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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하나. 초연결의 시대, 각종 커뮤니티의 단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전염병의 범람으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이 반은 변하고도 남았을 지금, 격리와 단절의 기억은 전생처럼 희미하다. 다만 지워지지 못할 상처가 남았을 뿐이다. 연대는 희미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감염원 이상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었다. 안전을 위해.
고립과 격리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주어진 메세지 탓일지 모른다. 멀어질 것, 엮이지 말 것. '보장된' 격리와 무균의 경계 내에 머무를 것. '언택트'를 주창하며 벽과 가리개 너머로 타인을 관람하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관음하기에 이르렀다.
p.131 "제가 거기서 목격하고자 한 건 재난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혹은 얼마나 용감하게 재난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해나갔는지가 아니었어요. 그저 재난, 그 자체를 보고 싶었어요." (...) 재난의 생생한 표정이 궁금했으나 기준이 목격한 건 재난을 통과한 사람들의 얼굴에 남은 재난의 그림자뿐이었다.
p.159 소름은 집 밖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었다. 소름은 소년의 몸 안에 있었다. 자신이 곧 전쟁이고 소름이었다. 자신과 닿은 사람은 누구든지 소름을 경험하게 된다. 소년은 몸 안의 소름이 자신을 덮칠까 두려운 듯, 자기 안의 소름으로부터 도망치듯 재빨리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또다시 중얼거렸다. 소름이 끼쳤으면. 제발 소름이 좀 끼쳤으면..
둘. 무탈히 흘러가는, 매일이 별 일 없이 그렇게 이어지기만을 바라는 우식의 소원은 욕심일까, 최소한의 평화일까. 영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내일도, 모레도. 그것의 이름은 고립일까, 안락일까, 그도 아니면, 저주일까. 마르고 닳도록 외웠던 충성은 숨만 쉬고 입만 닥치면 그만인 것이다.
역사적 사명 따위 주어지지 않는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사람구실에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다. 소박한 일상 또한 아득바득 매달려야 겨우 굴러갈 따름이다. 이럴 줄 알고 태어난 사람이 있긴 할까, 싶을만치. 등장인물 모두는 각자의 벽장에 갇혀있다. 그 벽장은 은유와 실질 모두의 지위를 꿰차고 최소한의 벙커, 어쩌면 두려움의 성채로 기능한다. 끊임없이 속삭인다. 접촉하지 말 것, 엮이지 말 것.
p.12 "저주라니. 내가 진짜 저주를 내리면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아니?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돼. 영영. (...) 그런 게 진짜 저주란다."
p.15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된 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따위 몸과 마음을 바쳐봐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에 도움 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기는 개뿔. 해나 안 끼치고 살면 다행이지.
셋. 다시 하나. 로 돌아가서, 언택트 비접촉 타령을 하는 사이 인간의 본능적 사회성, 고립을 두려워하는 연약함은 지상명령이 된 객체화의 물결을 타고 관음사회로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말끔하게 소독된 관계는 조금의 침해도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타인은 언제나 위협이었으므로.
무서우이, 문을 걸어닫고 눈만 내놓은 채 보고 또 본다. 말하고 또 말한다. 불가침을 믿어 의심치 않는 동시에 서슴없이 찌르고 물어뜯는다. 고립된 모두가 거리낌없이 잔인하고 또 선량한 개인들이었다.
p.81 다짜고짜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마태공의 다수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누구도 타인보다 자신의 죄의식이 약하다고 느끼며 껄끄러워지는 마음을 오래 이어가고 싶지는 않아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확실한 죄, 그가 그토록 오래 반복해서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는 특정한 죄의 실체를 알아내고자 했다.
p.124 그럼에도 우식은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되기를 원했다. 우식은 혼자 있을 때면 (...)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계정을 비공개로 운영했으나 가끔 자신이 아닌 척 계정을 새로 열고 편집된 일상을 올렸다가 돌연 없애기도 했다. 숨고 싶은 동시에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주기를 바랐다.
넷.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이왕 넘어질 수밖에 없는일이면 있는 힘껏 나자빠지라고 하고 싶다. 인간도 짐승이라 상처입고 두려우면 꼬리 말고 숨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탈로 칼비노는 말했다. 살아있는 자들의 지옥은 우리가 함께함으로서 만들어내는, 매일 살아가는 지옥이라고.
존재 이래 잔혹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1인용 지옥은, 끊임없이 염탐하고 연결지어지는 허상의 격리는 그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언젠가는 나와야 할 벽장 밖 상처투성이 세계에서만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미래의 재앙을 현실에 못박지 않는, 상처와 오염을 전제하는 교류에서만. 방 탈출 필승 공략법: 일단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p.90 마태공에게는 아마도 딸에 대한, 또 그 딸에게 피해 입은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악을 낳았거나 길렀다는, 혹은 제 안의 악을 딸에게 물려주었다는 뿌리 깊은 죄의식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벽장이 되어 그를 가두고 있었을 것이다. (...) 트럭은 그저 그의 또 다른 벽장이 된 건 아닌가. 탈출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가 더 큰 벽장 속으로, 더 큰 소름 속으로 들어가버린 건 아닌가.
p.213 방 탈출 필승 공략법: 일단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 어쩌면 우리는 자가격리할 방이 필요한 저 밖의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방을 만들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그 방을 탈출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풀이 방법을 공유하는 일을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워크숍 같은 것을.
*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