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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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은 많은데 읽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는 사람은 없다. 하루종일 넘겨본 인터넷 게시물이며 동영상이 몇 갠데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묻는다면,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고, 하루종일 쏟아진 말과 글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되묻고 싶다. 언택트니 비대면이니 하지만, 발문처럼 차고 넘치는 연결들은 정작 한없이 낮은 밀도 탓에 세계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다.

뒤탈없고 가벼운 관계만 범람한다. 부스러기 차 버리듯 툭 털어내면 그만일 말과 '우리 사이'들. 이해하려 애쓸 수록 벌어지는 모호와 오해의 간극. 그런 이유로 사는 내내 이질감을 존재의 무게추로 삼아왔다. 사람을 연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연한 살을 몽땅 안으로 말아넣고 그저 둘둘 굴러다니고나 싶었다. 그래서 이따금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걸까. 북적대는 번화가에서, 볕 좋은 강가에서 우뚝 멈춰서버리고 싶었던 걸까.

p.157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만큼 아픈 사람이 없다는 걸 모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제야 모아는 시내와 수자, 자신 모두 마음 깊숙이 어디 한군데가 단단히 틀어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서로를 감지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p.206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이상한 기분, 모멸감 같은 것들은 도대체 어떤 회로를 거쳐야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모든 일에 진심을 다했지만 그럼으로써 깎이는 마음을 도로 채우는 법은 도무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취약한 부분을 너무도 쉽게 들키고야 말았다.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사는 일 너무 재미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지겨워했다. 뻔해서 지겹고, 알만해서 지루하고,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지 않을 방도가 없어 초라하고 비참했다. 부끄러웠다. 사건도 사고도 없이 다사다난한 일상을 맴돌다 작가가 그려내는 이들을 맞닥뜨렸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른 순간 나는 그에게로 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흐릿한 바닥에 색이 차오르고서야 발붙일 마음이 들었다.

일곱 편의 이야기, 그 안의 사람들에서 나는 낯설고 난감하고 익숙한 얼굴을 본다. 만원버스에서 한껏 움츠려 자리를 내주는 사람,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 괜히 미안하고 멋쩍은 마음에 슬그머니 손을 내밀고 엉거주춤 문을 잡아주는 사람. 누구에게 보일지도 모르면서 꼭 요만큼의 벽을 세워두고 영영 지켜보이려 애쓰는 사람.

p.146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폐를 끼치고 누군가는 극도로 폐를 끼치지 않게 노력하고. 그건 어쩐지 좀 이상했다. 공평의 문제라기보다 경계의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아주 별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별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게 발생하는 것이다.

p.207 문득 내가 지키고자 했던 그 최소한의 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오롯이 그러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 얼굴을 외면할 방도가 없어 두 손을 세워 입가에 갖다 대는 이에게 "아뿔싸, 이러면 별도리 없지, 하며 고개를 숙인 채 집중하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유를 잃어버리고 슬픔만 남"은 사람, "슬픔은 잃어버리고 이유만 남"아, "이유들만 머리에 남아서 악에 받쳐" 팔팔 뛰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하찮고 사소하게 거듭되는 실패, 좌절, 미끄러지는 의도와 떨칠 길 없는 슬픔 따위는 그렇게 곁을 내주는 마음이 된다.

보풀 일고 습기 먹은 이야기들을 걸쳐입은 지금, 차마 버리지도 바꾸지도 못하는 누추한 나와 구질한 실패 따위를 박박 닦아 서랍 구석에 모셔두고야 마는 그런 마음을 아느냐 묻고 싶다. 살아봐야지, 입속말로 우물대고 싶다. 별것 아닌 친절을 건네고 요상하고 찌질한 미련을 내비치곤 "인간의 쓰임은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지점에 다다르려 애쓰는 일" 같다는 작가의 말을 한구석에 대롱, 매달아두며.

p.20 "그런 건 누가 죽고 나서야 알게 되더라. 인사 잘 하는 법 같은 거 말이야." 기문은 작별 인사를 아주 오랫동안 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상대가 먼 길을 갈 때는 배웅도 오래 걸리는 법이라고.

p.72 새들이 낮게 나는 모양을 한참 보고 있자니 무언가에 완전히 굴복되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늦게 추위가 엄습했다. 이대로 죽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헛웃음을 지으며 스스로 되뇌었다. 이중일은 죽지 않는다. 그들로부터 영원히 죽지 말라는 지령을 받게 되었으므로. 그것은 활력 있는 형벌과도 같았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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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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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신과 다른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전지전능의 일신론이 의식체계와 기반 세계를 재편하기 전, 인간의 욕망과 충동, 명과 암의 양면성은 인간사회의 곳곳에 스며 있었다. 그것들은 신의 광휘를 입고 그 자체로 자연스레, 혹은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고의 창조주와 순종의 물결을 타고 인간 안의 감정과 욕망 생리와 사회적 본능이 피조물의 속성으로 전락해, 신성을 인간과 별개의 존재로 떼내어 숭앙하기 시작한지 기천년, 또 백여년 사이 급기야 제거 대상의 물목에 오른 지금 현대인은 수용되고 합일되지 못하는 야만과 내면세계와의 갈등을 겪고 있다.

p.49 편향된 신화는 우리를 현실성 없는 이상에 매달리게 하며 거듭 좌절하게 만든다. 자녀가 자기 아버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버지가 성숙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도 온전한 아버지 이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융 분석가인 매리언 우드먼은 어머니의 어두운 측면을 통합하는 것이 현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진화사적 과업이라 했는데, 아버지의 어두운 면을 통합하는일 또한 이에 버금가는 중요한 숙제로 보인다.

p.208 심리적 위기의 정점인 '영혼의 어두운 밤'은 마치 태양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식과도 같다. 그런데 깜깜할 때야말로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며 비가식적 존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성인기에는 책임이나 성공 같은 '바깥의 빛'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주 과업이라면, 삶의 후반부에는 눈을 안으로 돌려 내면 작업에 매진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사라진 신들은 어디로 갔는가? 야만과 죄를 뒤집어쓴 채 영영 타르타로스의 밑바닥에 봉인되었는가? 여기서 기억해내야 한다. 신탁과 운명을 부정하던 이들의 말로를. 그들은 잠재된 위협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봉인을 강하기에 억눌리는 것이 아니라 억눌렸기에 위험하고 강한 존재가 된다. 현대인에 있어 뜯겨나간 신성의 또다른 이름은 폭력, 중독, 우울과 채워질 길 없는 절망이다.

그리스신화는 명백한 다신론적 세계관이다. 아니, 모든 것이 신이자 신성이다. 갈등도, 모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도.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다채롭게 존재하는 세계야말로 가득한 신성의 증거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사잇길이다. 무턱대고 누를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을 회복하는 길이요 그 안의 자유를 찾는 방법이라 저자는 말한다.

p.112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즉 성과 공격성 혹은 사랑과 전쟁의 구도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몰아내길 원한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찾으려 했다. 하르모니아의 탄생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장 감당하기 어렵고 또 가장 매혹적인 원초적 에너지들이 결합해 두 에너지 사이 균형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진정한 '조화'가 탄생했다.

p.241 이 신은 위협적이다. 그리고 정통의 위협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증상에는 영혼의 호소가 들어 있다. 그림자가 난무하는 지금, 억압과 배제가 아니라 디오니소스 힘을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이 강력한 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야만에서 벗어나 인류가 도약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신의 선물인 풍요의 뿔은 모두를 비옥하게 할, 결코 망각할 수 없는 힘이다.


신화는 분명 오래된 이야기이다. 보편에 기대어 설명하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이성과 논리의 세계의 현시대의 '남성성'에는 남신들의 속성과 그들의 이미지를 통해 참조할 모델을 잃어버린 채 안팎으로 터져나오는 폭력만이 남아있다. 모호함과 감정의 오염을 거부하는 명료한 이성과 논리의 세계는 들끓는 감정과 카타르시스, 부드러움과 유기적 자연의 이미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물리적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인간에 내재된 남성성의 문제다. 신화가 유비하는 인간사, 신들의 세계로 전해지는 인간 내면의 추동과 갈등을 통해 엿보는 억눌린 무의식과 원형 이미지는 다시금 차가운 이성의 세계에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 본질에 가장 가까운 서사의 세계가 그 해답으로 가는 문을 살그머니 열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p.91 취약함과 수치심을 수술하듯 제거하거나 깊숙이 묻어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노력은 상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장애물을 항구적으로 만들 뿐이다. (...) 상처도 결점도 추함도 열등감도 없어 보이는 삶을 원한다는 것, 이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창조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참자기가 되는 길은 있어도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p.252 디오니소스를 몸의 영성이라 했다. 의례를 통해 몸의 감각을 일깨워 신적인 합일에 이르는 것은 신을 경배하기 시작하던 선사시대부터 있어 온 한결같은 인간의 염원이었다. 이를 상실한 우리는 두려움과 열망, 충동과 금기의 반목과 갈등을 각자 내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경험한다. 신화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수록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준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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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코프먼 지음, 조주희 옮김 / 일레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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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타고, 땅을 박차며 새를 본 적이 있는가? 미련도 불평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수십일에 걸쳐 날아가는 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가하면 날개는 그저 장식이거나 숫제 달리지도 않은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은 이 기묘한 생물을 뭉뚱그려 새라고 부른다. 철마다 노래하고 창공을 가로지르며 깃과 부리를 지닌 그들을. 얼음땅에서 적도의 사막까지, 밀림에서 바다까지, 전 지구의 목록을 모두 찾아낼 수 있다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어진 이가 있었다. 그 자신도 방대한 경험과 하늘을 찌르는 명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학계는 경탄했다. 그의 이름은 곧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얼마나 진실이었을까.

p.40 '내게 새로운 것'과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것' 사이에는 큰 도약이 있다. 전자는 배우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후자는 자존심과 경쟁, 심지어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발견의 동기는 순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동기가 없다면 이 책의 이야깃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새가 '과학계에 알려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우리는 '누구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p.317 세상 곳곳으로 탐사를 나서본 자연주의자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의 시선에서 이동이란 얼마나 더디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그 아름다운 비행도 물론이거니와, 이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도 땅으로 내려앉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수년간의 연구로 밝혀진 새들의 이동에 대한 지식은 이런 마법 같은 느낌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경탄하게 만든다.


이 순간에도 산과 물은 죽어가고 있다. 불과 수십년 사이 수많은 종에 인간의 손에 의해 '절멸' 딱지가 붙었다. '생태 복원'은 헛된 희망으로 불릴 뿐이다. 이것은 정해진 미래인가. 되돌릴 수 없는 좌절의 길인가. 저자의 말을 조금 바꾸어 돌려주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그 잔을 깨지기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니 손을 모아 그 경이를 감싸안고 지켜내야 한다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내야만 한다고.

우리 자신의 관찰 대상으로서 '그곳에 놓여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 또한 그것의 일부인 자연을 탐구하는 일의 본질적 어려움은 우리가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과 그를 부정할 수 없음에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데에 기인한다. 더이상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지식과 추정과 '발견'이 쏟아져나오는 지금 오듀본의 일화는 우리에게 오래된 물음을 던진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p.199 눈에 띄는 점은 바로 부유한 (잠재적) 후원자나 영향력 있는 자연주의자, 또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아첨하기 위해, 기존의 솔새를 새롭게 그려내고 이름 붙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처음에는 이런 해석이 너무 냉소적이고 부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듀본의 생애를 깊이 탐구하고 난 지금은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p.364 뉴저지 습지를 떠돌던 수천 마리의 클래퍼뜸부기는 사라졌고, 펜실베이니 아의 모든 나무 위에 떼 지어 앉아 있던 붉은머리딱따구리도 더는 볼 수 없다. 아무리 바람이 좋다 한들 뉴올리언스를 지나가는 수만 마리의 검은 가슴물떼새 비행 행렬도 다시 오지 않는다. 잔은 벌써 절반이나 비어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잔에 남은 것은 여전히 경이롭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다양한 조류라는 보물이 남아 있다.


인간 오듀본은 물론 결함투성이었다. 사기꾼이자 인종주의자였다. 그의 순진한 자의식은 사죄와 성찰이라는 양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와 문명세계의 잘려나간 시야에 자연은 발견되고 발명되었다. 완벽한 과거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있다.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끝이겠습니까? 무엇을, 누구의 이름으로 끝이라 부르겠습니까.

이를 마음 깊이 받아들일 때, 과거의 유산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지혜를 나의 세계에 포섭하는 폭력을 멈추어야 함을 깨달을 때, 사람이 아니라 업적을, 동시에 위대한 업적이 짓밟고 선 자리를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자가 말하는 발견의 기쁨, 새가 온몸으로 가로지르고 누비는 세계의 아름다움, '그를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두는' 길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자. 고요한 외침. 아, 새다.

p.420 오듀본은 노예제 찬성론자, 백인 우월주의자, 과학 사기꾼 등 여러모로 끔찍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그려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중에도,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면이 존재했다. (…) 오듀본은 나에게 영웅도, 롤모델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의 작품까지 버리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p.456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과학적으로 새로운 생물을 발견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각자의 기억에 남는 마법 같은 순간은 자기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기적은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평도서제공: 일레븐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자연사 #탐조 #신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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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다리의 기적 - 인종, 인체, 그리고 법 정신에 관한 노트
퍼트리샤 J. 윌리엄스 지음, 박광호 옮김 / 징검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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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기다린 책. 응원과 사랑을 껴안고 드디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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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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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살인자. 그가 지나간 자리엔 피와 죽음의 현장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단서도, 동기도, 하다못해 꼬리를 감추려는 최소한의 노력까지도! 뒤늦은 경찰과 평범한 이들의 몫은 고작 분통을 터트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다.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 탕, 탕. 그리고는, 끝. 동정도 대의도 필요치 않다.

그는 뭐랄까, 그래, 사람이라기보단 뱀이다. 어둠 속에 도사린 뱀, 소리 없이 다가와 아가리를 쩍 벌려 집어삼키는 포식자. 잠시 눈을 돌려보자. 한 여자가 지나간다. 늙고, 뚱뚱하고, 썩 온순하다고 볼 수는 없는, 대단한 재산도 없이 그저 개 하나 끌어안고 그저그런 나날을 반복하는. 조심하라. 눈 깜빡할 사이에 사타구니에 그야말로 주먹만한 구멍을 내줄테니. 깔끔하게 한 발 더. 그것만이 유일한 자비일 뿐.

p.37 마틸드가 작업을 하면, 한 발도 총알이 빗나가는 법이 없고, 아무 문제 없이 깨끗하게 일이 처리된다. 그러나 이날 저녁은 예외였다.

p.151 이 살인자 뱀은 필요성이 있을 때에만 움직일 것이다. 놈은 교활하고도 강력한 파충류이다. (...) 이 대문자 뱀은 희한한 습성을 가지고 있으니, 사타구니에 들끓는 조그만 뱀들에 특별한 혐오를 느끼며, 거기에다 독을 내뿜기 때문이다. 놈은 작은 뱀들을 싫어하는 커다란 뱀이다. 당신의 이마 한가운데 총알을 박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당신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당신의 무게 중심에다 총알 두 발을 쏘는 진짜배기인 것이다.


63세, 과부, 예술 및 문학 기사 훈장 서훈,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훈장 서훈…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평범, 아니, 모범에 가까운 그의 안락한 일상에 가장 큰 걸림돌은 비밀스러운 이면도, 고독도 아니다. 의뢰는 처리하면 그만, 대단한 의미조차 필요치 않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깜빡이는 기억력이다. 바늘틈 하나 없는 냉철함에 균열을 내는… 아이구, 참. 나이도!

그 자신조차도 의심없이 뒤바꾸고 흘려버리는 기억 탓에 이야기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이 내달린다. 확신은 누구의 것인가. 평생의 동지도, 죄 없는 목격자도 필요하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제거'해버리는 그들? 기름진 부스러기를 털어대며 거드럭대는 경찰? 모순적이게도 그들 자신은 의문하지 않는다. 당혹에 빠지는 건 독자 뿐이다. 어느순간 정의와 명분 따위는 내던지고 사악한 공모의 웃음을 짓는 스스로를 발견하리라.

p.114 내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야. 아냐, 기억력이 없어진 것은 아니야… 저녁이 되고, 밤이 된다. 그녀는 잠이 들었다가, 파리의 기념물들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에서 깨어난다. 전화 부스들의 리스트를 옆에다 적어 놓았지만,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p.338 떠나기 전에 그를 찾아가서 분명히 따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아무것도 요구한 일이 없는 뤼도 같은 불쌍한 개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그녀의 정의감과 너무나 어긋난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일이면 생각나리라.


마틸드의 후련한 은퇴를 목전에 둔 우리 '목격자들'은 기대와 함께 부풀어오르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할것이다. 과연 누가 그를 '단죄'할까? 허물어지는 기억, 느슨해지는 연결고리에도 흔들림 없는 솜씨를 지닌 이 총잡이의 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여기서 작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나 한치 없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다시금 허를 찌른다.

이 이야기는 무언가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잔인한 쾌감과 지독히도 기능적인 폭력만이 있을 뿐. 몹시도 사악하다. 대문자 뱀처럼, 매혹적인 냉소. 의심하라, 모든 것을. 경계하라, 흔들리는 눈을. 두려워하라. 어둠속에 형형히 도사린 대문자 뱀. 도망칠 수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삼켜버릴 심연에서. 그리고, 탕.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p.230 선생은 멍하니 반장을 바라보지만, 자신은 다른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느낀다. 강렬한 감정, 분노, 혹은 다른 것을 표현해야 하지, 이렇게 초점 없는 눈으로 상대방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땅콩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이 뚱뚱한 반장은 똑같은 질문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 같다. 만일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곧 사회 복지사들이 들이닥칠 거야…

p.329 그날 여기에 왔던 사람이 바로 이 여자다. 이 여자가 테비와 르네를 죽였다. 경찰에 전화해서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로부터 한 15분이나 지났을까, 선생은 그 종이를 발견 하지만, 그게 무엇에 관한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서평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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