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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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담이라니! 여름이 지난 이 시점에 괴담이라니! 반갑지 않을 리가! 습습한 열대야만큼이나 조여오는 공포와 그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에 걸맞은 계절이 바로 겨울 아니던가!
개별 작품이 우로보로스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로 하나의 책을 이룬다. 그렇다고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위한 전초전일 뿐인 건 또 아니라, 연작과 메타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뿐만 아니라 하루에 한 편씩, 궤를 달리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보는 것도 좋겠다.(84일까지는 아니겠지만. 혹시 아나. 84일을 목표로 한다면 젓가락님 대신 책갈피님이 나타나실지.) 첫 편을 제외하면 순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읽어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지만, 가능한 순서대로 읽는 편이 단서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 몰입하기에 좋다.
단편집이되 단편집 같지가 않다. 앨범같기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독특하고 실험적인 책이라는 말로 아쉬운 마음을 뭉뚱그릴 수 밖에. 괴담이라는 익숙한 장르에서 이렇게까지 참신한 구조를 뽑아낸 기획자의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084 괴담 네버 다이.

지난 SF 후기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호러 역시 현실을 다루는 장르다. 물론 내가 만든 말이지만. 초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반대로 현실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장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이 단편집 아닌 단편집은 여러 작가가 젓가락과 "이것"(을 찾아내시는 분께 칭찬의 박수를 드립니다. 짝짝짝.)을 매개로 써내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넘나들며 풀어놓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홀라당 까먹고 다시 읽을 미래의 나를 포함해 읽을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내용은 생략하고. 아래에 수록작 별로 간단한 감상을 달아둔다.

덤. 얼마 전에 sns에서 반가운 이미지를 봤다.밥에 젓가락을 세워 꽂는 게 제삿밥 내지는 부정한 행동으로 인식되는건 동아시아 문화권의 통념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던가... 표지를 보라. 벌써부터 재수가 없다. 욕이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저러고 있는걸 보였다가는 당장에 여기저기서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재수없게 그런 짓을 하냐고.(젯밥이냐? 는 덤이다.) 부정한 것은 죽은 이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경계에 대해 생각하며 읽어보자. 재미가 두 배.

1. 마쓰다 신조 「젓가락님」
가장 일본스럽고 호러소설이라는 정의에 잘 들어맞는 작품. 도시전설의 공포와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인한 공포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 아닐까? 공포의 대상은 고립과 억압의 대상과 같거나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저주가 괜히 있겠는가. 사회에서 용인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정당한 방어와 공격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저주의 실행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고립과 궁지에 몰린 간절함이 만들어 내는 공포를 즐겨보자. 뒷 내용을 생각하지 말고 푹 빠져 읽는 것을 추천.

2. 쉐시쓰 「산호 뼈」
괴담, 공포는 사회적 장르다. 공포 혹은 증오의 대상으로 지적되는 것에 함축된 억압과 사회역동을 얼마나, 어떻게 녹여내는 지가 단순한 이야깃거리와 문학을 가르는 지점이 아닐까.
산호 뼈? 제목만 봐서는 알듯말듯하다. 바다의 나무처럼 보이는 산호가 사실은 동물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막상 뼈라고 하니 묘한 기분이다. 오래된 고목을 베었더니 피가 솟아나왔다는 민담처럼. 창백하고 조용한, 묘하게 주변과 유리된 인상을 주는 소년이 걸고 다니는 젓가락에는, 그 안에 깃든 신에게는 무슨 힘이 있길래 온 집안이 나서 섬기는걸까. 비단 가족뿐만이 아니라 어느 집단이든 성원 전체가 경원하며 복종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건강이나 행복과는 묘한 거리를 두게 된다. 소년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소년의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잘 기억해두세요. 마지막까지.
앞선 수록작보다는 좀더 집착, 절망으로 빚은 아동학대의 말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삶을 찾아나가려는 두 주인공의 노력을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 "수수께끼"까지.

3. 에터우쯔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얘기하라면 일주일은 너끈히 침 튀기며 화낼 수 있는 주제가 나왔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난립하는 인기몰이용 개인방송과 찌라시. 초현실과 현실을 묘하게 뒤섞어놓은 전개와 마지막의 묵직한 한 방이 매력적이면서도 오해와 악의가 불러오는 죽음과 복수, 선망의 대상이 추락했을 때 대중이 보이는 반응에 대한 지적이 돋보인다. 현대 중화권(으로 묶이는) 이슈에 밝다면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묘한 긴장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작품까지 세계관과 등장인물 간 관계를 잘 기억해두기를 바랍니다. 두 배로 재밌어요. 덤으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초지일관 누군가를 절대 악역으로 몰아갈 수 있다면? 축하합니다. 당신도 똑같은 사람.

4. 샤오샹선 「악어 꿈」
이걸 액자식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작품만 묘하게 시대가 다른 것 같다 싶더라니, 과연 옳았다. 현대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보다 풍부하게 그려볼 수 있는 시대적 배경에서 펼쳐지는, 속삭임인지 저주인지 고백인지 모호한 문체가 아주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무섭다기보단 슬프고 서러운 느낌이었으니 언젠가 이 작품을 기반으로 동북아권 여성주의 문학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도 좋겠다. 여러 부분에서 너무나도 참혹해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가 없고 익히 아는 역겨움에 입매를 비틀지 않을 수가 없으니..
앞선 네 작품을 하나로 묶는 듯한 내용인만큼, 여기서 등장하는 문장이 이 소설집 전체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규칙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특히 권력관계를 반영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는 각 관계에 따라 변하죠."(p.334)

5. 찬호께이 「해시노어」
솔직히, 초반부에는 이게 해제인지 수록작인지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었다. 인물과 중심 소재인 젓가락과 저주, "이것"으로 소설 전체가 연결되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앞선 네 작품이 호러에 가까웠다면 이번 수록작은 좀 더 뭐랄까. 도시 활극에 가까운 느낌이다. 손에 땀을 쥐는 마음으로 읽는 것을 추천하다는 뜻이지요. 수록 순서대로 작품 4와 작품 2, 1이, 작품 5와 작품4, 3이 연결된다는 작은 힌트를 선물처럼 남기겠습니다.
다만 이 좀… 그… 도덕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 순간은 있었네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으니 저자가 쓰고 출판부가 냈겠지만 청소년과 성인이라니요...? 내가 너무... 좀...? 그걸 제외한다면 찬호께이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힘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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