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토리 이야기 - 400년 전통 명화와 함께 읽는
이애숙 옮김, 고지마 나오코 감수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의날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낸 영화 중 좋아하는 건 아주 많지만, 개중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몇번을 보고도 잊지 못해 울먹이며 본 작품이다. 재미 없기도 힘든 내용 아닌가. 신비한 출생, 비범한 재능(외모 또한 포함된다면...), 범인과는 차원이 다른 삶 등.
옛말에(그러니까, 내가 전부터 하던 말에 따르면) 어지간한 설정이나 소재, 전개는 다 고전에 있다고 했다. 찾아보면 나온다. 정말로. 누군가는 다 해봤어! 그래서 재밌어! 사람 사는 일 다 똑같다!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니까요?

자 들어보세요. 내가 이런 얘기 하난 끝내주게 잘 한다. 들어봐요. 가까이 오세요. 지금부터 일본 최초의 소설, 달나라 공주님 이야기 갑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옛날옛날 대나무 장수 다케토리 부부가 있었습니다. 한평생 자식 없이 살아온 노부부에게, 어느날 아이가 생겼지 뭡니까. 그날로 나무 하나 벨 때마다 온갖 은금보화가 쏟아져 나오니 삽시간에 부자가 되어 장중보옥 키운 아이는 석달만에 절세가인으로 자랐다네요.
히메, 아리따운 아가씨라 이름이 붙으니 온나라에 소문이 나더라. 지체높은 공자가 다섯이나 몰려와 따님을 제게 주십사(으...!) 청하니, 늙은 아비가 얘야, 우리는 늙었고 자식은 너 하나뿐이니 어서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니, 혼자 남겨둘 수는 없단다, 간곡히 설득해도 절레절레, 고개만 젓더라. 어찌 낯도 보지 못한 분이 소문만 듣고 찾아와 나를 달라 청하느냐고. 아무래도 맞는 말이긴 하지...

밤낮으로 어르고 달래봐도 싫습니다. 안됩니다. 퇴짜만 놓던 가구야히메가 결국 양친의 설득에 못이겨 조건을 걸었지 뭡니까. 이 세상엔 진귀한 보물, 말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보배를 가져다 주세요, 그것으로 나에 대한 진심을 증명하세요, 라고. 다들 투덜대면서도 그래, 그거면 된다 이거지? 호기롭게 나섰으나 그게 어디 쉽던가요. 뚝딱하면 얻어질 것이었으면 진작에 보물 실격이지.
그래서 다들 꾀를 냈다 이거야. 돈으로, 힘으로 사람을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사기도 쳐보고, 새끼 들어있는 둥지도 뒤져봤으나(얻은 건 똥이었지만...) 의도가 불순하니 어디 끝이 좋을 수가 있나요. 제각기 망신살만 얻어 털레털레 돌아갔다지.
그 꼴을 지켜본 가구야히메가 아이고, 적당히 해야겠고나, 하겠어요? 굳건한 거절의 의지를 다지고야 마는데... 결국 황궁에까지 소문이 들어갔다네, 천황이 명을 내려도, 심지어 상궁을 내려보내 당장 짐 싸들고 봉행하여라 하여도 싫습니다. 딱 잘라 거절하니, 요 괘씸한, 어디 네 높은 콧대 한 번 보자꾸나 몰래 찾아갔다가 도리어 미모에 납작코가 되어 편지나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지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몇 해가 지났을까, 어쩐지 하늘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 밝아오는 달을 보며 눈물짓는 가구야히메. 어찌 그러느냐, 어인 일로 수심이 들어 그러느냐 안타까이 물으니 세상에, 사실은 이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네. 달나라 사람으로 죄를 지어 인세로 유형에 처해졌으나 이제는 때가 되어 돌아가야 한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비보인가. 안된다. 달나라가 아니라 어디서 온대도 너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황궁에서는 천군을 보내고 저택을 철통같이 둘러싸는 것도 모자라 규방에 딱 지키고 앉았으되, 소용없고 부질없다네.
어느덧 보름달이 휘영청 뜨는 밤이 되어 하늘에서 기이한 무리가 내려오니 잠긴 문은 열리고 창칼은 풀씨만도 못하더라. 자, 이 땅의 모든 연과 미련을 잊게 하는 옷을 걸치고 우리와 함께 가시오. 달나라 시종이 권하니, 가구야히메, 기다리라, 내 편지 한 장 남기고 가노라 슬픔을 담아 말하더라. 시종이 이러실 때가 아니다 재차 재우치되, 히메 왈, 조용히 하라. 눈치 챙겨라(이렇게는 안 했지만 딱히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갈하고 몇 자 써내리고는 이제 가자, 나 가거든 보소서, 하고 저 하늘로 훌훌 떠나가더라.
그간의 사정을 풀어놓는 편지에 가구야히메를 안타까이 여긴 천황이 훗날 손수 어찰을 내려 많은(富) 신하(士)로 하여금 하늘 가까운 산 타오르는 정상에서 태워보내게 하니, 그곳을 후지(富士)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끝! 재밌지요? 이야기라는 게 그림까지 곁들여서 보면 실감이 곱절로 나지 않겠어요? 이 판본에 사용된 삽화는 릿쿄대 소장본 에마키, 그림 두루마기입니다. 얼마나 오래되었고, 희귀한 물건인지보다 시대를 보여주는 묘사를 통해 수백년전의 복식, 인물상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보세요.
뿐만아니라 문장마다, 장면마다 새겨진 시공을 넘는 보편정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우스꽝스러운 허위의식과 탐욕에 대한 경계, 인세를 넘어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권말의 작품해석이 보다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겠습니다. 어린이와 어른에게 모두 즐거운 시간이기를, 당대에는 '달나라 사람'이라는 초월적 지위를 통해서만 꿈꿀 수 있었던 주체적 여성상을 조금은 슬프고 기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난히 달 밝은 밤, 무심한 얼굴의 가구야히메를 떠올려 보기를 바라며, 진짜로,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