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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평점 :
*서평도서제공: 사계절출판사
태초에 뭍으로 기어오른 짐승이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땅을 밀어 서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따스한 피가 도는 살갗을 맞대고 겁에 질린 밤을 보냈다. 어느샌가 그들 중 누군가가 두 발로 일어서 얼굴을 마주했다. 시선을 숨기지 않는 눈과 매달리지 않고도 능히 오르는 다리, 무른 살갗과 움켜쥐는 손은 다가서고 끌어안으며 심장을 맞대는 존재를 가능케 했다.
우우, 울음이 아닌 '말'을 속삭이기 시작한 순간, 인간은 기만하고 찬양하고 몰두하는 짐승이 되었다. 그렇게 우와 열을 넘어 새로운 선이 그어졌다. 초월이라는 선이. 뛰어넘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 재목이 정해져있다는 믿음으로 패이고 쌓아올려진, 차원. 어느 작가가 말했듯, 피에 젖은 3키로짜리 스펀지. 무리 안의 짐승, 무리를 만드는 짐승, 무리 위에 서는, 우월한, 짐승. 이 짐승은 입을 열어 말했다. "나".
p.404 루미는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 그런 이탈이 불안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특별한 감상을 주었다. 경계를 뛰어넘은 초월자가 된 것처럼.
p.832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대는 굴욕적인 모습을 한대도 비웃음을 살 일은 없었다. 앞에서 미약한 빛이 느껴졌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터널이 끝나 가려 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 때 맞은편 검은 차창 위로 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지도, 두 손을 비비지도 않는… 똑바로 선 인간.
인간이 너와 나를 구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이는 시원에서 갈라지는 고통을 내포한 생태에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끔찍한 단절, 절대적인 공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둘 뿐이다. '태어남' 이전에서 벗어나지 않기, 혹은 모든 것을 '자기'로 끌어들여 하나가 되기.
전자는 절대적인 신뢰와 순수로 불변의 안락함을 얻을 수 있고, 후자는 수없이 맞닥뜨리는 '다름'을 매끄럽게 묵살하는 포식이다. 이 둘은 일견 다양한 형태와 언어로 드러나면서도 변화를 거부하고 절대적인 신뢰에 순응하려는, 그렇게 책임과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며 반복되었다. 질서, 권력, 창조, 안정, 진화, 문명, 순수, 정화, 나.
p.213 세상을 바꾸는 일? 루미야, 그건 어린아이들이 꾸는 하룻밤의 몽상일 뿐이란다. 갖고 놀던 장난감이 지루해 발로 부수어서 재조립하는 것과 비슷하지. 아이들은 잠깐씩 그래도 돼. 어차피 금방 꿈에서 깰 테니. 하지만 나이를 먹고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 있다면,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단다. 이 완벽한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그건 용서할 수 없는 반란이고 폭동이…
p.322 다윈은 자신을 둘러싸고 흐르는 기류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교복에 얼마나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지, 자신의 존재에서 얼마나 깊은 열등감을 느끼는지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다. 저렇게 많은 걸 가진 인간이 어떻게 자기 스스로에게 저렇게까지 무감각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전개가 퍽 분명함에도 읽는 이를 거듭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와 독자가 꼭 닮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800여쪽의 이야기가 정결과 부정, 흑과 백, 순수와 혼란, 인간과 짐승을 가르고 접붙이기를 반복하는 동안 독자는 판단하고, 한 편에 서며, 가려내다 결국 한 지점에 갇혀 헤매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이렇게 부르고, 아니, 시뻘건 오물처럼 퍼붓고 싶다. 오만, 오만, 오만!
과거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오만. 죄와 벌, 선과 순수가 매끄럽게 나뉜다는 착각, 그를 완벽하게 판가름힐 수 있다는 오만. 태생부터 무결한 '시조'가 될 수 있다는 오만. 결코 뒤바뀔 수 없는 우열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오만. 순수한 빛이 투명한 유리같은 존재를 곧게 뚫고 환히 비추리라는 오만. 완벽이 존재한다는, 혹은, 완벽 너머의 초월에 순종하고 나아가 그 자신이 되리라는 오만. 나와 타자를 완벽히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
p.153 "그게 정말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상위 지구만을 제외한 모두의 바람이었는지를 따져 봐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 처벌의 순간이 오자 모두 뒤로 물러나서 9지구를 지목했으니까. 결국엔 보기 좋게 9지구만 죄의 땅이 돼 버렸지." 루미가 남자를 신경 쓰는 듯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관용이라고 하잖아요. 주도 인물들이 아닌 이상 국가 발전을 위해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p.445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단다. 애초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 넌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악마적인 면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야. 아무리 똑같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런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구나."
이 오만의 연대기는 멈출 곳을 찾지 못한 채 질주한다. 역설적으로,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을 표방하는 동시에 그것을 대가로 치른다. 무비판적인 순진은 무비판적인 신뢰에 기인한다. 그것은 그 대상을 옮겨가거나, 복제하고 이식할 뿐 '다름'의 존재를 부인한다. '나'의 '바깥'을 부인함으로서 변화, 이동, 변/태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순수로의 질주는 원형의, 시원적인 순진을 필요로 한다. 이 얼마나 정결하고 매끄러운 퇴보란 말인가.
그리하여 이 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의 아들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성장기이자 핏줄로 이어져온 칼자루를 거머쥐는 결단이나, 그 아래에는 진화에 대한 통념 향한 지독한 조소라 할 수 있겠다. 어린양에서 두발로 선 존재로, 무리 없이 살 수 없는 짐승에서 "무릎을 꿇지도, 두 손을 비비지도 않는… 똑바로 선 인간"으로 진일보한다는, 완벽을 향한 직진이라는 순진한 믿음. 그렇게 무결의 존재, 바깥을 잃고 무리 위에 서는 우월한 짐승은 입을 열어 말한다. 나, 오직 나.
p.179 "하지만 애초에 더 나은 세계가 되느냐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 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 나쁘게 변한 세계보다 사람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사슬에 묶여서 꼼짝하지 않는 바퀴니까. 아무것도 변하는 것 없이 모든 게 제자리에만 멈춰 있다면 인간은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p.470 그러나 웃고 있는 제이의 사진이 놓인 제단에 다윈을 안고 선 순간, 나는 왜 내가 다원을 제이 앞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다윈은 한 마리의 양이었다. 내가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물로 바치는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