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가 저물도록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 적이 있나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추방된 악몽을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낯선 태양, 영원처럼 늘어지는 순간들. 착란과 공허, 문과 벽을 반복하는 미로는 마치 자가포식의 광경처럼 느껴진다. 주저없이 도래하는 물음들.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몹시도 적대적이고 혼란스럽다. 불안과 침해의 공포가 도처에 널려있으며 인물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헤매고 부딪히다 모든 것을,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초월-무아에 갇혀 박제된다. 충격과 비명, 전율, 환희의 비약.

p.58 남자는 이제 머리를, 진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다. 여자는 공포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연인, 자신이 연인이라고 믿었던 그가, 바로 그 연인이 다른 이들의 세계, 적대적이고 기묘하며 자신이 속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어두운 절망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눈물을 삼키며 여자는 비틀비틀 헛간 밖으로 나왔다.

p.81 남자는 작은 열쇠를 막 꺼낸 참이다. 여자에게 밝게 웃음을 지어 보인 뒤 남자는 돌아서서 여자가 앉아 있는 바로 앞 인도 가장자리에 세워진 커다란 자동차 문에 열쇠를 꽂았다. 남자는 차에 올라타 시가에 불을 붙이고 시동을 걸더니 그곳을 떠난다. 여자는 차를 몰고 도망치는 남자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야기가 그려내는, 아니, 그 자체인 실존적 공포는 거울상이 되어 독자를 덮쳐온다. 곳곳에 도사린 어떤 근원, 아니, 차라리 시원에 가까운 두려움이 끊임없이 일렁인다.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올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헤매고 헤매도 절대 도착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는 독자를, 나는 너를 질서에 편입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어떻게 이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없애려 했을까. 이 이 풍요로운 절망에서 내쳐지는 순간, 그래, 마지막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바로 그 순간. 비명을 지르세요. 아, 안돼! 여기서 끝이랍니다. 문이 닫힌다. 안돼, 안돼!

p.204 놀라운 것은 모두 내게 아무 말도 아무 설명도 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여기에 있나요?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요? 영원히 여기 머물러야 하나요? 여기 오기 전에는 살아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p.210 "우리는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든 걸 준비해드렸습니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제 가도 됩니다. 일어나세요. 출구까지 동행하겠습니다." (...) 주인이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나를 밖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환상과 현실을 과감하고 천연덕스럽게 뒤섞는 서술은 일면 열기에 들뜬 광인 내지는 트랜스 상태와 비슷한 환희와 장광설을 닮았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광기의 표출로만 읽을 수는 없다. 뒤라스의 말처럼 그의 글은 상상도, 꿈도 아니다. 모든 악몽과 불안은 무엇보다도 첨예한 살아냄, 그 기록 자체다.

이 잔인하고 신경질적인 세계는 어째서 이다지도 아름다운가. 속절없이 벌거벗겨지고 나동그라지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소외, 충동, 파괴, 불가해의 무아지경. 처음 읽은 날 밤, 의식의 문턱에서 떠올린 말을 다시 적는다. 나쁜 꿈을 꿀 것 같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지.

p.12 인류는 결함투성이다. 도시도 결함투성이다. 교통수단은 형편없다. 우리가 그것을 놓치거나 그것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몇 순진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이 세계를 떠돈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채.

p.64 드디어 오늘, 내게 벌어질 일들을 일기에 적어두겠다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하면 훗날 그 일들을 정확하게 되짚어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러한 시도는 내 생각을 약간이나마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 이 될 것이다.
오늘은 8월 15일이다. 나는 대합실에 앉아 가본 적은 없지만 직감이 맞다면 아주 아름다울 것이 분명한 어느 나라로 데려가줄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닥다리 같은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당신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인생은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않은 사람, 평생을 바다 위에 산 사람. 천재 피아니스트. 그 자신 또한 음악의 일부였던 남자. 노베첸토.

독백과 이야기, 극과 선율을 오가는 이야기는 짧고 단순하다. 어느날 '나타난' 아기, 노베첸토라 이름 붙여졌고 피아노와 함께 자랐다. 평생을 배에서,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았고,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으며, 마지막까지 바다 위, 그 배에 머물렀다, 고 한다. 그가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p.23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폭탄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진짜로. 어마어마한 다이너마이트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말하자면 긴데... 그는 말했다. "당신에게 좋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당신에겐 아직 희망이 있는 거예요." 그에게는 그런 좋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그 자신이 바로 좋은 이야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p.40 샹들리에와 소파에 닿을락 말락 하며 테이블 사이를 빙빙 돌던 그 순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하는 게 진정 뭔지 깨달았다. 피아노와 우리, 정신 나간 발레리노들이 찰싹 달라붙어 밤의 황금빛 마루 위에서 음울한 왈츠에 맞춰 바다와 춤추고 있던 것이다. 오, 예스.


그는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동시에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았다. 지독한 유한, 혹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마디에서 뻗어나가는 거대한 세계. 그는 갇혀있었는가? 그의 생은 자발적으로 묶인, 88개짜리 유한이었는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잠시 울리다 사라지는 멜로디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에 언뜻 엿보일 뿐이다. 그 배에는 가히 천재라 불리는 남자, 그 자신이 곧 음악과도 같다는 피아니스트가 있다고.

사실 간간이 치고 들어오는 농담에 차라리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이런 순간에 웃기지 좀 말라고. 그러나 삶이 음악이라면, 예측할 수 없는 걸림과 엇박을 자연스레 타고 넘는 유머야말로 재즈의 정수 아닌가? 헤이 피아노! 조명, 큐.

p.67 그는 그렇게 멈춰 서서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는 정면을 응시했고 뭔가를 찾는 듯했다. 그러다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모자를 벗어서 사다리 계단의 난간 밖으로 손을 뻗고는 그대로 떨어뜨렸다. 지친 새 같기도 하고 날개 달린 푸른색 오믈렛 같기도 했다. 공중에서 빙그르르 몇 번을 회전하다가 바다에 떨어졌다. 둥둥 떠 있었다. 오믈렛이 아닌 새가 분명했다.

p.68 봤는가? 피아니스트가 새로 왔어. 닐 오코너가 말했다. 듣자 하니 최고라던데. 내가 말했다. 내가 슬픈 건지 미칠 듯이 행복한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이 될 뒷모습에서 그를 부르고 싶었다. 헤이, 피아니스트. 돌아서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어쩐지 흐릿하기만 한 상상엔 우는 듯 희미하게 끌어올려진 입매만이 있을 뿐이지만. 어느 영화의 대사를 빌어, 아무도 듣지 못한 마지막 마디를 상상한다. 울었냐고? 웃었지. 그 날의 기억은, 하나도 아쉽지 않다고.

생각하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읽었다'고 하는 게 맞나, 여전히 의문이다. 희미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음정처럼,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던 무언가를 문장으로 붙박는 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적을 수밖에. 물 흐르듯 오가는 박자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 발끝을 까닥이며 가만히 따라 부르게 하는, 그래, 올 댓 재즈.

p.69 그날 노베첸토는 인생의 흑백 건반 앞에 앉아서 터무니 없지만 천재적인,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지상 최대의 위대한 음악을 연주하리라 결심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음악에 맞춰서 그에게 남은 세월이 춤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p.81 북극해의 거대한 빙산이 더위에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난 그 경이로움에 작별을 고했어. 전쟁이 다 박살 냈다며 웃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난 기적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고,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이 배를 보았을 때 분노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 한 순간에 한 음으로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던 그날, 음악과, 나의 음악에게 작별을 고했고, 자네가 이곳으로 들어 오는 것을 봤을 때 기쁨과 작별했어. 마법을 걸면서 말이야.

*도서제공: 비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을, 어떻게, 왜 - 우리를 무대로 이끄는 물음들
성수연 지음, 김신중 사진 / 북트리거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무대 안팎의 이야기, 라고 쓰려다 지웠다. 어쩌면, 아니, 사실, 무대는 입체이지 않은가. 대개 관객은 조명과 소품이 있고 배우가 행위하는 공간으로서의 '좁은 무대'를 경험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대사 한 마디가 극장에 울려퍼지기까지의 모든 과정, 그 세계를 열어보이는 일에 이어진 모든 곳이 무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대에 이어진, 무대 곳곳에서 지켜보고, 만들고, 듣고 쓰고 말하며 시공간으로서의 무대 곳곳을 가로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미증유에 버금가는 코로나 팬데과 정치사회적 충격을 겪어낸 이들의 증언이다. 제목의 세 물음으로 이어지는.

p.125 누군가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작업에는 무거운 고민이 따르고, 그 과정에서 '기대' 나 '설렘' 같은 감정과 점점 멀어지기도 하지요. 그럴수록 고민을 나눌 동료가 필요합니다. (...) 저는 문득 그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가 돌려준 질문은, 싸워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설레는 미래를 그려 보게 했어요. 한윤미는 여전히 그런 동료였습니다.

p.352 (직업 관객 배서현) 보는 것이 저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공연을 선택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저를 보여 주는 것도 맞아요. 그래서 저는 취향과 정체성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공연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와 '이 공연은 내 취향이 아니야'는 분명 다르거든요.


저자는 네 장에 걸쳐 곳곳의 이름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묻는다. 무엇을, 어떻게, 왜. 그들은 답하고,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는, 이것을, 어떻게, 왜. 그 안에 교차하고 미끄러지는 세계가 언뜻 스쳐보인다. 찰나에 드러났다 이내 흩어지는 말들을 지면에 고정하려는 시도는 막 내린 극을 회상하는 일과 닮지 않았나. 어쩌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들,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과도.

그것은 책이기 전에 기록이고, 그에 앞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이고, 그 안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의 삶이 담겨있었다.

p.175 (수어통역사 김홍남) 우리는 수어가 제스처나 마임이 아닌 언어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대 위에서 통역사가 춤을 추거나 배우의 움직임을 동일하 게 해야 할 때는 농인 관객에게 그것이 극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게 돕거나 관객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거죠.

p.423 다른 사람의 안전을 챙기는 일은 결국 내 안전을 챙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의 안전을 일상적으로 살피는 문화는,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박진아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 덕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여 주는 태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그 감각을 배우고, 다시 박진아 역시 그 덕분에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안에 오롯이 환상과 기쁨만이 담기지는 않았다. 혹자는 고통을, 누군가는 고발과 증언을, 또다른 이는 전복과 비정형을 말한다. 그것들은 모두 현실과 유리된 것은 없었다. 결국 연극도, 무대도, 이야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것까지도 이것을, 어떻게든, 이유를 묻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다고, 여기에, 그곳에 사람이 있다, 고 말하는 일이 아닐까. 빈 자리를,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을 지켜내는 일처럼.

p,222 그때 느낀 슬픔을 완전하게 표현할 말은 여전히 찾지 못했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슬픔, 책을 덮을 수 없는 슬픔, 문을 닫을 수 없는 슬픔'이라고 이름 붙여 보고 싶어요. 저는 이제 이 불완전한 세계에 슬픈 일이 얼나 흔하게, 그러나 매번 고통스럽게 일어나곤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펼쳐 둔 제 오래된 슬픔을 가끔 들여다보며, 문을 닫지 못한 누군가의 슬픔에 머무르는 일을 연습합니다.

p.467 주체를 옮긴다는 건 '내가 없다'라기보다는 '나는 최대한 저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에 가까울 수도 있겠어요. 그런 노력 속에서 그 존재가 만나는 세계를 배열해 보고, 마치 내가 그 존재를 다 안다는 듯이 연기하지 않는 것이요. 그래서 단위와 단위 사이를 의지적으로 연결하지 않는 것일지도요.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눈을 깊이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노상 말로는 세상에 같은 사람 하나 없고, 머리수만큼 다양한 세계가 있다고 그래왔으면서도. 사람이 싫어 발버둥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사람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건 상상만 해도 기가 쭉 빨리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의 말에 경청하고, 삶을 녹여낸 진한 이야기를, 그가 사랑하는 세계에 얼마간 초대받는 일은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참 귀하다. 마지막 대화가 끝난 자리, 침묵으로 책을 덮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만에.

p.64 여러 생각과 함께 걸어갈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볍게 걸을 수 있을까? 너의 걸음 주변에 어떤 발자국들이 남아 있어? 너는 바다에서 혼자 있을 때가 좋아,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가 좋아?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을 혼자로도 만들어 주는데. 같이 갈래? (응응.)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보고,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보고, 그럴 수 있을까? (아싸.) 너와 나는 무엇을 같이 보고 싶은 걸까.

p.569 (강수연) 아까부터 저는 비틀즈의 〈Something〉 이 자꾸 떠올라요. "너에게는 뭔가가 있어. 내가 사랑하는 그것에는 뭔가가 있어." 뭔가, 뭔가가 있다고 계속 말하잖아요. 구체적인 말로 표현할 수는 없고, 말로 표현하면 오히려 사라져버릴 것도 같은 무엇. (...) 나한테 작동하고, 나한테 와 닿는 것. 그건 예술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도서제공: 북트리거

#무엇을어떻게왜 #인터뷰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권 운동.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부당히 탄압받는 사회에 저항하는 것. 이상하지 않은가. 무릇 사회란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가상의 공동체인데, 누군가는 사람임에도 사람의 범주 바깥으로 밀려나버리기에 애써 그 지위를 되찾으려 싸워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타인을 죽이고 가두고 때리고 착취해도 괜찮은,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누군가는 다른 이들보다 더 사람이거나 덜 사람이라는 것이. 또한,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제 삶에 앞서 타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어 나서고야 만다는 것이.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기어 절명한대도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이.

어떤 '죽음'은 죽음이 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어떤 삶은 그가 사람임을 증명하려 애쓰느라 온 생을 갈아넣어야만 한다. 이것은 부당하다. 어떤 사람은 그들의 처참이 당연하다 말한다. 어떤 이름은 굴종의 값으로 하사된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도 오래, 당연하게 이어져왔다. 그것은 익숙하기에 당연하다 말해진다. 그러므로 더욱 부당하다.

p.18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답할 말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인권운동 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한다는 생각 정도이다. 억지로 답을 말한다면 '사람들' 때문이다.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힘을 주는 사람이 있고 그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또 하나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서다.


저자 박래군의 삶은 경청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에서 연대의 실마리를 본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이가 매맞고, 쫓겨나고, 죽임당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람됨을 부정당했다. 그들은 필연히 침묵을 강요당한다. 연대는 말해지지 못하는 말, 영영 들을 수 없게 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어떤 싸움은 너무도 패배로 기울어져 있다.

그가 섰던 현장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죽임당했다. 그러나 정녕 죽으려고 죽는 사람은 없었다. 살려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부르짖던 이들만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진면목일 것이다. '누구의 죽음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쉽게도 말해진다. 이 말은 어떤 죽음도 그 자체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운다.

p.84 초로의 엄마, 아빠들이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의문사를 알렸다. "의문사를 아시나요?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몰라요. 군대에서, 경찰서에서, 동굴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시체로 돌아왔는데, 모두 자살이라고 해요." 낮이면 유인물을 돌리고, 마이크를 잡느라 지친 그들은 농성장 바닥에 누위 밤늦도록 아이들 얘기를 했다. "내 아들은요"로 시작되는 끝도 없는 얘기를 하다가 울었다.

p.116 기가 막힌 세월이었다. 지금도 나는 김영균의 눈물이, 그리고 천세용의 동생이 종종 생각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고 진땀이 흐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는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사랑은 가슴을 뛰게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은 자들을 사랑한 것일까?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


모든 죽음은 그, 혹은 그들의 죽음이다. 죽은 자가 있다. 죽음은 단지 드러난 사실일 뿐이다. 쉽게도 말해지는 그 말은 역설적으로 가장 '죽음'을 지우는 가장 정치적인 시도지 않은가. 어떤 죽음은 남겨진 이를 투사로 만든다. 싸우는 사람만이 그들의 존재를 사람의 존재에서 벗겨지지 않도록 붙든다. 부당하고, 미력하나 무의미하지 않다. 적어도, 이런 세상에 누군가를 홀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지는 싸움을 질 테니 시작도 않는 싸움으로 두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의 고통이 곧 그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참사는 반복되고, 유언은 유령처럼 떠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익숙한 패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 의지해 느리고 더디게 나아가지 않는가.

p.291 시민사회의, 인권운동가들의, 그리고 나의 평화적 생존권 투쟁은 패배했다.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싸움에서만은 꼭 이기고 싶었다. 갯벌을 맨손으로 간척해서 만든 마을이고 들이지 않은가. 질 줄 알면서도 하는 싸움, 나는 늘 지는 싸움만 하는 것 같다.

p.437 내가 해온 인권운동은 죽은 자들이 죽어 가면서도 외쳤던 '유언'을 현실에 접목해서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물론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한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의 간절했던 바람을 안다. 그 바람 또한 유언일 것이다. (...) 내 싸움은 앞서 죽어간 이들이 가르쳐준 인간 존엄의 길을 따라왔던 것이다. 달리 길이 있지 않았다.


다시, 경청이 곧 연대의 씨앗이다. 연대란 누구도 외로이 두지 않는 일이다. 그의 삶에 숭고나 놀라움이 아닌 '그럼에도'를 말하고 싶다. 찬사는 쉬이 흩어지는 타자의 사건이나, 후자는 나와 우리의 가능성인 탓에. 그러므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지금 여기, 익숙하고 당연한 폭력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고,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믿는다. 누구도 홀로 살아가지 않으므로. 타인에 지는 존재 자체의 책무란 바로 그런 것이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곁이 될 수 있음을, 가슴을 맞대고 끌어안는 마음을. '나빠지는' 세상과 폭력의 권력은 그런 이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나아지고 있다고.

p.399 "이례적인 일은 사실 언제나 이례적이지 않다는 걸. 너희를 보내고 남은 우리가 해온 건, 슬픔의 강요가 아니라는 걸. 너희의 죽음만 특별하게 기억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모든 죽음이 위로받을 일이고 모든 생명이 귀함을 알아주길 원했다는 걸. 나라는 언제나 사람들의 삶과 안전을 담보로 서 있다는 걸. 그리고 대규모 참사는 그 약속에 뚫린 큰 구멍을 보여주는 일이란 걸. 여기에 '놀러 가서 죽었는데' '적당히 해야 하는데' 같은 말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걸."

p.489 문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폭력은 있다. 구조적 폭력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직접 폭력만 사라졌을 뿐이다(물론 아직도 시민들의 시선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직접 폭력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리적인 공격과 방어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 문화적인 방법으로 차별과 혐오, 폭력을 넘어가야 하는 때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임 앤 리즌 3호 : 블랙코미디 라임 앤 리즌 3
오산하.이철용.황벼리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참 여러 상황에 웃는다. 아기처럼 입을 활짝 여는 웃음이든, 잔잔히 퍼져나가는 미소든, 입귀를 비트는 쓴웃음이든, 차마 울지도 못하고 실성해 터트리는 웃음이든. 뭐였더라. 울어라, 너만 울 것이다. 웃어라, 온세상이 웃을 것이다... 라던가. 아무튼. 야. 웃어. 분위기 뭐 만들지 말고.

관음과 무관심의 적절한 배합으로 범벅된 지금 사회는 서로가 컨텐츠로 취급하다 못해 태어나자마자 느닷없이 광대로 기능하기를 요구받는 꼴이다. 서로를 오징어 게임이 다른 게 아니라 꼭 사회의 축소판 아닌가. 맡겨 놓은 재미를 긁어짜내고 뼛속까지 쥐어짜이는 도파민의 왕국. 뭐 없어요? 아, 재미 없어. 구독 취소, 싫어요 콱.

p.20 누군가는 장난, 누군가는 정말 그럴 작정이었을 모든 살인 예고를 보면서 이 거대한 쇼 같은 상황은 언제 막을 내리는 거지? 생각했다. (...) 땅에 발을 붙이고 서서 이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자 하는 다짐은 엎질러진 마음만큼 크고 무겁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면 이것보다 명확한 블랙코미디 쇼는 없을 것 같다.

p.64 그럼에도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묻는다. 도저히 대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한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죽어왔던 이들에게, 자꾸만 부인가를 죽이고 파괴하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이곳이 바로 끔찍함이라고, 당신 서 있는 이곳이 언제나 피와 살의 한가운데라고, 전쟁의 끔찍함이 바로 여기라고. 그냥 이런 것을 한 번쯤 말하고 싶었다고 또 말해본다.


이 360도에 1도쯤 더 돌아 얼핏 보면 정상으로 보이는 돌아버린 세상에 그들이 불려나왔다. 자, 웃겨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웃긴다는 건 뭘까요? '웃기는' 사람,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맡은 이들을 큰 박수로 맞이합시다. 웃음이 있으라. 첫 박수가 터지기도 전에 독자는 되묻게 된다. 그런데, 방금 말한 거 누구야? 난 아닌데.

어느날 나타난 귀는, 마치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충격적이고 낯익은 폭력을 불러온다. 듣지만 말할 수 없다. 무결의 수용기에 속삭여지는 말들은 차라리 배설이다. 그것은 우습다. 공연-하/되-ㄹ 수 없는 웃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헛웃음에의 응답은 조소일 뿐인가? 그렇게 끝나야만 하는가?

p.141 모든 이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어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용서가 만약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건 용서라고 할 수 없죠. 용서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의지로만 가능한 것이니까.

p.212 속삭이는 귀는 여전히 자살 절벽으로 가는 길목의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 서 있는데, TV에 나오는 사람들도, 울타리를 괴롭히던 애들도,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어째서? ...어째서 어떻게 그렇게 모두 아무렇지 않은 거야?


다시, 처음으로. 사람들은 제각기의 이유로 웃음을 터트린다. 새어나오든, 뭐 지리듯 흘러내리든, 파! 하고 고함처럼 내지르든. 그 모든 웃음조차 자유가 아니라면. 방금까지의 뜨거운 분투에서 작위를 발견하는 순간 어색하게 삐걱대는 우리 존재들을 알아차린다면.

세 차례의 종막 후에 남겨진 독자는 정처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묻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요? 웃어요, 말아요? 몰라 나도... 날카롭게, 파렴치하게, 추잡하게 직조된 이야기들은 그렇게 누군가를 불 꺼진 세상에 홀로 남겨두지 않는다. 적어도 꼭 한 사람의 몫만큼은. 웃어라. 너만 웃지는 않을 것이다.

p.141 용서하는 자는 언제나 용서받는 자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돼요. 하느님이 항상 우리 위에 계신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용서한다면, 위계는 뒤집혀요. 완벽한 계획입니다.

p.64 우리는 참 다양한 상황에서 웃고, 웃음은 너무나 다양한 맥락을 가져서, 그래서 어렵다. (...) 우리는 결국 웃는다. 때로는 그렇기에 웃음의 맥락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비틀어 보일 때 내가 가진 슬픔이 당신들에게 웃음과 슬픔을 함께 주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도서제공: 비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