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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
QNTM 지음, XCninety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10월
평점 :
*서평도서제공: 황금가지
생각해보라. 생각할수록 생각될 수 없는 것을. 생각했으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고, 겪었으나 전해질 수 없는 것을. 한 걸음 나아가, 당신이 바라본 것이, 뇌리를 스친 '그것'이, 당신의 의식을, 차원과 인식의 지평 너머에서 ◼◼하고, ◼◼◼◼ 나머지, 혹은, 본능적으로, ◼◼을 ◼◼한다면, ◼을 찢고, 다가와, 휘감고, ◼◼후에, 자, 지금 당신은, 뭘까.
익숙한 그림처럼 흉측한 몰골의 악의 무리로부터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는 그림자 영웅이 아니라, 연구하고, 수집하며, 패퇴하기를 반복하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도 떠올릴 수도 없는 그런 희한한 집단이 있다. 그들의 업적은, 아니, 존재는 숨겨지며, 지워지고, 잊혀진다.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이해와 통제 너머에 군림한다. 아니, 그렇게 믿어져왔다. 그러나, 핵심과 처절한 무력의 교집합 어딘가에 거하는 '◼'은, 순식간에 ◼◼의 ◼◼과 ◼◼ 그 자체를 ◼◼◼◼◼ 시작하는데…
p.20 "항밈은 전파되지 않는 관념이에요. 항밈성 개체 및 현상은 정보를, 특히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거둬가서 집어삼키죠. (...) 직접 관찰할 수도 있고 눈에도 멀쩡히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해요."
p.336 녀석이 지닌 악의적인 중력이 인간성과 그 모든 인간의 관념을 자기 궤도로 끌어들여 알아볼 수 없도록 왜곡시킨다. 그 아래에서, 그 맥락 안에서 모든 것은 최악의 형태로 타락한다. 기쁨은 복수의 쾌감이 되고 자립심은 병적 유아론이 된다. 사랑은 숨 막히는 폭력이 되고 자부심은 굴욕이 되며 가족은 덫이 되고 안전은 피해망상이 되고 평화는 불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문명은 궁극적으로 혐오로 뒤덮인 폐허가 된다.
우리는 패배했다. 수없이 패배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처참히 ◼◼되고 있다. 우리와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 따위는 존재한 적도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채, 천천히, 완전히 망각되고, 인식과 존재의 세계 바깥으로 내던져진 채 ◼◼◼갈 것이다. ◼◼되었다는 사실조차 ◼◼질 때까지.
◼◼이 인간과 접촉할 수 가능성이 존재하며 인간 존재와 떨어질 수 없이 결부되는 한 그를 피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필연히, 무와 유의 경계가 무용케 들이닥치는 트롤리 레버 앞에, 선로 위에, 차창 너머에 붙박여 끝없이 절망할 운명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발버둥치고 치받기를, 번번이 실패하고 처참히 무너질 줄을 알면서도, 순응과 평화 대신 발악하고 반격하기를 포기할 수 없는가?
p.98 "사람들이 있었어,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기술을 지녔을. 수천 년 전에 존재했을 테고, 어쩌면 수만 년 전이었을까. 정확하게는 몰라.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명하기도 어렵고. 문화적 밈복합체가 치명적으로 피폭당해 버렸으니까, 이 문명의 핵심 문화 개념, 이들이 창조한 존재들, 이들이 무엇을 상징했고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모두 이제는 알 수도, 전파될 수도 없어."
p.342 "우리는 지금껏 어느 때보다도 더 처참하게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비밀 조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 기구 바깥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야. (…) 우리도 결코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지? 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냥 죽는 사람은 없어. 누구도 아무 일 없이, 저절로 죽지는 않아. 죽음에는 원인이 있으니까."
그 답을 찾아 수없이 헤매왔다. 묻고 부딪히고 들이받다 픽 죽어버리기를 반복해왔다.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뼈저리게 무력해지는 지점, 가장 취약하고 또 가장 연약한 곳이 우리의 인간성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눈 뒤편, 뇌 깊숙한 곳, 의식의 심층에 처박아넣는 안식의 손길 대신 등 뒤의 세계를 지키기로 마음먹는, 마주치는 시선에, 다음, 또 다음에 끝없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패배하고, 절망하고, ◼◼◼할 것이다.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망설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끝내 사라지기 전까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완과 미지의 실마리를 붙잡고 일어설 누군가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 이 비합리와 연약함을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하기 때문에, 그의 세계에 '가능성이라는 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말해왔듯 홀로 전능함은 곧 절대적인 무능에 다름아니다. 그러므로, 언젠가의 ◼◼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패배가 아닌 '다음'의 선언을. "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
p.46 리는 컴퓨터로 가서 미지체 항목을 다시 열어 희생자 수에 막대기를 하나 더하고, 지금부터 시도해 볼 방법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자신이 마지막 희생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방법 역시 실패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p.147 애덤은 마리를 믿는다. 마리가 얼마나 빠르게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다시 맞출 수 있는지를 안다. 말도 되지 않는 세계를 상대로 싸우며 진실만을 분리해 낼 수 있다는 것도. 그녀라면 우주 전체를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불안감 하나가 뱃속을 찔러 온다. 애덤은 결국 이 말을 삼키지 못한다. "하지만 지면? (…) 지면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