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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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는 마음, 혹은 살아가는 마음. 살-다와 사-다 사이에는 수많은 물질과 시간이 자리할 테다. 이미 안 쓰고 안 사는 게 그나마 에코인 세상이라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나요. 살다보면 꼭 필요하지는 않은 줄 알면서도 기어코 사버리고는 또 쓰레기 만들었다고 자괴감에 머리를 뜯기도 하고, 별 생각 없이 산 물건을 기십년씩 끼고 살기도 한다. 혹은 역시 사길 잘했다고, 일년에 몇 번 입지도 못하는 코트, 모셔만 두는 찻잔, 애물단지라고 한숨을 쉬어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책들. 삶을 함께하는 존재들, 반려인간, 반려동물이 있다면 삶을 함께하는 것들을 반려 물건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미니멀리즘이 대세라지만, 여전히 도통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가하면 확신과 기대에 차 장만한 물건을 떠나보내는 마음도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나를 돌보고 존재를 사유하게 되는 반려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p.85 사람이나 관념이 아닌 물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늘 경계하고는 있지만 내가 정성스럽게 돌보아 더욱 사랑스럽게 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물건에 대한 애정이 꼭 그렇게 경계해야 할 대상인가 싶다.

시인 김춘수는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와 꽃이 된다고. 물건도 다르지 않다. 단순한 사물에 불과한 것에 마음과 시간이 쌓여 비로소 '나'의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이 홀로 선다는 것이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이라면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어떤 물건은 나의 자아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물건은 세상에 녹아들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의태이며, 또 어떤 물건은 몸을, 시선을 옥죄는 규율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p.55 물론 가발은 불편할지언정 군중 속에 숨을 수 있게 해준다. (...) 암 환자가 무수히 많은 병원 암 센터에서도 스카프를 쓰면 쳐다보는 사람이 많다. 대개는 가발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은 이처럼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한다.
p.63 하지만 특정한 이미지로 비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특정한 이미지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목차의 "내가 돌보는 물건, 나를 돌보는 물건"부터 "충동이 없으면 지불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사고, 사기 위해 산다"까지 저자의 삶에 오간 반려-대상의 목록을 따라가노라면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나 물건인 것, 물건이라고 생각했으나 가치관, 관념 혹은 주입된 편견이었던 것들을 만나게 된다. 머무르는 공간, 책, 집, 가방, 식물, 자동차까지. 만족과 단념을 오가는 여정에서 저자 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촘촘한 혐오와 억압이 어떻게 개인은 짓누르는지, 집단과 산업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얼마나 둔감하게 살았는지, 세대를 건너 오래도록 머무는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어떤 것인지를 곱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
p.141 인간은 때가 되면 먹고 때가 되면 배설을 해야 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기계에 끼이면 팔다리가 잘리고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 취급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인간을 인간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으려는 세력은 인간을 계급으로 구분하고 우리와 남을 구분해서 착취를 합리화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이 상품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사람이 사람과 사는 까닭에 타인의 시선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으므로 물건을 사고 물건과 함께 살아가고, 물건에 사람을 맞추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으로서의 소비자로 전락한 동시에 역설적으로 동시에 서로가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들, 혹은 개체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 책을 대상, 물건에 대한 사적 기록으로 읽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p.178 남녀를 '떠나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외모에 대해서는 더더욱 남녀를 떠나서 말할 수 없다. 내가 신발 가게에서 신발을 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여전히 큰 발은 알아서 숨겨 주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p.224 나를 들여다보는 일, 남의 말을 듣는 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 이 모든 것은 목청 높여 간결한 구호를 외치는 일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단시간에 끝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유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인류 모두에게 주어졌는지 도통 의심스럽기는 해도, 우리 중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도 없이 주어진 귀중한 특권이다.

문학 도서라면 저자 소개부터 추천사까지 전부 제치고 본문으로 돌진하는 버릇 탓에 에세이면서도 저자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소비하는 마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값싸고 빠르게 소비되는 물건을 사들이는 마음에 대한 단상일까, 했던 짐작이 부끄러웠다. 등장하는 '물건'들이 일회용품이 아니라거나, 저자가 '젊은이'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반짝거리거나, 부럽거나, 나를 '럭셔리'의 세계를 이끌어줄 것만 같은 물건들이어서도 아니다.
저자 이다희의 글을, 사람 이다희의 시간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었다. 읽는 내내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많이 부끄러웠다. 아마도 읽지 못할 저자에게 이렇게나마 감사를 전하는 마음은 어쩌면, 낡은 책들을 모아 담고 맞지 않는 옷을 버리거나 노트를 사고 가구를 들이는 때에 문득 떠오를 것이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물건들과의 연대의 기억"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살며(live) 왜 사는가(b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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