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가격 - 원자재 시장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흔들었는가
루퍼트 러셀 지음, 윤종은 옮김 / 책세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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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세상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따금 어떤 말을 떠올린다. 말이라고 하기엔 외침에, 외쳤다고 하기엔 호소에 가까웠던 그 말을. "여러분들이 배우고 떠받드는 그 경제법칙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현대 사회의 진리로 자리한 것은 놀라울만큼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정확히는 그것이 영원불멸의 원칙인 것처럼 여겨지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간주된다. 마치 자연스러운 질서인 것처럼, 물이 아래로 흐르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인간이 없는 물을 만들어내고 거대한 물줄기를 솟구치게 했으며 가려진 해로는 달을 띄울 수 없다는 것은 별개의 것으로 망각되는 동시에.
"시장질서"의 신화는 무패의 그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고도 마치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는 양, 순응하고 찬양하면 돌아올 순번에 부의 천당에 합류할 수 있는 양 확산되고 강화되는 신념의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의심스러워진다. 동시에 나의 일상은 얼마나 안락하고 무딘가, 기껏해야 채소 값이 뛰었다는 뉴스 하나만으로 뭘 알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p.59 우리는 아랍의 봄을 선과 악, 자유와 독재, 존엄과 부정부패의 대립을 담은 도덕적인 이야기로 오해했다. 이런 식의 해석은 독재 정권의 경제적 기반(빵의 민주주의)과 독재 정권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 세계 시장의 힘을 감췄다.
p.120 '전장 사망자' 수를 계산해 표를 만들고, 세상이 날로 평화로워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추세선에 그 숫자를 반영한 뒤에도 트라우마는 계속된다. 우리가 계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좀비로 전락한 삶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난민들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수요와 공급은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이 원하고 사람으로 인해 공급되고 조달되며 요구된다. 오늘 중동의 흙먼지 날리는 분쟁은 서구의 어느 고층 빌딩 사무실에서 시작될 수 있다. 대화나 합의로 조정될 수 있었던 협상은 또다른 곳에서 조달된 무기로 엎어지고 수백, 수천의 난민을 유발한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한 무장경비인력의 증가와 그들이 빠져나간 국가의 무너진 경제와 사회 시스템, 재정 긴축을 요구하는 금융계, 아침저녁이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무기한 중단된 건설 현장, 가상화폐 채굴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는 투자 전문가 등 수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여기서 당기면 저기서 무너지고 이리 당기면 저 끝으로 나동그라지는 모양새다.
오늘 어느 분야의 주식이 얼마나 오르내렸으며 유가와 양배추 수급 곤란이 무슨 상관인지, 그 어디인지를 따라가다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나비효과가 단순한 비유에 그치지 않음을 나날이 체감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p.130 자원의 저주는 한 지역의 위기를 세계적인 재난으로 바꿀 수 있다. 자원의 저주라는 장치는 원자재 시장과 국가 권력의 결탁, 손쉽게 벌어들인 돈으로 인해 만연하는 부정부패,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이든 기꺼이 용인하는 사람들을 결합해 혼돈을 증폭한다.
p.157 사실상 돈은 같은 서구권 은행의 다른 계좌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왕복 여행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디지털 공간에서 돈이 춤추듯 움직이는 동안, 산유국들은 무기를 사고 반대 세력을 매수하는 대가로 부를 약탈당했다. 자원의 저주는 이러한 순환 구조에서 비롯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 구조 자체가 바로 자원의 저주였다.


경제 논리는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와 차트로 증명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없다. 분명 사람으로 인해 굴러가고 돌아가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가지는 유한성과 취약함, 버는 이가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고 제약회사의 치솟는 주가는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질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너무도 쉽게 무시된다. "사람이 먼저" 라는 명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착취하고 흔드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들에 동조한다. 마치 초월적인 질서에 순응하면 지복의 부가 주어질 것이라는 양, 허구의 환상에 시달리는 와중에 현실의 고난이나 근원적 해결은 간단히 무시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은 여전히 쓰이지만 더이상 국가-절을 떠나 살 수 있는 개인-중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 빼앗기는 자들은 분열을 바라는 권력에 순응하고 동조한다. 순진하게 목을 내밀고 기다리는 다수와 묵살되는 항의를 타고 넘실넘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오늘도 순항중이다.
p. 144 투기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종교가 발전하면서 만들어낸 게임과 똑같은 논리를 따라야 한다. 두 게임은 모두 지배적 통념에 순응할 때 보상을 내린다. 또 두 게임에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다른 게임 참가자들이 받아들일 새로운 '진실'을 예상함으로써 부를 얻는다.
p.390 금융인들은 흔돈에서 이익을 얻지만,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사회 구조를 위협할 정도로 흔돈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안전망이 갖춰져 있다면 그들은 비내리는 뉴질랜드의 요새가 아니라 햇빛이 잘 드는 벨에어의 고급 주택에 머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생존 게임이 베벌리힐스 바깥에서 벌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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