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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평점 :
*서평도서제공: 을유문화사
최근의 영화화로 흥행작의 원작! 이라는 황당무계한 타이틀까지 달게 된 이 불멸의 고전을 보라.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떠도는 자들의 슬픔을 노래하게 한, 전율과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무엇이 남는지 묻고 또 묻게 한 바로 그 작품을, 감춰진 이름, 오래 고통받았으나 끝내 지워질 수 없었던 이름들을, 『오뒷세이아』를.
『오뒷세이아』의 내용은 오랜 세월 변주되며 잘 알려져왔고, 수많은 영웅들과 괴물에 대해서도, 온갖 비유와 상징, 현실과 신화를 넘나드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는, 나 같은 독자가 분명 수두룩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같은 표현이 어떻게 이 괴물과 저 용사에 같고 또 다르게 붙어지는가?
p.356 제10권 이렇게 말하자, 부서져 내렸소, 그들의 소중한 심장이, 떠올랐던 것이오, 라이스트뤼곤인 안티파테스가 한 짓이, 심장이 큰 퀴클롭스가 남자를 먹어 치우던 폭력이, 그들은 쟁쟁하게 울었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러나 어떤 일도 일어나진 않았소, 눈물 흘린다고.
p.357 제10권 밖으로 튀어나온 건 심장이 큰 에우뤼로코스의 제비였소. 걸어서 갔소, 그와 함께 스물 두 명의 동료가 울면서, 뒤에서 애곡하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떠났소. 발견했소, 골짜기에 깎아 다듬은 바윗돌로 지어진 키르케의 집을, 사방이 잘 보이는 곳에서.
뿐만 아니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사람 간의, 혹은 신과 인간 사이의 의례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면 줄거리나 개별 신격을 중심으로 읽을 때와 어떻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을 만하다. 『일리아스』에서 보복과 전투, 장례, 감사제가 반복해 나타난다면 『오뒷세이아』의 경우에는 환대와 이방인-손님, 물리적/개념적 가정 구성의 안팎 그리고 속죄의식과 보속에 대해 반복해서, 점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죄의 형태나 속죄의례, 그에 필요한 고난과 해결에 대해서도? 설령 그 죄에 어떠한 의도나 자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부정' 의 '옮겨붙음'이 조선, 중국의 중앙집권형 군주제 국가에서의 연좌죄 개념의 그것과는 퍽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신'과 그의, 저주나 벌에 대한 인식, 속죄-정화를 위한 과업과 절차 등에서 나타나는 인물 간의 해원이나. 세계관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
p.195 제4권 '너에겐 아직 운명이 아니네, 사랑하는 이들을 보는 것도 잘 지은 집과 그대의 조국 땅에 이르는 것도, 아이귑토스의, 곧 제우스로부터 떨어지는 그 강의 물로 다시 가서 신성한 헤카톰베를 바치기 전에는, 불사의 신들에게, 넓은 하늘을 차지하는 그분들께. 바로 그때 그 신들께서 허락하실 거네, 네가 갈망하는 여정을.'
p.349 제10권 나는 말했소, 심란한 심부로. '나를 해쳤소, 못된 동료들이, 그들에 더해 지독한 잠까지. 고쳐 주시오, 친구들, 그대들에겐 능력이 있잖소.' 이렇게 말했고, 부드러운 말로 호소하면서. 그들은 조용해졌소. 아버지는 이야기로 응답했소. '꺼지시요, 섬에서 빨리, 산 자들 가운데 가장 치욕스럽소! 내겐 법도가 아니오, 돌봐주는 것도, 보내 주는 것도 복된 신들에게 미움받은 그런 남자를 말이오. 꺼지시오, 불사신들에게 미움받았기에 이리로 온 것이니.'
유비에 관해서도 눈여겨 볼 만한 장면들이 많다. 구혼자들의 만행과 귀환한 오뒷세우스의 보복에서 반복되는 제물-포식과, 부자간의 해후에서 반전된 형태로 제시되어 그 비극성을 더하는 새끼 잃은 맹금의 비유라든지. 직접적으로 제시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이런 건 어떨까. 페넬로페와의 해후에서 보여지는 나무를 통째로 쓴 침대가 오뒷세우스의 귀환 가능성을 암시 혹은 담보하고 있었다든지.
같은 수사를 사회적 신분이 다른 이들에게 부여하는 장면들 또한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돼지치기, 장군, 왕비 모두에게 고귀함과 탁월함이 있다. 그들 자신의 성품이 그러하다면. 고난을 이겨내 끝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면 더더욱!
p.539 제16권 텔레마코스는 부둥켜안았다, 훌륭한 아버지를, 애탄했다, 눈물을 쏟으며. 그 둘 양쪽 모두에게 애곡의 욕망이 솟아 올랐다. 울었다, 쟁쟁하게, 맹금류들보다도 더 요란스럽게, 수염수리나 갈고리발톱의 독수리들보다도, 그놈들 새끼들을 사냥꾼들이 날지도 못하는데 잡아갔을 때보다도. 그렇게 그들은 눈썹 아래로 연민스러운 눈물을 떨구었다.
p.705 제22권 발견했다, 곧이어 오뒷세우스를 죽임당한 시체들 사이에서 피와 선혈로 얼룩진 그를, 마치 사자와 같았으니, 그놈은 들판에 있던 소를 잡아먹은 뒤 떠나가는데, 보라, 그놈의 가슴과 양쪽의 볼때기가 온통 피범벅이었으니, 무서웠다, 얼굴을 쳐다만 봐도. 그렇게 오뒷세우스는 얼룩졌다. 두 발과 위쪽 두 손이.
『오뒷세이아』는 수천년의 세월과 동서고금을 넘어 마음 깊은 부분을 건드리는 불멸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동시에, 여전히 수많은 질문과 새로움이 솟아나는 샘이기도 하다. 명쾌한 정답과 딱 떨어지는 해결책을 주지 않음에도 수많은 이들이 전율하고, 마음에 새기며 지도로 삼아온 이유는, 어쩌면, 그 이야기의 본질이 인간사, 인생의 기저에도 닿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의 독자, 내일의 관객, 또다른 언젠가의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언제, 어디의 누구든 또다시 낯선 닮음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그 길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전율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형상을, 만물에 깃든 신의 그림자를 읽어낼 것이다. 인간이, 여전히, 인간인 한...
p.212 제4권 "자고 있니, 페넬로페, 소중한 심장으로 애통해하면서? 맘 편히 살아가는 신들은너를 그냥 놔두진 않을 거야, 울게도 괴로워하게도, 아직 귀향할 수 있으니까 네 아이는, 신들에게 무슨 죄를 짓지는 않았으니까."
p.569 제17권 그놈을 전엔 젊은 남자들이 데리고 나가 야생 염소와 사슴과 토끼를 쫓게 하곤 했었는데, 주인이 떠나고 없는 그때 버려지다시피 누워 있었다, 똥 더미 속에, (…) 거기에 개가 누워 있었다, 아르고스가 진드기 투성이로. 바로 그때, 그놈이 보았다, 가까이에 있는 오뒷세우스를, 꼬리를 흔들었고, 양쪽 귀를 아래로 내렸지만, 더 가까이 더 이상 그때 주인에게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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