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배달노동자 혹은 배달 및 중계 플랫폼 산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현장의 압박을 생생하게 들은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잘 알지 못하고 피부에 와닿도록 직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배달 노동자에 대해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딸배", "못 배운 사람"이면서 신속정확 어디든지 갑니다!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상한 세상이다. 내 음식, 내 물건은 한시간만 늦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과 저 무식한 오토바이가 사회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체로 같은 사람이다.

바로 이 모순이 근원적인 지적을 어렵게 한다. 요구하는 내용은 정반대의 것들인데 요구하는 사람은 같다. 혹은 그 힘이 시장을 돌아가게 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바뀔 수 있는데 너무나도 당연해진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혹은 포기하지 못하도록, 문제를 알지 못하도록 교묘히 가리고 조장한다.

p.11 사고의 순간은 찰나이지만, 사고에는 맥락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라이더의 생계와 기업의 이윤, 소비자의 편리라는 복잡한 욕망의 연대 속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한 줄의 사고 소식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야기다.


소비자들이 선한 마음으로 궂은 날엔 배달 주문을 하지 말자고, 늦어지는 배달에 불만을 표하지 않기로 한들 실질적으로 일선에서 뛰는 배달노동자들에게 별 영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전 중에도 자꾸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차 사이와 인도를 위험하게 오가는 데엔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당장 굶어 죽는 것과 죽을만큼 위험한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마음을 혹자는 알지 못하고, 혹자는 알면서도 제 일이 아니기에 무시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든다.

물론 과속과 신호위반, 안전장비 미착용이나 인도를 넘나드는 행위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남도 아찔한 상황이 숱하게 많았고, 정말 어디다 떼밀어 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알아야 단속을 하든 처벌을 하든 할 게 아닌가. 끊임없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도록 밀어넣고 심지어 판을 키우면서 하지마라 처벌한다 백날천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p.89 대형 화주 역시 배달 시간에 대한 커다란 이해관계 당사자다. 각 개인이 개념 있는 손님이 되는 것만으로는 배달 재촉으로 인한 라이더 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화면에 배달 시간이 나오잖아요. 파란색은 15분, 4분 남으면 노란불, 3분 이내면 빨간불. 그런 걸 보면 압박감이 느껴지죠.“


이 책은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서 이중으로 이용되는, 배달산업의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좋을 배달라이더들의 사고가 왜 그렇게 잦은지, 왜 그렇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근절되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파헤치고 검증하려 노력한 과정이자 현실 고발이다. 혹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사연이 궤변이라고, 다 자기들 돈 벌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고, 누가 시키기라도 했느냐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대체로 틀렸다. 현실이며, 살 만큼 벌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소비자가 그렇게 요구한다. 신속정확 초고속 만능 배달 사회에 사는 한 책임 없는 사람은 없다. 당연해진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시간을 안전과 함께 쪼개며 목숨을 걸고 달린다.

p.272 배달노동자가 아무리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안전 장비를 착용한다 하더라도 도시 전체 구성원들이 안전이라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달노동자의 공장을 안전하게 정비하는 것은 시민 모두의 안전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 배달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기업은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임금, 고용뿐만 아니라 산업안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이 쪼개지고 유연화되는 것만큼 기업도 쪼개지고 유연화되고 있는 중이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 갈 자리에 빈칸만이 존재한다.


이따금 이런 말을 한다. 개인을 집단의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고, 집단의 이름 아래 완벽히 들어맞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문받은 음식을 가지러 가게로 들어선 배달 기사에게는 이름이 있고, 비에 젖어 바닥을 더럽히는 사연이 있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장과 매장 이용자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한 번만 쓸 수 있겠냐고 허리를 숙여야 했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까짓 것 만드는 데 대체 얼마나 걸리기에, 이 시간이면 내가 사와서 들고 와도 남겠다는 배달 시간에는 똑같이 말하는 이가 너댓명은 있었을 것이고, "젊은 사람이 노력해서 성공할 생각은 안 하니 이런 일이나 한다" 면박을 당하던 이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냄새나서 민원이 들어온다, 입주자와 마주치지 않게 화물 승강기를 이용해야 한다고 모두가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때 "고품격 아파트"의 명예 이전에 배달기사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p.226 각각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워둔 책임의 자리에 일하는 사람만을 남겨놓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소한 화장실 하나 정도는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p.205 고급 아파트의 주민들은 냄새가 나고 건물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배달을 아예 막아 버리자는 다수파와 그래도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소수파로 나뉘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소수 의견을 존중하여 갈등을 해결했다.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게 평소 쓰지 않던 화물용 승강기에 배달원들을 올려보내자는 합의였다. (…)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건물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잖아!"라고 소리쳤다. 건물에는 명예가 있는데, 배달노동자에겐 명예가 없었다.

무릇 사람이 되어서 알지 못하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세상 일이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일은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깜짝 놀라 일어서게 되지 않는가. 더이상은 이렇게 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함께 살아야 하고 같은 공간을 오가며 살아야 한다. 이미 알아버린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함과 죄책감이 배달 주문 알림과 함께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도 목숨을 걸고 일해서는 안 된다. 살기 위한 노동이 자신 혹은 누군가의 생사를 담보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누구도 모욕을 위한 자리에 위치해서는 안된다. 당연한 것이 불편하게 여겨질 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모순을 눈치채길 바란다. 그것이 변화로 가는 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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