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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고 쓰는 개인적 후기입니다
기레기, 권력의 개, 파파라치... 현대의 언론을 수식하는 말들이 화려하기도 하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게 거짓말에 혐오선동에, 이게 언론사인지 공작교실인지 모를 오려붙이기 아니던가. 언제부터 언론에게 올바른 정보전달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사기만 치지 말라고 두 손 모아 빌게 되었는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언론이 된 건지.
이런 시대에 언론인, 이제는 원로-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가?-라고 불릴 때도 된 손석희의 에세이라니. 웃을 일인지 울 일인지 모르겠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손석희가 사장으로 있는 모 방송국은 똥을 싸고 있고...!(미안합니다. 그치만? 니들이 먼저?) 그래도 읽었으니 기록은 남겨두어야겠고, 이 글을 읽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누군가들이 이해심을 갖고 함께 괴로워해 줄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난과 역경의 민족.
이러나 저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언론계에서 뼈가 굵은, 몇 안 되게 점잖은 언론인이라 그런지. 머리말이 아주 인상깊다. 이대로 언론이 그저 자본의 홍보지, 권력의 공작수단 이상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냐는 우려에 충분히 답하고 있으니.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손석희 본인이 언론인으로서 겪었던 사건들, 뉴스들,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뒷이야기들을 떠올려볼 수 있다. 언론인이자 방송 이면의 사람 손석희의 이야기를. 그치만 가볍게는 아니고. 무겁게. 묵직하게. 다음에 읽을 나야. 무겁단다. 기억하렴.
에세이긴 하지만 직업 특성상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전국을 들썩이게 하고 수많은 이들의 공분을 이끌어냈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부끄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내심 나는 이것들을 지나간 일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화면 너머의 일이라고 거리를 두었던 그 때 그 방관자의 위치에서 조금도 변한 게 없구나. 아마 이 책의 사건들을 몰랐던 이는 적게나마 있을지 몰라도 알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심이 없는 사람이리라.
에세이지만 에세이가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일 수 없는 사건을 이야기하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잊혀지는 것은... 힘이 없다. 힘이 없어 잊혀지기도, 잊혀지면서 힘을 잃기도, 힘을 빼앗기 위해 잊혀지기도 한다. 수록된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명확해지기도 한다. 결국은 그 모든 "장면들"을 통해 독자는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이후로 우리는 달라졌는가.' 라고.
한 시인은 홀로 남아있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정호승, 「새벽편지」) 변하는 이도, 변하지 않는 이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겠지. 살아남기 급급해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에서.
p.27 "선배,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마십쇼."
그에게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는 건 그때까지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변한 다음 비난받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잘 못 변한다.'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가. 대중은 물어야 한다. 기자가 기레기로 불릴 때, 언론이 권력의 손아 귀에 붙들려 사람을 기삿거리로 만들 때, 그 때야말로 대중은 물어야 한다.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가. 권력을 향해야 할 언론이 칼자루를 거꾸로 쥐었을 때, 대중은 무엇을 요구하고 경계해야 하는가? 이 책은 만능이 아니고, 답을 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언젠가 좀 더 삶의 경험이 쌓였을 때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훗날의 나에게,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수많은 진심을 한 문장으로 남긴다.
p.325 "한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한놈만..."
덤. 생각해보자.
언론인이 유명인이 되어, 정치인과 자본가, 주변인이 유명인이 되어 인신공격의 타겟이 되어 마땅하다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