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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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감상입니다.

이따금 하는 말,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산다. 어떤 식으로든 배울 것 없는 존재는 없다. 어른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선생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배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람이 사람과 경계를 맞대고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경이가 아닐 수 없는, 사람이 사람과 함께일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식으로든 취약한 이를 대하는 직업종사자의 글은 덮는 순간까지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읽는다. 제발 뻔하지만 말아라. 손쉬운 동정을 던지지 말고 당신의 이야기를 해라. 당신 자신의 세계를 보여달라. 매번 간절한 마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목에서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얼마나 애썼겠는가. 부족하거나 사라진 세계가 아닌, 말이 “숨어 있는“ 세계라면, 어쩌면, 끝없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어쩌면, 우리는, 어쩌면.
p.91 우리에게 언어가 없다면 모두가 '나'일까? 아니면 모두가 '너'일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는 부제 그대로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이다. 사람이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동물인 탓에 언어능력은 사회에 속해 생존하는 대부분의 상황에 필수적이다. 비단 교류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나의 요구를 표현하고 각종 지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말"이다. 이 책은 그 "말"에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이를 찾아가는 언어치료사와 그가 만난 이들이 성장하고, 후회하고, 생각해나가는 이야기다.
이 책은 아동 언어치료에 대한 기록이나 결국 세상의 다른 성원을 대하는 태도 혹은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기쁨과 깨달음을, 후회와 미안함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치료사는 곧 조력자이니 독자는 복지 혹은 각종 의료, 사회 서비스의 대상자와 그 주변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동료 시민으로서 손을 내밀고 함께 가야하는 우리는 그와 우리 자신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p.176 때로 우리는 연민을 거두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왜 우리를 이렇게 취급하느냐고. 왜 당연하게 걷어간 우리의 세금이,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쓰여야 하느냐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과 이 결정을 구체화하는 고급 관료들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한가. 그렇지 않다. 완전한 것은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완성된 것은 변화를 허용치 않으며, 홀로 존재한다. 미래도 과거도 없으며, 영원한 현재에 머문다. 그것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함은 불완전함의 반증이다. 존재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세계이다. 나의 희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언어가 숨어있는 세계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는 것, 너와 내가 함께 열어젖히는 세계가 있다는 것. 소통의 가능성조차 없는 존재는 없다. 마주치고 경계를 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사람이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생각은 더 자주 한다. 사실, 하지 않는 날이 드물다. 백석의 말처럼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고 매일같이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을 닮고 싶어하는 것은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p.122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날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지.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으킨 사건들로 인해 우주가 조금은 바뀌어 있을 거다.

봄이 오고, 새로 돋고 자라는 것을 보며 인사를 건넬 때 이 책을 떠올리는 이가 많기를 바란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다리고 돌아보는 데에 주저함이 없기를 바란다. 어쨌든,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하니까.
p.293 세상은 지뢰밭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네 이야기를 해주곤 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그런 것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터뜨리고 또 터뜨린다고 그래도 게임은 계속되고 삶도 지속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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