭉쳐진 시간과 감정을 풀어 나가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을 알려 주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를 깊숙이 이해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려진 슬픔과 만나게 하기도 한다. 과거를 헤매는 일은, 고모라는 존재를 알아 가고 내 안의 두려움을 응시하면서 여러 감정과 상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p.201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새로운 세상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그 세상과 함께 나는 매일 매일 새롭고 익숙한 용기를 이어 갈 것이다. 용기는 지나온 시간과 함께 생겨나고, 다가올 시간을 향해서 걸어간다. 용기를 낸 만큼 새로운 세상이 올까? 지금 확실한 한 가지는 내 앞에 놓인 세상 속에서 이제 더 이상 고모는 금기의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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