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앤 리즌 3호 : 블랙코미디 라임 앤 리즌 3
오산하.이철용.황벼리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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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 여러 상황에 웃는다. 아기처럼 입을 활짝 여는 웃음이든, 잔잔히 퍼져나가는 미소든, 입귀를 비트는 쓴웃음이든, 차마 울지도 못하고 실성해 터트리는 웃음이든. 뭐였더라. 울어라, 너만 울 것이다. 웃어라, 온세상이 웃을 것이다... 라던가. 아무튼. 야. 웃어. 분위기 뭐 만들지 말고.

관음과 무관심의 적절한 배합으로 범벅된 지금 사회는 서로가 컨텐츠로 취급하다 못해 태어나자마자 느닷없이 광대로 기능하기를 요구받는 꼴이다. 서로를 오징어 게임이 다른 게 아니라 꼭 사회의 축소판 아닌가. 맡겨 놓은 재미를 긁어짜내고 뼛속까지 쥐어짜이는 도파민의 왕국. 뭐 없어요? 아, 재미 없어. 구독 취소, 싫어요 콱.

p.20 누군가는 장난, 누군가는 정말 그럴 작정이었을 모든 살인 예고를 보면서 이 거대한 쇼 같은 상황은 언제 막을 내리는 거지? 생각했다. (...) 땅에 발을 붙이고 서서 이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자 하는 다짐은 엎질러진 마음만큼 크고 무겁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면 이것보다 명확한 블랙코미디 쇼는 없을 것 같다.

p.64 그럼에도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묻는다. 도저히 대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한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죽어왔던 이들에게, 자꾸만 부인가를 죽이고 파괴하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이곳이 바로 끔찍함이라고, 당신 서 있는 이곳이 언제나 피와 살의 한가운데라고, 전쟁의 끔찍함이 바로 여기라고. 그냥 이런 것을 한 번쯤 말하고 싶었다고 또 말해본다.


이 360도에 1도쯤 더 돌아 얼핏 보면 정상으로 보이는 돌아버린 세상에 그들이 불려나왔다. 자, 웃겨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웃긴다는 건 뭘까요? '웃기는' 사람,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맡은 이들을 큰 박수로 맞이합시다. 웃음이 있으라. 첫 박수가 터지기도 전에 독자는 되묻게 된다. 그런데, 방금 말한 거 누구야? 난 아닌데.

어느날 나타난 귀는, 마치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충격적이고 낯익은 폭력을 불러온다. 듣지만 말할 수 없다. 무결의 수용기에 속삭여지는 말들은 차라리 배설이다. 그것은 우습다. 공연-하/되-ㄹ 수 없는 웃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헛웃음에의 응답은 조소일 뿐인가? 그렇게 끝나야만 하는가?

p.141 모든 이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어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용서가 만약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건 용서라고 할 수 없죠. 용서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의지로만 가능한 것이니까.

p.212 속삭이는 귀는 여전히 자살 절벽으로 가는 길목의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 서 있는데, TV에 나오는 사람들도, 울타리를 괴롭히던 애들도,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어째서? ...어째서 어떻게 그렇게 모두 아무렇지 않은 거야?


다시, 처음으로. 사람들은 제각기의 이유로 웃음을 터트린다. 새어나오든, 뭐 지리듯 흘러내리든, 파! 하고 고함처럼 내지르든. 그 모든 웃음조차 자유가 아니라면. 방금까지의 뜨거운 분투에서 작위를 발견하는 순간 어색하게 삐걱대는 우리 존재들을 알아차린다면.

세 차례의 종막 후에 남겨진 독자는 정처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묻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요? 웃어요, 말아요? 몰라 나도... 날카롭게, 파렴치하게, 추잡하게 직조된 이야기들은 그렇게 누군가를 불 꺼진 세상에 홀로 남겨두지 않는다. 적어도 꼭 한 사람의 몫만큼은. 웃어라. 너만 웃지는 않을 것이다.

p.141 용서하는 자는 언제나 용서받는 자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돼요. 하느님이 항상 우리 위에 계신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용서한다면, 위계는 뒤집혀요. 완벽한 계획입니다.

p.64 우리는 참 다양한 상황에서 웃고, 웃음은 너무나 다양한 맥락을 가져서, 그래서 어렵다. (...) 우리는 결국 웃는다. 때로는 그렇기에 웃음의 맥락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비틀어 보일 때 내가 가진 슬픔이 당신들에게 웃음과 슬픔을 함께 주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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