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동남아 - 동남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이끈 16인의 발자취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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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다섯 글자도 길어 세 글자로 줄여 부르는, 손발을 다 꼽아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나라와 더 많은 섬과 강으로 이루어진 곳, 동남아시아. 그 이름에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것은 으레 과일이나 관광지나 독특한 울림을 갖는 여러 언어들일 것이다. 관광지로서의 동남아, 수입품에서 자주 본 이름들.

식민지배 및 독재정권 청산과 경제발전이라는 과제를 양 어깨에 짊어진 곳. 한때는 수많은 식민지 중 하나였다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한국에게 원조국이었음에도 수십 년 사이 업신여김의 대상이 된 나라들. 수많은 유적지를 간직한 동시에 세계적 종교지도자가 나고 자란 곳. 수많은 섬과 산, 강과 바다만큼이나 굴곡진 역사를 거쳐온 나라들.

p.22 토론 중에 말라야(말레이시아 성립 이전 명칭)는 "중국인을 길러준 땅"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영국은 제국주의의 성공을 위해 '상상된 공동체'로서 말라야를 언급했지만, 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자신들을 받아주고 품어준 나라로 받아들인 것이다. 페낭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이보다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때의 논쟁과 단발론의 승리는 당시 말레이반도 중국계 이주민들의 지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p.66 도시와 농촌, 산간 지대와 해변 등을 그린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덥수룩한 수염에 수척한 얼굴을 한 자화상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그의 자화상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다. 슬픈 눈빛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느 평자는 "시대의 슬픔을 드러낸 얼굴"이라고 했다. 베트남의 굴곡진 근현대사는 바로 파이의 삶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들의 역사를 이끌고 눈부신 발자취를 남긴 이름들을 말할 수 있는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역사는 우리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망국부터 전쟁, 학살과 독재, 채 세대를 거치기도 전에 격변해온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 지배, 독립, 근대화와 민주주의 체제의 정착 등 격동의 20세기를 거쳐왔기 떄문이다.

대항해시대에는 미개인의 땅, 원시림과 천연자원의 보고인 동시에 '항로'의 일부였다가 팽창하는 제국주의 시기에는 그야말로 쥐어짜일 대로 착취당했던 곳. 그러나 기어코 독립국가와 민주주의 정부 정착을 이뤄낸 수많은 국가들의 이름을, 우리는 모른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들의 열악한 생활환경과 '선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저임금 이주노동자 지위, 어려운 교육환경과 낮은 국민소득 등을 이유로 쉽게 무시하지 않는가. 그들에게도 역사가 있음을, 격동의 세기를 헤쳐온 장대한 이야기가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이유다.

p.244 결국 혁명의 열풍이 전국으로 번지던 12월 30일 호세 리잘은 스페인 정부에 의해 사형당한다. 그의 사망 소식은 (...) 필리핀 독립 및 공화국 성립 선언으로 이어진다. 필리핀인들이 지금까지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선언이었다. 여기에는 호세 리잘의 소설과 활동, 비극적 죽음이 깔려 있었다. 비록 무장 투쟁에 동의 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조국을 사랑했다. 필리핀인의 삶과 문화, 역사,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다.


이 책은 문인, 사업가, 화가, 승려, 혁명가, 의사, 왕족 등 각양각색의 분야에서 20세기, 격동의 세기에 활동해온 인물들의 업적과 그들의 생애를 통해 동남아시아 각국의 발전과 변화를 살핀다. 그들의 이름부터, 현대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개중에는 전쟁통의 한반도에 머물며 고통받는 우리 민중에게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본 이도,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평등을 위해 힘쓴 이도, 말 그대로 온 삶을 바쳐 독립을 일궈낸 이도 있다. 동시에 시작은 혁명가였으나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학살자와 애써 이뤄낸 평화를 독재의 발판으로 이용한 자, 지금에 와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자도 있다.

p.40 다라랏사미는 주변 시선에 굴하지 않고 란나 제국의 후계자로서 자기 소명을 이어나갔다. 근대식 병원 설립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 전통 무용극(라콘)의 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다. 여기에는 남성 중심의 질서에 운명이 좌우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강인한 여성이 등장한다.

p.160 목타르는 한국 전쟁과 관련한 보도가 대부분 승전 소식에 치우쳐 있음을 아쉬워했다. 실제로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한국 주민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 목타르가 전하는 기록에는 전쟁 당사자로서 겪은 인간적인 고통이 담겨 있다. 그는 인간적인 눈으로 전쟁을 기록하고자 했다. 이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발현된 것이 아니다. 그가 남긴 인류애는 문학가이자 기자로서의 삶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위인전이 아니다. '선진국 못지않은 훌륭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 혹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간의 모범으로서 이들을 주목하자는 거창한 뜻은 없다. (…) 누구에게는 소소한 교훈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삶이 곧 내 삶이 되지는 않겠지만 위안은 될 수 있다" 라고.

모든 국가, 모든 문화권, 모든 지역이 그렇듯 동남아시아 각국들 또한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불완전한 민주주의제와 독재정권의 탄압, 차별과 사회갈등, 세계정세에서의 약소국 지위 등. 우리의 역사를 그들에게서, 그들의 역사에서 우리 자신을 보기를 권한다. 멀고도 가까운 곳, 낯설지 않은 이름들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의 모습을 보기를 기대한다.

p.110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의 건국 이념인 판차실라를 요란하게 앞세웠는데, 역사학자 진 테일러는 이를 두고, 수카르노의 판차실라가 인도네시아인을 하나로 묶는 '감정을 자극하는 선언' 이었다면 수하르토의 그것은 '통제와 순응을 위한 곤봉'이었다고 평가했다. 수하르토의 독재 정권은 국민을 탄압했다. 집권 32년간 정권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약 80만 명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p.169 목타르는 훗날 한국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8년 라몬 막사이사이상(저널리즘 부문)을 수상한다. 기자로서 그가 보여주었던 용기 있는 보도와 인류애가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적대 관계에 있는 세계적 강대국들의 휘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나라가 어떻게 파멸의 길에 이르는지를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소설 《호랑이! 호랑이!》의 한 대목이다. 어쩌면 목타르는 전쟁 보도를 통해 자국민들에 교훈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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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 시장주의와 반공주의를 넘어, 비판적 중국 연구의 새로운 시각
이반 프란체스키니.니콜라스 루베르 지음, 하남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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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 권위주의 정부 이미지로는 북한과 더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라. 경제 규모로도 인구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흥강국을 넘어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는 나라. 동시에 불신과 혐오, 혹은 유럽 제국주의를 무찌를 공산국가의 희망으로 불리는 나라, 중국.

세계 어디든 '메이드 인 차이나'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엄청난 저임금 인력으로 밀어붙여지는 물량공세와 당-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 정부에서 개인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조직체계까지.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을 생필품과 소모품, 완제품부터 부자재까지 모든 영역에, '차이나'가 붙어있다.

p.18 무엇보다 이들이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를 통해 강조하는 측면은 중국이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한 구성요소라는 점이며,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과 그 역으로 중국이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또 어떻게 변화시켜나가고 있는지 그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p.25 지구적 사회・경제 체제에 통합된 지 40년이 지나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경제체가 된 지금에도 중국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중국을 ‘실재’ 세계 외부에 존재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타자’로 상정하며 계속되고 있다.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중국은 일반적으로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외부 세력으로 묘사된다.


수천 년의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현대 중국, 좁게는 마오쩌둥 집권 이후 중국의 이미지는 저가상품이나 노동착취, 전방위적 인해전술 등 황화론에 동원되는 모든 수사에서 부정적 영역에 위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수사만 보아도 경제파트너와 '공산당 악마'를 정신없이 오가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중국의 모든 부정적 측면은 그들의 '사회주의 정부'에 기인하는가? 신제국주의 체제에서 벌어지는 북미유럽권의 경제적, 문화적 폭력은 동북아와 남반구 국가의 '미개'와 얼마나 다른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파악하며, 어떻게 해법을 찾을 것인가?

p.19 중요한 것은 중국을 따로 떼어놓고 자본주의 국가인지 사회주의 국가인지 규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또 이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가고 있는지 그 연결점과 연관 관계를 세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그 속에서 현재 중국과 지구적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중첩된 형태의 야만에 대한 비판과 투쟁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p.112 다시 말해 수용소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체제가 중국에 의해 타락했다는 징후도 아니고 단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특징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위구르 인권정책법과 인공지능 및 안면 인식 관련 중국 기업 블랙리스트는 매우 상징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하지만, 인권 침해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실체'는 정말 중국만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만의 문제일까? 자본주의 체제와 '서방 선진국'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인가? 그들의 이름으로 묶이는 문제들은 (애초에 사회주의의 반대말이 아니지만) '자유주의의 승리'로 종식될 수 있는가?

물론 두 저자 모두 위구르 강제수용소와 국내외의 노동자 착취, 개인정보의 무단 사용 등 현존하는 문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강력한 실질적 일당독재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고수하며 전방위적 영향력 침탈의 시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반사적 혐오와 황화론적 공포를 걷어낸 자리에 드러나는 실체의 정확한 이름이, 그 뿌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p.92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내재된 불평등과 예속의 형태를 고착화하고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부자와 권력자가 휘두르는 감시와 사회경제적 통제의 억압적인 도구가 계속 날카로워짐에 따라 이 체제가 공유하고 있는 합리성, 관행, 잠재적 결과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러한 기술을 재편하고 이러한 기술에 집단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우리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56 중국의 사례들이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신자유주의적 대학을 포섭하는 방식, 즉 주로 공공 자금을 투입해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연구 인프라를 운영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최소한의 자원을 들여 자신들의 의제를 추진하는 방식과 어떻게 유사하게 가고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제들은 종종 이 기관들이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가치들과 명백하게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좋든 싫든, 현시대의 각국은 중국에 대해 무시로 일관할 수도, 공산주의 연방의 향수에 젖어 무조건적으로 편을 들 수도 없다. 두 저자는 이상화와 적대시 두 관점 모두에 내재된, 중국을 '우리'와 유리된 존재로 타자화하는 시선을 걷어낼 것을 제안한다.

제목의 의미는 곧 중국을 대상이 아닌 분석 도구로 간주해 중국과 그들 체제의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과, 세계와의 연관성을 두루 살펴야만 기존의 선입견과 이분법적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중국의 실체를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진짜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반중 반공산주의'의 이름 아래 되풀이되고 모방되는 폭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p.44 중국을 논의할 때 담론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 모두에서 중국과 지구적 자본주의의 동역학들을 뒷받침하는 의미 있는 공통점과 상호 연관성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적어도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여전히 행동할 힘을 찾아낼 수 있는 자원이다.

p.139 '패권, 제국, 신식민주의 측면에서 포괄적이고 거대한 일반화에 손쉽게 의지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동시에 '세밀하고 근거를 갖춘 경험적, 비교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일대일로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강박을 줄이고 대신 중국 행위자들의 현장에서의 실제 행동에 초점을 맞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며, 고착화된 선입견을 넘어 숨겨진 유사점과 연결점을 발굴하고, 중국의 지구화 패턴이 기존의 배열과 공식에서 구축되고 진화하는 방식을 밝혀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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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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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 공익단체, 공익 변호사, 공익에 반하여... 이 '공익'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공공의 이익이다. 어느 한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전체의 이익'을 뜻하는 말이다. 이해관계가 촘촘히 맞물리고 경합하는 현대 사회에, '공익'이란 정말 가능한 개념일까?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대학 내 노동자 처우개선,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재개발지역 철거민 보상금 산정, 동성혼 법제화, 성평등 인권 교육... 인권투쟁인 동시에 이기적이라 손가락질 받는 공익투쟁이다. 이것들은 공익인가? 사익인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가? 무엇이 '공공의 이익'으로 불리는가?

p.4 사람들이 말하는 '공익'도 결국 누군가의 '사익•이권'이다. 장애인의 사익, 성소수자의 사익, 아동의 사익, 난민의 사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공익'이라고 부르는가? 문언 그대로 해석한다면 '모두의 이익'이란 뜻인데 과연 누구에게나 이익이 되는 보편타당한 '공익'이라는 게 존재할까?

p.5 이렇게 보면 '공익'이란 허위의 개념이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표상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이미지, 즉 의미의 '이데아'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렇게 정리해 봤다. 아마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란, '사회적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라고.


우리 사회에서는 '법대로 하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정숙, 기립,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 신성한 권위 앞에 자연스레 공손해진다. 법의 심판, '정의의 철퇴'를 기대하는 마음은 수많은 법정(을 빙자한 멜로)드라마 장면들 곳곳에 녹아들어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법은 정의의 편이고, 국가조직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로 채워져 있는가? 항간의 믿음처럼, 기업은 소비자의 '눈치'를 보며 상식선에서 운영되는가? 국가권력은 돈 많고 힘 있는 자의 이권이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공정'을 수호하는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들에게 무지하고 가난한 이들의 '떼쓰기'가 문제인가?

이런 사회에서, 과연 공익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 사전적 정의가 아닌, 실제 사회의 개인들이 이해하는 공공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우리'란 말인가.

p.6 해당 시대, 해당 공동체에서 '공익'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들이 가장 '이기적'인 목적으로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여 처절히 투쟁해 승리했을 때, 그때를 우리는 역사가 한 단계 발전한 시점이라고 배운다. 이기적이고 과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에 대한 불신이 필수적이다. 불신과 견제, 언제든 저항할 수 있는 권리와 그를 위한 지속적인 감시와 자정은 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은 '건강한 불신'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피해의 결과, '경험적 불신'이다.

그러므로 국민정서에 새겨진 공익은 권력의 눈에 '불온한' 자들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불온'한 사익에 둘러진 일종의 인증마크 같은 것이다.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다'는 것. 덜 가진 사람, 더 약한 사람이 가진 것 많고 힘 센 자와 한목소리로, '자발적으로' 말하기를 요구받는 사회. 대다수가 그런 사회에, 그렇게 살고 있다.

p.64 지금 우리 사회는 '낡은 것'은 죽지 않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결국 죽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으려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하여 태어나지 않는다. '낡은 것'들은 자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둘러대면서 죽지 않고 버틴다. '새로운 것'들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도 '다름'을 존중하며 결국 태어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렇게 '낡은 것'의 복지부동과 '새로운 것'의 복지부동이 곱해져서 '낡은 것'은 더더욱 강화한다.

p.146 우리는 모두 상대적 약자다. 잠재적인 권리침해 피해자다. 그래서 나 또한 언 제 쟁의행위를 할지, 집회 시위를 하게 될지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참고 힘을 모아야 한다. '불편함의 품앗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연대 의식이다.


저자는 다년간의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며 함께했던 이들의 역사와 권력이 국민을, 대중을 기만해온 사례를 변호인과 인권투쟁 현장의 목소리로 풀어놓는다. 우리 사회의 '공익'은 '공정'하지도 '공공의 이익'을 대표하지도 않았다고. 그 자리를 폭력과 방관이 채웠다고.

또한 일상에서 '현실적 여건'이나 '사회적 통념'을 이유로 밀려나고 지워지는 이들을 짚는다.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일이 커진다'며 미뤄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사익을 '허용'하는 이는 누구인가. 어떤 '사익 추구'는 선망되는 동시에 어떤 것은 떼쓰기가 되는가. 과연 우리는 진실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는 보다 함께, 보다 공정하게 나아가려는 이들가 연대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 책은 그 험난한 길을 상상할 책임을 일깨운다. 지금도 어딘가의 누군가는 차마 상상되지 않는 길에 있으니. 읽은 사람아, 가자, 알아버린 사람아, 함께 가자, 그렇게.

p.314 화해는 힘의 균형이 맞을 때 가능하고, 힘의 균형을 위해서 누군가 더 많이 양보해야 할 때가 훨씬 더 많으며, 화해를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한데 용서를 위해서는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화해로 가는 길은 어렵다. 그래도 화해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이 가진 자의 양보, 잘못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 높게 있는 자가 낮게 임할 때 평화도, 화해도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공익'이라는 표현에 알맹이를 꼭 넣어야 한다면 바로 이런 평화, 이런 화해가 아닐까.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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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과 함께 서쪽으로
린다 러틀리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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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05살의 노인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그 자신의 이름처럼 100살 하고도 니켈(5센트)만큼을 더 살았다는, 창밖의 '걸'에게 연신 말을 거는 남자.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모두 쏟아부어 '너'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다는 남자. 그가 이토록 절박하게 전하고자 하는 기억은 무엇일까. 누구를 향한 이야기일까.

가진 것보다 더 가진 것이 없는,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는. 사람보다 떠돌이 개에 가까운 소년이 있었다. 우드로 윌슨 니켈, 이른바 우디. 그의 유일한 목표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캘리포니아. 실향민의 낙원.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곳. 폐허조차 남지 않은 황량한 모래먼지의 땅을 떠나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살아 숨 쉴 수만 있다면.

p.40 대공황 시기에 굶주림이란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그냥 당연한 일상이었다. 먼지 폭풍이 가축들을 다 죽여 버린 후에, 더스트 볼 사람들은 프레리도그와 방울뱀을 잡아먹고 회전초로 수프를 끓여 먹었다. 다음 끼니에 먹을 수 있는 식량이 과연 어디에서 올 지를 전혀 알 수 없을 때에는, 먹는 것만이 곧 인생의 전부가 되고 우리는 그저 온종일, 매 순간 배고픔을 쫓는 야생 동물에 불과할 뿐이다.

p.365 나를 살아 있게 해준 동물들이 속에서부터 굶주린 채 죽어 갔고, 어쩌면 내가 되었을지도 모를 평범한 농부가 죽은 소의 배를 갈랐을 때 안에서 나온 건 먼지뿐이었다는 이야기들을. (...) 이 땅은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복수를 했고 대체 뭘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포기할 시기마저 놓쳐 버렸던 때의 일들을.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차마 그만두지도, 놓아 버리지도 못했다고.


당장 먹을 것도, 쉴 곳도, 내일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거리의 '평범한' 부랑아 우디 니켈의 일상에 폭풍이 들이닥친다. 언젠가의 모래폭풍을 떠올리게 하는, 헐떡이는 짐승의 눈이.

허리케인으로 무리를 잃은 새끼 기린들이 미국을 가로질러 동물원으로 이송된다더라. 트럭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만일 그들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꿈의 땅에 닿으리라. 그 일념으로 무모한 여정을 시작한다.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희망도 잠시, 훔친 오토바이는 못쓰게 되어버리고 다시 한번 좌절에 잠기려던 찰나, 기린을 책임지는 괴팍한 존슨 영감에게 반 애원 반 공갈로 임시 운전수 자리를 따낸 니켈은 다시금 위태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거짓말, 분노의 기억, 희망 없음을 품은 채, 그를 향해 코를 벌름대는 기린을 싣고.

p.97 사람들은 기린들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린들도 분명히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때 기린들이 낸 소리는 끔찍한 허리케인을 겪은 기린들이 공포에 질려 끙끙거리고, 비명 지르고, 울부짖는 소리였다. (...) 그 소리는 내 가슴에서 요동쳤고 기린의 공포가 마치 나 자신의 공포처럼 느껴졌다. 나는 1초도 더 견딜 수가 없었다.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1930년대, 열악한 도로사정도 모자라 사막을 지나는 길에, 정체가 모호한 '빨간 머리'와의 비밀, 순간순간 엄습하는 기억. 폐허는 그가 가는 곳 어디나 따라붙는다. 기억하라고, 그래봤자 너는 별볼일 없는 가난뱅이 부랑자라고. 살인자. 최소한의 것조차 갖지 못한, 짐승.

상처가 인간의 모습을 한다면 바로 그일까. 기린과 함께하는 길에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서서히 변화한다. 조건없는 환대, 기린으로 표상되는 희망, 오래전 잃어버린 따뜻한 가족의 모습, 생명을 그저 돈으로만 보는 이들까지. 가족의 죽음을 목도했던 소년은 어느새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륙을 가로지른다.

여행의 종점에서 그에게 주어진 것은 새 삶의 희망이 아니었다. 별안간 끌려간 전쟁터에서는 다시 수많은 죽음과 주검에 파묻혔으며, 간신히 살아 돌아와서는 죽은 자를 지키는 야경꾼이 되어 다시금 죽음에 맞닿은 시간을 지나 그 자신의 사랑을 떠나보낸 후 죽음을 기다리는 현재가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를 반복해 오가던 이야기는 그렇게 현재로 돌아온다.

p.244 나는 단지, 〈하느님의 신성한 에덴의 우뚝 솟은 피조물〉과 함께 나아가다 내 본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 발견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면, 그 일은 잊을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뿐이다. 바로잡아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서두에 스쳐지나갔던 텔레비전을 때려부순 일의 전말은 그제야 드러난다. 인간이 자연의, 다른 생물의 생존을 위협함으로서 마침내 인간 자신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음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그것은 대의가 아니다. 차라리 절박한 고백에, 속죄에, 사명에 가까운 것.

죽음과 좌절을 가로질러 생을 관통하는 기억들이 있다. 새벽의 하늘, 갈색 사과 같던 기린의 눈, 모든 것을 걸고 타오르던 여자와 기린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존슨 영감. 폐허조차 남지 못한 땅에서 떠나온 소년이 평생을 간직해온 이야기는 그렇게 노인의 편지로, 그조차 시간에 낡아버린 편지로, 끝끝내 닿을 수 있을까.

이 긴 이야기는 딱 한 마디, '유색인 전용 숙소'와 '일몰 마을'이 존재했던 때에, 대공황과 노숙인 마을이 있던 시대에, 어쩌면 지금까지도, 사람이 살기 위해 너무도 절실했던 한 마디를 위해 쓰여졌을지 모른다. 「생명은 사람의 것이든 아니든 다 같은 생명이란다, 얘야. 존중받아 마땅한 거라고」. 그렇게 어떤 순간은 평생이 된다고.

p.502 그리고 몇 년은 몇십 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살아 나갔다.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상처를 낫게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앞으로 만들게 될 어떤 새로운 기억보다 더 많은 기억들을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특별한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의 내가 되게 만들어 준 순간이고,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나를 회상하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진실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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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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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썩 선호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달리 표현할 법이 없다. 이게 데뷔작이라고? 속삭임과 고함, 생각과 말, '현실'과 초월을 이다지도 자유롭게 오가는 글을 써내는 신인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그것도 데뷔작으로, 삽화 하나 없이 500여 쪽 이어지는 글로 영화보다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읽다보면 알게 된다. 아, 이 작가는 잘 하는 걸 여태껏 잘해왔구나… 여태껏 봐온 작품들에서 초기작의 서투름을 찾을 수 없었던 건 시작부터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구나...

어쩐지 조금 원망스럽기까지하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도 모자라 데뷔작까지 모조리 집어삼키듯 읽어버렸으니 이젠 뭘 뜯어먹는담. 다음 신작 발표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거나 언젠가의 기적처럼 미발표작 공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동시대 작가에게 도시, 국가, 문명과 신화의 경계를 넘어 범람하고 재창조할 작품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필경 크나큰 행운이리라.

p.7 나는 한때 나였던 자가 아니다. 그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를 가르고 열어 심장을 잡아 뜯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해 내려 노력해야 한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다. 절망마저 무너트리는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솟아나는 것, 너무도 찬란해 되려 공포스러운 것. 환희와 경배 속에, 혹은, 그 이름 아래 죽어나가는 나약한 것들. '현실'을 바탕으로 제약 없는 상상을 수놓듯 펼쳐내고 그 세계에 맞서는 강인한 여성을 그려내는 일.

편협한 사고일지 모르나. 제미신의 작품에는 언제나 차별의 전복과 고발의 은유가 있다. 때로는 자연스러운 질서로, 때로는 정공법으로. 외모를 바꾸는 힘에 '어떻게'가 아닌 "어디서 난"을 묻듯이. 작중 계급과 질서 곳곳에서 이국적인 것은 무엇이든, 몸이든 물건이든 환경 그 자체든 착취해온 1세계 백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드러난다.

p.322 저것은 사내들이 사용하는 동물적 수법이다.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등 털을 곧추세우는 것처럼. 그 이면에 실제로 공격적인 위협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여자의 강점은 그런 위협이 진짜인지 아니면 허세에 불과한지 구분하는 데 있다. 지금은 진짜가 아니지만 사내들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법이다.

p.347 나는 차마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일로 나를 나약하다 여길 것이다. 약한 게 아니야. 나는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인간적인 거지. 적어도 난 아직 인간이야.


낯선 세계관과 수많은 등장인물 탓에 용어와 관계도를 정리해가며 읽을 독자가 많을 줄로 안다. 방대한 분량을 생각하면 퍽 현망한 처사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폭포, 어쩌면 빛의 기둥처럼 쏟아져내리는 이야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정신없이, 폭력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따로 정리하지 않고 쭉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주인공이 그러했듯, 졸지에 끌려 들어온 낯선 세계의 정교한 질서와 매끄러운 풍경 이면의 잔인함과 폐허를 정면으로 목도하게 될테니.

p.208 "아라메리가 알아야 하는 게 뭐죠, 이모님?"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궁금했던 것이었다. 라스가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잔인해지는 법이지요. (...) 사람 목숨을 화폐처럼 사용하고 죽음 그 자체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법 말입니다."

p.394 "우리는 신의 자비 아래 살고 당신들의 변덕에 맞춰 살아가요. 심지어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신들의 싸움에 휘말려 죽어 나가죠. 만약에… 만약에 당신들이 그냥… 그냥 떠나면 우린 어떻게 되죠?" (...) "당신 자신이 될 때가 있긴 해요? 다른 사람이 당신을 보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진짜 당신이요."


시대와 장소, 존재와 초월을 넘나드는 물결에 독자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마라. 그 무엇도 사랑하지 말며, 어떤 사랑도 사랑하지 마라.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마라. 살고 싶다면, 아니, 최소한의 자비라도 빌고 싶다면.

태양같은, 세계 전체와도 같은 이야기다. 감히 장담컨대,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의 이름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장르로 자리할 것이다. 기쁘고 두려운 마음으로 차기작을 기다려본다. 새로운 신, 파멸과 변화를 불러오는 그 이름을 경배하듯이.

p.130 "내 누이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는 사랑이란다. 사랑하는 게 있다면 사람이든 뭐든 조심하도록 해라. 누이는 그걸 공격할 테니까."

p.473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했어?" 나는 속삭였다. "만물의 아버지시여, 정말로 그렇게 믿었군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건 우리 가족의 전통이니까."


*도서제공: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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