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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다, 고치다, 지키다 - 학교를 지탱하는 노동의 흔적
희정 지음, 김희지 사진 / 북트리거 / 2025년 10월
평점 :
'선생님'. 특정 직업과 그 종사자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가, 일종의 계급이었다가, 최근에 와서는 보편적인 존칭이 된 그 이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우기 마련이며 그로 인해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이라는 의미를 담은 그 이름, 선생님. 배움의 의미 확장만큼이나 그 터전인 학교의 경계 또한 이전에 비할 수 없이 확장되었다.
좁은 의미로서의 학교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학교는 단순히 교실의 집합이 아니다. 학생과 교사 뿐만 아니라 학교를 이루는 구성원들, 일하는 사람들이 머물고 유지하며 활동하는 모든 공간에 사람이, 일하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모여 학교라는 집합을 이룬다. 동시에, 누군가는 '진짜 선생님'이 아니다. 계약직과 외부협력직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학교 안의 외부인이 된다.
p.6 배움의 공간이라는 학교는 골조를 올리고 기둥을 세우고 창틀을 끼운 실제의 건축물이다. (...) '배우다'라는 말은 '일하다'라는 말을 필요로 한다. 학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p.93 정규 교사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기간제, 방과후, 특기적성, 파견강사 등 다양한 이름을 달고 '바깥 사람'으로 학교를 오간다. 이들을 아우르는 명칭은 '교육활동참여자'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그저 '참여자'라 분류되는 사람들. 그러나 명칭이 무엇이건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다.
각자의 무균실이 충돌하는 요즘, 우리가 만드는 사회는 상처와 경계로 가득한 곳일지 모른다.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모든 위험 요인을 소독하고, 박멸하기를 원하는 사회. 그곳에서 상처와 실패에서 일어설 기회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상처입히고 좌절하는 순간 그대로 추락해버린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공교육의 실패와 무능 따위를. 학교는 일종의 시간 때우기, 입시의 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마저도 실질적인 경쟁력은 사교육에 몰아넣은 채. 우리 사회가 실패한 것은 공교육과 그 제도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실패한 것이 아닐, 배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
p.141 실제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공권력 투입과 CCTV와 같은 통제 시설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학교의 안전을 지키려는 경향은 짙어지고 있다. 반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 노년의 보안관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학교의 안전을 새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됐다. 운동장에 혼자 있는 아이를 유심히 지켜본 이가 건네는 안부야말로 학교를 지키는 일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p.291 그럼에도 계속 실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라는 길에 나 혼자 있지 않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안전은 돌부리를 모두 치워 놓은 평평 한 길이 아니라, 어떤 길이건 함께 가 줄 사람들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갈 순 없지만, 그 상처에 연고를 발라 줄 사람은 있어야 한다. 학교에 그런 이들이 더 많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의 전형적인 집합에서 약간씩 밀려나있는 사람들이다. 입시에 요구되는 교과를 맡지 않기 때문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기 떄문에, 잠깐 쓰이고 금세 갈아치워지는 사람들이다. 선생님이지만 교사는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방법,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그 간단하고 엄정한 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학교는 여전히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교육 기관'이라는 학교의 근원은 줄글로 놓이는 지식에 그치지 않는다.
p.124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정규'의 차이를 배우고, 이것이 단순한 고용 형태를 넘어 사회적지위와 신분의 문제임을 직감한다. 이 감각은, 교단에서 하는 어떤 말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 그럼에도 학교라는 일터에서 배움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전해준 배움이 학교라는 공간을 채운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p.160 우리는 어떤 일을 쉽다고 생각할까? 중요하지 않은 일? 필수적이지 않은 일? 아니다. 바로 우리가 잘 모르는 일이다. 다른 이가 어떤 노동을 하는지 모를 때 그 일이 쉬워 보인다. (...) 멀티플레이어가 되길 요구받는데, 세상은 그 일이 쉽다고만 단정 짓는다. 그러나 다들 내심 알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쉬워 보이는 일이 있을 뿐이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일을 하고 내일을 고민하는 사람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학교 안팎의 학생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갈 사회는 그런 곳이다. 그렇게 자라난 학생들이 좋은 사회인이 되어 나아간 사회가 좋은 곳이 되려면 '태생부터' 좋은 것만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충돌하고 실패하며 고민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좋은 사람을 자꾸자꾸 마주하게 하는 것, 학교는 그런 곳이 되어야한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방해와 다름을 말끔하게 소독한 0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학교로 나아간 모든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살아갈 모든 날에 여전히 좋은 배움이 필요하다. 잘 살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p.290 서로 다른 존재와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학교가 먼저 제초를 하는 건 아닌지. 이런 염려조차 학교가 특정 열매의 수확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풀이 어울려 자라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믿음 때문에 우리는 뿌리 뽑힐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학교에 간다.
p.292 그러니 학교에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인사를 듣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너는 뽑아 버리면 그만인 잡초가 아니라고, "단 한 사람이 필요한" 또 다른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도서제공: 북트리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