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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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부당히 탄압받는 사회에 저항하는 것. 이상하지 않은가. 무릇 사회란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가상의 공동체인데, 누군가는 사람임에도 사람의 범주 바깥으로 밀려나버리기에 애써 그 지위를 되찾으려 싸워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타인을 죽이고 가두고 때리고 착취해도 괜찮은,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누군가는 다른 이들보다 더 사람이거나 덜 사람이라는 것이. 또한,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제 삶에 앞서 타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어 나서고야 만다는 것이.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기어 절명한대도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이.

어떤 '죽음'은 죽음이 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어떤 삶은 그가 사람임을 증명하려 애쓰느라 온 생을 갈아넣어야만 한다. 이것은 부당하다. 어떤 사람은 그들의 처참이 당연하다 말한다. 어떤 이름은 굴종의 값으로 하사된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도 오래, 당연하게 이어져왔다. 그것은 익숙하기에 당연하다 말해진다. 그러므로 더욱 부당하다.

p.18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답할 말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인권운동 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한다는 생각 정도이다. 억지로 답을 말한다면 '사람들' 때문이다.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힘을 주는 사람이 있고 그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또 하나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서다.


저자 박래군의 삶은 경청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에서 연대의 실마리를 본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이가 매맞고, 쫓겨나고, 죽임당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람됨을 부정당했다. 그들은 필연히 침묵을 강요당한다. 연대는 말해지지 못하는 말, 영영 들을 수 없게 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어떤 싸움은 너무도 패배로 기울어져 있다.

그가 섰던 현장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죽임당했다. 그러나 정녕 죽으려고 죽는 사람은 없었다. 살려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부르짖던 이들만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진면목일 것이다. '누구의 죽음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쉽게도 말해진다. 이 말은 어떤 죽음도 그 자체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운다.

p.84 초로의 엄마, 아빠들이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의문사를 알렸다. "의문사를 아시나요?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몰라요. 군대에서, 경찰서에서, 동굴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시체로 돌아왔는데, 모두 자살이라고 해요." 낮이면 유인물을 돌리고, 마이크를 잡느라 지친 그들은 농성장 바닥에 누위 밤늦도록 아이들 얘기를 했다. "내 아들은요"로 시작되는 끝도 없는 얘기를 하다가 울었다.

p.116 기가 막힌 세월이었다. 지금도 나는 김영균의 눈물이, 그리고 천세용의 동생이 종종 생각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고 진땀이 흐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는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사랑은 가슴을 뛰게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은 자들을 사랑한 것일까?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


모든 죽음은 그, 혹은 그들의 죽음이다. 죽은 자가 있다. 죽음은 단지 드러난 사실일 뿐이다. 쉽게도 말해지는 그 말은 역설적으로 가장 '죽음'을 지우는 가장 정치적인 시도지 않은가. 어떤 죽음은 남겨진 이를 투사로 만든다. 싸우는 사람만이 그들의 존재를 사람의 존재에서 벗겨지지 않도록 붙든다. 부당하고, 미력하나 무의미하지 않다. 적어도, 이런 세상에 누군가를 홀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지는 싸움을 질 테니 시작도 않는 싸움으로 두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의 고통이 곧 그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참사는 반복되고, 유언은 유령처럼 떠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익숙한 패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 의지해 느리고 더디게 나아가지 않는가.

p.291 시민사회의, 인권운동가들의, 그리고 나의 평화적 생존권 투쟁은 패배했다.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싸움에서만은 꼭 이기고 싶었다. 갯벌을 맨손으로 간척해서 만든 마을이고 들이지 않은가. 질 줄 알면서도 하는 싸움, 나는 늘 지는 싸움만 하는 것 같다.

p.437 내가 해온 인권운동은 죽은 자들이 죽어 가면서도 외쳤던 '유언'을 현실에 접목해서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물론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한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의 간절했던 바람을 안다. 그 바람 또한 유언일 것이다. (...) 내 싸움은 앞서 죽어간 이들이 가르쳐준 인간 존엄의 길을 따라왔던 것이다. 달리 길이 있지 않았다.


다시, 경청이 곧 연대의 씨앗이다. 연대란 누구도 외로이 두지 않는 일이다. 그의 삶에 숭고나 놀라움이 아닌 '그럼에도'를 말하고 싶다. 찬사는 쉬이 흩어지는 타자의 사건이나, 후자는 나와 우리의 가능성인 탓에. 그러므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지금 여기, 익숙하고 당연한 폭력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고,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믿는다. 누구도 홀로 살아가지 않으므로. 타인에 지는 존재 자체의 책무란 바로 그런 것이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곁이 될 수 있음을, 가슴을 맞대고 끌어안는 마음을. '나빠지는' 세상과 폭력의 권력은 그런 이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나아지고 있다고.

p.399 "이례적인 일은 사실 언제나 이례적이지 않다는 걸. 너희를 보내고 남은 우리가 해온 건, 슬픔의 강요가 아니라는 걸. 너희의 죽음만 특별하게 기억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모든 죽음이 위로받을 일이고 모든 생명이 귀함을 알아주길 원했다는 걸. 나라는 언제나 사람들의 삶과 안전을 담보로 서 있다는 걸. 그리고 대규모 참사는 그 약속에 뚫린 큰 구멍을 보여주는 일이란 걸. 여기에 '놀러 가서 죽었는데' '적당히 해야 하는데' 같은 말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걸."

p.489 문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폭력은 있다. 구조적 폭력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직접 폭력만 사라졌을 뿐이다(물론 아직도 시민들의 시선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직접 폭력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리적인 공격과 방어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 문화적인 방법으로 차별과 혐오, 폭력을 넘어가야 하는 때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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