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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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다시금 반성한다. 표지에 떡하니 적힌 "장편소설"을 보지 않고 시작해버려서 단편집인 줄 알고 읽었다. 옴니버스인가보다... 하면서 읽다 중간에서야 이거 장편이었냐고 혼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작가님, 미안합니다... 그치만 그만큼 각 장의 서사가 탄탄하다는 뜻이기도 하니 넘어가주세요. 『미확인 홀』은 소제목을 사이에 두고 단편집처럼 이어지는 하나의 큰 이야기다. 떠나온 고향 은수리, 사과냄새가 가득한 곳, 산과 들이 일상인 곳,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벗어나고픈 족쇄같은 곳, 그곳을 떠나온 희영의 이야기로 서막을 연다.
어느날 나타난, 받았다거나 날아왔다고 할 수도 없이, 나타나듯 전해진 편지 한 장, 그 한 단어가 현재의 그들을 과거로 모조리 빨아들인다. "종이를 펼치차 세 글자가 나타났다. 블랙홀, 단정한 글씨체였다(p.8)."
p.135 누구에게나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음질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떤 사람은 대롱대롱 매달린 기분으로 평생을 살기도 한다는 걸 몰랐다.

이따금, 아니, 자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도망치고 싶다-에 가까운 마음. '눈 쌓인 숲 사라질 길을 따라 걸어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문장을 생각한다. 숨어버리고 싶어요, 토해내듯 속삭이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허공을 노려보며 소리없이 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 전체가 때를 놓친 애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미처 몰랐기 때문에, 사는 일이 급해서, 들여다보기엔 너무나도 큰 상처라서, 얼떨떨하고 황망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고 덮어두고 때로는 존재를 부정해야만 했던 슬픔과 상실을 끄집어내 먼지를 털고 살피는 마음을 말하는 이야기, 결국 죽음과 상실을 축으로 맴도는 존재들이 살아내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p.113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것이 아닌 건 결국 잃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순옥은 살아왔다. 버리거나 버려지는 것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살다 보면 모든 걸 한순간에 잃는 것 같아도, 살아보면 어떤 걸 완전히 잃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완전히 잃지는 않을 기회 또한 여러 번 있다고. 때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실을 막아주기도 한다.
p.226 지금까지 자신이 지킨 건 아내와 자식의 평안이 아니라 자신의 안온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달빛으로도 사람이 빛나고 빛날 수 있다는 것과 강렬한 빛을 쫓느라 은은한 빛을 여러 번 놓쳤단 것도. 그날 밤 깨달음의 강물이 찬영을 통과해 찬영이 볼 수 있는 빛의 범위를 넓혀주었다. 하지만 밝음을 향한 찬영의 갈망까지 쓸어가진 못했다. 빛나고 빛나며 빛나고 빛나니 모든 것이 빛나도다. 어두운 것은?

사람은 통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감각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얽힌 감정과 생각을 기억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아픈 줄도 모르고 쑤셔넣기 급급했던, 여전히 생생하게 피를 흘리고 환상처럼 덮쳐오는 통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납득하지 못한 상실은 어떻게 허공을 부재의 자리로 채워넣는가.
사는 일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은, 오랜 시간을 죽은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은, 어깨에 자기 것이 아닌 삶을 짊어진 사람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그이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기 자신조차 살아있음을 확신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당신이 선 곳이 무덤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는가. 하나의 존재가 하나의 세계라면 사람을 잃고 신뢰를 잃는 것은 세계가 무너지는 것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 합리적이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이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p.150 "매미가 밤마다 저렇게 우는 데 자기는 아무런 책임도 없대요. 그럼 누구 책임이에요?" 필성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울면서도 또렷하게 말했다.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죠. 매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 저러다가 미쳐서 죽는 거라고요."
p.164 공권력이 파업하는 사람들 편이 아니란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과 경찰에게 벌레 잡듯 두들겨 맞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부위를 가리지 않고 내리치는 곤봉에, 사정없이 휘두르는 발길질에 세상을 향한 정식의 믿음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믿음까지 모두 다.

첫 문장부터 그랬듯이 끝끝내 의뭉스럽고 기쁘지 않으며 답을 주지 않는다. 제목인 "미확인 홀"의 정체나 부재로 시작한 인물의 행방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사는 일의 본질일지 모른다. 만남으로 시작해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삶이 아니던가. 우리는, 어쩌면, 때를 놓쳐 고여버린 수많은 "미안해"를 끌어안고 사는 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든 견뎌내고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 다른 사람, 삶, 그것도 불확실한 삶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완전한 확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없이 울며 맴돌기만 하는 이들의 패인 발자욱이라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읽지 않았을 테다. 그렇다고 빛나기만 하는 이들의 정의로운 무용담이었다면 도중에 인상을 찌푸리며 덮었을 테다. 오히려 모두가 비겁하고 울먹이고 얼굴을 붉히는 이들이어서 내려놓지 못했다. 용서나 동의와는 다르다. 그 비틀린 부분이 주는 끝, 후련함이 있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장례는 산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맞는 말이다. 부재를 공언하고 상실을 확정하는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여지를 주지 않는 끝을 마주하게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평안을 누릴 것이라는 허구의 희망, 내려놓음에서 오는 안도, 오직 그것을 위해 수많은 절차와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 아니던가. 작품 전체, 이 한 권이 각자의 자리에서 치러내는 장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감히 말한다. 이 책은 애도와 이별의 의식이라고. 각자의 자리, 각자의 시선에서 맴돌던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해묵은 눈물을 쏟아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p.183 정식은 그제야 자신이 그날에 대해, 그날 받았던 충격과 무너진 믿음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24 "필희가 정말 거기에 들어갔을까?" 그때처럼 겁먹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매일 모래 한 알 정도의 크기만큼씩 그 사실을 받아들였는지 담담한 목소리였다. "필희가 분명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내가 그걸 못 들어줬어. 그게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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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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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감상입니다.

이따금 하는 말,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산다. 어떤 식으로든 배울 것 없는 존재는 없다. 어른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선생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배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람이 사람과 경계를 맞대고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경이가 아닐 수 없는, 사람이 사람과 함께일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식으로든 취약한 이를 대하는 직업종사자의 글은 덮는 순간까지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읽는다. 제발 뻔하지만 말아라. 손쉬운 동정을 던지지 말고 당신의 이야기를 해라. 당신 자신의 세계를 보여달라. 매번 간절한 마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목에서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얼마나 애썼겠는가. 부족하거나 사라진 세계가 아닌, 말이 “숨어 있는“ 세계라면, 어쩌면, 끝없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어쩌면, 우리는, 어쩌면.
p.91 우리에게 언어가 없다면 모두가 '나'일까? 아니면 모두가 '너'일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는 부제 그대로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이다. 사람이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동물인 탓에 언어능력은 사회에 속해 생존하는 대부분의 상황에 필수적이다. 비단 교류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나의 요구를 표현하고 각종 지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말"이다. 이 책은 그 "말"에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이를 찾아가는 언어치료사와 그가 만난 이들이 성장하고, 후회하고, 생각해나가는 이야기다.
이 책은 아동 언어치료에 대한 기록이나 결국 세상의 다른 성원을 대하는 태도 혹은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기쁨과 깨달음을, 후회와 미안함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치료사는 곧 조력자이니 독자는 복지 혹은 각종 의료, 사회 서비스의 대상자와 그 주변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동료 시민으로서 손을 내밀고 함께 가야하는 우리는 그와 우리 자신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p.176 때로 우리는 연민을 거두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왜 우리를 이렇게 취급하느냐고. 왜 당연하게 걷어간 우리의 세금이,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쓰여야 하느냐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과 이 결정을 구체화하는 고급 관료들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한가. 그렇지 않다. 완전한 것은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완성된 것은 변화를 허용치 않으며, 홀로 존재한다. 미래도 과거도 없으며, 영원한 현재에 머문다. 그것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함은 불완전함의 반증이다. 존재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세계이다. 나의 희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언어가 숨어있는 세계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는 것, 너와 내가 함께 열어젖히는 세계가 있다는 것. 소통의 가능성조차 없는 존재는 없다. 마주치고 경계를 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사람이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생각은 더 자주 한다. 사실, 하지 않는 날이 드물다. 백석의 말처럼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고 매일같이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을 닮고 싶어하는 것은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p.122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날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지.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으킨 사건들로 인해 우주가 조금은 바뀌어 있을 거다.

봄이 오고, 새로 돋고 자라는 것을 보며 인사를 건넬 때 이 책을 떠올리는 이가 많기를 바란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다리고 돌아보는 데에 주저함이 없기를 바란다. 어쨌든,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하니까.
p.293 세상은 지뢰밭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네 이야기를 해주곤 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그런 것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터뜨리고 또 터뜨린다고 그래도 게임은 계속되고 삶도 지속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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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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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는 마음, 혹은 살아가는 마음. 살-다와 사-다 사이에는 수많은 물질과 시간이 자리할 테다. 이미 안 쓰고 안 사는 게 그나마 에코인 세상이라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나요. 살다보면 꼭 필요하지는 않은 줄 알면서도 기어코 사버리고는 또 쓰레기 만들었다고 자괴감에 머리를 뜯기도 하고, 별 생각 없이 산 물건을 기십년씩 끼고 살기도 한다. 혹은 역시 사길 잘했다고, 일년에 몇 번 입지도 못하는 코트, 모셔만 두는 찻잔, 애물단지라고 한숨을 쉬어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책들. 삶을 함께하는 존재들, 반려인간, 반려동물이 있다면 삶을 함께하는 것들을 반려 물건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미니멀리즘이 대세라지만, 여전히 도통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가하면 확신과 기대에 차 장만한 물건을 떠나보내는 마음도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나를 돌보고 존재를 사유하게 되는 반려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p.85 사람이나 관념이 아닌 물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늘 경계하고는 있지만 내가 정성스럽게 돌보아 더욱 사랑스럽게 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물건에 대한 애정이 꼭 그렇게 경계해야 할 대상인가 싶다.

시인 김춘수는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와 꽃이 된다고. 물건도 다르지 않다. 단순한 사물에 불과한 것에 마음과 시간이 쌓여 비로소 '나'의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이 홀로 선다는 것이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이라면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어떤 물건은 나의 자아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물건은 세상에 녹아들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의태이며, 또 어떤 물건은 몸을, 시선을 옥죄는 규율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p.55 물론 가발은 불편할지언정 군중 속에 숨을 수 있게 해준다. (...) 암 환자가 무수히 많은 병원 암 센터에서도 스카프를 쓰면 쳐다보는 사람이 많다. 대개는 가발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은 이처럼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한다.
p.63 하지만 특정한 이미지로 비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특정한 이미지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목차의 "내가 돌보는 물건, 나를 돌보는 물건"부터 "충동이 없으면 지불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사고, 사기 위해 산다"까지 저자의 삶에 오간 반려-대상의 목록을 따라가노라면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나 물건인 것, 물건이라고 생각했으나 가치관, 관념 혹은 주입된 편견이었던 것들을 만나게 된다. 머무르는 공간, 책, 집, 가방, 식물, 자동차까지. 만족과 단념을 오가는 여정에서 저자 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촘촘한 혐오와 억압이 어떻게 개인은 짓누르는지, 집단과 산업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얼마나 둔감하게 살았는지, 세대를 건너 오래도록 머무는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어떤 것인지를 곱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
p.141 인간은 때가 되면 먹고 때가 되면 배설을 해야 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기계에 끼이면 팔다리가 잘리고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 취급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인간을 인간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으려는 세력은 인간을 계급으로 구분하고 우리와 남을 구분해서 착취를 합리화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이 상품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사람이 사람과 사는 까닭에 타인의 시선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으므로 물건을 사고 물건과 함께 살아가고, 물건에 사람을 맞추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으로서의 소비자로 전락한 동시에 역설적으로 동시에 서로가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들, 혹은 개체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 책을 대상, 물건에 대한 사적 기록으로 읽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p.178 남녀를 '떠나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외모에 대해서는 더더욱 남녀를 떠나서 말할 수 없다. 내가 신발 가게에서 신발을 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여전히 큰 발은 알아서 숨겨 주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p.224 나를 들여다보는 일, 남의 말을 듣는 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 이 모든 것은 목청 높여 간결한 구호를 외치는 일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단시간에 끝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유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인류 모두에게 주어졌는지 도통 의심스럽기는 해도, 우리 중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도 없이 주어진 귀중한 특권이다.

문학 도서라면 저자 소개부터 추천사까지 전부 제치고 본문으로 돌진하는 버릇 탓에 에세이면서도 저자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소비하는 마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값싸고 빠르게 소비되는 물건을 사들이는 마음에 대한 단상일까, 했던 짐작이 부끄러웠다. 등장하는 '물건'들이 일회용품이 아니라거나, 저자가 '젊은이'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반짝거리거나, 부럽거나, 나를 '럭셔리'의 세계를 이끌어줄 것만 같은 물건들이어서도 아니다.
저자 이다희의 글을, 사람 이다희의 시간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었다. 읽는 내내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많이 부끄러웠다. 아마도 읽지 못할 저자에게 이렇게나마 감사를 전하는 마음은 어쩌면, 낡은 책들을 모아 담고 맞지 않는 옷을 버리거나 노트를 사고 가구를 들이는 때에 문득 떠오를 것이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물건들과의 연대의 기억"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살며(live) 왜 사는가(b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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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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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빛소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따금 노년기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머리가 세고 허리가 굽어지고 살결이 부드럽게 늘어지는 그 때가 되면 지금껏 바라마지 않던 것처럼 고요한 시간을 보내게 될까. 하루에 한두마디쯤, 많아야 잠깐의 담소 정도, 새벽녘에 깨어 해가 넘어갈 때쯤 잠이 드는 그런 삶, 뜨겁게 끓어오르던 피나 호승심따위의 감정들은 지나간 시간의 것으로 남겨두고 이따금 추억에 잠겨들게 될까. 젊을 때와 다름없이 활기와 욕망이 넘치는 생활이 이상적인 노년이라면, 정확히 반대를 사는 지금의 나는 이상적인 청년이라도 된단 말인가.

한 삼사십년 후, 그러니까 내 부모가 기억 속의 조부모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을 때 쯤, 그때의 삶을 그려보는 것은 모호하고 흐린, 이상과도 같은 이미지와도 같다. 결코 닿은 적 없고 살아낸 적 없는 시간의 것, 그러면서도 향수를 자아내는, 희한한 성질의 것.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상상의 끝은 늘 비슷하다. 막상 그 때가 되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라고, 그러나 세상과 삶의 열기에 숨이 벅찰 때는 어김없이 똑같은생각을 할 것이라고, 너무 오랜 시간을 탈진과 비슷한 상태로 살아왔다고.
p.19 젊었을 때는 누구나 그렇게 마음이 급하단다.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사랑 없이 잃어버리는 하루하루가 마음을 찢어놓지.
p.29 만약 그들이 자신의 젊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그들은 공포에 질리거나 제 젊은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 앞을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사랑, 저 꿈, 저 불이 우리의 모습이었다고? 저렇게 낯선 것이?” 자신의 젊음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어떻게 남의 젊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다리 건너 친척, 두 다리 건너 사돈인 조용한 시골 마을. 이야기는 어느 노년기에 접어든 "나", 실비오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정적인, 그러나 끔찍하지는 않은 고독 속에 일상을 보내는 이. 한때는 자유와 방항을 꿈꿨으나 지금은 젊은 날의 이상이었다고, 반복되는 일상 속 식어가는 열기를 품고 고요히, 고요히 침잠하는 이. 이러나 저러나 좁디좁은 바닥인지라 굳이 척을 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이라고는 사촌과 그의 남편, 더해봐야 그들의 딸 정도. 이따금 찾아오는 이들, 오래 알아 편안한 사람들,잠깐의 담소. 그정도면 충분하다.
p.34 "그렇긴 하지만, 무엇을 수확하게 될지 미리 안다면 누가 밭에 씨를 뿌리겠어요?”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실비오. 다들." 엘렌이 나를 지칭할 때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며 말했다. "기쁨과 눈물, 그게 삶이잖아요. 모두가 살고 싶어 하죠. 당신만 빼놓고.”
p.49 금방 식어버리는 피의 뜨거움. 그 꿈과 욕망의 화염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늙어버렸고, 너무나 차갑게 식었고, 너무나 철이 들었다고 느꼈다.

변하는 것이라고는 철마다 바뀌는 풍경이나 일과 정도, 그마저도 매 해 반복되는 것이니 새로울 것도 없고 일상이려니, 늘 그랬듯이 권태에 가까운 마음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던가, 손바닥만한 마을에서. 그래, 그게 문제다. 손바닥만한 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서로가 서로를 훤히 꿰고 있는 그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다. 아니 뭐, 살다가도 죽고 죽다가도 살고 하는 건 맞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장, 엘렌의 딸 콜레트의 남편이라는 데 있다. 그렇게 금슬 좋던 부부가 젊은 나이에 사별이라니. 아니, 그것마저도 제법 담담히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 나이에 기함할 일이 몇이나 된다고... 사건이 일어나던 그 밤의 찜찜한 광경은 차치하고라도, 구태여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 혼자 묻고 가면 되려니, 싶으면서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니, 오래된 지혜와도 같은 위로와 함께 모두가 그럭저럭 일상으로 돌아가던 와중에 충격적인 목격담을 듣고야 만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 밤, 각자의 자리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p.81 그랬다, 자신만만했다. 그것은 한 번도 나쁜 길에 빠져 방황해 본 적이 없는, 한 번도 헐떡이며 약속 장소로 달려가 본 적이 없는, 한 번도 죄스러운 비밀의 무게에 짓눌려 발길을 멈춰본 적이 없는 여자의 걸음걸이였다.
p.103 “그렇게 열렬하게 예찬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단다. 우리가 극도로 분개하며 경멸해야 마땅한 사람도 없고...” “너무나 큰 애정으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도 없고요…”

짧은 분량, 더 짧은 제목이 무색하게 읽는 데 한참, 잊는 데는 더 한참 걸렸다. 결국 잊지 못해 재차 펼쳐들고 나서야 다른 책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2차대전기, "순수하지 못한 인종들"은 모조리 수용소로 끌려가 살해당하던 시기, 광풍에 휩쓸려 사라진 작가의 반토막으로 출판되었다 겨우 온전하게 출판된 작품, 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마음이 쓰였다면 너무 멀리 간 걸까.

뜨거운 피, 출간 예정 목록에서는 "불타는 피"였던가. 한참 곱씹어보고야 제목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화인처럼 찍힌 자리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뜨거운 피. 타오르는 피, 끓어오르는 피. 그리고, 식어버린 자리에 남는 재 같은 것.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 모두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내심 털어놓고 싶으면서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라고 여기는 무언가를 숨기는 좁디 좁은 마을. 무심하고 고요한 곳에서도 타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리.
p.128 나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다.
p.131 우린 이십 년 전에 죽었어. 우린 이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니까.
p.151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사랑하고 절망하고 어떤 불로든 타오르길 갈망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것이었다. 타오르는 것,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것, 불이 숲을 집어삼키듯 우리의 나날을 집어삼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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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토리 이야기 - 400년 전통 명화와 함께 읽는
이애숙 옮김, 고지마 나오코 감수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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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날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낸 영화 중 좋아하는 건 아주 많지만, 개중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몇번을 보고도 잊지 못해 울먹이며 본 작품이다. 재미 없기도 힘든 내용 아닌가. 신비한 출생, 비범한 재능(외모 또한 포함된다면...), 범인과는 차원이 다른 삶 등.
옛말에(그러니까, 내가 전부터 하던 말에 따르면) 어지간한 설정이나 소재, 전개는 다 고전에 있다고 했다. 찾아보면 나온다. 정말로. 누군가는 다 해봤어! 그래서 재밌어! 사람 사는 일 다 똑같다!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니까요?

자 들어보세요. 내가 이런 얘기 하난 끝내주게 잘 한다. 들어봐요. 가까이 오세요. 지금부터 일본 최초의 소설, 달나라 공주님 이야기 갑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옛날옛날 대나무 장수 다케토리 부부가 있었습니다. 한평생 자식 없이 살아온 노부부에게, 어느날 아이가 생겼지 뭡니까. 그날로 나무 하나 벨 때마다 온갖 은금보화가 쏟아져 나오니 삽시간에 부자가 되어 장중보옥 키운 아이는 석달만에 절세가인으로 자랐다네요.
히메, 아리따운 아가씨라 이름이 붙으니 온나라에 소문이 나더라. 지체높은 공자가 다섯이나 몰려와 따님을 제게 주십사(으...!) 청하니, 늙은 아비가 얘야, 우리는 늙었고 자식은 너 하나뿐이니 어서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니, 혼자 남겨둘 수는 없단다, 간곡히 설득해도 절레절레, 고개만 젓더라. 어찌 낯도 보지 못한 분이 소문만 듣고 찾아와 나를 달라 청하느냐고. 아무래도 맞는 말이긴 하지...

밤낮으로 어르고 달래봐도 싫습니다. 안됩니다. 퇴짜만 놓던 가구야히메가 결국 양친의 설득에 못이겨 조건을 걸었지 뭡니까. 이 세상엔 진귀한 보물, 말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보배를 가져다 주세요, 그것으로 나에 대한 진심을 증명하세요, 라고. 다들 투덜대면서도 그래, 그거면 된다 이거지? 호기롭게 나섰으나 그게 어디 쉽던가요. 뚝딱하면 얻어질 것이었으면 진작에 보물 실격이지.
그래서 다들 꾀를 냈다 이거야. 돈으로, 힘으로 사람을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사기도 쳐보고, 새끼 들어있는 둥지도 뒤져봤으나(얻은 건 똥이었지만...) 의도가 불순하니 어디 끝이 좋을 수가 있나요. 제각기 망신살만 얻어 털레털레 돌아갔다지.
그 꼴을 지켜본 가구야히메가 아이고, 적당히 해야겠고나, 하겠어요? 굳건한 거절의 의지를 다지고야 마는데... 결국 황궁에까지 소문이 들어갔다네, 천황이 명을 내려도, 심지어 상궁을 내려보내 당장 짐 싸들고 봉행하여라 하여도 싫습니다. 딱 잘라 거절하니, 요 괘씸한, 어디 네 높은 콧대 한 번 보자꾸나 몰래 찾아갔다가 도리어 미모에 납작코가 되어 편지나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지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몇 해가 지났을까, 어쩐지 하늘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 밝아오는 달을 보며 눈물짓는 가구야히메. 어찌 그러느냐, 어인 일로 수심이 들어 그러느냐 안타까이 물으니 세상에, 사실은 이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네. 달나라 사람으로 죄를 지어 인세로 유형에 처해졌으나 이제는 때가 되어 돌아가야 한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비보인가. 안된다. 달나라가 아니라 어디서 온대도 너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황궁에서는 천군을 보내고 저택을 철통같이 둘러싸는 것도 모자라 규방에 딱 지키고 앉았으되, 소용없고 부질없다네.
어느덧 보름달이 휘영청 뜨는 밤이 되어 하늘에서 기이한 무리가 내려오니 잠긴 문은 열리고 창칼은 풀씨만도 못하더라. 자, 이 땅의 모든 연과 미련을 잊게 하는 옷을 걸치고 우리와 함께 가시오. 달나라 시종이 권하니, 가구야히메, 기다리라, 내 편지 한 장 남기고 가노라 슬픔을 담아 말하더라. 시종이 이러실 때가 아니다 재차 재우치되, 히메 왈, 조용히 하라. 눈치 챙겨라(이렇게는 안 했지만 딱히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갈하고 몇 자 써내리고는 이제 가자, 나 가거든 보소서, 하고 저 하늘로 훌훌 떠나가더라.
그간의 사정을 풀어놓는 편지에 가구야히메를 안타까이 여긴 천황이 훗날 손수 어찰을 내려 많은(富) 신하(士)로 하여금 하늘 가까운 산 타오르는 정상에서 태워보내게 하니, 그곳을 후지(富士)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끝! 재밌지요? 이야기라는 게 그림까지 곁들여서 보면 실감이 곱절로 나지 않겠어요? 이 판본에 사용된 삽화는 릿쿄대 소장본 에마키, 그림 두루마기입니다. 얼마나 오래되었고, 희귀한 물건인지보다 시대를 보여주는 묘사를 통해 수백년전의 복식, 인물상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보세요.
뿐만아니라 문장마다, 장면마다 새겨진 시공을 넘는 보편정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우스꽝스러운 허위의식과 탐욕에 대한 경계, 인세를 넘어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권말의 작품해석이 보다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겠습니다. 어린이와 어른에게 모두 즐거운 시간이기를, 당대에는 '달나라 사람'이라는 초월적 지위를 통해서만 꿈꿀 수 있었던 주체적 여성상을 조금은 슬프고 기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난히 달 밝은 밤, 무심한 얼굴의 가구야히메를 떠올려 보기를 바라며, 진짜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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