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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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우리의 지구는 미래 세대의 것을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비슷한 얘기를 참 많이도 듣는다. 당연한 말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걸까. 이제 와 분명해진 한 가지는, 우리 인간이 지구를 멋대로 소모해도 그럭저럭 큰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길 수 있었던 시간은 애저녁에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당장, 적어도 근시일 내에 다같이 죽지 않으려면 기를 쓰고 생활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한 처지니 말이다.

기억과는 생판 다른 날씨, 충격적일 만큼 황량해진 곳곳의 자연들과 극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먼 곳으로부터의 전염병과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인 쓰레기들. 그들을 목도할 때마다 경악과 공포를 넘나드는 마음의 유효기간이 지극히 짧은 것은 당장의 편리함과 현대 사회의 나약한 개인의 삶에 밀려나기 때문일까.

p.31 여러 편의시설과 정책들은 복지 서비스의 일환으로만 논의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를 두고 한정된 자원인 에너지의 분배 문제를 고민하고 그동안 누려온 삶의 편안함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에 맡겨진 역할이자 과제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수치심과 절망의 침묵을 제외한 답을 내놓기가 어려워졌다. 그러게, 뭘 할 수 있을까. 당장 실감 가능한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이루는 것은 팔할이 플라스틱과 여기저기로 떠넘긴 책임 아닌가.

말로는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각종 정책과 서비스, 상품 이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층층이 얽혀있다. 그리하여 환경 문제에 직면한 우리의 구호는 반쯤 처음으로 돌아간다.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동등한 책임이 있지는 않다.

p.76 환경 문제를 말하면 중산층의 한가한 소리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회 문제가 많은데 환경 문제를 말할 시간이 있느냐, 자연을 즐길 시간이 있으니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서다. (...) 환경 문제는 말 못 하는 자연의 문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다. (...) 직접 피해를 입는 사람도 스스로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 저개발국의 저소득층 시민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인권 영역에서 환경 분야는 가장 뒤늦게 논의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이런 말을 한다. 죽고싶지 않으면 함께 살아야 한다.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오늘 버린 쓰레기는 바다 건너 어딘가에 쌓여 훗날의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어코 인간이 멸종하는 꼴을 목도하고 싶지 않거든 편리와 이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의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변화를 꾀하고 편안함을 조금쯤 포기하지 않고서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나아갈지 전 세대가 고민하고 협력하지 않고서는 우리 인간은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기분좋게 한담을 나눌 수 없는 이유이다. 어른도, 어린이도, 청소년도, 모두가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다시금 사회 전체의 책임을 촉구하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p.109 결국 좋은 환경 교육이란, 누구나 자신만의 결론에 닻을 내려 책임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환경과 관련 없어 보이거나 배타적으로 보이는 인권, 노동, 사회정의와 불평등, 세대 갈등 등의 문제들은 실은 환경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깊고 넓은 사고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환경적 소양을 기르는 일은 결국 전인적 교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대체로 개인의 이야기다. 그 말은 곧 에세이를 읽는 일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그의 자리와 시선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뜻이 된다. 아끼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생활 환경과 사회생활에서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비건 식이, 개인의 실천과 독려로는 역부족인 축산 산업, 각종 동물원 산업과 종보호 정책, 그리고 당장 하루가 급한 삶, 소비자와 거대 기업, 자본주의까지. 시도와 고민의 흔적은 개인의 삶에서 시작해 미래를 고민하는 개인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경력 13년, 현 기후환경 기자로 활동 중인 저자가 각지의 취재 현장에서, 자신의 삶에서, 기억에서, 경험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와 수많은 실패담의 기록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손쉬운 절망보다는 어려운 고민을 거듭하자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약간의 희망을 잃지는 말자고, 내가 그러하듯, 당신도.

p.247 나는 반자본주의적 가치들을 지향하면서 살 수는 있지만 무조건 반자본주의가 답이라고 외칠 자신이 아직은 없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누리고 있는 많은 것은 기술의 진보에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개발도 필요할 수 있다. (...)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술에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가진 것도 있다.

*함께 읽기를 추천하는 책
1. 제이슨 히켈, 『적을수록 풍요롭다』 (창비)
2. 베스 가디너, 『공기 전쟁』 (해나무)
3.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니손, 『시간과 물에 대하여』 (북하우스)
4. 곽재식,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어크로스)
5. 마리 모니크 로뱅, 『에코사이드』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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