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수록 풍요롭다 -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지음, 김현우.민정희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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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후기에, 또 소개에 저자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는 건 저자의 배경이나 그가 갖는 속성에 편견을 갖지 않고 내용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미래의 나도, 내 소개를 읽고 어떤 책일까 고민할 누군가도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저자 소개를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주제에 당사자성을 갖거나, 흔히 "주류"로 분류되지 않는 집단에 속할 때, 저자 자신의 속성을 빼놓고는 저작의 의미를 충분히 되새길 수 없을 때가 그러하다. 이 책도 그렇다.
저자는 경제인류학자다. 에스와티니(구 스와질란드)출신이며 국제불평등연구소 방문 선임연구원이다. 저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역자다. 살펴보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기획위원이며 탈핵신문 운영위원장 하나,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이자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이사 하나, 이렇게 두 명이다. 『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제목까지 곁들이면, 짠. 감이 잡히는가? 표지의 치솟는 그래프, 나란히 선 굴뚝과 그 옆의 달팽이. 내용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쯤되면 모른다고 하는 쪽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경고를, 재난을, 뻔히 보이는 착취를 안간힘을 써가며 묵인하고 동조하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무엇을 경고하고 촉구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 책에 관심이 있어 집어드는 이 중에서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솔직해지자. 이제는 부끄러워할 시간이다. 무한성장에 대한 광신과 환경오염 담론은 잠깐의 괴담으로 취급할 이야기가 아니다. 어렸을 적 그리던 과학상상화(요즘은 이런 말 안 하나요?)의 눈물짓는 지구, 스모그로 뒤덮인 하늘, 오염된 땅과 물로 죽어가는 생명들은 더이상 상상도, 미래도 아니다. 눈물이 난다. 과장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크레파스 쥐고 그릴 때만 해도 저런 광경은 디스토피아였다. 위험하다, 심각하다 하지만 어쨌든 하늘은 맑고 다큐멘터리 속 밀림은 울창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강물에 오수를 쏟아붓는 사람, 검은 굴뚝에서 치솟는 연기를 본 적이 없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도 않았다.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것처럼 악독한 사람은 먼 이야기라고,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거라고 다짐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렇게 되었다. 내가 살아오며 누리고 가졌던 것들은, 당연하게 여겨온 생활과 가치는 비명이 절로 나올 만큼 끔찍한 착취와 폭력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길거리가 아닌,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 쓰레기를 쏟아붓는 사람이다. 나는 종부세가 올랐다고 투덜대면서 누군가를 단칸방으로 내몰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이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로 다 죽는다고, 이미 재앙은 시작되었다고 코앞에 들이밀어도 파멸로 달려가나는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태껏 선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족, 친구, 지인과 나라, 나의 세상은 공범이자 동조자, 방관자, 쉽게 말해 가해자다. 동화로는 어림도 없는, 명실상부한 악당이다. 이 책을, 이 책의 내용을 당장 오늘의 재난이 아니라 편안한 집에 앉아 생각해보았다는 점에서 뭐라고 둘러댈 방도도 없이 쓰레기는 남의 집에, 그 집을 폭염과 바닷물, 독성물질에 집어던져놓고 세계는 너무 더러워요! 이제는 환경을 보호해요! 아끼고 나눠요! 하는 구호만으로 지친 하루의 끝을 유튜브로 달래는 사람이다. 이게 악당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선진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대부분은 끝없이 성장하는 경제,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고 소비하는 삶, 철마다 때마다 새로 사야 하는 재화들, 부가 부를 부르는 인생을 당연히 여겨왔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체제를 경험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렇기에 무한 경쟁 체제, 부의 편중, 생의 많은 시간을 임금노동에 쏟아붓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복지를, 사회주의를, 기업의 것이 아닌 노동자와 공동체의 것이 아닌 재화를 깎아내리고 치워버리기를 서슴지않았던 세상에서 살아왔으니, 당신의 그 눈곱만한 소득 정도는 자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당신은 자본가가 아니다, 복지를 줄이면 당신도 타격을 받는다, 생계에 치여 허덕이는 삶은 당연하지 않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와닿지않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다.

"탈성장". 정말 낯설기 짝이 없는 개념이다. 매일같이 보도되는 경제대국, 무역흑자, GDP 수치를 말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을 깎고 청춘을 바치고 연기를 뿜어왔는데,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문제다. 다른 세계를 상상해본 적이 없으니 한계를 깨고 나갈 수 있을 턱이 없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 나의 당연한 풍요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임을, 그 책임은 지금까지 미뤄왔던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지금 당장 해결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하는 것. 그것만이 시작이자 해답이다.
p.33 애초에 생태위기를 낳은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생태 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위기에 관한 한 특히 분명하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주로 기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후변화를 특별히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일상의 경험에서 몇도 정도는 실제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온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기온은 스웨터의 풀어진 올과 같다.

본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서의 자본주의 신화를 논파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고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식민지와 식민경제를 통해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이어서 재활용과 청정에너지로 대표되는 "친환경정책"의 허구와 위선을 비판한다. 만일 경제규모가 커지면 복지정책도 증가할 수 있으므로 현 시점에서의 사회복지망 축소를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눈부신 GDP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게 하자. 소득이 곧 복지는 아니다. 사회 기반 시설과 필수서비스를 사유화하고 자본가의 수익원이 되도록 방치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탈성장과 기본재의 탈상품화가 실업증가를 야기하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구체적인 사례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1부에서 현재까지의 문제를 제시하고 비판했다면, 2부는 방법론과 가능성의 미래를 고민한다. 소제목 "포스트 자본주의의 상상"(p.320, "포스트 자본주의의 윤리"(p.370)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1부의 끔찍한 실태와 신랄한 비판을 지나 2부에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노라면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1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정확히는 탈성장 책임이 있는 국가의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과연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폭압에 저항해 새로운 미래로 가는 것이, 그리하여 덜 해로워지는 길이 가능하긴 한 걸까?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언행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런다고 해서 멈추는가. 누가 그에게, 각자의 길은 다르더라도 모두의 생존이라는 뜻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변절을 종용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부끄러워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이다. 아무리 작금의 위기가 먼 이야기로 들릴지라도, 무서워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우리에게 남은 길은 공멸 또는 변화뿐이다.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논리가 없이 그저 부정만 하는 것은 논쟁에서 지려고 작정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반성에서 미래가 나온다. 지금이 더는 미룰 수 없는 바로 그 때이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제목의 의미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 길에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그렇게 소개하고 싶다.

끝으로, 좋아요! 포인트를 덧붙여둡니다. 성장주의 전략의 폐기, 탈성장 경제 도모하기, 소유의 제한과 현재를 소중히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칫 종교와 개인의 내적 인식에 한정될 수 있는 주제를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한 점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비트코인, NFT 등 가상재화 열풍이 몰아치고, 가상가치를 위시한 기술과 산업의 급성장이 환경과 경제에 미치는 위험성을 지적할 논거를 제공합니다. 이 책에서 그치지 않고 관련된 도서나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의 문제는 아니지만, 구속복을 설명하는 주석(p.142)에 "미치광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구속복은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위험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참고하여 차후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 또한 1부에는 저자가 철학 개념을 이용해 성장중심주의 사고를 지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인용된 철학자와 개념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저술과 체계 전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스벤 베커트 저, 김지혜 역, 『면화의 제국』(휴머니스트)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저, 노승영 역, 『시간과 물에 대하여』(북하우스)
얼 C. 엘리스 저, 김용진· 박범순 역, 『인류세』(교유서가)
수나우라 테일러 저, 이마즈 유리·장한길 역,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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