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한 여자가 곰에게 공격당했다. 아니다. 캄차카 반도를 홀로 탐방하던 인류학자가 야생 곰과 마주쳤다. 이것도 충분하지 않다. 이방의 존재가 이계의 존재와 조우했다. 그렇다. 이것은 이해 너머에 있는, 그러나 언제나 함께 살아가는 존재와 마주한 인간의 이야기다. 얽힘이다. 휘말림이다. 뒤섞임이며 혼돈과 근원으로의 휩쓸림이다.
저자는 캄차카 반도 화산지대의 소수 거주민을 연구하기 위해 홀로 탐방 중이었다. 그곳에서 곰을 마주쳤고, 그와 곰은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치료를 위해 돌아온 일상에서, 파편화된 의식 속에서, 밀려오는 고통과 무의식에서 그는 차라리 혼란에 가까운 의문을 마주한다. 무엇이 나인가? 이해와 신비의 세계를 가르는 선은, 그 경계는 무엇인가.
p.27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내 에벤 이름 마추카에 대해 생각한다. 내 얼굴에 맞닿은 곰의 키스를, 정면으로 닫히던 곰의 이빨을, 부서진 내 턱을, 부서진 내 머리를, 그의 입안의 어둠을, 축축한 열기로 훅 끼쳐온 숨결을, 엄습하던 이빨이 느슨해지던 순간을, 나를 끝장내지 않은 그 이빨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불현듯 생각을 바꿔 끝내 나를 잡아먹지 않은 나의 곰을 생각한다.
p.39 검고 젖은, 빛나면서 날카로운 두 눈을 들어 그가 나를 바라본다. 곰은 너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 곰은 너에게 표식을 남기고 싶어 했어, 너는 이제 미에드카야,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기약없이 이어질 치료를 위해 돌아온 일상에서 그는 상처가, 수술이, 치료가 그 자신의 것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의 몸은 냉전의 유산이고, 서방의 의료기술이며, 실험대상이자 구경거리인 동시에 혼란과 혐의를 담고 있다. 전장이다. 그의 일부는 설원을 떠도는 곰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감시대상이고, 두려움이며,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자다.
이어지는 수술, 부정, 어색한 만남, 감염, 또다른 수술, 다시 반복. 그가 돌아온 곳은 더이상 일상이 될 수 없었다. 저자는 직감했을 것이다. 차가운 불빛과 시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니, 태곳적부터 그 자신이 속한 적이 없었음을.
p.60 나는 마치 포획되어 자세히 관찰되기 위해 창백한 형광등 아래 놓인 야생동물이 된 것 같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절규한다. 할로겐램프의 하얀 불빛이 내 눈과 피부를 불태운다. 나는 사라지고 싶다. 태양도 전기도 없는 북극의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 촛불들을 생각한다. 만약 내가 숨을 수만 있다면, 아주 잠시라도 내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더 편안해질 것이다.
p.91 곰에 맞서 생존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다가올 일' 에 맞서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변화의 재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단일성은 결국 그것의 본래 모습인 환상으로 판가름 난다. 형태는 그것만의 고유한 도식을 가지고 재구성되지만, 그것에 사용되는 요소는 모두 외부에서 온다.
그는 피해자인가? 그의 일상은 영영 돌이킬 수 없이 부서지고 훼손되었는가? 얼굴은 곧 정체성이라 말하는 심리치료사의 말처럼 그는 그 자신의 단일성을 영원히 상실했는가? 더 이상 자신일 수 없는가? 그는 얼굴과 턱이 부서지고 다리까지 물린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죽음에 순응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영혼을 마주한 자가, 뜨거운 피가 돌고 심장이 펄떡이는 존재가 그러하듯이.
이 모든 혼란, 엄습하는 기억, 차라리 신비에 가까운 불가해의 세계. 마침내 그는 돌아간다. 얽히기 위해.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 영혼으로 가득한 곳으로. "수많은 생명체와 호흡하는 법을 아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피해자로 남는 대신, 인류학자로서 다시 서기 위해". 서로의 일부가 된 존재의, 캄차카, 눈보라와 안개의 땅으로.
p.103 저는 다시 겨울을 나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 깊숙한 굴로 들어가는 마추카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제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수수께끼가 남아 있어요, 저는 곰의 문제를 아는 이들, 꿈에서 여전히 곰에게 말을 거는 이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고 삶의 궤도는 항상 매우 명확한 이유로 교차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 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p.146 곰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을 참지 못해, 그 안에서 반사되는 자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이야, 이해할 수 있겠어? (...) 인간의 눈을 본 곰은 항상 그가 그곳에서 본 것을 없애려고 해, 곰과 시선을 마주쳤다면 곰은 필연적으로 너를 공격하게 돼, (...) 곰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거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해하기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또한, 그 이유가 오롯이 나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집에 있었음을. '나'를, 현실을, 과학과 논리의 세계를, 이해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고집을 버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느껴야 하는구나. 그 모든 경험이, 기억과 환상의 경계에 선 불가해와 영혼의 세계가 나를 통과해 또다른 미지로 향하도록 그저 두어야 하는구나. 온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었구나. 처음부터.
이것은 문명세계의 위대한 승리도, 생존에의 찬양도 아니다. 오히려 현재와 과거, 미래가 한 데 얽히고 흘러가는 강이다. 직감인 동시에 예지다. 혼란에서 건져낸, 손가락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사유다. 오직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전율과 경이. 새까맣게 빛나는 노란 눈동자, 축축하게 덮쳐오는 숨, 그들은 언제나 이 세계에 함께해왔음을, 시선 너머 희미하게 닿아오는 그들의 말을.
p.14 느껴진다. 그는 지금 멀리 있다. 그는 높은 평원에서 절뚝거리고 있다. 털가죽 위로 피가 맺힌다. 그가 내게서 멀어지고 내가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수록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되찾는다. 그는 나 없이, 나는 그 없이, 서로의 몸 안에 잃어버린 것을 견디며 살아 남는다. 남겨진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p.172 다리아, 나는 어떻게 인류학을 하는지는 몰라요, 그저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 뿐, 듣고 있어요? 응, 듣고 있어. 나는 다가가서 붙들리고 멀어지거나 도망가요. 나는 돌아와서 붙잡고 번역해요. 다른 자들에게서 온 것을, 내 몸을 통과해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을.
*도서제공: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