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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노래를 부르며 하나가 되는 지구촌, 자유와 진보의 상징인 '서방'과 단연 빛나는 선봉인 미국의 시대는 저물었다. 나날이 쇠락하고 있다. 실각하는 권력과 그 추종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누가 이 권좌를 훔쳐갔지? 누가 감히 앞지르려 하지?
그러나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을 때야말로 이렇게 물을 때다. 누가 그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가? 적들에 의해, 그들을 물리치고 '정상'을 회복하기 위해,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지켜내기 위해. 혹은, 야만이야말로 우리의 본성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으므로. 전세계적으로 목도되는 상식의 붕괴, 폭력과 적대의 일상화.
p.5 자본 축적 과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는 전 지구적 축적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절하고, 가장 뛰어난 생산력과 기술력, 생산 능력 등을 가지고, 세계 금융 시장을 주도하고 세계 시장에서의 '규칙'을 정하면서 동시에 그 담론들을 세계인들의 상식으로 만들 수 있는 국가야말로 '패권 국가'입니다.
p.6 역사적으로 최초의 패권 국가는 17세기의 네덜란드였으며, 그 뒤를 이은 것은 바로 영국, 즉 19세기의 대영제국이었습니다. 1945년 이후에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바로 지금 쇠락해가고 있는 패권 국가 미국입니다.
전세계가 휘말린 전쟁, '서구 문명'의 발전과 대안 모색의 끊임없는 시도로 쌓아올려진 인간성이라는 허위가 그저 허구였음을, 지성과 문명의 대실패적 현장을 뼈저리게 까발려버린 전쟁 이후, 우리는 얄팍한 평화를 너무도 깊이, 절실하게 믿어버렸는지 모른다. 마치 이것이 정상이었다는 듯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끔찍한 과거의 지평선 너머로 안녕히, 영원히.
그런데, 정말 이 야만으로의 회귀는 전례 없는 파멸의 서막일까? 아니면 신-미국이라는 새로운 과두체제의 창발일까? 설사 누군가의 경악어린 외침이 울려퍼진대도 꿈쩍이나 할까싶다. 이 파시스트들! 이만큼 무력한 외침이 없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 주도의 서방 일극 체제가 오히려 세계사적으로 특별하고 또 이례적인 순간이었다고.
p.164 파시즘이란 자본주의 국가의 원점, 일종의 출발점입니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국가는 위기 타개책으로 종종 각종 형태의 파시즘을 선택합니다. (...) 한데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공격적 정책의 남발은, 비록 파시스트적 색채는 분명해도 아마도 히틀러 시대 독일과 같은 '질서 정연한 나라'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못 할 것입니다. 트럼프의 파시스트적 정책들이 궁극적으로 정책 난맥을 가중해 오히려 역으로 미국의 위기를 더 악화시키며 그 패권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큽니다.
p.210 민주-공화 양당 사이에 대립의 강도나 진행 방식 등에 대해 차이가 있으나 중국을 전략적인 경쟁자로 보는 데 미국의 주류 정계에서는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 단, 미국의 패권 쇠락이 심화되고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의 요구가 극단적인 만큼, 기존 정책들도 눈에 띄게 극단화됩니다.
미국의 중국 혐오와 '구역'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 태도를 남한 정치권이 어떻게 흡수하고 답습하고 있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한반도 요참 사태를 전후해 남한 정치사회의 주된 기조는 미국을 우방이자 우상으로 섬기는 태도였다. 기십년 사이에 급부상한 일부 집단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우방을 넘어 우국충정에 가까울 지경이기까지 하니 걱정스럽지 않을 수가.
신패권질서의 주도국 지위를 꿰차려는 미국과 그 하위-우방들의 시도는 과연 '질서'의 공고함, 절대적 격차를 공고히 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을까?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좌파 운동 진영에서 미제 세력에의 대항 논리는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가? 과거의 영광이라는 허상에 매달려 현재를 등한시하고 있는 '그들'에 방심까지나 할 여유가 있는가?
p.154 이런 극우적 쇼 정치로는 이미 쇠락해 가고 있는 초강대국이 다시 위대하게 될 리가 없습니다. 단, 이런 쇼의 일환으로 한국까지 한미 동맹이라는 틀에 갇혀 한국 경제에 불리하기 짝이 없는 대중국 탈동조화 등의 정책 강압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그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트럼프주의 시대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주체적인 외교 전략은 정말 중요합니다.
p.325 문제는, 이런 접근 방법이 여러 제국들이 미 제국이 쇠락하는 틈을 타서 서로 경쟁하고 주변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현 상황의 특색, 즉 제국 간의 모순들의 심화와 경쟁의 첨예화, 미국 이외 제국들의 상대적 영향력 강화 등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 여러 제국들의 대내외 정책과 이데올로기, 야망, 이해관계의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파악이야말로 진보적인 대응을 마련할 수 있는 첫 단계입니다.
혁신이든 실리든, 그 명목이 무엇이든 간에 현 세계가 문턱에 선 '야만 시대'는 그저 오랜 역사의 반복일지 모른다. 저자의 말처럼 이 패악 또한 반복이라면 그를 가능케 한 시민사회의 책임 또한 부정할 수 없을 테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성원 모두의 숙명적 책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유난히 길었던 지난 겨울, 민주주의는 완전히 수동이라는 말이 우스개처럼 돌았다. 끊임없이 신경써야 겨우 굴러간다고. 폭력만이 유일한 진리가 되려는 세계에서 그 말을 새삼스레 되새기는 것도 우연은 아닐 테다. 민주주의의 '민'으로 묻는다. 좋든 싫든 요동치는 세계에 놓인 지금, 무엇이 이 연쇄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의 것이 되기 위한 나와 당신의 책무란.
p.323 민주주의가 국가 정체성의 핵심인 구미권에서, 신분 하락과 상대적 빈곤화에 분노한 대중은 주류 정치에 대한 신뢰를 접고 트럼프와 같은 극우들에게 권력을 내주었고, 그 순간 민주주의도 무너졌습니다. (...) 구미권의 전반적 쇠락을 초래한 신자유주의는, 구미권의 최고 장점인 민주주의도 형해화시키고 말았습니다.
p.350 복지 국가도 그렇지만, 민주화는 일종의 조건부 사회계약입니다. 민의 자발적인 동원 능력과 투쟁 능력이 유지되는 이상 엘리트들은 싫든 좋든 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합니다. 폭동이나 혁명을 통한 민의 표현보다 투표를 통한 민의 표현이 '통치성' 차원에서 훨씬 낫기 때문이죠. 한데 민의 동원 능력과 투쟁 능력이 떨어지는 그 순간, 민주주의라는 사회계약은 자동 해약됩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