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숍앤센터
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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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사람이 할 말이 있거든 분명하게 하며 주장할 바가 있다면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미덕이고 자질이라고 오래 주장해왔다. 정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이유로 시작부터 영 걱정스러웠다. 이 양반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게 아닌데 과연 그간의 태도와 한계선을 뒤엎고 '바디 호러'의 본령인 피와 살점,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에 몰두할 수 있을지. 그렇게 탈규범과 이질성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지.

결과적으로 기대 밖이라면 밖이나 퍽 실망스럽지 않은 형태의 밖이다. 그래. 버릴 수 없다면 휘두르는 것도 방법이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부수고 뒤엎어 끄집어내는 것 또한 방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질이란 바이오동력 오물통 내지는 비용 많이 드는 온열가죽주머니 정도 아닌가.

p.18 어차피 대중의 미감은 주입된 대로 형성된다고 염 박사는 결론 내렸다. 만약 웨일홀에 널브러진 인체 기관들로 새 종족을 만들고서는, 아주 귀엽고 고급스러운 모습이라며 오랫동안 세뇌한다면 다음 세대쯤에는 그것들이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되지 않을까?

p.235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지, 누군가의 악의가 만들어낸 일이 아니니까. 허튼 짓, 모난 짓, 튀는 짓만 안 하면 편하게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대중은 그렇게 무엇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중인지 모르는 채로 편히 희희낙락했다.


권력은, 거칠게 말해, 규정하는 힘이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무엇일지를 규정하는 힘이다. 말을 정하는 힘이다. 옳고 그름의 선이 본래부터 그어져있지 않으니, 선을 긋고 지우는 것 또한 권력을 쥔 자의 권한이자 생리이다. '그'의 언어로 '나'를 변호하는 데에는 불가항의 한계가 있다. 착한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주는 밥을 신나게 처먹은 가축의 끝은 도살이다.

누군가를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다 못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비교다. 나와 같은, 나보다 더한 이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코앞에서 나자빠지는 '동류'들로 증명해주는 것. 결코 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노력에 달렸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

p.10 센터의 프랑들은 세 평짜리 방에 두셋씩 살았다. 각각의 방은 흙바닥과 철창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옆이나 저 너머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볼 수 있었다. 봉사자가 자신의 방을 지나쳐 다른 프랑의 방으로 향할 때마다 프랑들은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고 두 손을 턱 밑에 댄 채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p.162 "존재는 취급에서 나와. 우리가 취급받는 대로 우리는 존재해. 너도 나도 다 쓰고 태워버릴 것으로 취급받지. 그러니까… 우린 마치 플라스틱 같은 거야. 쓸 땐 신나게 사용해놓고 나중에는 악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


작중 풍경이 꼭 그렇다. 이 얼마나 여상하고 평화로운지. 흉한 것은 처박아 치우고 사랑스러운 순간만 냅다 쭉 빨아먹고 버리면 그만이니. 없는 것들이야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못 산다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실로 인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세계는. 오래 전부터, 느리게 반복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작가는 '있는 힘껏 크게 뜬 눈과 턱 밑에 괸 손'으로 호소하는 대신 묻는다. 아랫도리며 배때지 싹 까놓고 보면 대체 무엇이 인간이냐고. 그는 아름다운, 오래된 순리를 박살낼 작정이다. 독자를 향해 선전포고한다. 끝장나게 으깨 부수고 아주 곤죽을 만들어서라도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르게 생겨먹었을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머리가 왕왕 울리고 밑이 쑤시는(298)" 감각을 뇌리 깊숙이 때려박을 참이라고.

p.133 "네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어. 세상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솎아내기만 해도 충분해. 혹시 인간을 공경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p.276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이왕 받은 거 실컷 써주리라 다짐했다. 이게 정의라고 애써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것은 생존이었다.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세상이 망한다고 울부짖는 자는 그 세상에서 안주하는 자 뿐이다. 얻어맞는 자는 안다. 나를 짓밟는 저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또한 나, 무수한 '나'들이라는 사실을. 큰 불은 불씨를 삼킨다. 화근이 세상을 불살라버리는 꼴을 보여주겠다. 읽는 이가 불길의 어느 편에 서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신 말은 누구의 혀인가? 누가, 무엇이 '나'이겠는가?

마지막에 도달한 독자는 분명 살자고, 살아야겠다고 외치는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더럽혀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불안하고 불온한 존재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인지가 문제겠지만…

p.164 "씨발, 밑이 뜨겁다고! 좋다고! 살자고!" 노엘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게 우습고 신기해서였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당겨진 불을 끌 수는 없을 듯했다.

p. 273 프랑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서평도서제공: 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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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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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을유문화사

최근의 영화화로 흥행작의 원작! 이라는 황당무계한 타이틀까지 달게 된 이 불멸의 고전을 보라.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떠도는 자들의 슬픔을 노래하게 한, 전율과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무엇이 남는지 묻고 또 묻게 한 바로 그 작품을, 감춰진 이름, 오래 고통받았으나 끝내 지워질 수 없었던 이름들을, 『오뒷세이아』를.

『오뒷세이아』의 내용은 오랜 세월 변주되며 잘 알려져왔고, 수많은 영웅들과 괴물에 대해서도, 온갖 비유와 상징, 현실과 신화를 넘나드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는, 나 같은 독자가 분명 수두룩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같은 표현이 어떻게 이 괴물과 저 용사에 같고 또 다르게 붙어지는가?

p.356 제10권 이렇게 말하자, 부서져 내렸소, 그들의 소중한 심장이, 떠올랐던 것이오, 라이스트뤼곤인 안티파테스가 한 짓이, 심장이 큰 퀴클롭스가 남자를 먹어 치우던 폭력이, 그들은 쟁쟁하게 울었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러나 어떤 일도 일어나진 않았소, 눈물 흘린다고.

p.357 제10권 밖으로 튀어나온 건 심장이 큰 에우뤼로코스의 제비였소. 걸어서 갔소, 그와 함께 스물 두 명의 동료가 울면서, 뒤에서 애곡하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떠났소. 발견했소, 골짜기에 깎아 다듬은 바윗돌로 지어진 키르케의 집을, 사방이 잘 보이는 곳에서.


뿐만 아니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사람 간의, 혹은 신과 인간 사이의 의례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면 줄거리나 개별 신격을 중심으로 읽을 때와 어떻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을 만하다. 『일리아스』에서 보복과 전투, 장례, 감사제가 반복해 나타난다면 『오뒷세이아』의 경우에는 환대와 이방인-손님, 물리적/개념적 가정 구성의 안팎 그리고 속죄의식과 보속에 대해 반복해서, 점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죄의 형태나 속죄의례, 그에 필요한 고난과 해결에 대해서도? 설령 그 죄에 어떠한 의도나 자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부정' 의 '옮겨붙음'이 조선, 중국의 중앙집권형 군주제 국가에서의 연좌죄 개념의 그것과는 퍽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신'과 그의, 저주나 벌에 대한 인식, 속죄-정화를 위한 과업과 절차 등에서 나타나는 인물 간의 해원이나. 세계관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

p.195 제4권 '너에겐 아직 운명이 아니네, 사랑하는 이들을 보는 것도 잘 지은 집과 그대의 조국 땅에 이르는 것도, 아이귑토스의, 곧 제우스로부터 떨어지는 그 강의 물로 다시 가서 신성한 헤카톰베를 바치기 전에는, 불사의 신들에게, 넓은 하늘을 차지하는 그분들께. 바로 그때 그 신들께서 허락하실 거네, 네가 갈망하는 여정을.'

p.349 제10권 나는 말했소, 심란한 심부로. '나를 해쳤소, 못된 동료들이, 그들에 더해 지독한 잠까지. 고쳐 주시오, 친구들, 그대들에겐 능력이 있잖소.' 이렇게 말했고, 부드러운 말로 호소하면서. 그들은 조용해졌소. 아버지는 이야기로 응답했소. '꺼지시요, 섬에서 빨리, 산 자들 가운데 가장 치욕스럽소! 내겐 법도가 아니오, 돌봐주는 것도, 보내 주는 것도 복된 신들에게 미움받은 그런 남자를 말이오. 꺼지시오, 불사신들에게 미움받았기에 이리로 온 것이니.'


유비에 관해서도 눈여겨 볼 만한 장면들이 많다. 구혼자들의 만행과 귀환한 오뒷세우스의 보복에서 반복되는 제물-포식과, 부자간의 해후에서 반전된 형태로 제시되어 그 비극성을 더하는 새끼 잃은 맹금의 비유라든지. 직접적으로 제시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이런 건 어떨까. 페넬로페와의 해후에서 보여지는 나무를 통째로 쓴 침대가 오뒷세우스의 귀환 가능성을 암시 혹은 담보하고 있었다든지.

같은 수사를 사회적 신분이 다른 이들에게 부여하는 장면들 또한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돼지치기, 장군, 왕비 모두에게 고귀함과 탁월함이 있다. 그들 자신의 성품이 그러하다면. 고난을 이겨내 끝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면 더더욱!

p.539 제16권 텔레마코스는 부둥켜안았다, 훌륭한 아버지를, 애탄했다, 눈물을 쏟으며. 그 둘 양쪽 모두에게 애곡의 욕망이 솟아 올랐다. 울었다, 쟁쟁하게, 맹금류들보다도 더 요란스럽게, 수염수리나 갈고리발톱의 독수리들보다도, 그놈들 새끼들을 사냥꾼들이 날지도 못하는데 잡아갔을 때보다도. 그렇게 그들은 눈썹 아래로 연민스러운 눈물을 떨구었다.

p.705 제22권 발견했다, 곧이어 오뒷세우스를 죽임당한 시체들 사이에서 피와 선혈로 얼룩진 그를, 마치 사자와 같았으니, 그놈은 들판에 있던 소를 잡아먹은 뒤 떠나가는데, 보라, 그놈의 가슴과 양쪽의 볼때기가 온통 피범벅이었으니, 무서웠다, 얼굴을 쳐다만 봐도. 그렇게 오뒷세우스는 얼룩졌다. 두 발과 위쪽 두 손이.


『오뒷세이아』는 수천년의 세월과 동서고금을 넘어 마음 깊은 부분을 건드리는 불멸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동시에, 여전히 수많은 질문과 새로움이 솟아나는 샘이기도 하다. 명쾌한 정답과 딱 떨어지는 해결책을 주지 않음에도 수많은 이들이 전율하고, 마음에 새기며 지도로 삼아온 이유는, 어쩌면, 그 이야기의 본질이 인간사, 인생의 기저에도 닿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의 독자, 내일의 관객, 또다른 언젠가의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언제, 어디의 누구든 또다시 낯선 닮음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그 길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전율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형상을, 만물에 깃든 신의 그림자를 읽어낼 것이다. 인간이, 여전히, 인간인 한...

p.212 제4권 "자고 있니, 페넬로페, 소중한 심장으로 애통해하면서? 맘 편히 살아가는 신들은너를 그냥 놔두진 않을 거야, 울게도 괴로워하게도, 아직 귀향할 수 있으니까 네 아이는, 신들에게 무슨 죄를 짓지는 않았으니까."

p.569 제17권 그놈을 전엔 젊은 남자들이 데리고 나가 야생 염소와 사슴과 토끼를 쫓게 하곤 했었는데, 주인이 떠나고 없는 그때 버려지다시피 누워 있었다, 똥 더미 속에, (…) 거기에 개가 누워 있었다, 아르고스가 진드기 투성이로. 바로 그때, 그놈이 보았다, 가까이에 있는 오뒷세우스를, 꼬리를 흔들었고, 양쪽 귀를 아래로 내렸지만, 더 가까이 더 이상 그때 주인에게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

#오뒷세이아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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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
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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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현암사

**괴물, 그들은 왜 두렵고도 매혹적인가. 다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차이라는 강을, 건널 수 없는 그 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절대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다름, 그들의 야만성과 생명력은 언제나 강력하고 신비로우며 '근원적 동물성'으로 간주되기에 인간 아닌 인간들, 괴물들은 그렇게나 아름답고 두렵다.**

**괴물은 침범하는 자다. 규범을 넘어 일탈하고 흘러나가는 존재다. 그들에게는 전염성이 있어 생각만으로도, 존재만으로도 오염의 가능성이 된다. 그들은 고유한 동시에 가변적이어서 위협적이다. '괴물성'은 '우리'의 '복잡하고 질서 잡힌' 아름다움과는 달라 단순한 동시에 무질서므로 정의되고, 표적지어질 수 있다.**

p.11 괴물 만들기는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이자 위력적인 매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추상적인 두려움과 관념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하고 잠재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과 개인을 규정하며, 그들을 정상적인 육체나 믿음이나 행위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로 취급한다. 사회가 사람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방식의 핵심에는 '표준'과 '괴물'에 대한 가정이 깔려 있다.

p.102 민족과 이민족을 구분하려면, 그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중간자'를 불러내 벽 속에 가두어야 한다. 경계를 흐리는 존재인 괴물을 무력화해야 한다. 공동체는 특정 개인들을 괴물로 규정함으로써 주변부로 몰아내고 어느 정도까지는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그들을 과소평가하거나 문제 삼아도 이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여러 혈통을 이어받고 서로 다른 기대 사이에 끼인 채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괴물성의 존재는 '우리'에게서 영구히 몰아내져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동시에 언제나 종식 불가능한 위험이다. 교활하고 치밀한 동시에 순진하고 야생적이다. 괴물은 자연-성이다. 괴물은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위배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 규칙과 체계의 일부가 되어 언제고 제거, 아니, '삭제' 가능한 존재이다. 그래야만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료들에서 볼 수 있듯, 권력과 체제를 흔드는 존재로서의 괴물은 '우리'라는 '참된-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절대로 '우리'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괴물-됨의 위협을 안고 있는 존재다. 체제에 충실하지 않거나 규범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언제든 인간 '이외'로 미끄러질 수 있고, 그곳에서 돌아오는 일은 '본래적으로' 인간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p.87 '인종'이든 '민족'이든 둘 다 개인과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몸, 행동, 혈통, 시민권에 관한 생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선택된 역사인 것이다. (…) 자기네와 '다른' 집단 사이의 경계에 걸터앉은 개인을 불법적이거나 별스러운 존재로 식별하고 낙인찍어야 비로소 별개의 종족이나 인종 같은 것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개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경계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임이 드러날 것이다.

p.227 개인이나 집단을 어느 한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골칫거리로 낙인찍는 사람들은 (...) 인간의 범주가 유연하다는 사실을, 인간의 몸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쉽게 변한다는 사실을,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단순한 경계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어느 시점, 또 다른 삶, 평행 우주에서는 자신들 역시 골칫거리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외면하고 있다.


**공고하고 엄밀한, 확신과 질서의 세계에서 괴물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질서를 지탱하는 힘이자 질서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조적으로, '변신'에 덜 적대적이고 존재의 경계는 더 모호한 사회에서는 퍽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필사적으로 진보해온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에 역행하는 국제적 흐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과 학문의 언어를 탐욕스레 두른, 괴물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을.**

**이 책이 괴물의 역사가 아니라 괴물의 탄생, 괴물 만들기의 역사인 이유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괴물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괴물을 만들어내고, 규정지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괴물들'에 경의를 보낸다. 범람하고, 더럽히며, 파괴하고 매혹할 우리, 절대 우리일 수 없는 근원적 다름들에게. 또한, 무엇보다도 '무엇'인 이들에게, 비인간으로 밀려나는 세상에서 손을 잡고 함께 '무엇'이 되는 이들에게.**

p.146 당신은 누구에게 공감하는가? 얼마나 깊이 공감하는가? 공감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따라서 가장 인간다운 사람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지도, 즉 사적인 지형도와 같다. 갈등 없이 서로에게 공감하는 다문화적인 정치체, 범주의 자유로운 혼합과 초월을 찬미하는 정치체를 만들 수 있을까?

p.351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에도 희망을 걸 수 있다. (...)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계, 달아나거나 버리기보다는 지키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는 우리의 터전이다. 괴물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문이다. 괴물은 곧 우리 자신이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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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예프 사건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6
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 빛소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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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인간에게는 여전히 인간성이 남아있는가?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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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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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
#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 #자화상


자서전이 아닌 자화상인 이유를 알겠다. 극도로 촘촘하게 쌓아올리는, 덧대고 선을 긋고 겹치고 덮어씌우는, 집요하고 치밀한, 어느 순간 탁 풀리는 공백이 정교한 형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버린다. 몇 문장을 따라해보다 포기했다.

샅샅이 훑어내는 추격? 아니, 묘사, 그래, 묘사. 그것에 기묘한 쾌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낀다. 선 하나, 점 하나, 장면 하나가 모여 쉴새없는 반추와 회상을 소묘한다. 영사기 도는 소리가 착착착,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p.8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p.94 나는 가끔 특별한 이유 없이 전화번호부를 뒤적인다. 나는 영화를 볼 의도 없이 지면에 실린 영화 시놉시스를 읽는다. 나는 편성표를 읽지 않고, 채널을 돌려 무작위로 TV를 본다.


읽는 내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오래, 적어도 이 생각을 완전히 회상불가능한 정도로 잊기 전에 누구도 내게 말해줄 수 없게 될 과거의 일화를 말하고 싶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을 꺼내보이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일화에 온갖 장식을 덕지덕지 붙여 번쩍 들어올리고 싶었다. 언젠가 베푼 보잘것없는 친절을 죽기 직전까지 떠벌리고 싶었다. 보물처럼 모아둔 칭찬을 싹싹 닦아 늘어놓고 싶었다.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

p.7 10대 때, 나는 《인생 사용법》이 사는 법을, 《자살 사용법》이 죽는 법을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했다.

p.50 소름이 돋을 때면 수 세대 전 내가 짐승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시력을 잃지 않을 것이고, 청력을 잃지 않을 것이며, 팬티에 오줌을 싸지 않을 것이고, 내가 누군지 잊지 않을 것이며, 그 전에 죽을 것이다.


다시 없을 행복한 순간을 말하며 웃고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아직 잃지 않은 기회에의 그리움에 엉엉 울고 싶어졌다.

이 모든 것을 빼곡히 적은 노트를 탁, 소리나게 덮어버리고 서랍 가장 깊은 곳에 숨기고 싶었다. 얼마 안 가 꺼내보고 뒤져보다 언젠가 여는 방법을 잊어 골머리를 싸맬만한 방법으로. 언젠가 정말, 꼭 필요한 때에 딱 한 번만 꺼내보겠다는 마음으로.

p.69 나는 내 내부 장기를 전혀 본 적이 없다. 단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몸의 어떤 부분들을 보았지만, 어떤 부분들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도 결코 본 적이 없고 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p.143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내가 거짓 없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번뿐이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생을 덧그리고 덧덧칠하고 덧덧덧그으면, 그 끝은 무엇이 될까. 쉴새없이 생동하는 동시에 모든 순간을 한데 모은 기묘한 상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생의 종장을 끌어다 꽝, 찍어버린 이가 집요하고 난잡하게, 파괴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러모은 삶을 보며.

예감한다. 언젠가 삶에서 나를, 나에게서 세계를 소거하려는 결단 앞에서 이 책을 반드시 떠올리고야 말리라는.

p.142 내가 나눈 가장 아름다운 대화는 청소년기에 친구의 집에서 나눈 것이었다. 우리는 친구 어머니의 술을 무작위로 섞어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말라르메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그 큰 집의 거실에서 해가 뜰 때까지 얘기하곤 했는데, 밤새 나는 사랑과 정치와 신과 죽음에 관한 담론을 풀어냈고, 때로는 바닥을 굴러다니며 생각해낸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중 단 한마디도 철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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