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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감상에 앞서, 국립국어원에 대한 개인적인 심정으로 시작해야겠다. 아니, 원한 내지는 앙금 비슷한 것이라 해도 좋겠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 일로 서비스는 이용하되 그 기관의 '태도'는 곱게 보지 않으리라 다짐한 세월이 꼭 그만큼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흥! 정도라 할 수 있을 마음으로 펼쳤고, 그제야 볼 수 있었다. 기관이라는 이름과 채팅창 너머의 사람을, '요즘 누가 그걸 신경쓰냐'는 핀잔의 '누구'들의 치열한 일상을.
초중고 도합 장장 12년의 교육도 해낼 수 없는 문제, 맞춤법. 오죽하면 온갖 '맞춤법 검사기'가 등장하는 판 아닌가. 그 근간에 국립국어원이, 그 안에서도 이용자와 가장 가까운 곳인 상담실이 있다. 이 책은 가장 가깝고, 그 이유로 당황과 황당 사이를 끊임없이 ('끝없이'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 잠시 고민했다) 오가는 상담실 연구원의 나날을 살짝 내보인다. 이걸 다 사람이 답하나? 네, 사람이 합니다.
p.4(추천사) 가시처럼 알쏭달쏭한 한 글자 한 칸 앞에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답을 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 게시판을 찾는 수밖에 없다. (…) 오늘날은 인터넷을 통해 거의 누구나 뭔가를 쓸 수 있는 시대이고, 뭔가를 써서 보이기 전에 누군가의 검사를 맡아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런 때에 스스로 서로 정확해지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선생이고 해방이다. 물론 그것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p.182 인공지능이 빛의 속도로 많은 데이터를 길어 올리면, 우리 상담 연구원들은 그 답변이 '규범' 이라는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맥락' 이라는 결과 맞닿아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언어의 온기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주체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절차는 조금 달라지더라도 국어 연구원은 인공지능이 내놓은 문장들이 국어 생활자의 삶에 올바르게 닿을 수 있도록 책임지는 '최종 검토자'로서 품을 들일 것이다.
이쯤(이 쯤인가?)해서 물을 테다. 맞춤법 검사기 돌리면 금방인데 굳이 사람이 답해야 하느냐고. 단언할 수 있다. 해야 한다고. 문제는 옳고 그름의 정답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말은 소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동시에 매 순간 갈라지고 다듬어지며 새로 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말이 사람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에, 동시에 사회의 인식적 틀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떄문이다. 예를 들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불려나오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를 향한 조롱이라든지.
그 이면에는 '감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있다. 억지 땜질로 바짝 기어주지 않으면 손쉽게 갈아치워질 처지들이 있는 것이다. 말은 사람 간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누군가를 깔아뭉개고 핍박하는 구실이 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롱이 아니라 새로운 약속의 장을 열고 다양한 가능성을 들고 오는 일이다. 언어규정은 사람을 단죄하고 옳고 그름의 선으로 찍어누르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p.192 문장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우리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어떤 길로 뜻을 전하느냐에 따라 그 움직임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진다. '더 잘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작은 원리를 익혀 글을 쓰는 데에 사소한 도움을 얻기를 바란다.
p.200 왜 우리에게 '높임' 표현이 이렇게나 중요하게 되었을까? 언어는 그 사회의 정신을 반영한다는데, 이 기형적인 과잉 존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어쩌면 우리는 일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존중과 인정의 욕구를 모르는 타인에게서,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에게서 채우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진한 대접을 받아야만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사회적 결핍이 '사물 존칭' 이나 '높임 어미의 과도한 중첩 사용'이라는 촌극을 빚어낸 것은 아닐까.
앞서 말한 10여 년 전의 '사랑' 논쟁 또한 그러하다. 저자가 거듭해 말하듯 규정은 사용자를 재단하고 혼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편협한 정의가 어떤 사랑을 '사랑' 바깥으로 밀어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벽을 세우고 엄격한 경계를 긋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범주를 넓히는 일이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의 모두는 말이 채찍이 되고 편가름의 도구가 되는 경우를 잘 알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질문 너머의 일상을 읽으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을 멋대로 읽자. 누군가는 벽을 세우고, 누군가는 먼 곳의 낯선 이를 환영하고, 또 누군가는 갈라지고 좁아진 틈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공동체의 집으로. 더 큰 집을 짓자. 넓고 다정한, 모두가 오가는 집을 짓자. 누군가를 내몰지 않는, 자유로이 열린 집을. 그 집에 함께 거할, 잘 있기 위해 매 순간 이해하고 안내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p.110 언어는 쓰임에서 의미를 얻고, 규범은 언어가 그 쓰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다. (…) 그 안에는 언어가 변화하는 속도와 방향을 수용하는 우리의 자세가 담겨 있다. 변하는 언어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일은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재미있다. 상담으로 만나는 질문 하나에도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말을 바꾸고 있는지, 어떤 마음 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p.133 표기법이란 사람들을 가르치고 통제하는 교단 위의 회초리가 아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맺은 약속이다. (…) 낡은 규범에 갇혀 말의 맛을 포기하기보다, 가끔은 대중의 말맛을 믿어 보는 것. 상담실에서 배운 규범 언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