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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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지금은 아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인생이라고 하기엔 나름 어엿하고 조금 민망한 시간의 반 정도를 운동으로 보냈다. 평생을 꿈꿨지만 이내 그만한 재능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던 것도, 좋아하는 일을 왜 계속할 수 없는지 밤새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던 것도, 몸이 남아나질 않게 골고루 다치고 회복했던 것도, 다시 마주한 곳에 눈물이 차올랐던 것도 그것이 처음이자 가장 강렬한 대상이었다. 태권도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어째 재롱잔치 신세를면하지 못하는 태권도는 첫사랑이자 첫 좌절과 회피를 함께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작은 여느 집이 그렇듯 쟤가 저렇게 부실해서 사람 구실은 하겠냐며, 금세 그만두겠지 싶은 마음으로 보낸 동네 도장이었고, 끝은 대학 동아리였다. 맨발로 잔디밭에서 운동한다고 설치다 상처에 풀독이 올라 벌겋게 부었을 때도, 근육이 찢어지고 피가 고여 시커멓게 멍이 들어 절뚝거릴 때도 사랑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


앞서 말했듯 전공이나 업이 아닌 이상 태권도는 "나도 군대에서" 내지는 반 조롱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심심찮게 우스개로 끌려나오는 일에 화를 내는 때는 지났으나 땀에 절고 헤진 띠, 눈 감고도 찾을만큼 몸에 익은 도복, 숨을 고르고 어디를 어떻게 향해야 할 지 아는 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벼려내는 감각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거짓말이다. 모든 것을 외면하던 시간에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던 기억.

한동안은 떠올리는 것도 괴로워 애써 피해다녔고, 업으로 삼는 것도 아니라 구태여 말할 것도 없어 말할 일도 없다보니 이제와서는 그래, 그런 때도 있었지- 정도의 단어가 되었다. 때때로 그 감각이 사무치게 그리우면서도 다시 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는, 조금 슬픈 무언가,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활동에 태권도가 자리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니 더더욱.

p.32 아이들이 주고객인 태권도장들은 주고객의 니즈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게 점점 성인이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사라져갔다.

p.100 여전히 알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인생 이모작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삼모작, 사모작을 지어보고 싶은 내 마음은 영심이 같은 청춘이다. 그런데 내가 늘 우려했던 것처럼 ‘나잇값'을 치르지 않고 드러내는 욕망일까 두렵다.


왜 굳이 태권도냐, 묻는다면 그만큼 부담이 적고 친숙한 운동도 드물기 때문이며, 단순한 체력증진에 그치지 않고 자기수양을 기본으로 하는 무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살사별자, 창졸간에 남겨진 이들을 대하는 임상심리사인 저자는 “남겨진 사람들을 오래도록 위로하고 싶어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p.101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하게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삶의 끝이라는 것에 매번 직면한다. ‘나중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의 그 나중과 다음과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풀어내는 수련 이전의 시간부터 파란띠 승급을 앞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한국 여성, 그것도 중년 여성이 지겹도록 겪는 사회적 시선과 자기부정이 녹아있다. 그나마 심리학자라는, 스스로와 타인을 객관화하는 일에 익숙한 직업이라 다행일 정도로. 스스로에게도 살면서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고, 미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우량아로 태어나 곰같은 괴력의 여성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펑퍼짐한 도복에 안도하면서도 맵시가 영 아니올시다- 에 창피했다고. 그러나 우리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지 않은가.

p.124 추하게 늙지 말자는 결심은 자주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가급적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게 되었다. 스스로 만든 제약 안에서 노화를 서글퍼만 하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권위, 기존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한낱 초심자로 서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맨발과 마음같이 되지 않는 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낮은 자세로 돌아가 숨을 고르고 단단히 주먹을 말아쥐고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기합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상에 못미치는 나, 미트에 미워하는 이를 투영하기를 그만둘 수 없는 나, 겨루기가 아닌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는 나, 욱하는 마음에 볼멘소리를 내뱉는 나를 인정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거창한가? 저자가 말하는 수련 이전의 삶을 구성해온 충동구매와 반복되는 실패, 주접의 공통점은 바로 끊임없는 용기이다. 좌절에 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도인의 정신이 아닌가. 나를 이해하고 가다듬는 것에 초월, 즉 극기가 있다. 물론, 저자가 말하듯 그 길에 수많은 "수련 동지"와 서로를 재단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있다.

p.242 태권도 수련을 하면서 그동안 부정적으로 각인되었던 '극기'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혹은 확장이 극기였던 것이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오늘의 기쁨이 내일의 후회로 이어져도 좋다. 간신히 허리께 미치는 발차기, 어제 배우고 오늘 잊어버리는 품새면 어떤가. 다시 하면 된다. 몸의 기억은 강력하다. 몸은 시간을 잊지 않는다. 파도에 무너진다 하더라도 성을 이뤘던 모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쌓아올린 기억은 다시금 일어설 용기를 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 보다 많은 이가 "내 꿈은 날아차기"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다 많은 여성, 그것도 나이 든 여성들이 맨발에 도복과 띠를 갖추고 도장으로 향하길, 그 자리에 언젠가의 나 또한 다시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고, 언제까지고, 가슴속에 검은띠와 날아차기! 를 품고.

p.264 수련을 마칠 때마다 우리는 “바른 생각, 넓은 마음, 건강한 신체”라고 다 함께 소리친다. 어쩌면 ‘날아차기’보다 더 어려운 목표일 수 있는 그곳을 향해 정해진 시간에 도복을 입고 맨발로 도장에 서서 내 몸이 보내는 무언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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