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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평점 :
한때는 우아한 자들의 연회장이자 별장이었고 사냥터였다가 정신병원이었다가 감옥이 되었다가... 세계가 휘말린, 발 닫는 곳마다 포화의 흔적을 남기던 전쟁의시대에 포로수용소가 된 고성, 콜디츠. 수백년을 거치며 그 규모와 모습을 달리하는 내내 누군가에겐 그저 감금과 공포의 장소였던 그곳이 전쟁기에 이르러 다시금 역사의 충실한 반복이 된 것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자고로 사람 있는 곳에 소동 없을 수가 없는 법이라. 일반 포로들과는 대우가 다른, 명예와 신사도를 아는 이들의 집합이라는 장교수용소도 다를 바 없다. 바깥에서야 높으신 분들이지, 일단 몰아다 가두고 나면 골치도 이런 골치가 없는 인간군상이라 이 생생한 투쟁기가 감동 이전에 요란, 소동, 난장판의 한복판이라 느껴졌다고 한다면, 너무한 감상일까?
p.8 콜디츠성은 무시무시한 감옥이었으나 부조리할 때가 많았고, 고통의 장소였으나 고급스러운 희극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 철조망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채 엄중한 감시를 받는 이 새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겪었다. 그동안 성 안의 삶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고, 밖에서는 전쟁이 가차 없이 계속되었다. 영웅적인 포로가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이었다. 강인한 동시에 약하고, 용감하지만 겁에 질린 그들은 쾌활했다가, 단호했다가, 절망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p.53 〈그곳은 유럽의 축소판이었다.〉 한 포로는 이렇게 말했다. 수감된 포로들이 명목상으로만 연합되어 있는 것도 유럽과 비슷했다. (...) 국적을 초월해서 개인적으로 강한 우정을 맺은 사람들도 있고, 언어 공부를 위해 짝을 지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판에 박힌 인식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 여러 나라는 서로 평화롭게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간 수많은 상상과 말들에서 콜디츠는 저항과 명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들춰낸 기록은 그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곳에도 인간이 있었다. 그리워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즐거워했던 이들이. 수년간의 탈출시도에서는 일종의 신념이나 광기에 가까운 감정까지 느껴진다. 돌아갈 곳을 잃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는 한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하듯이.
동시에 콜비츠의 '투지'와 '명예'는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전쟁의 시대인 동시에 계급과 인종, 민족의 시대였다. 장교는 장교, 병사는 병사, 유색인은 유색인이었으며 특권층의 '가치'는 공고했다. 국가와 집단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의 '폐쇄적인' 공간에서조차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식민주의 등 '바깥 사회'의 반복이 누군가에게는 감옥 안의 감옥, 수용소 안의 수용소로 작용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267 전쟁이 끝난 뒤, 과거 콜디츠에 갇혔던 사람들은 그곳의 포로들이 계급을 따지지 않고 형제처럼 끈끈하게 지낸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탈출하겠다는 공통의 결의 덕분에, 바깥에서 사람들을 갈라놓는 차이와 불화가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확히 정반대였다.
p.347 라벤더 중령은 인도가 결코 독립할 수 없는 이유와 인도인의 타락에 대해 미친 듯이 독설을 쏟아 내고 있었다. (...) 결국 마줌다르가 폭발했다. 「당신과 나의 차이는 이겁니다. 중령. 당신은 내 나라에서 25년을 살았는데 그 나라의 여러 언어 중 단 한 개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 나라에서 15년 동안 살았는데 당신네 언어를 포함해서 5개 국어를 하죠.」
뿐만 아니라 반유대주의는 나치즘의 특징이라는 순진한 통념을 비웃듯, 명예로운 신사들의 세계에서조차 유대인은 유대인이었다. '평범하게' 절멸의 길로 끌려간 쪽과 '운 좋게' 장교로 취급된 쪽이 있을 뿐. 그러므로 콜디츠의 포로들과 간수들이 반유대주의에 대해서만은 한 마음이 된 것도 낯선 일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포로였지만, 다 '같은 포로'는 아니었다.
몇 년간 지척에 있었던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존재를 몰랐다는 포로들과 협력자들, 간수들의 증언이 썩 믿음직스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제각기 명예와 신념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신념에 모두가 평등한 사람이라는 것은 포함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p.81 콜디츠의 유대계 프랑스인 중 일부는 출신이 좋아서 이곳에 갇히게 되었지만, 팻 리드의 지적처럼 〈대부분의 유대인은 그냥 유대인이라서 거기에 갇혀 있었다〉. (...) 많은 영국인은 프랑스인 중에 독일인과 똑같은 반유대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랑스 전체가 그렇듯이, 프랑스군 포로들도 샤를 드골과 빨리 합류해서 나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쪽과 나치에 협력하는 비시 정권을 지지하는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p.422 지난 세월 동안 콜디츠에 대해 많은 사람이 많은 글을 썼지만, 이 노동 수용소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고작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대인들이 강제 노동을 하며 굶어 죽고 있었는데도. (...) 패배한 독일군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SS 간수들은 유대인 수감자들을 한 번에 다섯 명씩 체계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동이 트기 직전에야 총소리가 멎었다.
수년을 담장 너머 세계와 기약없이 격리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의 온갖 기상천외한 탈출 시도와 '유머러스한 저항'은 일견 시달리는 간수들이 불쌍해보이는 지경까지 몰아갔으며, 어느 정도는 경탄스럽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지독히도 비인간적인 상황, 감금된 전쟁포로의 신분조차, 심지어 탈출하는 순간조차도 유머 감각과 신념을 해칠 수 없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이 '감동'에는 슬픔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끝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회복할 수 없이 부서져버렸다. 콜디츠는 정녕 모순이었다. 꺾이지 않은 의지는 일상의 괴리 앞에 형언할 수 없는 부조리의 물음이 되었다. 그곳에 인간이 있었다. 끝내 잃어진 이들, 그리고 살아남은 기억과 함께.
p.322 그는 끝내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콜디츠를 떠나던 그날 담장 밖에 서서 그는 무너졌다. (...) 그때부터 영원히 현실은 언제나 그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마침내 자유를 쟁취했으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그는 끝내 되찾지 못했다. 프랭크 플린에게 자유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p.448 그린은 자신이 변했음을 깨달았다. (...) 이제 그는 자유를 헤쳐 나가야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갇혀 있던 사람이 갑자기 무한히 넓은 곳에 떨어졌다. 콜디츠에서 그는 다른 포로들의 이름, 그들의 목소리와 사연, 두려움, 치아, 입냄새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깨어나고 있는 이 도시의 바쁜 시민들은 그를 몰랐다. 알 수도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자유로웠다.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