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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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말을 그의 삶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것이겠으나, 이는 곧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말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자신으로서의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아가, 그의 이름이 마치 끊겨버린 길처럼, 도려내진 자리처럼 그저 흔적,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면.

포기 앞에는 단 하나의 선택만이 남는다. 나로 미루어 당신의 얼굴을 비추어보기. 지워지고 침묵된 흔적에서, 부재의 자리에서 존재의 기억을 더듬어나가기. 목소리를 불러내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의 이야기를, 이름을 부르는 일. 나에게서 당신을, 당신에게서 나를 그려보이는 일.

p.32 외할머니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조상이 된 영혼에게도, 원귀가 된 영혼에게도 삶의 과정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몇 개의 언어만으로 압축될 수 없는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 안에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p.56 그녀들은 늘 자신들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반응 앞에서 문득 궁금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 결론은, 결국 내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설정된 특별함의 기준을 묻고 그 기준을 뒤흔드는 이야기에 언제나 더 관심이 갔다.


다큐멘터리 감독,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딸, 한국 여자. '남동생이 하나 있다' 한 마디면 아, 하고 누군가는 말 없이도 다 이해할 그런, 딸자식으로 자란 사람. 누이처럼은 되지 말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누이로 살아온 사람. 양주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사람.

'평범하라'는 압박 속에 자라온 저자의 고백은 지극히 익숙한 동시에 평범하다. '양 씨 집안 여자들은 불행하다'는데, 불행을 안고 태어나 불행하게 살았을 그 여자들의 이름은, 얼굴은, 삶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무엇이 그들을 불행의 자리에 주저앉혔나.

p.31 나는 그 말을 '정상성'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했다. '정상적으로 살아야 해, 정상적으로.'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사는 삶은 뭐고, 정상적이지 않은 삶은 또 뭘까. (...) "평범해야 해, 평범" 이라는 말은 각종 통과의례를 별 탈 없이 거치고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80년 5월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진,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살았을 어떤 이들을 떠올렸다.

p.156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오래동안 침묵으로 가려져온 또다른 양 씨 여자, 고모의 삶을 죽음에서부터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가족의 역사를 되짚는 일과도 같다. 관습의 이름으로 내쳐지는 것들, 사랑하지만 다 똑같이 사랑하지는 않는. 그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독자는, 관객은, 필연히 묻게 된다. 그 많던 '평범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드세고, 조용하고, 욕심 많은 꿈을 꾸던 '여자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여성들은. 그 많던 여자애들은. 누이, 딸, 아내가 아니었던, 계집애도 딸년도 아닌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 사람들은, 그 이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그들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는가. 분명 있었는데, 그 때 그렇게 살아있었는데, 꼭, 없는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p.163 애도될 수 있는 죽음과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이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죽음과 삶이 그만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 삶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도 결코 똑같은 모양은 아니다.

p.184 지금까지의 가족의 시간 속에서 지워져야만 했던 이름, 흔적 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 이름, 지영이었다. 그 이름을 지우는 데에는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지만, 사라진 이름이 다시 새겨지고 드러나는 데에는 몇 배 이상의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자살했다는 이유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 이했다는 이유로, 질문조차 박탈당했던 이름의 귀환이었다.


양주연의 기록은 기어코 양양의 말에 도달한다. 현실에 후련한 결말 따위는 없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은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불편하게 맴돌 것이다. 떠나진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끊겨버린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영과 주연의 기억에 이어진 우리들은 함께 상상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밀려 나거나 잊히지 않는, 여성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거나 수치스러운 것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누군가의 삶도, 죽음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쉽게 가려지거나 비밀이 되지 않는" 미래를. 나의 삶에서 당신과 우리의 기억이 손을 맞잡는, 그런 미래를.

p.10 두려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꽤 강력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거기에 다가가 뭉쳐진 시간과 감정을 풀어 나가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을 알려 주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를 깊숙이 이해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려진 슬픔과 만나게 하기도 한다. 과거를 헤매는 일은, 고모라는 존재를 알아 가고 내 안의 두려움을 응시하면서 여러 감정과 상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p.201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새로운 세상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그 세상과 함께 나는 매일 매일 새롭고 익숙한 용기를 이어 갈 것이다. 용기는 지나온 시간과 함께 생겨나고, 다가올 시간을 향해서 걸어간다. 용기를 낸 만큼 새로운 세상이 올까? 지금 확실한 한 가지는 내 앞에 놓인 세상 속에서 이제 더 이상 고모는 금기의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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