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이건 더 베스트
그렉 이건 지음 / 허블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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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단 한 편을 만날 수 있다면 나머지 아홉의 중복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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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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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성해나 #인비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공포, 두렵고 무서움. 기담,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기담은 무서운 이야기인가? 이상야릇한 재미와 두렵고 무서운 마음은 무엇에 기인해 합하고 갈라지는가. 수많은 이견이 있겠으나, 일단은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두렵고 무섭고 이상야릇하고 재미난 '것'은 지와 무지의 흔들리는 경계에 있다고, 다르게 말하자면, 믿음과 믿을 수 없음에.

어떤 경우에 이것들은 말할 수 없음, 정확히는 말해질 수 없음에 기인한다. 알고 있다, 혹은 존재한다, 보았고, 겪었다 혹은 겪도록 했다. 눈을 마주친 인간, 상대의 눈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혹은 바라봐진, 꿰뚫린 인간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가? 떳떳이 공표되어 살아가질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오래된 생각을 불러오고자 한다. 많은 두려움, 말해질 수 없음은 죄 혹은 '뒤집힘'의 가능성에 있다고

p.22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세월이 지나 내 아들이 성장한 후에도 이 책상이 멀쩡히 보존된다면 아들에게 이것을 물려줄 것이다. (…) 아이가 커 가정을 이룬다면 그 자식에게도 전해지겠지.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 그리고 언제까지고 내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p.43 〈인비인〉 몸을 숨기고, 숨을 죽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두더지가 그러듯 그것은 코끝과 귓바퀴를 움직여 제 체취와 소리를 감지했고, 어디든 따라붙었습니다. 오야지.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저는 점점 죽어갔습니다. (…) 빠가! 저쪽으로 떨어지라고! 그러자 이렇게 답하더군요. 명 받들겠습니다. 오야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두렵고 이상한 것은 바깥에서 전해 들어온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우리' 안이 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기이한 것은 곧 낯선 것을 넘어 낯섦이고, 공포는 익숙해질지언정 절대로 친숙해질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바깥, 그들, 저편에서 이쪽, 안, 우리에게로 침투해올 기회를 노린다. 그 존재를 인식 너머로 밀어내거나, 어떤 믿음, 나의 경우만은 다르리라는 알량하고 공고한 믿음 없이는 일상을 안위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곁가지로 나아가, 인간과 도넛은 위상적으로 같다 하지 않는가? 뒤집어 까도 인간은 인간, 도넛은 도넛. 도넛은 인간, 인간은 도넛. 자, 여기서 문제. 안팎이 뒤집어진 인간은 무엇일까요? 그 순간 우레같은 깨달음이 들려온다면, 축하한다. 당신 또한 뒤집어진 존재입니다.

p.110 〈매일〉 굴곡도 없고 위험 부담도 적으며 노출도가 낮은 삶. 누군가의 일생을 낙찰받으러 온 사람이 원하는 건 그런 삶이라고 34번은 설명한다. (...) 보통은 인생에 곡절이 너무 많아서 오는데, 인생이 너무 지루해서 오는 사람도 있대요.

p.246 〈#유령〉 이제 0에겐 그럴 힘도, 기대도 없었다.뉴로비전 패치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1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며 0은 패치를 뜯었다. 적막한 집 안에 단조로운 파열음이 들렸고, 1이 입을 뗐다.


내-면을 드러낸. 드러나진 안-속은 마르고 부패해 죽어간다. 박박 닦아 새로운 겉으로 만들지 않는 한. 어째서인가? 이미 부패해있기 때문이다. 주저하고 뭉개는 사이 썩어문드러졌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알맹이를 드러낸 겉은 금세 죽습니다. 겉은 알맹이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 울음과, 분노, 죄과는 현실을 초월하거나 미끄러져 떨어져나간, 소외된 형태로 다가오지 않나. 향기와 악취가 뒤섞인 벚나무 책상, 형태 잃은 육괴. 목숨보다 중한 것, 명예, 자존심, 나의 존재를 세계에 단단히 결속하는 '연결'에 대한 믿음. 그렇게 죄, 흠, 비밀은 스며드는 음각이다. 절망이 그러하듯이.

p.79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결연했고,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비슷한 외양이, 깨끗한 두루마기와 수치를 모르는 태도가 견딜 수 없었다.

p.186 〈윤회 (당한) 자들〉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 모르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단 한 명이라도 인간됨을 지향한다 믿어지는 한 승자의 기록이라느니, 본성이 어떻다느니, 현실이니 실용이니 면피는 어떤 식으로든 두려움의 형태로 돌아와 아가리를 벌려 덤벼들 것을 믿는다. 인간의 가능성은 상상에 있다 믿는다. 타인의 눈에서 나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수많은 폭력이 타자를 비인간의 지위에서 몰아내려 그토록 애써온 이유.

그런 이유로 오늘도 이렇게 곁가지를 넘어 숲으로 나아간 끝에 마주친 얼굴이 몹시도 낯설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를. 이상야릇한 감각이 닫힌 문을 열어젖히기를. 깊숙이 파묻고 통째로 불태운대도, 꺽, 넘어가는 숨에 수치와 죄책의 두려움이 스미기를.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지기를. 슬퍼하기를. 들척지근한 수치와 도피의 냄새에 코를 박고 끝의 끝까지 도망쳐 처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기다릴게요.

p.229 〈아미고〉 그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기계적으로 장비를 세팅하고 점검한다.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던 촬영기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오토 모드로 작동하는 카메라로 대체된다. 주위를 둘러보다 나는 생각한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p.301 〈고독〉 먹이 냄새가 밴 자리를 서성이는 짐승처럼 이익도 그것과의 라포르에 순치되어 지난 사나흘간 탕전실 걸쇠를 풀지 말지 몇 번이고 고민했었다. 연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익은 머뭇대다 걸쇠가 단단히 걸렸는지 확인한 뒤, 나직이 읊조렸다. 그래도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됐지.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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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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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신유진 #나를균열내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줄곧 '읽는 사람'으로 살아오며 수없이 맞닥뜨린(이라기보단 시도때도 없이 처해졌던) 물음 중 독보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왜 읽는가', 그리고, '읽기는 나를 무엇으로 만드는가' 일 것이다. 한때는 이 물음에, 완전한 이해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모든 것을 관찰하고, 바닥까지 파헤쳐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삼켜버리고 싶었으므로 읽었다. 완전해지고 싶어서, 공백과 균열을 메워 완벽에 닿기 위해.

읽을수록, 채울수록 더 많은 '모름'을 보았다. 그럼에도 탐욕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은 읽기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문득, 멈춰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본능이 아니었을까. 위험만큼 존재를 선명하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21)."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의 세계를 안전하고 공고히 하는 읽기가 아니라 존재의 밑바닥을 흔들고 높고 깊은 벽을 부숴 그 너머의 타자를, 절대적인 낯섦을, 존재한 적 없는 선-존재를 보게 하는 읽기야말로 나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고.

p.7 〈프롤로그: H로 시작하기〉 책 속에 있는 그들과 책 너머에 잇는 이들과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나는 '우리'라는 주어를 망설임 없이 쓴다. 우리는 진실을 향해 한 칸씩 내려가는 사람들. 끝없이 내려가 저 밑바닥에 닿아 마침내 진실을 둘러싼 막을 마주한 사람들. 자기 안에 가장 날카롭고 매서운 무언가로 그 막을 부수려는 사람들. 우리들, 나는 내가 통과한 책들을 통해서만 나의 '우리'를 만난다. 책 속에 그리고 책 너머의 당신들을.

p.89 〈다니엘 페나크〉 인간은 무엇보다 몸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것만큼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도 없다. (...) 어쩌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몸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 아닐까.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말했다. 인간은 세계를 생각으로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사는 존재라고.


어느 정도는, 위험해지려고, 더 모르고, 낯설어지고, 실패하려고 읽는다고. 이상적인 전능은 곧 무능이다. 조금의 모자람도 돌이킬 수 없는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완전-세계는 곧 아무것도 태어날 수 없고, 변할 수 없으며, 어디로도 확장되고 이동하고 파고들 수 없는 고립이다. 나를 균열낸다. 쓰기는 나를 배신한다. 말과 글은 필연히 미끄러지고 '본질'에 명중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빗나감이고, 철회-됨이자, 뒤처짐일 것이다. '나의 언어'로부터 완전히 내쳐진 적은 없다 하더라도.

이 빈 틈, 한계, 균열, 빗나갈 겨냥과 주소 잃은 서신이다. 쓸모랄지, 가치랄지, 문학에 일말의 증명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면, 이 불완전함이다. 그것은 필연히 인간성의 문제로 직결된다. 한강은 물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야기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는가. 사람이 이야기가 된 장소, 사람, 시간을 다시 존재하게 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이 있고 배가 고파오는, 허기를 느끼고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그렇게 먹는다는 것엔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고(85).

p.67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를 둘러싸던 맥락이 사라질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구성하는 모든 근거가 사라진 후에도 '나'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 망명자는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한다. 말은 언제나 늦고, 감정은 반토막이 난 채 전달되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면, 말로 하지 못해 사라져버린 일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p.117 〈밀란 쿤데라〉 "매일 개연성 없는 소설 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이 세상에서 소설이 과연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 소설은 그저 모든 판단과 결론을 미뤄둘 수 있는 유예의 장소를 허락할 뿐이다. 그곳에서는 존재에 대한 실험을 감행해도 누구도 다치지 않고, 진실이나 진리의 엄격한 잣대에 주눅 들지 않고 삶의 하찮음을 말할 수 있다. 의미 없는 것들의 의미를 말하는 일. 소설가는 내게 소설의 쓸모는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세상은 다정스레 말한다.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하라'고(97). 그렇다. 읽기는, 쓰기는 언제나 현실에 조금 뒤처지고 벗어나, 적어도 그 당시에 살아 있는 몸과 정신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너지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을 말과 글로 남겨 전할 수 있다면, 적어도 '목격한 일'에 파괴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몸이고, 정신이고, 이유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죽은 자가 갖지 못한 존엄과 특권이 아니라 오로지 책무와 우연, 생존 그 자체와 증언일 것이다. 『소년이 온다』에서 말로, 기억으로, 몸짓과 문장으로 전해지는, 깨지기 쉬운 무언가처럼. 무엇이지 않기 위해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

p.100 〈가엘 파유〉 "소설을 쓴다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가엘 파유의 말이다. 소설이 사라진 장소, 사라진 사람, 사라진 시간을 다시 존재하게 할 수 있을까.

p.151 〈카멜 다우드〉 어떤 죽음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이야기는 고통을 대신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애초에 문학의 몫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다만 소설은 질문할 뿐이다. 설명되지 않은 고통과 폭력, 이해되지 않는 죽음이 너무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신과 예술, 그 무엇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를 오롯이 인간이 해결할 몫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어쩌면 그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살아가기 위해 다시-쓰고 토해내어야만 하는 글이,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학이, 쓰기가, 읽기가 고발과 목격의 반복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학을 도구에 한정짓는 것만큼 문학-하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오독-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읽기와 쓰기 모두 지금 여기의 나에서 조금 떨어진 혹은 떨어져 보려는 태도다. 듣기와 다르지 않다.

한 인간이 세상에 머무는 방식이 곧 문학이라면, 읽기와 쓰기는 그를 바라보려는 시도이자 방식이 아니겠는가.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의 혼란한 뒤섞임은 결국 이 말을 하기위함이었다. 읽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라고, 그것이 곧 삶이자 이유라고. 해석될 수 없는 고통과흔적을 켜켜이 쌓아 파괴하고 또 공존하기 위함이라고. 이제는 물을 수 있다. 무엇이 당신을 균열-하겠습니까. 당신의 언어를 나의 세계에 뻗어주겠습니까.

p.166 〈조르주 페렉〉 '산다는 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삶은 임시적 정착과 이동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하는 모든 걸음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이고, 그 기억이 저장된 공간은 존재의 시간이 쌓이는 장소가 된다. 시간이 삶의 다른 이름이라면, 문학은 한 인간이 세상 속에 머무는 방식, 즉 거주의 예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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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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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고통 그 자체를 사유해야만 한다.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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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 지방 풍속 열린책들 세계문학 29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용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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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열린책들

이 작품이 이토록 막막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연코, 이들의 절망에 대단한 비극적 지점이랄 것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숨막히게, 끝을 알 수 없이, 어쩌면 영영 변하지 않은 채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평범하고 초라해빠진 매일들이 늘어서있다. 별처럼 빛나고 우아하게 흩날리는 이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한데 도무지 닿을 수 없다.

아등바등할 것도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 누군가 차라리 연극적으로라도 나쁘면 나을 일이다. 밍밍하고 쿰쿰한, 낡아빠지고 칙칙한, 눅눅하게 사방을 감싼 일상. 어떤 순간에는 제법 즐거웠다. 또 어떤 날에는 나름 애도 썼고, 빛나는 기억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일상의 냄새에 묻혀 빛바랜 과거,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절망이 되었을 뿐.

p.43 그렇게 그는 순종하게 되었다. 그러나 욕망의 대담함이 자신이 선택한 처신의 비굴함에 저항했고, 그녀를 만나는 것을 금지당한 대신 그녀를 사랑할 권리를 얻은 것이라는 일종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위선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p.129 이런 비참함이 계속되려는 것인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인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다른 어느 여자들보다 못한 것이 없었다! (…) 그녀는 하느님의 불공평함을 원망하며, 벽에 머리를 기대고 울었다. 떠들썩한 생활, 가면무도회의 밤들,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그러나 그것이 틀림없이 가져다줄 방자한 쾌락과 온갖 격정을 선망했다.


기실 '허영 넘치는 여성의 파멸'과 그 곁의 성실한 남성(으레 수수한 남편이기 마련인!)의 슬픔이라는 주제는 딱히 낯설 것이 없다. 그럼에도, 물론 '보바리즘'이라는 진부한 해괴를 탄생시키긴 했지만, 이 작품이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욕망과 현실이 충돌하고 괴리되는 데서 자라나는 절망감을 지독히도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누구라도 '이것은 절대로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언할 수 없을 만큼.

엠마를 보라. 그의 '자기파괴'가 이토록 서럽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덕적으로는 얼마든지, 쉽게 단죄할 수 있겠으나 내도록 그 심경을 들여다보고 그려본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하기를 주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선망한 화려한 생활과 격정 넘치는 사랑은, 어쩌면, 온갖 예술과 근대의 환상이 모두의 것, 자연스럽고 당연한 권리이자 인생의 꽃인 양 그려온 것이 아니던가. 그를 동경하고 갖지 못해 좌절하는 인간에게, 그 마음이, 대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p.71 결혼 전에는, 그녀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사랑에 응당 따라야 할 행복이 오지 않으니, 잘못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엠마는, 책에서는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였던, 희열, 정열, 도취 같은 말들이 실제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다.

p.233 그녀는 남편에 대한 혐오를 연인을 향한 갈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증오를 새롭게 뜨거워지는 애정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폭풍은 휘몰아쳤고, 정념은 재가 되도록 타버렸기에, 그리고 아무런 구원도 오지 않고, 해는 조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온 사방이 캄캄한 밤이었고, 그녀는 온몸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무서운 한기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떨고 있었다.


이 현재-아님에 대한 갈망은 비단 엠마 보바리만의 고통이 아니다. 이 작품을 가득 메우는 것은 권태와 무력, 충동과 분노인 동시에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욕망과 구역감이다. 경련이고, 죽음이고, 충돌이다. 독자는 묻게 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리곤 깨닫는 것이다. 당시 처벌과 검열의 이유를. 당대 '도덕적 판단'에 따라 검열된 문장들이 복원된 완전판의 모습은 그간의 '걸작 고전'에 걸맞게 다듬어 선보여졌던 내용과는 퍽 차이가 있었다.

한층 관능적이었고, 소용돌이치는 갈망의 매혹이 생생하게 그려진, 놀랍도록 섬세하고 정교한 비극, 광기, 좌절. 지독히도 아름답고 허무한 순간마다 독자는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단정하고 비극적인 기존의 『보바리 부인』을 엄중히 꾸짖던 이들은 언젠가의 고매한 의식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풍속과 교양의 꺼풀을 벗겨낸 곳에서 마주하는 통속과 모순을. 그렇게 보바리-즘을 새로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p.584 달빛처럼 하얀 새틴 로브 위로 물결무늬가 어른거리며 떨렸다. 엠마는 그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샤를르에게 그녀는, 몸 밖으로 퍼져 나와, 주위 사물들 사이로, 침묵 속으로, 밤 속으로, 지나가는 바람 속으로, 피어오르는 습기 찬 향내 속으로 힙쓸리며 형체 없이 뒤섞여 스러져 가는 것 같았다.

p.610 「그래요, 이제 당신을 더는 원망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는 엄청난 말, 단 한 번도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한마디를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게 운명 탓이지요!」 이 운명을 이끈 장본인 로돌프는, 그가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치고 어지간히도 너그럽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좀 비루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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