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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정치 - 안티페미니즘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신경아 지음 / 동녘 / 2023년 1월
평점 :
*출판사 동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상에 대한 명백한 또는 암묵적인 반대"를 의미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여성운동의 특정 이슈나 의제, 성과를 둘러싸고 일시적이거나 비교적 단기간에 격렬하게 진행되는 형태인 '일시적 반격으로서의 백래시'이며, 둘쨰로는 특별한 계기 없이 여성 정치인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개인적인 괴롭힘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상적ㆍ지속적 공격으로 나타나는 백래시'이다. 이를 통해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가부장적 질서와 성별 불평등 체계를 기본적인 구조로 살고 있으며, 여기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차별과 억압을 정당한 규범으로 유지해가려는 힘"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조막만한 한반도 땅에서 소위 '모던걸'의 등장 이래로 자유롭고 안전할 권리, 동등한 사회적 주체로 살아갈 권리를 외치는 여성에 대한 공격은 중단된 적도, 그 기세가 약해진 적도 없다. 때와 장소에 따라 모습과 범위를 달리해가며 지치지도 않고 끌어내리려 애쓰는 이들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백래시는 본질적으로 자신을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는 여성이 존재한 이래로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이 성취를 보이는 곳에는 언제나 백래시가 존재했다.
p.28 백래시는 정확하든 아니든 여성들이 일정한 성취를 이뤘다는 지각에 의해 촉발된다. 페미니스트의 성취에 직면한 이들이 그에 맞서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재강화하려는 태도나 행위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백래시는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분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토대로 한다. 누가 권력을 갖거나 갖지 말아야 할지, 가질 수 없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을 포함한다.
때때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래, 극심하게 시달리는 바람에 많은 이가 지쳐버린지 오래인) 설전의 기록을 쭉 읽노라면 어쩌면 명확한 목적성을 띄거나 나름의 합리적인 논리 체계가 있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는 백래시 사례는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설전까지만 가도 다행인 수준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알고리즘처럼, 당연한 무언가로 자행되기까지 하는 한국의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왜, 어떻게 물리적이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형태로까지 발달해왔으며 또 그들을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을까.
p.11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은 훨씬 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고, 그들의 감정은 불안이나 공포 쪽에 가깝다. (...) 불안은 우울이 되고, 좌절은 분노가 되면서 감정의 전이가 발생한다. 나의 분노를 투사활 누군가로서,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 제공자로서 '그들'이 지목된다. 우울은 혐오로, 분노는 적대로 심화된다.
혐오와 적대의 감정에서 형성된 타자에 대한 상징폭력은 일시적인 쾌락을 주며, '우리'의 결집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효과의 도구로 체험된다. (...) 백래시는 이런 감정들에 편승해 사회적 세력을 확대해간다.
p.16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이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실천이다. 만약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바로 이런 민주주의 사회를 거부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작금의 사회가 부끄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수차례 말했듯이 행정부의 수장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제1임무는 성원의 보호이다. 필수라거나 기본이 아닌 굳이 '제1'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는 그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자국민 외의 일시거주자를 포함해 자국 영역 내의 성원의 기본적인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p.45 한 사회에서 백래시가 전개되는 양상은 절망의 정치의 모습을 띈다. 매우 부정적인 감정 기제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에 대해 여러 형태의 백래시가 이루어져왔다. 노골적인 힘의 행사, 폭력이나 위협, 운동의 연대를 분열시키는 '분할 정복' 같은 의도적 전략들 외에 조롱과 낙인찍기, 침묵시키기, 부드러운 억압 등도 있었다. 이는 상징적ㆍ물리적 폭력이 동원되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하는 공격을 자행한다는 점에서 가장 부정적인 형태를 띈 힘의 행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국가권력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게 적극적인 폭력을 가하고 또 방조하는 나라이다. 앉은 자리에서 하루가 모자라도록 실사례를 들 수도 있다. 판례만 가지고도 하루가 모자란다. 이런 분노에 타오르는 이가 과연 하나 뿐이겠는가. '이만하면 감사한 줄 알라'는 말은 가해자 혹은 방관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분노와 절망은 평등하지 않다.
특히나 '일베'로 대두되어 사회 전반의 정서로 확산되고 국가 정책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내는 백래시는 참담한 몰골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는 최근의 '이대남'과 '여성가족부폐지논쟁'을 중심으로 하는 담론에서 크게 드러난 바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p.137 페미니스트 공격이 확산된 사회적 배경으로 김보명은 젠더 이분법에 토대를 둔 생물학적 본질주의가 신자유주의 사회의 탈맥락화된 능력주의와 결합해온 현상을 지적한다. 성차별의 오랜 논리이자 방식인 생물학적 본질주의가 경쟁과 불안 속에서 성장해온 청년 남성들의 '공정성' 담론과 결합하면서 여성혐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과 문화적으로 일상화된 여성혐오는 이미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차별'로 인 지되지 않는 데 비해, 성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시성을 획득하면서 '역차별'의 감각을 생산ㆍ확산시켜왔다는 설명이다.
p.168 이런 결과를 고려해보면, 여성정책연구기관을 사회 복지기관으로 통합하는 것은 결국 여성정책을 지우고, 지자체 정책에서 성평등 가치를 배제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복진흥', '복지가족' 등 어떤 논리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간판을 달거나, 일반 연구원으로의 흡수통합, '양성평등' 운운하는 개편은 모두 지자체 정책에서 '여성'과 '성평등'을 삭제하고, 여성정책을 최소한의 사업으로 국한하려는 의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이 책은 백래시의 정의부터 각 국가별 현항과 양상, 무엇보다도 한국의 백래시에 동원되는 정동과 사회적 요인, 현재 한국의 '젠더 갈등'과 실질적인 차별 양상에 대해 상세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지침서'로 불리기 바라는 이유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며, 알지 못하고 그저 분노하는 것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p.176 성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시정 요구로서 여성주의 실천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반발을 '젠더 갈등'이라고 한다면, 백래시는 이러한 젠더 갈등이 젠더 정치의 사회적ㆍ경제적ㆍ문화적 맥락에서 반격으로 조직되고 세력화하는 양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현실은 ‘젠더 갈등'이라고 부르기에는 정치적 함의가 훨씬 더 크고, 국가권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현상이 되어버렸다. 개인들 사이의 젠더 갈등이 정치권력에 의해 정치적 백래시로 확대되면서 국가권력의 통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젠더 갈등' 사회에서 '백래시'의 시대로 깊어져가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p.236 성평등 정치는 여성운동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베를루는 "기존의 헤게모니는 서발턴 또는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을 위한 공간이 있을 때만 도전받을 수 있다"는 프레이저의 말을 빌려,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운동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정치사회적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성운동 없는 성평등 정치,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젠더 불평등에 대한 도전은 불가능하며, 여성운동 없는 성평등 정책은 공허한 것이 될 뿐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여성주의의 새로운 도전과 백래시 대응전략으로 맺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확장하고 오래, 지치지 않고,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이 일반적 가치로 굳어진지는 오래이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 길을 찾고 있다.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러니, 어느 책의 제목을 빌어 오늘도 침묵하지 않기를, 살아남기를 다짐한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p.12 소수자들이 제기하는 정의에 대한 요구를 묵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우며, 사회 변화의 방향을 뒤로 돌린다. 더 깊은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적 실천을 공격하며, 그런 공격성을 힘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힘이 아니라 폭력이다.
p.240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가 전개되는 탈민주화 사회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하층계급과 빈곤층, 이주민, 장애인 등 '그들'로 분리되는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ㆍ차별ㆍ폭력이 공존하기 쉽다. 그러므로 백래시에 대응할 때도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사회적 맥락을 일고, 그 안에서 다각적 연대를 통해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