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삶의 마지막은 어떻게 도래할까.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누구라도, 감히 '절대로' 알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심장이 멎고 더 이상 이 다음에 내쉬는 숨을 떠올릴 수 없다는 그 감각 말이다. 평생을 함께한 이가 바로 곁에서 그 순간을 맞이한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감각할 수 없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재의 감각일 뿐이다. 아, 그렇지. 이젠 없지, 하고. 멈춰서게 하는 그 느낌.
언제 어떤 형태로 도래할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살아 숨쉬는 것이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멈추지 못하는 채 나아갈 뿐이다. 그 시간은 마치, 어느 시기엔 으레 그렇듯, 한순간에 변신하거나 이전까지의 모습을 깡그리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 살이 돋고 두께를 더하는, 그래, 마치 조개나 나무의 테와도 같이 쌓여가는 것이다.
p.41 솔직히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고, 왜 하필이면 나냐, 하고 하늘을 향해 신음을 토하지 않아요.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p.104 바움가트너에게는 애나와 함께 산 그 모든 세월 내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것 이상이었다. 지금도, 자식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면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충분한 것 이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다.
제목인 동시에 주인공인 바움가트너, 평범한 노인이자 은퇴를 앞둔 교수, 그의 일상은 대개 그러하듯 단조롭고 고요하다. 이상하게도 크고 작은 사고가 연달아 일어난 어떤 날, 그래, 평범한 날만 빼고. 까맣게 태워먹은 냄비를 바라보던 그에게 탁, 하고 불이 들어오듯, 아니,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점화된 빛이 순식간에 줄을 잇고 번져나가듯 세상을 떠난 아내의 기억이 밀려온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 뿐, 당장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벅차던 나날, 그럼에도 이 사람이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어떻게든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을 함께한 평생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p.141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살펴본다든가.
p.18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지금에서, 한순간의 사고를 아내를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삶은 통증이었다. 환상임에도 더욱 생생하고 고통스럽게 달라붙는 환지통과 같은 그리움. 이대로 안고 살겠거니, 얼마쯤 고여있는 마음을 출렁이며 꼭 하루씩을 느리게 이어가는 삶. 그에게 과거가, 아니, 여전히 현재인 기억이 숨막히게 피어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진짜 현재'가.
새로이 도전하는 사랑, 아내의 업적을 존경한다는 젊은 학자, 아, 맞아, 냄비, 그리고 오래 비워둔 집... 그렇게 이야기는 그 자신의 것처럼, 제목에서 시작해 다시 처음으로, 아니. 생의 한가운데, 어느 날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돌아나온다. 착시를 일으키는, 현실에 존재할리 없다는 어떤 형체처럼. 이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다. 하모니다. 하나씩, 살며시 쌓여가는 멜로디처럼.
p.197 그러자 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장을 성큼성큼 달려가는, 버려진 도시에서 먹이를 찾아 작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이리 수십 마리. 이리가 악몽의 종료점이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전쟁의 참화를 낳은 어리석음의 가장 마지막 결과물이다. 이 경우에 그 참화란 동부의 그 피의 땅에서 유대인 3백만 명이 다른 종교를 가진 또는 종교가 없는 다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이나 군인과 함께 살해당한 것. 학살이 끝나자 흉포한 이리들이 도시의 문을 통해 밀고 들어온다. 이리는 단순히 전쟁의 상징이 아니다. 전쟁이 낳은 것이자 전쟁이 이 땅에 가지고 오는 것이다.
어떤 마음은 너무 무거워 선명하게 드러낼 수 없다. 꿈결과 상상의 힘을 빌어서만 간신히 '이렇게', 속삭이며 희미한 형태로 내보일 뿐이다. 그러니 작품 전체에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멜로디는 슬픔이다. 의식의 얕은 수면 아래에서 파도에, 바람에 문득 떠오르는 상실과 부재의 감각이다. 깊고 길고 느리게 이어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4 3 2 1』에서 드러낸 초장편의 기백에 매달리는 독자에게 삐뚜름한 웃음 한 주먹을 건네듯 짧은 이야기에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이 오롯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뜨겁게 달아올라 흐려진 상태로는 알 수 없는, 가만히 가라앉히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마음이. 자전에 가까운 이 이야기가 결국, 오래된 자리, 희미한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는 마음이려니, 한다.
p.74 바움가트너는 전화에서 수화기를 들어 올리고 당황하여 자신 없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를 내뱉어 본다—마지막에 물음표가 붙은, 여보세요. 정적이 뒤따르자,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깨어 있으니 꿈일 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혼잣 말을 한다. 그때 애나가 그에게 말을 한다, 살아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 다름 아닌 그 울림이 큰 목소리로 말을 한다.
p.242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