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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다시금 반성한다. 표지에 떡하니 적힌 "장편소설"을 보지 않고 시작해버려서 단편집인 줄 알고 읽었다. 옴니버스인가보다... 하면서 읽다 중간에서야 이거 장편이었냐고 혼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작가님, 미안합니다... 그치만 그만큼 각 장의 서사가 탄탄하다는 뜻이기도 하니 넘어가주세요. 『미확인 홀』은 소제목을 사이에 두고 단편집처럼 이어지는 하나의 큰 이야기다. 떠나온 고향 은수리, 사과냄새가 가득한 곳, 산과 들이 일상인 곳,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벗어나고픈 족쇄같은 곳, 그곳을 떠나온 희영의 이야기로 서막을 연다.
어느날 나타난, 받았다거나 날아왔다고 할 수도 없이, 나타나듯 전해진 편지 한 장, 그 한 단어가 현재의 그들을 과거로 모조리 빨아들인다. "종이를 펼치차 세 글자가 나타났다. 블랙홀, 단정한 글씨체였다(p.8)."
p.135 누구에게나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음질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떤 사람은 대롱대롱 매달린 기분으로 평생을 살기도 한다는 걸 몰랐다.
이따금, 아니, 자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도망치고 싶다-에 가까운 마음. '눈 쌓인 숲 사라질 길을 따라 걸어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문장을 생각한다. 숨어버리고 싶어요, 토해내듯 속삭이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허공을 노려보며 소리없이 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 전체가 때를 놓친 애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미처 몰랐기 때문에, 사는 일이 급해서, 들여다보기엔 너무나도 큰 상처라서, 얼떨떨하고 황망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고 덮어두고 때로는 존재를 부정해야만 했던 슬픔과 상실을 끄집어내 먼지를 털고 살피는 마음을 말하는 이야기, 결국 죽음과 상실을 축으로 맴도는 존재들이 살아내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p.113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것이 아닌 건 결국 잃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순옥은 살아왔다. 버리거나 버려지는 것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살다 보면 모든 걸 한순간에 잃는 것 같아도, 살아보면 어떤 걸 완전히 잃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완전히 잃지는 않을 기회 또한 여러 번 있다고. 때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실을 막아주기도 한다.
p.226 지금까지 자신이 지킨 건 아내와 자식의 평안이 아니라 자신의 안온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달빛으로도 사람이 빛나고 빛날 수 있다는 것과 강렬한 빛을 쫓느라 은은한 빛을 여러 번 놓쳤단 것도. 그날 밤 깨달음의 강물이 찬영을 통과해 찬영이 볼 수 있는 빛의 범위를 넓혀주었다. 하지만 밝음을 향한 찬영의 갈망까지 쓸어가진 못했다. 빛나고 빛나며 빛나고 빛나니 모든 것이 빛나도다. 어두운 것은?
사람은 통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감각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얽힌 감정과 생각을 기억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아픈 줄도 모르고 쑤셔넣기 급급했던, 여전히 생생하게 피를 흘리고 환상처럼 덮쳐오는 통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납득하지 못한 상실은 어떻게 허공을 부재의 자리로 채워넣는가.
사는 일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은, 오랜 시간을 죽은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은, 어깨에 자기 것이 아닌 삶을 짊어진 사람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그이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기 자신조차 살아있음을 확신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당신이 선 곳이 무덤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는가. 하나의 존재가 하나의 세계라면 사람을 잃고 신뢰를 잃는 것은 세계가 무너지는 것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 합리적이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이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p.150 "매미가 밤마다 저렇게 우는 데 자기는 아무런 책임도 없대요. 그럼 누구 책임이에요?" 필성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울면서도 또렷하게 말했다.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죠. 매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 저러다가 미쳐서 죽는 거라고요."
p.164 공권력이 파업하는 사람들 편이 아니란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과 경찰에게 벌레 잡듯 두들겨 맞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부위를 가리지 않고 내리치는 곤봉에, 사정없이 휘두르는 발길질에 세상을 향한 정식의 믿음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믿음까지 모두 다.
첫 문장부터 그랬듯이 끝끝내 의뭉스럽고 기쁘지 않으며 답을 주지 않는다. 제목인 "미확인 홀"의 정체나 부재로 시작한 인물의 행방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사는 일의 본질일지 모른다. 만남으로 시작해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삶이 아니던가. 우리는, 어쩌면, 때를 놓쳐 고여버린 수많은 "미안해"를 끌어안고 사는 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든 견뎌내고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 다른 사람, 삶, 그것도 불확실한 삶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완전한 확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없이 울며 맴돌기만 하는 이들의 패인 발자욱이라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읽지 않았을 테다. 그렇다고 빛나기만 하는 이들의 정의로운 무용담이었다면 도중에 인상을 찌푸리며 덮었을 테다. 오히려 모두가 비겁하고 울먹이고 얼굴을 붉히는 이들이어서 내려놓지 못했다. 용서나 동의와는 다르다. 그 비틀린 부분이 주는 끝, 후련함이 있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장례는 산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맞는 말이다. 부재를 공언하고 상실을 확정하는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여지를 주지 않는 끝을 마주하게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평안을 누릴 것이라는 허구의 희망, 내려놓음에서 오는 안도, 오직 그것을 위해 수많은 절차와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 아니던가. 작품 전체, 이 한 권이 각자의 자리에서 치러내는 장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감히 말한다. 이 책은 애도와 이별의 의식이라고. 각자의 자리, 각자의 시선에서 맴돌던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해묵은 눈물을 쏟아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p.183 정식은 그제야 자신이 그날에 대해, 그날 받았던 충격과 무너진 믿음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24 "필희가 정말 거기에 들어갔을까?" 그때처럼 겁먹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매일 모래 한 알 정도의 크기만큼씩 그 사실을 받아들였는지 담담한 목소리였다. "필희가 분명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내가 그걸 못 들어줬어. 그게 너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