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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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인가? 단순히 따지자면 그러하다. 조금 다르게 묻기로 하자. 인간은 단지 동물인가? 혹은 그저 동물에 불과한가? 또는, 다른 동물과 그저 마찬가지로 동물일 뿐인가? 여기서부터는 답이 갈리리라. 작금의 인간에 대한 정의는 절대 동물일 리 없는 '만물의 영장'과 인간중심주의 탈피의 일환으로 '그저 동물'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자연에 들어맞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단지 동물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은 아닌 동물'이라는 선언, 혹은 인간-동물의 정의는 어떤 의의를 갖는가. 인간은 어째서 '동물적 본능 이외의 삶'을 추구하는가? 어째서 생리적 욕구 이상의 다채로움, 특별함, 고유성 따위를 꿈꾸는가.

p.28 인류가 이 세기에 반드시 이뤄 내야 할 생태학적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와 규범적 설계가 필요하고 따라서 윤리학이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이 경제학과 더불어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가 누구이고 누구이고자 하는가에 관한 진정한 규범적 결정의 부담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할 것이라는 그릇된 근대적 호언장담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

p.46 인간은 자기를 정의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자기를 구별한다. 인간은 자기를 동물 플러스 무언가로 이해한다. (...) 진짜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동물임의 핵심을, 동물성의 개념을 확실히 발견한다는 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그 동물성을 다른 동물들과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무언가를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인간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생물적 시간을 벗어나 자기와 타자, 과거와 미래에까지 무한히 확장하는 가능성에 대한 사고,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사고하는 자기-존재에 대한 사고가 가능한 동물이다. 몹시 거칠게 요약해, 인간은 동물이나 인간이 바라보는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의 사유능력은 선악의 판단과 자율적 창조 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자의 경계를 넘는 상상적 공감을 가능케 한다.

이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타자를 자신에 동치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도덕적 사유의 가능성이라 이해하고자 한다. 더하여, 인간의 동물성은 곧 물질성이라 말할 수 있다. 유한한 시간과 파괴되는 몸에서 벗어날 수 없음, 그리고 절대로, 타자를, 스스로조차도, 완전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제약.

p.252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옹호하는 삶꼴의 다원성을 삶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인간적 욕구와 맞세우지 않으려면, 근대적 설명의 방향을 다시 뒤집어 인류의 지혜와의 접속을 꾀할 필요가 있다. (...) 의미는 근원적이고, 무의미는 의미 박탈 및 상실의 경험이다.

p.374 우리는 우리 자신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 자신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다수의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윤리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상대하는 방식에 관한 윤리학도 있다. 우리는 인간성을 공유한 타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종장에 선 독자는 필연히 물음에 도달한다. 인간은 동물적 존재다. 동시에 인간 아닌 동물이 갖지 못한 이 특성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또한,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는가? 이에 저자는 '무지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전지전능의 단꿈이 아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전부 알 수도, 알아낸 범위 내의 '것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담백한 사실이자 도덕률. 세계는 논리적 환원주의로 수렴되지 않는다. 생물-기계 이상, 삶의 의미를 찾는 우리 존재는 자연의 일부이자 '설계'에 순응하는 현상 이상이다. 인간은 그의 말처럼 "동물이라는 물리적 형식 위에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반성하는 자기 이해 능력"과 그 책임을 지닌 존재이다.

다시 묻기로 하자. 우리는 동물인가? 그렇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가 '동물됨'에 온전히 제약받지 않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쥐고 있다. 그 다음은? 무지의 경계선 너머로 또다시 묻고 찾아나갈 일이다. 무지와 미지 사이 어딘가에서.

p.424 무지의 윤리학의 출발점은 인식적 겸손, 곧 자연에 관한 우리의 앎 주장과 우리의 구체적 가치관 및 윤리적 판단은 오류를 범하기 쉽고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알기다. 이 같은 인식적 겸손의 기반은 우리에게 항상 낯선 놈으로 머무르는 타자에 대한 존중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열린책들 #인간은동물이다 #마르쿠스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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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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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사는 일이 너무, 너 어 무 힘들어 뭘 더 해볼 생각은 커녕 당장 한 발 떼기도 힘든 날. 또, 그런 날도 있다. 막막하다, 는 감정이 밤만큼 새까맣게 부푼 덩치로 작은 방을 가득 채워버리는 날. 그런 날, 어떤 음악은 시가 되고 통증이 되어 삶을 파고든다.

저자 최지인은 말을 엮어 문장으로, 글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에게 필요한 글은 아무튼 좋아질 거고 (지금이 좋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아무튼 괜찮을 거라고 (아무리 봐도 안 괜찮으니까) 무턱대고 달콤하고 보드라운 말만 늘어놓는 그런 글이 아닐 것이다.

p.43 예술이 현실을 마주할 때, 현실의 것이 예술을 뛰어넘을 때, 그래서 타협하고 말았을 때 비루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부른 노래보다 부를 노래가 더 많다고 믿는다. 언젠가 이 어둠이 익숙해질 거라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p.83 '시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내게 한 선배는 '무엇이 시가 될 수 있을까' 물으라고 했다. 그 말이 '삶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삶이 될 수 있을까' 묻는 태도 처럼 들렸다. 네게 무엇이든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비관인가? 그 모든 노래는 상처를 핥아대는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인가? 시는, 노래는, 이야기는, 말은, 글은 힘이 없다. 적어도 그 자체로는. 지나가면 끝, 잊으면 그만. 그치만 외로운 사람은, 고독과 고립을 아는 사람은 그 고통을 알기에 타인의 그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잔인한 세상을 뒤엎을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홀로 남겨두지 않을 수는 있지 않을까. 어두운 곳을, 폐허를 홀로 헤매게 두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음악을, 이야기를, 말을 '듣는다'. 듣기란 본질적으로 도래하지 않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인 것이다. 응답에 선행되는 무조건적 수용, 기다림. 그것이 듣는 마음이리라.

p.30 우리가 함께 노래할 때, 나를 발견하고 너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한다. 우리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된다. 빛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고 믿으면 자기 약점까지 고백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다시 엮어야 한다.

p.111 때때로 이 모든 것 앞에서 글쓰기는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가고,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에서 어린이가 울고 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내가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긴 밤, 어떤 울음은 소리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누구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듣기'는 말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 응답은 침묵 곁에 싹튼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흐르는 음악에서 지나간 순간을,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을 마주하는 일은 어쩌면, 작은 공백을 심는 마음을 닮지 않았는가.

출렁이는 밤마다 저자를 지탱한 음악은 단지 멜로디에 더해진 말이 아닌. 말 바깥의 말, 곁을 지키는 존재였으리라. 일렁이는 음의 밤, 가만히 따라해본다. "사라지지 않으려고요". 그렇게 두지 않으려고요. '그것'만큼은 사라지게 두지 않으려고요.

p.9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소리는 탄생하고 소멸하며 흐름이 된다. 태어나는 것은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는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동시에 경험한다. (...) 존재하는 것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듯,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p.131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바다에 가 파도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물결을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다. 단지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일 것이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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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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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도록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 적이 있나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추방된 악몽을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낯선 태양, 영원처럼 늘어지는 순간들. 착란과 공허, 문과 벽을 반복하는 미로는 마치 자가포식의 광경처럼 느껴진다. 주저없이 도래하는 물음들.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몹시도 적대적이고 혼란스럽다. 불안과 침해의 공포가 도처에 널려있으며 인물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헤매고 부딪히다 모든 것을,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초월-무아에 갇혀 박제된다. 충격과 비명, 전율, 환희의 비약.

p.58 남자는 이제 머리를, 진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다. 여자는 공포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연인, 자신이 연인이라고 믿었던 그가, 바로 그 연인이 다른 이들의 세계, 적대적이고 기묘하며 자신이 속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어두운 절망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눈물을 삼키며 여자는 비틀비틀 헛간 밖으로 나왔다.

p.81 남자는 작은 열쇠를 막 꺼낸 참이다. 여자에게 밝게 웃음을 지어 보인 뒤 남자는 돌아서서 여자가 앉아 있는 바로 앞 인도 가장자리에 세워진 커다란 자동차 문에 열쇠를 꽂았다. 남자는 차에 올라타 시가에 불을 붙이고 시동을 걸더니 그곳을 떠난다. 여자는 차를 몰고 도망치는 남자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야기가 그려내는, 아니, 그 자체인 실존적 공포는 거울상이 되어 독자를 덮쳐온다. 곳곳에 도사린 어떤 근원, 아니, 차라리 시원에 가까운 두려움이 끊임없이 일렁인다.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올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헤매고 헤매도 절대 도착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는 독자를, 나는 너를 질서에 편입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어떻게 이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없애려 했을까. 이 이 풍요로운 절망에서 내쳐지는 순간, 그래, 마지막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바로 그 순간. 비명을 지르세요. 아, 안돼! 여기서 끝이랍니다. 문이 닫힌다. 안돼, 안돼!

p.204 놀라운 것은 모두 내게 아무 말도 아무 설명도 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여기에 있나요?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요? 영원히 여기 머물러야 하나요? 여기 오기 전에는 살아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p.210 "우리는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든 걸 준비해드렸습니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제 가도 됩니다. 일어나세요. 출구까지 동행하겠습니다." (...) 주인이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나를 밖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환상과 현실을 과감하고 천연덕스럽게 뒤섞는 서술은 일면 열기에 들뜬 광인 내지는 트랜스 상태와 비슷한 환희와 장광설을 닮았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광기의 표출로만 읽을 수는 없다. 뒤라스의 말처럼 그의 글은 상상도, 꿈도 아니다. 모든 악몽과 불안은 무엇보다도 첨예한 살아냄, 그 기록 자체다.

이 잔인하고 신경질적인 세계는 어째서 이다지도 아름다운가. 속절없이 벌거벗겨지고 나동그라지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소외, 충동, 파괴, 불가해의 무아지경. 처음 읽은 날 밤, 의식의 문턱에서 떠올린 말을 다시 적는다. 나쁜 꿈을 꿀 것 같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지.

p.12 인류는 결함투성이다. 도시도 결함투성이다. 교통수단은 형편없다. 우리가 그것을 놓치거나 그것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몇 순진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이 세계를 떠돈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채.

p.64 드디어 오늘, 내게 벌어질 일들을 일기에 적어두겠다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하면 훗날 그 일들을 정확하게 되짚어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러한 시도는 내 생각을 약간이나마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 이 될 것이다.
오늘은 8월 15일이다. 나는 대합실에 앉아 가본 적은 없지만 직감이 맞다면 아주 아름다울 것이 분명한 어느 나라로 데려가줄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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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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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같은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당신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인생은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않은 사람, 평생을 바다 위에 산 사람. 천재 피아니스트. 그 자신 또한 음악의 일부였던 남자. 노베첸토.

독백과 이야기, 극과 선율을 오가는 이야기는 짧고 단순하다. 어느날 '나타난' 아기, 노베첸토라 이름 붙여졌고 피아노와 함께 자랐다. 평생을 배에서,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았고,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으며, 마지막까지 바다 위, 그 배에 머물렀다, 고 한다. 그가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p.23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폭탄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진짜로. 어마어마한 다이너마이트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말하자면 긴데... 그는 말했다. "당신에게 좋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당신에겐 아직 희망이 있는 거예요." 그에게는 그런 좋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그 자신이 바로 좋은 이야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p.40 샹들리에와 소파에 닿을락 말락 하며 테이블 사이를 빙빙 돌던 그 순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하는 게 진정 뭔지 깨달았다. 피아노와 우리, 정신 나간 발레리노들이 찰싹 달라붙어 밤의 황금빛 마루 위에서 음울한 왈츠에 맞춰 바다와 춤추고 있던 것이다. 오, 예스.


그는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동시에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았다. 지독한 유한, 혹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마디에서 뻗어나가는 거대한 세계. 그는 갇혀있었는가? 그의 생은 자발적으로 묶인, 88개짜리 유한이었는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잠시 울리다 사라지는 멜로디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에 언뜻 엿보일 뿐이다. 그 배에는 가히 천재라 불리는 남자, 그 자신이 곧 음악과도 같다는 피아니스트가 있다고.

사실 간간이 치고 들어오는 농담에 차라리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이런 순간에 웃기지 좀 말라고. 그러나 삶이 음악이라면, 예측할 수 없는 걸림과 엇박을 자연스레 타고 넘는 유머야말로 재즈의 정수 아닌가? 헤이 피아노! 조명, 큐.

p.67 그는 그렇게 멈춰 서서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는 정면을 응시했고 뭔가를 찾는 듯했다. 그러다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모자를 벗어서 사다리 계단의 난간 밖으로 손을 뻗고는 그대로 떨어뜨렸다. 지친 새 같기도 하고 날개 달린 푸른색 오믈렛 같기도 했다. 공중에서 빙그르르 몇 번을 회전하다가 바다에 떨어졌다. 둥둥 떠 있었다. 오믈렛이 아닌 새가 분명했다.

p.68 봤는가? 피아니스트가 새로 왔어. 닐 오코너가 말했다. 듣자 하니 최고라던데. 내가 말했다. 내가 슬픈 건지 미칠 듯이 행복한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이 될 뒷모습에서 그를 부르고 싶었다. 헤이, 피아니스트. 돌아서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어쩐지 흐릿하기만 한 상상엔 우는 듯 희미하게 끌어올려진 입매만이 있을 뿐이지만. 어느 영화의 대사를 빌어, 아무도 듣지 못한 마지막 마디를 상상한다. 울었냐고? 웃었지. 그 날의 기억은, 하나도 아쉽지 않다고.

생각하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읽었다'고 하는 게 맞나, 여전히 의문이다. 희미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음정처럼,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던 무언가를 문장으로 붙박는 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적을 수밖에. 물 흐르듯 오가는 박자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 발끝을 까닥이며 가만히 따라 부르게 하는, 그래, 올 댓 재즈.

p.69 그날 노베첸토는 인생의 흑백 건반 앞에 앉아서 터무니 없지만 천재적인,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지상 최대의 위대한 음악을 연주하리라 결심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음악에 맞춰서 그에게 남은 세월이 춤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p.81 북극해의 거대한 빙산이 더위에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난 그 경이로움에 작별을 고했어. 전쟁이 다 박살 냈다며 웃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난 기적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고,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이 배를 보았을 때 분노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 한 순간에 한 음으로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던 그날, 음악과, 나의 음악에게 작별을 고했고, 자네가 이곳으로 들어 오는 것을 봤을 때 기쁨과 작별했어. 마법을 걸면서 말이야.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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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왜 - 우리를 무대로 이끄는 물음들
성수연 지음, 김신중 사진 / 북트리거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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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대 안팎의 이야기, 라고 쓰려다 지웠다. 어쩌면, 아니, 사실, 무대는 입체이지 않은가. 대개 관객은 조명과 소품이 있고 배우가 행위하는 공간으로서의 '좁은 무대'를 경험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대사 한 마디가 극장에 울려퍼지기까지의 모든 과정, 그 세계를 열어보이는 일에 이어진 모든 곳이 무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대에 이어진, 무대 곳곳에서 지켜보고, 만들고, 듣고 쓰고 말하며 시공간으로서의 무대 곳곳을 가로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미증유에 버금가는 코로나 팬데과 정치사회적 충격을 겪어낸 이들의 증언이다. 제목의 세 물음으로 이어지는.

p.125 누군가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작업에는 무거운 고민이 따르고, 그 과정에서 '기대' 나 '설렘' 같은 감정과 점점 멀어지기도 하지요. 그럴수록 고민을 나눌 동료가 필요합니다. (...) 저는 문득 그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가 돌려준 질문은, 싸워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설레는 미래를 그려 보게 했어요. 한윤미는 여전히 그런 동료였습니다.

p.352 (직업 관객 배서현) 보는 것이 저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공연을 선택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저를 보여 주는 것도 맞아요. 그래서 저는 취향과 정체성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공연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와 '이 공연은 내 취향이 아니야'는 분명 다르거든요.


저자는 네 장에 걸쳐 곳곳의 이름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묻는다. 무엇을, 어떻게, 왜. 그들은 답하고,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는, 이것을, 어떻게, 왜. 그 안에 교차하고 미끄러지는 세계가 언뜻 스쳐보인다. 찰나에 드러났다 이내 흩어지는 말들을 지면에 고정하려는 시도는 막 내린 극을 회상하는 일과 닮지 않았나. 어쩌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들,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과도.

그것은 책이기 전에 기록이고, 그에 앞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이고, 그 안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의 삶이 담겨있었다.

p.175 (수어통역사 김홍남) 우리는 수어가 제스처나 마임이 아닌 언어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대 위에서 통역사가 춤을 추거나 배우의 움직임을 동일하 게 해야 할 때는 농인 관객에게 그것이 극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게 돕거나 관객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거죠.

p.423 다른 사람의 안전을 챙기는 일은 결국 내 안전을 챙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의 안전을 일상적으로 살피는 문화는,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박진아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 덕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여 주는 태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그 감각을 배우고, 다시 박진아 역시 그 덕분에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안에 오롯이 환상과 기쁨만이 담기지는 않았다. 혹자는 고통을, 누군가는 고발과 증언을, 또다른 이는 전복과 비정형을 말한다. 그것들은 모두 현실과 유리된 것은 없었다. 결국 연극도, 무대도, 이야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것까지도 이것을, 어떻게든, 이유를 묻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다고, 여기에, 그곳에 사람이 있다, 고 말하는 일이 아닐까. 빈 자리를,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을 지켜내는 일처럼.

p,222 그때 느낀 슬픔을 완전하게 표현할 말은 여전히 찾지 못했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슬픔, 책을 덮을 수 없는 슬픔, 문을 닫을 수 없는 슬픔'이라고 이름 붙여 보고 싶어요. 저는 이제 이 불완전한 세계에 슬픈 일이 얼나 흔하게, 그러나 매번 고통스럽게 일어나곤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펼쳐 둔 제 오래된 슬픔을 가끔 들여다보며, 문을 닫지 못한 누군가의 슬픔에 머무르는 일을 연습합니다.

p.467 주체를 옮긴다는 건 '내가 없다'라기보다는 '나는 최대한 저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에 가까울 수도 있겠어요. 그런 노력 속에서 그 존재가 만나는 세계를 배열해 보고, 마치 내가 그 존재를 다 안다는 듯이 연기하지 않는 것이요. 그래서 단위와 단위 사이를 의지적으로 연결하지 않는 것일지도요.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눈을 깊이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노상 말로는 세상에 같은 사람 하나 없고, 머리수만큼 다양한 세계가 있다고 그래왔으면서도. 사람이 싫어 발버둥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사람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건 상상만 해도 기가 쭉 빨리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의 말에 경청하고, 삶을 녹여낸 진한 이야기를, 그가 사랑하는 세계에 얼마간 초대받는 일은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참 귀하다. 마지막 대화가 끝난 자리, 침묵으로 책을 덮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만에.

p.64 여러 생각과 함께 걸어갈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볍게 걸을 수 있을까? 너의 걸음 주변에 어떤 발자국들이 남아 있어? 너는 바다에서 혼자 있을 때가 좋아,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가 좋아?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을 혼자로도 만들어 주는데. 같이 갈래? (응응.)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보고,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보고, 그럴 수 있을까? (아싸.) 너와 나는 무엇을 같이 보고 싶은 걸까.

p.569 (강수연) 아까부터 저는 비틀즈의 〈Something〉 이 자꾸 떠올라요. "너에게는 뭔가가 있어. 내가 사랑하는 그것에는 뭔가가 있어." 뭔가, 뭔가가 있다고 계속 말하잖아요. 구체적인 말로 표현할 수는 없고, 말로 표현하면 오히려 사라져버릴 것도 같은 무엇. (...) 나한테 작동하고, 나한테 와 닿는 것. 그건 예술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도서제공: 북트리거

#무엇을어떻게왜 #인터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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