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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스스로를 어째 평생을 가도 취향이라고 할만한 내용이 하나같이 애매한 방향으로 희한하게 생겨먹은 탓에 영화도, 배우도 메이저한 선에서 스몰토크라고 꺼내기 애매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뭐랄까, 세월의 향수 같은 이름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마음 한켠에 차오르는 슬픔, 그래, 차라리 애수라고 해도 좋을 그런 이름들. 알음알음 돌려 보던 비디오 속 영화는 불룩한 화면에 스치는 얼룩지고 흐릿한 조명들, 음울과 권태로 꽉 눌린 청춘과 불온하고 위태한 장면들로 기억된다. 클리셰임을 부정할 수 없는 판에 박힌 줄거리와 끈덕지게 따라붙던 뒷맛들과 함께.
p.10 그 감정을 자신의 절대적인 눈빛 속에 가둔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가장 큰 미덕은, 연기에서 과잉의 그림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작품 속 인물과 관객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큰 소리로 불러서 돌아보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먼저 다가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느긋하게 지켜보고 기다린다.
p.139 "넌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그는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다. 춥더라도 적어도 빛은 볼 수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이처럼 〈첩혈속집〉의 양조위는 1997년 반환을 앞둔 불안한 미래 앞에서, 희망 없이 떠도는 홍콩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편린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몰라. 그저 양조위였을 뿐. 곧은 눈썹 아래 무구하고 순한 눈매가 꼭 어린 강아지같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누구도 상처입힐 수 없는 눈동자라고 생각했다. 배역을 떠나 사람이 그럴 거라고. 어리고, 순한, 둥그런 반복. 홍안의 양조위를,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뭐랄까, 그에게는 꼭, 더럽혀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런 얼굴에 이유 없는 악함을 부여한다는 건 어쩐지 모욕처럼 느껴질 만큼. 어느 세계에서든 그 얼굴을 믿어버리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처럼. 수줍고 깊고 외로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남자... 라는 생각에 몇 번을 속아넘어갔던가. 젠장. 가만 되짚어보면 그 손은 결코 희고 보드라운 적이 없었을텐데!
p.204 "유덕화는 배역과 끝없이 경쟁하고, 양조위는 배역과 쉽게 사랑에 빠지고, 장국영은 배역을 유혹한다." 경쟁하는 유덕화에게는 불가능한 장면이고, 유혹하는 장국영에게는 비누와 수건이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기에 역시 불가능하다. 오직 양조위만이 관객을 야윈 비누의 자리에 두는 마법을 발휘하며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양조위에게는 고독마저 자랑이 된다.
p.226 비교해볼수록 장국영과 유덕화처럼 세상 투명한 배우가 또 어디 있나 싶다. 그런데 유독 양조위만은 다르게 읽힌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단순히 '사려 깊고 착해 보인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매번 알면서도 양조위라는 인간에게 속고 마는 것일까.
밉지 않은 배신감은 접어두기로 하고, 그의 이름과 거의 언제나 붙어다니던 감독들의 이름을 꼽아본다. 예를 들면, 이쯤 되면 거의 세트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왕가위랄지. 어렵잖게 그릴 수 있는 양조위의 필모그래피는 곧 그가 해석한 세계를 그려낸 아들이 바라본 사회와도 촘촘히 엮여 있다. 그것이 곧 역사가 아닌가.
저자는 신통기... 홍통기? 를 도열하는 대신 생애부터 작품세계까지, 배우이기 전에 인간, 양조위라는 사람을 통해 말한다. 배우의 존재의의와 그 무게를. 비련과 허무로 뭉뚱그릴 수 없는 그때, 그 사람, 그 곳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p.284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화양연화'라는 제목은 과거 형처럼 들리지만, 공식 영어 제목은 앞서 말한 것처럼 '화양연화'를 고스란히 영어로 옮긴 'The Most Beautiful Day in Life'가 아니라, 지극히 현재적 느낌의 〈In the Mood for Love〉다.
p.285 말하자면 왕가위는 그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미 1997년 이후일지도 모를 미래의 시간을 보여준 것이다. 주 선생의 평행우주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처럼 양조위는 '왕가위의 시간'에서 모든 시간대를 산 유일한 배우라는 것을 넘어, 왕가위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서 살아가는 배우가 되었다.
배우로서 '시대를 풍미했다'는 말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2027년을 코앞에 둔 지금,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날 배우 양조위와 그의 세계는 그리움일까, 절망일까. 아니면, 연약한 향수에 그치게 될까. 어쩌면 그의 세대가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홍콩배우일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었을지도.
사랑이 아닌지라, 만 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내년부로 끝맺어질 홍콩의 그 때를 기억하는지, 더는 묻지 못하게 될 날도 머지 않았겠지. 그저 한가지 확실한 건, 이 수줍고 과묵한 남자에의 애정에 불이 붙어버렸다는 것이다. 스크린 안팎, 배우 양조위와 인간 양조위 모두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러니 애수와 찬탄을 담아 오래도록 말해주기를. 아, 양조위, 그야말로 진짜배기였지.
p.387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인간 양조위'는 '배우 양조위'와 다르지 않다. 이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한 이가 왕가위 감독이다. 말하려다 멈추고, 다가가려다 돌아서며, 사랑한다 외치는 대신 끝내 침묵하는 영화 속 양조위는 실제 그의 내면을 스크린에 투영한 결과다.
p.398 〈동사서독〉에서 일거리를 찾아 매일 자신을 찾아 오는 맹무살수를 두고, 사막의 인력사무소장 구양봉이 했던 흥미로운 묘사가 떠오른다. "한물간 검객이지만 생활은 규칙적이다. 술 한 잔에 밥 두 그릇. 해질녘에 떠난다." 그처럼 맹무살수, 아니 일거리를 구하지 못했어도 성실하게 다음날을 준비하는 양조위의 규칙적인 일상과 함께라면, 홍콩영화는 결코 저물지 않을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