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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누구에게나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그에 비채 인생은 대체로 무료하거나, 밋밋하거나, 쉽게 잊혀지고, 이따금, 아주 가끔, 몹시도 찬란하고 고통스러워 평생을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대개 두어시간 남짓, 화면의 그 얄팍한 경계로 눈을 돌리면 금세 현실에 파묻힐 그 짧을 시간을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쩌면, 세계의 일부를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고, 온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환상에 잠기게 하는 힘 탓이 아닐까.
p.84 개인적으로는 목소리로 정했다. 매력적인 허스키보이스. 병실에서 늙은 딸과 창가에 나란히 서서 안마당에 핀 꽃을 바라보는 연기를 부탁. 그녀가 움직인 순간 회의실이 병실로, 벽이 창가로 바뀌는 듯했다. 캐릭터 이름도 이자벨에서 배우의 본명인 마농으로 변경.
p.102 밤. 첫눈에 반한 파비안느의 집에서 혼자 숙박. 밤의 열차 소리, 아침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기억. 혼자 시나리오를 들고 집 안을 이동하며 대사를 말해봤다. 그러면 말이 넓이와 거리감 면에서 이 공간에 얼마만큼 어울리는지 또는 안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누가 보면 섬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중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태어난 영화는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는가. 적어도 내겐 어떤 날엔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간 영화가 있었고, 언젠가는 개봉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출석도장을 찍어가며 상영관에 불이 꺼지는 순간부터 크레딧의 끝자락까지 자리를 지켰다. 또 언젠가는 컴컴한 거실에 웅크리고 앉아 눈 감고도 외는 내용을 줄줄 울어가며 봤고.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만 골라가며 보던 때도 있었고.
슬슬 잊을 때도 된 언젠가엔, 감은 눈이 쓰리도록 피로에 절어 사는 게 너무 버거운 날, 끈질긴 온기가 그리워 닥치는대로 찾아 보던 날들이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 불쌍해서, 꾸역꾸역 살겠다고 애쓰는 꼴이 너무 처량해서 언젠가 이 감독 영화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날이 오기는 할까, 싶던 때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을 읽고 있으니 신기하다 해야 할지, 역시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해야 할지.
p.201 카트린+쥘리에트의 안마당 장면. 자서전 《진실》을 읽은 뒤 모녀의 첫 충돌. 쥘리에트의 노여움이 강렬. 수위를 낮춰보라고 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쥘리에트는 '거짓된 내용을 썼으니 화내는 게 당연하다' 라고. 아니, 아직 아니다. 이 장면은 이틀째 아침이니 노여움은 나중을 위해 남겨놔야 한다.
p.219 안마당에서 어머니에게 자서전의 거짓말에 대해 따지는 194신 말입니다만, 여기의 노여움을 지난번 반장이 자리에 앉지 않는 말썽쟁이 학생을 나무라는 것처럼 해봐달라고 한 건, 여기서는 아직 '이성'으로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뤼미르는. 단계를 밟아 감정적인 노여움이 심화돼 최대치에 이르는데, 여기서는 아직 버텨주세요.
이름보다 작품으로 먼저 안 감독이다. 화면만 봐도 아, 이 사람이구나, 싶은 분위기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기록한, 스케치가 영상이, 아이디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설정에 불과했던 캐릭터가 관객을 사로잡고 살아 움직이는 그 자체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이 기록은 만들어진 곳을 떠나 드넓은 세계로 달려가버리는 존재에 대한 고백이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라는 제목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 자체로도 온기와 생명을 갖고 피어나기까지, 지난하고 아름다운 길과 시간들. 다시 기억으로. 어째서 고레에다의 작품이었느냐고, 굳이, 를 묻는다면, 그 안에 사람이 있어서, 라고 답하겠다. 내가 되지 못한, 편입되지 못한, 어떤 순간들이 있다고.
p.168 영화와 인생이 이번만큼 거의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을 처음 봤다. 작품 자체가 타이밍을 택해 누군가를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감독과 함께 달려왔다고 첫머리에 썼다. (...) 빠른 속도로 아웃풋을 이어온 지난 몇 년을 거쳐 이쯤 해서 일단 호흡을 가다듬고 인풋을 축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새로운 '좋은 친구'를 사귀어 한층 터프하게 좋은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p.253 스태프와 캐스트가 대본에 대해 이런 의견을 내주면 정말 고맙다. 상하 관계도, 종적 관계도 아닌 평행적 관계가 작품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그려낸 건 사람이라고, 아주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쌓아올린 이야기라고, 그 사실이 여실히 묻어나는 화면을 그려내는 감독이라서, 라고 답하겠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하나의 기록이자 그가 그려내는 세계의 일부다. 작게는 한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조각들이고, 깊게는 "영화는 어떤-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그 나름의 답이다.
그에 더해 시나리오부터 섭외, 촬영까지 어느 것하나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래서 결국 가장 인간다운 작업에 대한 소고인 동시에 레퍼런스와 베테랑으로서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가이드북으로 읽어도 좋겠다. 관객에서 창작자까지, 영화가 태어나는 곳, 당신의 세계에서 나의 마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p.283 쇄신이 빠르다는 것은 당연히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된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해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새로운 영화 기술에 따라오지 못하는 세대의 스태프는 나이 50대에 보수파라는 딱지가 붙어 현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p.296 영화 만들기에서 사라진 필름을 교체하는 시간, 무거운 기재, 상영에서 사라진 필름을 교체하는 수고, 필름 교체를 표시하기 위해 필름에 각인되던 마크. 그것들이 영화 및 영화 만들기의 시간과 공간을 일종의 '축제'로 바꿔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이제 영화관의 어둠까지 사라져가고 있다. 내게는 종이가 아니면 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관을 잃으면 영화는 영화가 아니게 될 것 같다.
*도서제공: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