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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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람은 연약하다. 아니, 나약하다는 쪽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짧게 살고, 쉽게 다치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죽어버린다. 고비는 지난할지언정 숨이 넘어가는 과정만큼은 순식간이다. 상실은 대개 거창하고 웅장하지도, 아름답고 비장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상실, 적어도 죽음으로 인한 것만큼은, 비극이다. 누구에게도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현상 너머의 의미를 부여하는 습성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사람을 잃는 것은 단순히 이름 하나를 지우는 일과 같지 않다. 한 명은 하나의 세계이고, 기억으로 이루어진 흔적은 다른 이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세계의 일부를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아 남은 이는 폐허를 응시할 의무에 맞닥뜨린다.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의 무게와 크기를 증명한다. 그것은 대체로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와 썩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리하여 하나의 상실은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이를 같은 일로 잃었다 하더라도 남겨진 이들 각자에게 다가오는 충격, 그것에서 회복하는 일은 각자의 삶과 기억만큼의 다양성을 갖는다.


사람은 동물이고, 겁먹고 상처입은 것은 도망쳐 숨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프고 서러운 이는 저마다의 세계로 파고들어 숨을 몰아쉴 수밖에.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여기, 남겨진 두 사람이 있다. 평생의 사랑 혹은 영혼의 안식처를 잃은 애너벨, 든든한 이해자이자 울타리를 잃은 벤자민. 배우자이자 아버지인 켄지를 잃은 두 사람. 엄마와 아들이기 이전에 그들 또한 연약하고 불안정한 인간에 불과하다. 켄지의 죽음은 정말이지 “재수가 없었던” 일이었으며, 전혀 영웅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나름의 일상을 지켜나가고자 하나, 대체로 세상은 비틀거리고 위태로운 이들에게 친절한 곳이 아니다. 스스로의 상처를 부정하는 이들, 그들의 발버둥은 도리어 서로를 상처입히고 관계를 어그러뜨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서로가 자신을 탓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만이 확실한,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소용돌이.


직장 내 아날로그 업무를 담당하는 애너벨의 입지는 켄지의 죽음 이후 전자 뉴스 서비스의 확산과 함께 더욱 위태로워지고, 설상가상으로 사춘기 아들 벤자민(베니)은 온갖 사물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물건들은 요정 이야기처럼 상냥하고 환상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일상을 혼란에 빠트린다. 사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자연히 망상과 환청으로 치부되고, 자기 몫을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운 모자가 서로를 상처입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외롭고 슬프고 두려운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사들이고 쌓는 것으로 채우는 애너벨, 도망쳐 숨 쉴 곳을 찾는 동안 점점 더 주류 사회와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베니.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미쳐’가고 소외되는 이들은 누구인가.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길 잃은 이들은 어디로 돌아가고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p.154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것을 원하게 하는 걸까? 무엇이 물건들에게 인간을 매혹시키는 힘을 주는 것이며,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에 한계라는 게 있을까?

p.525 일단 어떤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어. 한번 깨진 신뢰는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쉬운 답은 없어.


소외되고 밀려난 ‘규격 외’의 존재들이, 부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슬퍼하는, 매력적이지 않은 이들이, 심지어는 물건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을까? 무엇이 ’진짜‘일까?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발화자에 자격이 존재하는가? 나는, 너는, 우리는 무엇이며 사회에서 예술과 개념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 자신도 가족을 잃은 후 환청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등장인물과 사물을 오가며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진짜라고, 그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지금, 여기 존재하는 느낌을 잊지 말라고, 그러나 흘려보내라고.

p.280 그건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소리야. 그리고 책의 세계에서 이건 기적과 다름없지. 소년이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거나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말하는 순간.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상실과 회복에 관한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고민거리를 던져줄지언정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책 안의 책, 텍스트의 형태로 전해지는 텍스트는 결국 읽는 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힘도 갖지 못한다.

주변의 것,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은 비단 사물 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사랑도, 자기 자신조차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놓쳐버리고 만다. 그러나 잃어버릴지언정, 잊힐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존재는 힘이 세다. 이 세상에 머물렀던 이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p.578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 휩쓸려 가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진짜란 무엇인가?' 해일은 우리에게 무상함이 진짜임을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하고 있다.


말과, 의의와, 사랑과, 기억과... 무형의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흩어질지언정,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상실은 비극이나 영원하고 완전한 비극이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서로와 스스로에게 가시를 세우는 주인공들에게, 이 책을 읽을 독자 자신에게 같은 말을 전해주자.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고, 동시에 어떤 것은 의미를 가짐으로서 영원하다고. 지극한, 어떤, 마음을 담아. 너를, 나를 보라고.

p.582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특별한 망상의 풍선 속에 갇혀 있고, 거기서 탈출하는 게 모든 사람의 인생 과제야.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우린 과거를 현재로 만들 수 있고, 너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네가 기억하도록 도울 수 있어. 그리고 우린 너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시간을 경험하는 순서를 바꾸고 너의 세계를 넓혀줄 수 있지. 하지만 깨어나는 건 오롯이 너에게 달려 있어. 준비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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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아니다 -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박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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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짐승은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이지, 어떻게 둘이 같으냐”고 말하는 당신에게 말하노니, 다 알면서도 하는 짓이었군요. 그렇다. 짐승, 곧 동물(여기서는 인간을 제외한 동물을 말하기로 하자)은 동물이다. 물건이 아니다. 물건에는 생명이 없으며, 본질적으로 사용되고 소모되는 성질의 것이다. 살아있는 것, 혹은 태어나 살아갈 것들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동물은 인간과 같지 않다. 인간의 권력과 편의는 철저하게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을 인간의 삶에 끌어들인 순간부터 마찰과 불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모든 동물에게서 유리되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이상, 그들과 삶의 경계를 조율하고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p.144 실제 반려동물 관련 법을 제정할 때 아동 관련 법률이 참고되기도 하는데. 이는 두 존재 다 사회의 보호가 뒤따라야 하는 부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타인을 때리면(혹은 물면) 안 된다"는 규칙을 가르쳐야 하고, 이에 따라 교육받지 못한 아동(혹은 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보호자에게 귀속된다. 그럼에도 '개를 죽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에 힘이 실린다. 물림 사고의 궁극적인 예방책은 보호자의 책임 강화이지 '물면 죽인다'는 협박이 아니다.


최근 개정된 동물보호법을 포함해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누구도 고통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거창한 말을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p.160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적대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미 고달픈 삶에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p.198 한 기자가 1미터 길이의 목줄에 묶인 채로 시골 개의 하루를 체험하고 쓴 기사를 읽었다. 기자는 시골 개와 함께 묶여 지낸 7시간 동안 겪은 추위, 외로움, 지루함을 생생히 묘사했다. (...) 너무 지루한 나머지 "풍경마저 외워"버렸다고도 썼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없듯이, 개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모 축제에는 살아있는 산천어가 트럭으로 실려 쏟아진다. 참여객의 재미를 위해 맨손이며 낚싯바늘에 찢기고 으스러지기 위해. 매일같이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동물이 버려지고 숨이 끊어진다.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잡혀 들어온 동물은 수조나 우리에 갇혀 전시되다 생을 마친다. 바깥이 어떤 곳인지, 왜 알 수 없는 이 곳에서 하루종일 맴돌며 소음과 쓰레기에 시달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개장수며 건강원은 낯설지 않고, 서식지를 위협받는 동물을 보호하자는 외침에는 일시적인 호응에 그친다. “반려동물“은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으나, 예쁘고 어린 ”순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해도 여전히 밥값이며 병원비는 아까운 데가 있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끔찍한 고문이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심심찮게 벌어진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가볍기 짝이 없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살아있는 무언가로 대하고 있기는 한 걸까.


p.122 이들 가해자는 공통적으로 피해 대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발산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받음으로써 쾌락을 느낀다. 또 자신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들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학대 행위가 자신이 직접 행한 것임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행위는 그들의 과시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p.176 최소한 아이에게 '동물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가르치고 싶다. 내 아이가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권리를 갖고 태어나며, 동물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리주었으면 한다. 나는 올해도 동물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동물권 변호사‘로서 개정된 동물보호법과 국내외 동물권 현주소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동시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고.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세상을 향한 호소이며,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이유를 낱낱이 파고드는 매서운 비판이다.

물론 이미 오랜 시간 인간만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을 구축하고 누려온 이상 하루아침에 엄청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금만 가기를, 어디일지 모를 끝이 초라하고 허망하기를 바라는 이는 없다. “우리”에 더 이상 인간만이 속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아도, 작거나 아름답거나 희귀하지 않아도 살 권리가 있다. 행복하게 살다 타살이 아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 누구도 길바닥에 내던져지고, 발에 채이고 손바닥만한 철창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도 사용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장의 부득이한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 고통을 줄이고,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간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사용될 수 없는 존재이다.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살아있고, 살아있었으며, 살아갈 존재는 그 누구도 물건이 아니다.


p.128 동물에 대한 학대를 막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생명을 가지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라는 관점과 연결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단순히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에 대한 보호와 학대 방지는 단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에서 가지고 있는 도덕적 의식과 의무감에서 필요한 것을 넘어서서 전체 사회 구성원의 존중과 배려 및 보호라는 관점에서 인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p.227 중요한 점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든 행복을 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내가 아프기 싫듯 동물도 아프기 싫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그들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학대 사실을 폭로할 수 있는 인간사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기에, 그래서 아픔을 "아프다"는 말로 전달할 수 없기에,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간단히 모른 체한다.

#물건이아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 #박주연변호사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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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 부패의 역설이 완성한 중국의 도금 시대
위엔위엔 앙 지음,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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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부패란 무엇인가? 과연 부패는 공산주의 정부로 인해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인가?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부패 근절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부패의 형태는 "도둑놈들"과 "공권력에 의한 수탈"에 한정되는가? 개인 혹은 정당에 의한 독재정부를 청산한다면 모든 부패를 근절할 수 있는가? 엄중한 처벌 혹은 강경한 캠페인은 부패 근절과 사회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까? 모든 부패가 동일한 과정과 결과를 보이는가?

이 책은 중국의 관료 체제와 부패 유형, 개혁 개방 이후 중국 내 부패 진화의 양상을 분석하며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운동이 19세기 미국의 도금시대와 유사한 현재 중국의 경제사회를 타개할 가능성과 한계점, 중국이라는 거대하고 모순적인 국가가 부패 근절을 통해 새로운 진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p.14 중국과 가장 유사한 것은 19세기 말의 미국이다. 이 시기의 미국은 맹렬한 성장과 눈에 띄는 불평등, 그리고 재력가들과 결탁한 부패 정치인들로 특징지어진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1978년 이후 중국의 ‘도금 시대’가 건설되는 과정이다. 중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부패와 자본주의 관계에 대한 기존관념을 바꿔야만 한다.


다방면으로 지배적인 서구 사회의 영향인가, "공산주의"는 "독재"와 더불어 모든 부정과 해악의 원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마치 공산정권을 타도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민주정이 들어서면 이전까지의 문제는 깨끗이 사라질 것처럼.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혹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원리적으로는 공산주의, 일당 독재 정권의 영향을 같이 받았음에도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 사회 양상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부패는 행위자와 그 규모 및 내용에 따라 크게 바늘도둑(하위 공무원의 비교적 작은 규모), 소도둑(고위 공무원의 비교적 큰 규모), 급행료, 인허가료 , 네 가지의 범주로 구분된다.

또한 이에 따라 각 국가의 부패지수를 비교했을 때, 서구 사회에서 빈번하게 제시되는 예시인 인도는 급행료,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 국가들은 도둑질과 갈취(바늘도둑과 소도둑)이 주된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인허가료가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세 가지 비교 앙식을 제시한다. 첫째, 전체적인 부패의 수준만큼 부패의 구조가 중요하다. 둘째, 체제 유형은 어떤 유형의 부패가 지배적인가에 영향을 미친다. 셋째, 모든 체제의 인허가료는 다르다.

p.205 중국에서 인허가료는 정치적으로 결탁한 자본가들이 열정적으로 투자하고 건설하는 것을 고취했다. 동시에 정치가들이 그들의 발전 목표를 달성해 승진 사다리를 올라타게 했다. 이런 부패는 스테로이드처럼 기능하는데 심각하지만 간접적인 해악을 끼친다. 인허가료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연속적이기보다는 간헐적이다.

p.283 첫째, 부패는 항상 나쁘지만 모든 유형의 부패가 경제에 똑같이 나쁜 것은 아니며 같은 종류의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는 부패를 박멸함으로써 발흥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부패의 박멸이 아니라 부패의 정성적 진화(폭력과 도둑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으로)를 통해 발전했다.


모든 부패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부패는 결과적으로 경제구조의 선순환과 성장을 저해한다. 부패는 자원의 편중과 불필요한 정체, 정책 의도의 왜곡을 유발한다. 궁극적으로 부패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패가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부패는 곧잘 국가경제시스템 파탄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며 실제로 수많은 사례가 존재하나, 부패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이며 거대한 경제성장을 보이는 국가, 중국이 있다. 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부패가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자원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저자 위엔위엔 앙 또한 부패의 해악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부패가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의 예를 들어 어떤 부패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나마 경제 성장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음을 보인다.


결국 사회과학적 연구와 분석의 의의는 그 이후에 있다. 현상의 외면적 이해는 그 자체로 결과기 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고 또 경계할 수 있는가? 앞선 사례들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가?

저자는 마지막까지 명쾌하고 도덕적인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마치 그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듯이. 그렇기에 나와 같은 이 책을 단순한 연구서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니 부디, 이 책이 다양한 독자들에게 가깝지만 먼 나라, 한국과 같은 시기의 전쟁을 겪었으나 격변기를 거쳐 너무도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을 통해 우리의 길을 가늠하고 일시적인 효과에 의존하지 않는 성장, 각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고려한 부패 근절 방안을 고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p.156 나이지리아와 우간다를 좀먹던 문제들은 중국에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베버로 바로 넘어가기' 대신에 기존 녹봉 관행과 관료의 보상을 재정적 성과에 연동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 단순히 복사한다면 서양의 최선의 방법을 흉내 내는 것과 같은 오류를 되플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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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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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상은 현실에서 출발한다. 만일 혹은 만약에-를 가능케 하는 것은 지독한 갈망 혹은 희망 어딘가의 지점일 것이다. 그 위에서 떠돌고 주저하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어느 존재의 물음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미래 혹은 어느 시점의 세계를 그려낸다. 그러므로 상상은 현실 속의 어떤 것보다도 현실을 충실히 반영해낸다.

짧다면 짤고 길다면 긴, "얼음"을 테마로 한 단편들을 읽고 조금, 울고싶어졌다. 이 글은 수많은 '왜'에 답하고자 했던 시간들의 자국이다. 어째서 이렇게 쓸쓸해야 하는걸까. 어째서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일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고 아름다울 수 없을까.

p.12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사람 목숨이 중요한가요? 그 많은 별과 은하계가 생기는 데도 몇십억 년의 세월이 필요한데요. 그것들을 모조리 다 없애도 기분이 언짢지 않으세요?"
p.47 나는 여기 붙들려 삶도 죽음도 모르는 채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내가 그들의 삶을 보장해야 하는가. (...) 내가 바란 적 없는 제물을 들고 와 앞에 늘어놓는 걸로 멋대로 계약을 맺으며, 신의 뜻대로......를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제 뜻과 맞갖지 않으면 신을 원망하거나 부정하기 일쑤인 이들아.


이따금 그런 말을 한다. 사람은 바이오동력 음식물 쓰레기통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그러나 아직은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누군가가 최초의 살인을 저지를 때, 언젠가는 최초의 포옹이 일어났을 것이며, 누군가 굶주린 자를 내버렸다면, 어디선가는 제 입에 든 것조차 내어주는 사랑 또한 존재했을 것이라고.

실소도, 고소도 웃음이며 실낱같은 희망도 희망이다. 희망과 절망은 "望"을 공전하는 쌍성과도 같다. 사람이 사람을 해친다면, 파괴되는 인간성은 모순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괴테는 말했다. Lieben belebt, 사랑이 살린다. 오래된 종교들은 사랑할 의무를 말한다. 진부한 표현이다. 그러나 진부한 만큼 끈질기게 살아남은 말이다. 사랑이 열쇠가 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쓰고 시리고 막막한 이야기에서 눈물을, 눈물에서 반짝임을 찾아낼 수 있다.


p.55 그런데 어쩌면 얼음이 녹아 예전의 문명을 모두 휩쓸어 갔다는 얘기는,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의 추측에 불과하지 않을까? 실제로는 얼음이든 무엇이 됐든 서로 더 차지하려다가 절멸을 불러온 게 아닐까?
p.65 당신이 그 안에서 너무 춥지 않기를... 언젠가, 이 세계가 그때까지도 무사하다면, 당신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과 만날 행운을 누리기를...
p.71 어머니에게 남편은 영혼과 분리된 살덩어리, 단백질 보충원에 지나지 않았다.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일이니까. 죽은 자를 먹는 것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정한 규칙이다. 다만 나는, 그것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행복은 내리막길, 고통은 오르막길과도 같다. 빠져들고 지나치기에는 그저 웃으며 눈을 감고 만끽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막막한 경사와 터질듯한 심장을 마주해야만 한다. 행복의 고지에서 미끄러뜨리고 고통의 밑바닥에서 바닥을 밀어차고 버텨내게 하는 힘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절망의 정점, 균열의 가장자리 혹은 행복의 구렁텅이에 놓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어떤 순간도 등을 떠밀고 발밑을 흔드는 선택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선택은 온점이 아닌 반점이다. 선택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며, 선택하는 이와 그가 남기는 시간에 따라 흔적을 남긴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이며, 절망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p.78 왜 어떤 이는 규범에 순응하고, 어떤 이는 규범에 저항하며, 어떤 이는 규범에 군림할까.
p.192 운조는 로타의 투명한 몸통 너머로 보이는 숲과 푸르고 붉은 혈관, 쉼 없이 뛰는 심장을 보았다. 그것은 낯선 세계, 누구도 본 적 없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었다. 세상은 타인의 몸에 담긴다. 운조를 지나쳤던 모든 이의 몸을 통해 운조는 세상을 보았다. 참혹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하고, 추악하나 그 누구도 드넓고 평온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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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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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우리의 지구는 미래 세대의 것을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비슷한 얘기를 참 많이도 듣는다. 당연한 말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걸까. 이제 와 분명해진 한 가지는, 우리 인간이 지구를 멋대로 소모해도 그럭저럭 큰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길 수 있었던 시간은 애저녁에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당장, 적어도 근시일 내에 다같이 죽지 않으려면 기를 쓰고 생활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한 처지니 말이다.

기억과는 생판 다른 날씨, 충격적일 만큼 황량해진 곳곳의 자연들과 극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먼 곳으로부터의 전염병과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인 쓰레기들. 그들을 목도할 때마다 경악과 공포를 넘나드는 마음의 유효기간이 지극히 짧은 것은 당장의 편리함과 현대 사회의 나약한 개인의 삶에 밀려나기 때문일까.

p.31 여러 편의시설과 정책들은 복지 서비스의 일환으로만 논의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를 두고 한정된 자원인 에너지의 분배 문제를 고민하고 그동안 누려온 삶의 편안함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에 맡겨진 역할이자 과제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수치심과 절망의 침묵을 제외한 답을 내놓기가 어려워졌다. 그러게, 뭘 할 수 있을까. 당장 실감 가능한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이루는 것은 팔할이 플라스틱과 여기저기로 떠넘긴 책임 아닌가.

말로는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각종 정책과 서비스, 상품 이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층층이 얽혀있다. 그리하여 환경 문제에 직면한 우리의 구호는 반쯤 처음으로 돌아간다.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동등한 책임이 있지는 않다.

p.76 환경 문제를 말하면 중산층의 한가한 소리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회 문제가 많은데 환경 문제를 말할 시간이 있느냐, 자연을 즐길 시간이 있으니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서다. (...) 환경 문제는 말 못 하는 자연의 문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다. (...) 직접 피해를 입는 사람도 스스로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 저개발국의 저소득층 시민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인권 영역에서 환경 분야는 가장 뒤늦게 논의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이런 말을 한다. 죽고싶지 않으면 함께 살아야 한다.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오늘 버린 쓰레기는 바다 건너 어딘가에 쌓여 훗날의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어코 인간이 멸종하는 꼴을 목도하고 싶지 않거든 편리와 이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의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변화를 꾀하고 편안함을 조금쯤 포기하지 않고서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나아갈지 전 세대가 고민하고 협력하지 않고서는 우리 인간은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기분좋게 한담을 나눌 수 없는 이유이다. 어른도, 어린이도, 청소년도, 모두가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다시금 사회 전체의 책임을 촉구하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p.109 결국 좋은 환경 교육이란, 누구나 자신만의 결론에 닻을 내려 책임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환경과 관련 없어 보이거나 배타적으로 보이는 인권, 노동, 사회정의와 불평등, 세대 갈등 등의 문제들은 실은 환경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깊고 넓은 사고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환경적 소양을 기르는 일은 결국 전인적 교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대체로 개인의 이야기다. 그 말은 곧 에세이를 읽는 일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그의 자리와 시선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뜻이 된다. 아끼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생활 환경과 사회생활에서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비건 식이, 개인의 실천과 독려로는 역부족인 축산 산업, 각종 동물원 산업과 종보호 정책, 그리고 당장 하루가 급한 삶, 소비자와 거대 기업, 자본주의까지. 시도와 고민의 흔적은 개인의 삶에서 시작해 미래를 고민하는 개인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경력 13년, 현 기후환경 기자로 활동 중인 저자가 각지의 취재 현장에서, 자신의 삶에서, 기억에서, 경험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와 수많은 실패담의 기록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손쉬운 절망보다는 어려운 고민을 거듭하자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약간의 희망을 잃지는 말자고, 내가 그러하듯, 당신도.

p.247 나는 반자본주의적 가치들을 지향하면서 살 수는 있지만 무조건 반자본주의가 답이라고 외칠 자신이 아직은 없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누리고 있는 많은 것은 기술의 진보에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개발도 필요할 수 있다. (...)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술에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가진 것도 있다.

*함께 읽기를 추천하는 책
1. 제이슨 히켈, 『적을수록 풍요롭다』 (창비)
2. 베스 가디너, 『공기 전쟁』 (해나무)
3.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니손, 『시간과 물에 대하여』 (북하우스)
4. 곽재식,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어크로스)
5. 마리 모니크 로뱅, 『에코사이드』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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