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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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것도 허리까지 쌓이는 눈은 여행지에서나 본,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말인즉슨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극한의 추위와 눈보라는 영화에서나 봐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언젠가 이 책을 집어들 미래의 나와 또다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처럼 보라고, 그러는 편이 좋을거라고.

장르에는 문법이 있습니다. 일종의 통용되는 룰처럼요. 예를 들면, 로맨스소설에는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등장한다든지, 서로로 인해 낭만적인-피폐물의 지옥같은 사랑도 아무튼 사랑이긴 하지요?- 순간을 경험한다든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에는 영웅적인 주인공의 괄목할만한 성장과 기적같은 조력자들 같은, 그런 필수아이템들이 아, 이게 이런 장르구나, 하고 작품을 이해하고 몷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제부터 소개할 책인 『내 동생의 무덤』 같은 스릴러에는 등장인물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폐쇄적인 배경이나 사건이 필요합니다. 당연하잖아요? 제일 중요한 용의자나 악당,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밑도끝도 없이 냅다 해외로 가버린다면? 사건의 전말을 독자에게 알려줘야 할 시점에 자기들까리 메시지나 주고받으면서 온갖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판을 짜서 빠져나간다면? 남겨진 독자는 솜사탕 잃은 너구리처럼 나도...! 나도 데려가...! 하며 울부짖을 수 밖에 없다구요. 여기서는 재난을 넘어 재양에 가까운 폭설과 눈폭풍이 그런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해줍니다. 쥐구멍은 이 폭설맨이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구!
책을 읽다보면, 읽기 좋은 책은 그 이유가 대체로 비슷하고 대단치 않지만 읽기 힘든 데에는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요. 이번에는 내내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 감정들이 휘몰아쳐 당장이라도 덮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치만? 절로 코끝을 문지르고 이불을 뒤집어쓰게되는 추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음이 궁금해 책장을 멈출 수 없게 하는 필력이 어우러저 아주 괴로웠어요. 언젠가 작가에게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읽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재주라고 하겠습니다... 용서못해... 그치만 재밌었어요 또 써주세요 차기작 언제 나오지요?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가 있고 제각기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겠지만 과연 서로를 완벽하게 아는 사이가 있을까요? 평생을 함께해온 가족? 마찬가지로 나고 자란 마을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맞댔던 이웃들? 당신은 그들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나요? 만일, 내 가족이 죽었는데, 살해당했는데, 믿고싶지 않았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나는 그 애를 반평생 찾아왔는데. 범인으로 지목된 자가 그 과정도 이유도 여전히 미심쩍다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찾아간 고향의 이웃은 어딘가 의심스럽고 나를 적대하는 것만 같다면? 게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까지도?
한치앞도 모르는 눈보라속에서는 길을 잃기가 쉽지요. 엉뚱한 길로 가기도, 제자리에서 맴돌다 파묻히기도, 제대로 나아가는 줆로 알았지만 실은 죽을 길을 찾아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지와 작중배경, 주인공 트레이시가 처한 상황을 폭설로 엮어낸 작가의 솜씨가 아주 놀랍습니다. 막다른 곳에서 길잃은 자의 절망이란, 아물지 못한 상처를 비밀로 후벼가며 끌어안고 사는 마음이란 대체 얼만큼의 무게로 삶을 짓누르는 걸까요.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스릴러입니다. 법정스릴러, 추리소설. 거칠고 축축하고 진창같은 피로에 절어버린 등장인물과 마찬가지로 앞서 말한 것처럼 작은 마을의 눈보라, 도망칠 수도, 그래서도 안되는 곳. 숨죽이는 긴장감으로 그치지 않고,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야만 했던,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제목의 "내 동생의 무덤"은 과연 어디일까요.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곳? 평생을 담고 살아왔던 주인공과 아버지, 동생 세라를 사랑했던 이들의 마음? 아니면 누구도 몰랐던, 아이처럼 웅크려 파묻힌 그 곳? 어디로 읽어내느냐에 따라 각자가 생각하는 장르가 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을 에이는 바람에 쏟아질 것만 같은 구름이 몰려오고 세상이 눈으로 덮여 숨죽이는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긴 겨울밤을 함께할, 페이지터너. 로버트 두고니의 『내 동생의 무덤』입니다.

좋은 책을 함께할 기회를 주신 출판사 비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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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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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초판이 2007년이니 꼬박 11년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나 다시 읽어보는 책이다. 초판본은 표지가 무서워 사질 못했는데, 그게 두고두고 후회될만큼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얼마나 사랑했는지 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것이다. 내 청소년기 독서 생활의 3분의 1 정도는 온다 리쿠에게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번역된 작품 중 그 때 읽었던 것들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나머지 3분의 1은 철학과 미야베 미유키에 빚지고 있다. 개중 후자는 온다와 미야베 세계를 냉탕 온탕처럼 오가며 흠뻑 젖는 즐거움에 빠졌던 데에 큰 공이 있으니 두 작가가 내 어린날을 기둥처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런지.
화려한 표지를 지나 첫장을 넘기며 오랜만에 든 생각. 아. 이 양반 불친절의 끝을 달리는 작가였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구나. 처음부터 화자와 청자가 불분명하다. 소설에는 독백이라 할지라도 독자라는 청중이 있다. 여기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풀어놓는 조각들을 움켜쥐고 맞춰가며 결말에 이르러서야 아! 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작중 화자들의 시간도 제각각, 배경도 제각각, 내용도 제각각. 쓰는 동안 고생한 만큼 읽는 것도 고생 좀 해보라는 건가. 묘하게 분통터졌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날의 기분을 제공해주신 약 11년전의 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땡큐.

갑작스럽지만,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캐릭터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이 소설의 첫 화자에게 흥미를 느꼈습니다.(feat. ARuFa)
앞서 말한 불친절의 끝을 달리는 서술 방식은 온다 리쿠의 개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아련하게 흐려진 기억처럼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작품의 맛을 즐기라는 배려이리라. 시간이 흘러 얼기설기 미화되고 때로는 단단히 봉하고 싶을 만큼 두려운 기억의 조각들과, 파편화된 진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불안. 늦여름같다... 분명 완연한 겨울 날씨에 솜이불을 둘렀건만 코끝을 스치는 물비린내, 숨막히는 구름의 습기가 느껴진다. 뒤이어 등장하는 화자들도 간간이 던져주는 힌트를 제외하면 관계나 정체를 유추하는 데 다소 품이 든다. 여러모로 에너지를 요하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아. 하는 탄식만을 남기고 가물거리며 흐려지는 장면에... 흠뻑 젖어 쓰러지길 바란다. 코끝을 스치는 백일홍의 향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 바람에, 고요한 푸른 방과 창백하고 나른한 목소리에 취해.
노스탤지어가 무엇인지 첫맛을 보여준 작품, 해묵은 악의가 빚어내는 참극을 헤집는 마음을 가늠해보게 한 작품, 어쩐지 예스러운 단어들이 퍽 잘 어울려 그마저도 즐거운 작품.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늦여름을 그리는 마음으로.


덧붙여.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모로 떠올랐던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해둡니다.
1. 『여름의 마지막 장미』
2. 『달의 뒷면』 , 『어제의 세계』
3. 『몽위』(p.324)
4. 『코끼리와 귀울음』
5. 『여섯번째 사요코』, 『흑과 다의 환상』, 『삼월은 붉은 구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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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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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이라니! 여름이 지난 이 시점에 괴담이라니! 반갑지 않을 리가! 습습한 열대야만큼이나 조여오는 공포와 그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에 걸맞은 계절이 바로 겨울 아니던가!
개별 작품이 우로보로스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로 하나의 책을 이룬다. 그렇다고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위한 전초전일 뿐인 건 또 아니라, 연작과 메타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뿐만 아니라 하루에 한 편씩, 궤를 달리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보는 것도 좋겠다.(84일까지는 아니겠지만. 혹시 아나. 84일을 목표로 한다면 젓가락님 대신 책갈피님이 나타나실지.) 첫 편을 제외하면 순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읽어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지만, 가능한 순서대로 읽는 편이 단서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 몰입하기에 좋다.
단편집이되 단편집 같지가 않다. 앨범같기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독특하고 실험적인 책이라는 말로 아쉬운 마음을 뭉뚱그릴 수 밖에. 괴담이라는 익숙한 장르에서 이렇게까지 참신한 구조를 뽑아낸 기획자의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084 괴담 네버 다이.

지난 SF 후기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호러 역시 현실을 다루는 장르다. 물론 내가 만든 말이지만. 초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반대로 현실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장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이 단편집 아닌 단편집은 여러 작가가 젓가락과 "이것"(을 찾아내시는 분께 칭찬의 박수를 드립니다. 짝짝짝.)을 매개로 써내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넘나들며 풀어놓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홀라당 까먹고 다시 읽을 미래의 나를 포함해 읽을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내용은 생략하고. 아래에 수록작 별로 간단한 감상을 달아둔다.

덤. 얼마 전에 sns에서 반가운 이미지를 봤다.밥에 젓가락을 세워 꽂는 게 제삿밥 내지는 부정한 행동으로 인식되는건 동아시아 문화권의 통념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던가... 표지를 보라. 벌써부터 재수가 없다. 욕이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저러고 있는걸 보였다가는 당장에 여기저기서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재수없게 그런 짓을 하냐고.(젯밥이냐? 는 덤이다.) 부정한 것은 죽은 이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경계에 대해 생각하며 읽어보자. 재미가 두 배.

1. 마쓰다 신조 「젓가락님」
가장 일본스럽고 호러소설이라는 정의에 잘 들어맞는 작품. 도시전설의 공포와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인한 공포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 아닐까? 공포의 대상은 고립과 억압의 대상과 같거나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저주가 괜히 있겠는가. 사회에서 용인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정당한 방어와 공격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저주의 실행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고립과 궁지에 몰린 간절함이 만들어 내는 공포를 즐겨보자. 뒷 내용을 생각하지 말고 푹 빠져 읽는 것을 추천.

2. 쉐시쓰 「산호 뼈」
괴담, 공포는 사회적 장르다. 공포 혹은 증오의 대상으로 지적되는 것에 함축된 억압과 사회역동을 얼마나, 어떻게 녹여내는 지가 단순한 이야깃거리와 문학을 가르는 지점이 아닐까.
산호 뼈? 제목만 봐서는 알듯말듯하다. 바다의 나무처럼 보이는 산호가 사실은 동물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막상 뼈라고 하니 묘한 기분이다. 오래된 고목을 베었더니 피가 솟아나왔다는 민담처럼. 창백하고 조용한, 묘하게 주변과 유리된 인상을 주는 소년이 걸고 다니는 젓가락에는, 그 안에 깃든 신에게는 무슨 힘이 있길래 온 집안이 나서 섬기는걸까. 비단 가족뿐만이 아니라 어느 집단이든 성원 전체가 경원하며 복종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건강이나 행복과는 묘한 거리를 두게 된다. 소년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소년의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잘 기억해두세요. 마지막까지.
앞선 수록작보다는 좀더 집착, 절망으로 빚은 아동학대의 말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삶을 찾아나가려는 두 주인공의 노력을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 "수수께끼"까지.

3. 에터우쯔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얘기하라면 일주일은 너끈히 침 튀기며 화낼 수 있는 주제가 나왔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난립하는 인기몰이용 개인방송과 찌라시. 초현실과 현실을 묘하게 뒤섞어놓은 전개와 마지막의 묵직한 한 방이 매력적이면서도 오해와 악의가 불러오는 죽음과 복수, 선망의 대상이 추락했을 때 대중이 보이는 반응에 대한 지적이 돋보인다. 현대 중화권(으로 묶이는) 이슈에 밝다면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묘한 긴장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작품까지 세계관과 등장인물 간 관계를 잘 기억해두기를 바랍니다. 두 배로 재밌어요. 덤으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초지일관 누군가를 절대 악역으로 몰아갈 수 있다면? 축하합니다. 당신도 똑같은 사람.

4. 샤오샹선 「악어 꿈」
이걸 액자식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작품만 묘하게 시대가 다른 것 같다 싶더라니, 과연 옳았다. 현대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보다 풍부하게 그려볼 수 있는 시대적 배경에서 펼쳐지는, 속삭임인지 저주인지 고백인지 모호한 문체가 아주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무섭다기보단 슬프고 서러운 느낌이었으니 언젠가 이 작품을 기반으로 동북아권 여성주의 문학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도 좋겠다. 여러 부분에서 너무나도 참혹해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가 없고 익히 아는 역겨움에 입매를 비틀지 않을 수가 없으니..
앞선 네 작품을 하나로 묶는 듯한 내용인만큼, 여기서 등장하는 문장이 이 소설집 전체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규칙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특히 권력관계를 반영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는 각 관계에 따라 변하죠."(p.334)

5. 찬호께이 「해시노어」
솔직히, 초반부에는 이게 해제인지 수록작인지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었다. 인물과 중심 소재인 젓가락과 저주, "이것"으로 소설 전체가 연결되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앞선 네 작품이 호러에 가까웠다면 이번 수록작은 좀 더 뭐랄까. 도시 활극에 가까운 느낌이다. 손에 땀을 쥐는 마음으로 읽는 것을 추천하다는 뜻이지요. 수록 순서대로 작품 4와 작품 2, 1이, 작품 5와 작품4, 3이 연결된다는 작은 힌트를 선물처럼 남기겠습니다.
다만 이 좀… 그… 도덕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 순간은 있었네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으니 저자가 쓰고 출판부가 냈겠지만 청소년과 성인이라니요...? 내가 너무... 좀...? 그걸 제외한다면 찬호께이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힘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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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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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고 쓰는 개인적 후기입니다

기레기, 권력의 개, 파파라치... 현대의 언론을 수식하는 말들이 화려하기도 하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게 거짓말에 혐오선동에, 이게 언론사인지 공작교실인지 모를 오려붙이기 아니던가. 언제부터 언론에게 올바른 정보전달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사기만 치지 말라고 두 손 모아 빌게 되었는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언론이 된 건지.
이런 시대에 언론인, 이제는 원로-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가?-라고 불릴 때도 된 손석희의 에세이라니. 웃을 일인지 울 일인지 모르겠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손석희가 사장으로 있는 모 방송국은 똥을 싸고 있고...!(미안합니다. 그치만? 니들이 먼저?) 그래도 읽었으니 기록은 남겨두어야겠고, 이 글을 읽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누군가들이 이해심을 갖고 함께 괴로워해 줄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난과 역경의 민족.
이러나 저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언론계에서 뼈가 굵은, 몇 안 되게 점잖은 언론인이라 그런지. 머리말이 아주 인상깊다. 이대로 언론이 그저 자본의 홍보지, 권력의 공작수단 이상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냐는 우려에 충분히 답하고 있으니.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손석희 본인이 언론인으로서 겪었던 사건들, 뉴스들,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뒷이야기들을 떠올려볼 수 있다. 언론인이자 방송 이면의 사람 손석희의 이야기를. 그치만 가볍게는 아니고. 무겁게. 묵직하게. 다음에 읽을 나야. 무겁단다. 기억하렴.

에세이긴 하지만 직업 특성상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전국을 들썩이게 하고 수많은 이들의 공분을 이끌어냈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부끄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내심 나는 이것들을 지나간 일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화면 너머의 일이라고 거리를 두었던 그 때 그 방관자의 위치에서 조금도 변한 게 없구나. 아마 이 책의 사건들을 몰랐던 이는 적게나마 있을지 몰라도 알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심이 없는 사람이리라.
에세이지만 에세이가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일 수 없는 사건을 이야기하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잊혀지는 것은... 힘이 없다. 힘이 없어 잊혀지기도, 잊혀지면서 힘을 잃기도, 힘을 빼앗기 위해 잊혀지기도 한다. 수록된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명확해지기도 한다. 결국은 그 모든 "장면들"을 통해 독자는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이후로 우리는 달라졌는가.' 라고.

한 시인은 홀로 남아있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정호승, 「새벽편지」) 변하는 이도, 변하지 않는 이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겠지. 살아남기 급급해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에서.
p.27 "선배,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마십쇼."
그에게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는 건 그때까지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변한 다음 비난받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잘 못 변한다.'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가. 대중은 물어야 한다. 기자가 기레기로 불릴 때, 언론이 권력의 손아 귀에 붙들려 사람을 기삿거리로 만들 때, 그 때야말로 대중은 물어야 한다.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가. 권력을 향해야 할 언론이 칼자루를 거꾸로 쥐었을 때, 대중은 무엇을 요구하고 경계해야 하는가? 이 책은 만능이 아니고, 답을 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언젠가 좀 더 삶의 경험이 쌓였을 때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훗날의 나에게,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수많은 진심을 한 문장으로 남긴다.
p.325 "한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한놈만..."

덤. 생각해보자.
언론인이 유명인이 되어, 정치인과 자본가, 주변인이 유명인이 되어 인신공격의 타겟이 되어 마땅하다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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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수록 풍요롭다 -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지음, 김현우.민정희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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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후기에, 또 소개에 저자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는 건 저자의 배경이나 그가 갖는 속성에 편견을 갖지 않고 내용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미래의 나도, 내 소개를 읽고 어떤 책일까 고민할 누군가도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저자 소개를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주제에 당사자성을 갖거나, 흔히 "주류"로 분류되지 않는 집단에 속할 때, 저자 자신의 속성을 빼놓고는 저작의 의미를 충분히 되새길 수 없을 때가 그러하다. 이 책도 그렇다.
저자는 경제인류학자다. 에스와티니(구 스와질란드)출신이며 국제불평등연구소 방문 선임연구원이다. 저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역자다. 살펴보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기획위원이며 탈핵신문 운영위원장 하나,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이자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이사 하나, 이렇게 두 명이다. 『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제목까지 곁들이면, 짠. 감이 잡히는가? 표지의 치솟는 그래프, 나란히 선 굴뚝과 그 옆의 달팽이. 내용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쯤되면 모른다고 하는 쪽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경고를, 재난을, 뻔히 보이는 착취를 안간힘을 써가며 묵인하고 동조하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무엇을 경고하고 촉구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 책에 관심이 있어 집어드는 이 중에서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솔직해지자. 이제는 부끄러워할 시간이다. 무한성장에 대한 광신과 환경오염 담론은 잠깐의 괴담으로 취급할 이야기가 아니다. 어렸을 적 그리던 과학상상화(요즘은 이런 말 안 하나요?)의 눈물짓는 지구, 스모그로 뒤덮인 하늘, 오염된 땅과 물로 죽어가는 생명들은 더이상 상상도, 미래도 아니다. 눈물이 난다. 과장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크레파스 쥐고 그릴 때만 해도 저런 광경은 디스토피아였다. 위험하다, 심각하다 하지만 어쨌든 하늘은 맑고 다큐멘터리 속 밀림은 울창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강물에 오수를 쏟아붓는 사람, 검은 굴뚝에서 치솟는 연기를 본 적이 없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도 않았다.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것처럼 악독한 사람은 먼 이야기라고,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거라고 다짐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렇게 되었다. 내가 살아오며 누리고 가졌던 것들은, 당연하게 여겨온 생활과 가치는 비명이 절로 나올 만큼 끔찍한 착취와 폭력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길거리가 아닌,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 쓰레기를 쏟아붓는 사람이다. 나는 종부세가 올랐다고 투덜대면서 누군가를 단칸방으로 내몰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이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로 다 죽는다고, 이미 재앙은 시작되었다고 코앞에 들이밀어도 파멸로 달려가나는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태껏 선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족, 친구, 지인과 나라, 나의 세상은 공범이자 동조자, 방관자, 쉽게 말해 가해자다. 동화로는 어림도 없는, 명실상부한 악당이다. 이 책을, 이 책의 내용을 당장 오늘의 재난이 아니라 편안한 집에 앉아 생각해보았다는 점에서 뭐라고 둘러댈 방도도 없이 쓰레기는 남의 집에, 그 집을 폭염과 바닷물, 독성물질에 집어던져놓고 세계는 너무 더러워요! 이제는 환경을 보호해요! 아끼고 나눠요! 하는 구호만으로 지친 하루의 끝을 유튜브로 달래는 사람이다. 이게 악당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선진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대부분은 끝없이 성장하는 경제,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고 소비하는 삶, 철마다 때마다 새로 사야 하는 재화들, 부가 부를 부르는 인생을 당연히 여겨왔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체제를 경험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렇기에 무한 경쟁 체제, 부의 편중, 생의 많은 시간을 임금노동에 쏟아붓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복지를, 사회주의를, 기업의 것이 아닌 노동자와 공동체의 것이 아닌 재화를 깎아내리고 치워버리기를 서슴지않았던 세상에서 살아왔으니, 당신의 그 눈곱만한 소득 정도는 자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당신은 자본가가 아니다, 복지를 줄이면 당신도 타격을 받는다, 생계에 치여 허덕이는 삶은 당연하지 않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와닿지않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다.

"탈성장". 정말 낯설기 짝이 없는 개념이다. 매일같이 보도되는 경제대국, 무역흑자, GDP 수치를 말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을 깎고 청춘을 바치고 연기를 뿜어왔는데,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문제다. 다른 세계를 상상해본 적이 없으니 한계를 깨고 나갈 수 있을 턱이 없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 나의 당연한 풍요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임을, 그 책임은 지금까지 미뤄왔던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지금 당장 해결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하는 것. 그것만이 시작이자 해답이다.
p.33 애초에 생태위기를 낳은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생태 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위기에 관한 한 특히 분명하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주로 기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후변화를 특별히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일상의 경험에서 몇도 정도는 실제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온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기온은 스웨터의 풀어진 올과 같다.

본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서의 자본주의 신화를 논파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고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식민지와 식민경제를 통해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이어서 재활용과 청정에너지로 대표되는 "친환경정책"의 허구와 위선을 비판한다. 만일 경제규모가 커지면 복지정책도 증가할 수 있으므로 현 시점에서의 사회복지망 축소를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눈부신 GDP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게 하자. 소득이 곧 복지는 아니다. 사회 기반 시설과 필수서비스를 사유화하고 자본가의 수익원이 되도록 방치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탈성장과 기본재의 탈상품화가 실업증가를 야기하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구체적인 사례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1부에서 현재까지의 문제를 제시하고 비판했다면, 2부는 방법론과 가능성의 미래를 고민한다. 소제목 "포스트 자본주의의 상상"(p.320, "포스트 자본주의의 윤리"(p.370)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1부의 끔찍한 실태와 신랄한 비판을 지나 2부에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노라면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1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정확히는 탈성장 책임이 있는 국가의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과연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폭압에 저항해 새로운 미래로 가는 것이, 그리하여 덜 해로워지는 길이 가능하긴 한 걸까?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언행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런다고 해서 멈추는가. 누가 그에게, 각자의 길은 다르더라도 모두의 생존이라는 뜻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변절을 종용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부끄러워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이다. 아무리 작금의 위기가 먼 이야기로 들릴지라도, 무서워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우리에게 남은 길은 공멸 또는 변화뿐이다.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논리가 없이 그저 부정만 하는 것은 논쟁에서 지려고 작정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반성에서 미래가 나온다. 지금이 더는 미룰 수 없는 바로 그 때이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제목의 의미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 길에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그렇게 소개하고 싶다.

끝으로, 좋아요! 포인트를 덧붙여둡니다. 성장주의 전략의 폐기, 탈성장 경제 도모하기, 소유의 제한과 현재를 소중히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칫 종교와 개인의 내적 인식에 한정될 수 있는 주제를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한 점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비트코인, NFT 등 가상재화 열풍이 몰아치고, 가상가치를 위시한 기술과 산업의 급성장이 환경과 경제에 미치는 위험성을 지적할 논거를 제공합니다. 이 책에서 그치지 않고 관련된 도서나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의 문제는 아니지만, 구속복을 설명하는 주석(p.142)에 "미치광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구속복은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위험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참고하여 차후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 또한 1부에는 저자가 철학 개념을 이용해 성장중심주의 사고를 지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인용된 철학자와 개념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저술과 체계 전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스벤 베커트 저, 김지혜 역, 『면화의 제국』(휴머니스트)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저, 노승영 역, 『시간과 물에 대하여』(북하우스)
얼 C. 엘리스 저, 김용진· 박범순 역, 『인류세』(교유서가)
수나우라 테일러 저, 이마즈 유리·장한길 역,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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